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루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 의대 교수 은퇴 후, 덜컥 떠난 페루에서의 8개월
김원곤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0대에 어학연수를 떠나다니!

것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직접 페루로 갔다고?

무모한걸까, 용기있는 도전일까?

<나는 페루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의 저자 김원곤씨는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이다. 그는 50대 때부터 외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2011~2012년에 4개 외국어능력시험 고급 과정에 합격했다. 2019년 8월 정년을 맞이한 저자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는데 이듬해 3월부터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의 순서로 각각 3개월씩 어학연수를 하고, 중간중간에 3개월씩 재충전 기간을 가지려고 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2020년 3월에 페루에 도착해 어학원에 일주일간 다닐 때까지는. 아다시피 그 후로 전세계는 코로나에 꽁꽁 묶였고 저자는 페루에 발이 묶였다.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 페루에서 8개월을 머물게 된다.

이 책은 페루 어학연수기이다. 하지만 단순히 60대의 전직 의사가 페루에서 스페인어 공부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Chapter 1 이 나이에 어학연수라니!

Chapter 2 좌충우돌 페루 연수

Chapter 3 스페인어의 매력

Chapter 4 페루가 궁금해

Chapter 5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

Chapter 6 시니어를 위하여

혹시라도 제목만 보고 페루 여행에세이라고 착각할까봐 목차를 발췌했다. 60이 넘어서 어학연수를 가게 된 사연과 준비과정, 페루에서 공부한 시간에 대해 1,2장에 실었고, 3장은 스페인어에 대한 간략한 소개(초보자를 위한), 4장에서는 페루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5장과 6장에 이 책의 특징이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는 책임감 있고, 헌신적이며, 앞서서 주도하고, 끈기 있는 학생이었으며 이 때문에 현재 높은 수준의 스페인어 회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위는 저자를 지도했던 어학원 교수의 평가서 중 일부이다. 이 평가만 보아도 그가 어떤 사람일지 감이 올 것이다. 의사생활을 하면서도 외국어 공부를 해서 외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으니 한국에서도 이미 성실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는 페루에서 예상보다 오래 체류하게 되어 스페인어 회화 실력을 더 향상시켰음은 물론이고 페루의 코로나 국면도 관찰했다. 저자는 의사로서 페루의 의료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의료비 투자가 하위권이기 때문에 대처능력이 미흡할 수밖에 없었고 가난한 국민들은 피해가 컸다. 결국 모든 문제는 후진적인 정치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나이 들수록 외국어 공부는 할 만하다고 했다. 사실 스페인어의 매력과 5,6장 내용은 팔랑귀인 나를 살살 부추겼다.

‘욜로’, 한번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오히려 더 애쓰며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외국어공부가 치매 예방 효과가 있고,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하며 인문학적 희열을 선사해줄 거라고 강조했고...

생의 활력과 자신감을 줄거라는 말에!

다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해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저자는 페루에서 자유로워졌는데 나는 왜 숙제 하나 더 받은 느낌이지?!?!🙄😂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을 달리는 고양이
고경원 지음, 최경선 그림 / 야옹서가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을 달리는 고양이>는 야옹서가의 텀블벅에 참여해 성공한 그림책이다. 야옹서가 대표 고경원씨는 고양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다가 사진도 찍고 책도 내고 출판사까지 하고 있다. 나는 우리집 삼냥이의 집사 역할 외에 딱히 하는 게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고양이 관련 책이 나오면 사거나 고양이 책을 만드는 분들을 응원한다.


<밤을 달리는 고양이>는 고경원 작가의 글에 최경선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을 그렸다. 길에서 생을 마감하는 고양이의 마지막을 지켜주러 가는 아이와 고양이가 표지 사진이다. 표지와 내지의 컬러 그림도 좋지만 앞 뒤 면지에 있는 스케치화도 좋았다. 흑백이라서 쓸쓸한 듯하지만 이야기와 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미 혹은 습작을 넣은 건지, 내지에 다 못 담은 것들인지, 아니면 면지를 위한 그림을 따로 그린건지 궁금하다.



