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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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의 서평단에 신청했다.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즐겨보고 있기 때문에 영화와 철학을 버무리는 시도를 했다니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소리도 없이>를 보고나서 검색하다가 라이너가 해석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좋다는 건 알겠는데, 아니 배우들의 연기 훌륭하고 연출도 좋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뭔가 찜찜했다. 뭐랄까? 모순된 감정이 든다고 해야 할까... 분명 유아인(태인)과 유재명(창복)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맞는데 나는 그들이 별로 잘못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자꾸만 두둔하려는 맘이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마지막 씬에서 정점을 찍었다. 유괴당했던 문승아(초희)가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태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초희의 당연한 행동을 보며 배신감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싶었던 거다. 내 맘을 나도 몰라 숙제의 답을 찾듯 돌아다니다가 보게 된 라이너의 <소리도 없이> 해설을 보고 이마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리도 없이>에서 잡아낸 단어는 위장이었다. 영화 후반부 화목한 가족의 한때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시민가장의 가면을 쓴 창복, 순박한 장남의 가면을 쓴 태인, 착한아이 가면을 쓴 초희까지 그들은 유사가족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찍으며 하하호호 웃고 있는 그들이 하는 그 행동은 사실 협박을 하기 위해서다. 유괴범이 돈을 뜯기 위해 유괴당한 아이에게 직접 편지를 쓰게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가면을 쓴 모습과 유사가족으로 위장한 그들을 진짜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당연한 초희의 행동에 놀란 것이다. 라이너는 이렇게 내가 눈치 채지 못해서 어리둥절하는 지점을 딱 집어 설명해 주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만큼 라이너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서 책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는 뜻이다.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는 한 권으로 영화와 철학을 같이 만날 수 있다. 11편의 영화에 11명의 철학자를 접목시켰고 최신영화부터 고전까지 망라했다. 철학이 들어가서 어렵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구독하는 사람이나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영화를 해설하고 라이너의 스타일로 해석해내는 것에 철학이 조금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썼다.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철학이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늘 안타깝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내가 지닌 재산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 11명의 사유를 말하려면 책 11권이 더 있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을 빼고 그저 영화를 읽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 어렵게만 받아들이는 철학을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대로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화라는 돋보기를 갖다 댄 것이지요. 영화와 철학이 동시에 다루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유가 가능함을 말하고 싶었으나 때로 깊이가 얕은 부분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한 영화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영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를 살펴보고 자신이 본 영화부터 읽기 시작해도 되고, 아직 안 본 영화라도 관심 가지고 있었다면 그 꼭지부터 읽어도 될 것이다. 이런 책은 그냥 읽고 싶은 것부터 읽어도 된다!

 

나는 목차를 보고 그래비티 x 쇼펜하우어를 가장 먼저 읽었다. 영화 <그래비티>를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었는데 라이너가 이 꼭지의 제목도 잘 뽑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꼭지를 소개할텐데 다른 꼭지도 유사하게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비티>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 것 같다고 시작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생은 곧 고통이고, 이 세상은 모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영화의 주인공 라이언 스톤의 생도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선택은 고립되는 것, 고요함 속에 침전되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쇼펜하우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체념과 맥이 닿아 있다는 설명 다음으로 서양 철학사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개별화의 원리’ ‘범신론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철학과 영화 사이를 오가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p.160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세상은 약한 의지를 지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말한 체념과 금욕의 덕은 결코 삶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곳은 적막과 체념의 세계가 아니라, 지겨울 정도의 소음이 존재하고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입니다. 집착은 버리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고, ‘놓아주는 것에는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삶을 향한 의지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라이언의 뒷모습처럼.

 

 

