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니 에르노19409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출판사 작가 소개 발췌- 

 

 

아니 에르노의 책 다섯 권을 두 달여에 거쳐 읽었다. <남자의 자리> <빈옷장> <사진의 용도> <세월>을 읽었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장소>를 읽었다. 앞의 네 작품들을 읽으며 작가를 주인공에 대입해 보았다가, 어쩜 이렇게 본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쓰는지 감탄했다가, 읽고 있는 이 내용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고 그랬다. 1월부터 시작된 아니 에르노 시리즈 읽기는 프랑스라는 공간과 작가가 살아온 시간들이 직조되어가는 사이사이에서 그녀만의 스타일과 사유를 읽어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진정한 장소>를 마지막에 읽은 건 잘한 일이었다.

 

네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작가의 삶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인터뷰집인 <진정한 장소>를 읽었기에 그녀의 육성이 가깝고 친절하게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말이다. 혹시 아니 에르노를 <진정한 장소>로 처음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길 바란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어본 후에 <진정한 장소>를 읽길 권한다. 내가 전문 비평가나 서평가도 아니나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하는 추천이다.

 

<진정한 장소>는 '미셸 포르트'라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2011년에 인터뷰를 했고 2013년에 상영되었던 것을 텍스트화한 내용이다. 프랑스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는 아니 에르노의 인생 전반과 늘 빠지지 않는 화두인 글쓰기에 대해 묻고 답하고 있다. 다른 책들에서 거리감 있게 서술되었던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문학교사가 되었고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시골의 식료품 가게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독서욕과 교육열은 남달랐다. 간혹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보이지만, 지금의 아니 에르노를 만든 것은 분명 어머니였다.

 

p.124

 

저는 항상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 개입하는 일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러나 어떻게? 분명 투쟁하는 에세이로는 아닐 거예요. 저는 오히려 저에게 깊게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항상 이 이미지가 떠올라요- 상처를 파고 넓혀서 저의 밖으로 꺼내는 거죠. 저는 저의 글쓰기 방식이 자전적 소설에 동일시되는 것을 항상 거부해 왔어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표현 자체에도 자기 자신 안에 갇히는,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저는 책이 개인적인 것이 되기를 절대 원한 적이 없었죠. 어떤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쓴 게 아니에요. 그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러니까 저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닌 거죠. <부끄러움><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에서 제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경험의 특수성이 아닌,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이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글이 되면, 그것은 정치적이죠. 물론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을 하며 살아요.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그 체험들을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그래요. 그것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문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사실 나는 계속 이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쓰는 글은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작가처럼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저렇게 쓸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자신에게로 생각이 옮아오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놀랐다.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물과 기름의 경계가 흐트러져 서로에게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저것이었다. 194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여성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만나고, 공통된 사유에 반가워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또한 칼로 자신의 내면을 후벼 파서 드려내야 한단다! 그의 글이 왜 그렇게 날카로운지 이제 알 것 같다. 그것이 오히려 보편성이라니! 나를 드러내는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주저하다가 펜을 놓는 나는 아직 멀었다. 이번에 읽은 책 다섯 권은 책상 가까이에 두어야겠다. 쨍한 맛을 느끼고 싶을 때 꺼내 열어볼 수 있도록! 내 얘기를 쓰다가 멈칫거릴 때 아니 에르노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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