그림책 내지가 검정일 경우에 지문이 남는다. 이 책도 밤이 배경이라 바탕이 대부분 검정이다. 무심코 넘기다가 손자국을 퍽퍽 찍고 있는 내 손가락이 보였다.ㅠㅠ 검은색에 지문 표시 안 나게 하는 종이는 없는 건지, 그것도 궁금하다...






행복했던 추억이 많을수록 고양이 별은 환히 빛난답니다.

오래 함께 했던 고양이가 나보다 먼저 떠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고양이 별로 가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놀아주면 고양이 별이 더 빛난단다.





만날 수 없어도 늘 곁에 있어요.

언제나 별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고양이가 먼저 떠나면 너무나 힘들겠지만, 함께 했던 물건과 남겨둔 흔적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몸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고양이는 늘 곁에 있는 거다.


이 책은 안타깝고 슬픈 내용이지만 그림과 글 속에 따뜻한 포근함도 들어있다. 그래서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너무 슬퍼만 하지 말고 이 책을 읽으며 위로받길 바란다. 길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사서 읽으면 좋겠다. 그 생명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면 이런 책을 구매하면 된다. 간접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길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생명을 다하는 존재들이 추위와 위험을 피해 겨울을 잘 지나길 기도한다. 몇 달 전 우리 집 근처에서 내가 주는 사료를 받아먹던 고양이 두 마리가 생각난다.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까? 과학 또는 의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거의 모른다고 하는 게 맞다. 뇌과학을 전공했거나 의사라면 어떨까? 뇌에 대해 잘 알까?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맨체스터 대학교 교수 ‘매튜 코브’는 단언한다. 우리는 뇌에 대해 모른다고.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순서대로 간단하게 요약한 후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결과적으로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우리는 모른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뇌과학의 미래를 서술한 마지막 문단은 일종의 시나리오다. 문단이 길어서 다 옮길 순 없지만, 주요 내용만 인용하겠다.

어쩌면 다양한 계산과학 프로젝트들이 잘 풀리고 이론가들이 모든 뇌 기능이 담고 있는 비밀을 풀 수도, 커넥톰이 현재 감춰져 있는 뇌 기능의 원리를 밝혀낼 수도 있다. (……)

아니면 새로운 비교진화 연구들이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을 전해줄 수도 있다. (……)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뇌에 대하 급진적인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뇌에 대한 급진적인 새로운 비유를 제공하여 우리가 지금껏 믿었던 모든 견해들을 바꿀 수도 있다.

즉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이고, 여전히 뇌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저자 매튜 코브는 뇌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둘러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생각을 실험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준다. 이 책은 전공자뿐 아니라 뇌과학에 대해 관심 있는 일반인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정재승 교수가 추천사에서 그랬다. 자신은 미국 L.A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다며! ‘어마무시하게 재미있는 뇌 과학의 역사책으로 마음과 정신을 탐구해온 인류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라’고 했다.

역사와 과학을 좋아하고 뇌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낯선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데 주저함이 없다면 필독각이다!

이 책은 뇌 과학의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어 있는데 과거의 범위가 선사시대부터 1950년대까지이다. 현재는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로 주제(기억, 회로, 컴퓨터, 화학, 국재화, 의식)에 따라 정리했다. 현재를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는 뜻이다.

[1부 과거]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뇌에서 비롯되는지 심장에서 비롯되는지를 두고 논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의 근원이 심장에 있고 감각을 느끼는 것도 심장이라고 주장했지만 갈레노스(AD129~200)가 해부학 연구를 통해 신경이 심장이 아닌 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장 중심론’을 더 신봉했다. 17세기에 이르러 인간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데 뇌가 핵심 역할을 함을 보여주는 실험이 시작되었고, 18세기에는 동물과 인체를 대상으로 한 비윤리적 실험을 하게 된다. 바로 전기의 발명 때문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뇌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신경중추를 억제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이 시기에 세포이론의 수립되었다. 이를 토대로 한 신경해부학자 카할과 폰 쾰리커의 연구는 신경세포들이 개별 독립체라고 주장하며 ‘뉴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부 현재]

19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뇌의 작용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진일보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기억, 신경 회로, 뇌에 대한 컴퓨터 모델, 뇌의 화학작용, 뇌 영상기법, 의식의 본질을 향한 관심 등 뇌에 관한 지식을 만나볼 수 있다.