각 꼭지의 마지막에는 ‘Inside the Moivie’‘Inside the Philosopher’라는 페이지를 두어 영화와 철학자를 한 번 더 정리해주는데 앞 내용과 겹치지는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와 철학을 접목시킨 이 책도 흥미로울 것이다. ‘라이너의 컬처쇼크구독자라면 눈으로 읽는 텍스트가 라이너만의 독특한 억양으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진심 놀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너가 읽어주더라~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단점이 있라이너만의 영화 해석에 더 비중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면 철학시사회라는 제목에 안 맞았겠다. 그러면 철학은 빼고 영화만 얘기하는 건 어땠을까? 각 꼭지가 짧더라도 영화의 숫자를 늘려서 라이너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을 하는 거다. 이 글의 서두에 쓴 <소리도 없이>처럼 말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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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세트 (완전 복원판 + 원서 복원판) - 전2권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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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코리아>1900년대 초반,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모습이다.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시를 살았던 사람은 이제 없다. 그 때의 모습을 목소리로 들려줄 이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림이나 희귀한 사진으로나마 100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림이나 사진이 당시의 모습을 100퍼센트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필터링을 거친 작품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그림을 예로 들자면 붓을 든 사람의 심리가 그림 속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린 사람이 생존하지 않는다면 그림에 대한 해설을 그린 이가 직접 한 게 있다면 훨씬 이해가 용이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 더해 100여 년 전의 그림들이 온존히 보존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여기 그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영국화가가 그린 그림을 송영달이라는 한국인이 수집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책으로 낸 것이다. 이번에 완전복원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코리아>2006<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1920~1940)>으로 처음 나왔던 책과 2012<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책에 이은 최종본이라 하겠다. 수집가 송영달 선생은 30여년간 엘리자베스 키스를 끊임없이 추적하여 모은 그림 일체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화가들의 소망이 담긴, 어쩌면 미화된 것이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만났다. 송영달 선생은 다양한 방식의 고증을 통해 장군의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작품 연도를 추정한 결과 현존하는 초상화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그림을 잘 몰라도 키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얼마나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1900년대 초반 조선의 이미지는 어둡다. 가난하고 지저분하다. 한국사에서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암울한 모습을 만났고, 근대소설 속 조선인은 억울하고 괴롭고 힘들다. 그러니 암담한 느낌밖에 더 있겠나. 그런데 키스의 그림 속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은 달랐다. 따스하고 정감이 넘쳤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색감 때문이겠지만 화가의 시선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는 그림뿐 아니라 글도 있다. 그림 해설과 그림 그릴 당시의 상황을 쓴 내용인데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읽어보는 재미도 있다.

또한 100여 년 전 이 땅의 모습을 영어로 된 텍스트로 만나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In April the gardens of Seoul were glowing with canary-coloured forsythia grouped near giant bushes of azalea of the sad, pale, lilac hue we associate with the old-fashioned rhodo-dendron. Greedy, noisy magpies were the bandits of the city, but flocks of swallows defied their impudence.

사월이 되면 서울의 정원들은 카나리아 새같이 노란 개나리와 처녀의 옷고름 같은 연분홍 진달래로 뒤덮인다. 욕심 많고 시끄러운 까치가 기승을 부리지만, 제비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번 완전복원판과 원서복원판의 구성과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총망라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수채화와 판화를 빠짐없이 실었다. <올드 코리아> 원서에는 40점이 실려 있었고, 한국어 초판에는 총 66점이 실렸다. 이번에는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을 모두 소개하게 되었다. 판화 35, 수채화 46, 드로잉 4점이다. 같은 소재를 수채화와 판화 등 서로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이 있는 경우는 그를 모두 실었다.

2. 원본에 가까운 색감과 화질

독자가 원본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송영달 선생은 소장한 모든 그림을 미국에서 전문 사진작가를 통해 초고화질로 디지털화했고,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의 경우 미술관에 고비용을 지불하여 디지털화 작업을 청탁했다. 또한 작품 도록에 사용되는 종이를 사용해 키스 그림의 색감을 최대한 온전히 살렸다.

3. ‘작품 목록수록과 알찬 해제

책의 뒷부분에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 소재 작품 목록]을 실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키스의 한국 그림 전체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또한 송영달 선생의 수십 년에 걸친 키스 연구가 집대성된 해제는 독자의 작품 감상과 이해를 돕는다.

4. <올드 코리아> 원서에 가깝게 구성과 글을 복원

한국어 초판은 한국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구성 등을 바꾸는 조정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원서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구성과 장의 제목 등을 원서 그대로 고쳤다.

5. <올드 코리아> 원서 복원판 제작

진정한 완전 복원을 위해 원서 자체를 별도의 책으로 복원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을 읽고 키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 글과 그림이 당시에 어떻게 출판되었는지 궁금한 독자는 이 원서 복원판을 열어보기 바란다(본책과 세트로만 판매).

 

이 책은 1세기 전 조선의 아름다운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남긴 영국인과 30여 년 간 집념으로 그를 쫓은 한국인, 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 손에 이런 작품집이 올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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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식당 - 상처를 치유하는
이서원 지음 / 가디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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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널 뛴다고!

자주 화가 나서 미치겠다고!

나도 내 맘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감정식당>은 위와 같은 표현을 수시로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뭔가 불만이 부글부글하고, 어디에든 퍼붓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면 <감정식당>을 읽어보시길! 저자 이서원씨는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이며 치유상담모임 ‘붕대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감정식당> 진행자로, <힘들 땐 전화 해>의 고정 패널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자신의 감정인데도 그 감정이 무언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고,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하겠는 사람들에게 요리 레시피처럼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준다. 10가지의 감정 재료를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황금 레시피가 들어 있다.

이런 책, 당연히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요즘 이런 감정이 많이 든다~ 싶은 것부터 읽으면 된다.

아, 감정의 가계도 확인 먼저 하고 들어가보자~~

 

 

처음에 등장하는 불안부터 살펴보자. 작가는 불안을 “타이밍을 맞춰야 타지 않는 계란말이”처럼 요리하라고 한다. ‘불안 요리법’에서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풀어 설명하고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려준다. 없애려 싸우지 말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불안의 이득을 생각해 보고, 불안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애쓴다고 격려하라고. 즉 불안을 두려워 말고 언제든 내 마음에 찾아오게 허락하라는 것이다.

‘실전요리’는 각 감정마다 두 개씩 소개한다. 즉 사례 둘을 소개한 후 그 사례에 맞춤한 조언을 해준다. 실전요리 다음으로 ‘황금 레시피’는 각 감정(재료)을 사용하여 가장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불안 맛집의 황금 레시피는 ‘작은 것부터’이다. 자세한 설명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황금 레시피 : 작은 것부터” - p.30

불안을 가져오는 외부의 일은 ‘죽음’이란 거대한 일에서부터 ‘계란말이가 타면 어떡하나’와 같은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죽음이나 큰 사고 같은 일은 내 힘으로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내 손으로 할 수 잇는 아주 작은 것부터 성공 경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체크리스트를 두었다.

 

 

각 감정마다 몇 개 이상일 때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각 감정마다 순서대로 읽으면 그 감정에 대해 다 안다?고 하면 무리이고,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본인이 힘들어하는 감정이었다면 도움 받을 수 있겠다.

고백할 것이 있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여기에 나오는 감정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몇 년전부터 발병하여 이젠 지병처럼 굳어졌는데 일명 ‘쏘쿨병’이다. 어떤 상황이든 뭘 보든 이런다.

‘아유, 뭐 어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긴다. 유별나게 굴지 말자, 그래봤자 별 소용도 없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감정들을 보며 ‘난 특별히 이런 감정들 때문에 힘든 적 없는데...’ 하면서 서평을 써야하니까 내용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앗,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각 실전 요리 편을 읽는데, 막막 공감되고 흥분까지 되었다. 사례에 대한 피드백을 읽고 있노라니 남의 상담을 엿듣는 것 같기도 했다. 아하! 이것이 바로 저자가 노리는 게 아니었을까? 읽다보면 여기가 내 감정 상담실인가 어리둥절하게 되고, 조리불가할 것만 같은 재료(통제불능한 감정)로 멋진 음식을 만들어 주는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라고~~ 나처럼 아무 감정 없는 척하는 쿨병환자들까지도! 그렇다면 성공한 듯!!

책에서 다룬 10가지 감정 중 ‘시기심’에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다. 나의 숨어있던 감정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아닌척하며 꽁꽁 묻어두고 덮어두었는데 이서원 요리사에 의해 발굴되었다. 오늘 내내 울적해하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다고 내가 맛나게 요리해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 감정이 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상담이라도 받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처럼 별 생각없이 들었다가 월척을 낚은 기분이 들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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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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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19409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출판사 작가 소개 발췌- 

 

 

아니 에르노의 책 다섯 권을 두 달여에 거쳐 읽었다. <남자의 자리> <빈옷장> <사진의 용도> <세월>을 읽었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장소>를 읽었다. 앞의 네 작품들을 읽으며 작가를 주인공에 대입해 보았다가, 어쩜 이렇게 본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쓰는지 감탄했다가, 읽고 있는 이 내용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고 그랬다. 1월부터 시작된 아니 에르노 시리즈 읽기는 프랑스라는 공간과 작가가 살아온 시간들이 직조되어가는 사이사이에서 그녀만의 스타일과 사유를 읽어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진정한 장소>를 마지막에 읽은 건 잘한 일이었다.

 

네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작가의 삶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인터뷰집인 <진정한 장소>를 읽었기에 그녀의 육성이 가깝고 친절하게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말이다. 혹시 아니 에르노를 <진정한 장소>로 처음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길 바란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어본 후에 <진정한 장소>를 읽길 권한다. 내가 전문 비평가나 서평가도 아니나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하는 추천이다.

 

<진정한 장소>는 '미셸 포르트'라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2011년에 인터뷰를 했고 2013년에 상영되었던 것을 텍스트화한 내용이다. 프랑스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는 아니 에르노의 인생 전반과 늘 빠지지 않는 화두인 글쓰기에 대해 묻고 답하고 있다. 다른 책들에서 거리감 있게 서술되었던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문학교사가 되었고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시골의 식료품 가게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독서욕과 교육열은 남달랐다. 간혹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보이지만, 지금의 아니 에르노를 만든 것은 분명 어머니였다.

 

p.124

 

저는 항상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 개입하는 일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러나 어떻게? 분명 투쟁하는 에세이로는 아닐 거예요. 저는 오히려 저에게 깊게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항상 이 이미지가 떠올라요- 상처를 파고 넓혀서 저의 밖으로 꺼내는 거죠. 저는 저의 글쓰기 방식이 자전적 소설에 동일시되는 것을 항상 거부해 왔어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표현 자체에도 자기 자신 안에 갇히는,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저는 책이 개인적인 것이 되기를 절대 원한 적이 없었죠. 어떤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쓴 게 아니에요. 그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러니까 저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닌 거죠. <부끄러움><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에서 제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경험의 특수성이 아닌,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이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글이 되면, 그것은 정치적이죠. 물론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을 하며 살아요.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그 체험들을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그래요. 그것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문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사실 나는 계속 이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쓰는 글은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작가처럼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저렇게 쓸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자신에게로 생각이 옮아오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놀랐다.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물과 기름의 경계가 흐트러져 서로에게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저것이었다. 194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여성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만나고, 공통된 사유에 반가워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또한 칼로 자신의 내면을 후벼 파서 드려내야 한단다! 그의 글이 왜 그렇게 날카로운지 이제 알 것 같다. 그것이 오히려 보편성이라니! 나를 드러내는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주저하다가 펜을 놓는 나는 아직 멀었다. 이번에 읽은 책 다섯 권은 책상 가까이에 두어야겠다. 쨍한 맛을 느끼고 싶을 때 꺼내 열어볼 수 있도록! 내 얘기를 쓰다가 멈칫거릴 때 아니 에르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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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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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니 에르노의 <세월>1941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 사회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화자는 그녀로 지칭된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현대 프랑스사회의 변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그려진다. 전쟁부터 시작해 공산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 페미니즘까지 점점이 펼쳐진 조각조각들을 읽으며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해 보지 않았을까. 나이는 상관없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독자가 살아낸 시간의 흔적들을 아니 에르노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반가움과 뿌듯함, 회한어린 감정들이 교차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 거기 내가 있었지!’ ‘, 나도 저땐 저런 마음이었어!’라며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이 작가의 시공간과 겹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개개인의 시간들이 모여 국가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처럼 머나먼 나라의 독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 세월의 무늬를 더듬으며 나에게도 그녀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기억이, 그녀가 느낀 감정과 유사했던 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 이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 공감 지점을 못 찾을까봐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보고 듣게 됐다. 오래전부터 허용된 규정에 따라 사용됐던, 특정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장소들, 대학, 공장, 극장이 모두에게 개방됐고 그곳에서 토론하기, 먹기, 잠자기, 사랑하기 등 본래의 용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노동자 지도자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공산당과 조합의 지도자들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필요와 의지를 결정지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합사회당에 남아 있었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마오, 트로츠키주의자들, 엄청난 양의 이념들과 개념들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운동, 서적들 그리고 잡지들, 철학가들, 비평가들, 사회학자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단체, 사회적 신분, 불공정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지식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말하고 들을 수 있었다. 여자, 동성연애자, 계급을 벗어난 사람, 억류된 사람, 농부, 미성년자로서 무언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공동의 언어로 스스로 사고하는 것에 흥분했다.”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혁명의 시기를 온몸으로 거쳐 온 사람들은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인에게 1968년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진정한 혁명이 있었던가?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부르고 싶어하는 이들, 박근혜 탄핵 시 들었던 촛불의 시간을 촛불혁명으로 칭하는 이들, 모두 혁명 로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촛불혁명의 주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이란 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뜸해지면서 이따금씩만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 모성 관계에서 불충분함을 느끼고 있으며 성적인 행위만이 아닌, 아이들과 지나가는 다툼에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애인,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엄마의 지원을 필요로 할 때는 얼른 성인이 되길 바라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면 엄마는 외로워진다. 바빠도 돌봐주느라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더라도 그런 대상이 있었을 때가 그리운 법이다. 그러니 빈둥지 증후군은 참 잘 만들어 낸 조어이다. 긴밀한 관계가 될 만한 대상이 남편인 여성들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회자되겠나. ‘중년 여성을 웃게 하는 세 가지는, 친구, , 고양이!’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 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살아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펴냈기에 한국에 있는 독자에게까지 읽히고 기억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를 기록할 이들이 있다. 나는 내가 살아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겠구나... 

 

 

 

우리는 세월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세월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가는 세월의 더께가 무거워질 때 우리는 그만 떠나게 될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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