2부에서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지식에 배치되는 내용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그 중 두 가지, ‘세로토닌’과 ‘파충류의 뇌’에 대한 것을 소개한다.

‘프로작’이라는 약물이 뇌 내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켜 우울증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내용은 알고 있었다. 저자는 세로토닌과 우울증과의 상관관계가 입증된 바가 없다고 했다. 낮은 세로토닌 농도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인물로 ‘조지프 쉴드크로트’와 ‘알렉 코펜’이라는 사람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들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각인이 되자 그 후로 연구자들이 근거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도 그 반대의 주장을 설파하는 이들에 의해 결국 ‘우울증의 화학적 불균형 이론’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에 대한 단일한 설명과 단일한 치료제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강조하며 세계적 제약 산업의 주역이었던 정신과 의사 H. 크리스천 피비거의 말을 인용했다.

“수십 년간의 대규모 연구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 시장에 도달한 전혀 새로운 기제의 약물은 단 하나도 없다.“

다음, ‘파충류의 뇌’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지금까지 믿고? 있었는데...) 잘못된 개념이었다니! ‘폴 맥린’이라는 신경학자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한다.



신경과학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의 발상은 1960~70년대 영향력 있던 대중과학 작가 두 명이 차용하면서 대중문화 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서 쾨슬러’와 ‘칼 세이건’이다. 아서 쾨슬러는 자신의 저서 <기계 속의 유령>에서 폴 맥린의 연구를 인용하여 원죄에 대한 기독교 교리부터 프로이트의 유아 성욕 이론까지 온갖 것들을 다 때려 넣어 세 개의 뇌 사이의 갈등이 ‘인간의 역사 속 만연한 편집증적 기질의 생리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괴상한 주장을 했다. 덕분에 폴 맥린은 일약 스타가 되어 강연을 다니게 되는데 칼 세이건도 그의 강연을 들었다. 저자는 칼 세이건의 주장을 이렇게 일갈한다.

‘세이건도 쾨슬러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사실 조금에다 어마어마한 정신분석학적 헛소리와 빈약한 인류학적 지식 한 아름을 뒤섞어 과도한 양의 추측성 발언들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1990년에 와서야 <사이언스>와 <네이처>지는 폴 맥린의 주장은 신경과학적 미신으로 분류되었어야 했다고 실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연구자들은 우연히 원숭이의 복측 전운동피질에서 일부 뉴런들이 원숭이가 실제 행동을 취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가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에도 발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거울뉴런’이라 명명했다. 이 거울뉴런은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추측이 난무했다. 그 중 자폐증에서 관찰되는 사회적 상호작용 부족현상이 거울뉴런의 기능장애 탓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2006년 <뉴욕 타임스>에서는 거울뉴런이 ‘마음을 읽는 세포’라고 선언했으며 어떤 신경과학자는 이 뉴런들의 역할 덕에 인간이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모든 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2010년 한 실험에서 그 세포들의 위치가 원숭이의 뇌에서 밝혀진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간의 경우 거울뉴런 중 11퍼센트는 해마에서 발견되었다. 거울뉴런들은 뇌 전역에 분포하며 잡다한 기능을 수행한다. 어떤 기능을 특정한 구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는 데 이렇듯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복잡한 현실적 문제는 최근 인간의 뇌에서 놀라운 가소성을 나타낸 임상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더욱 커졌다.

[3부 미래]

저자는 뇌를 해부학적, 생리적, 진화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신체의 다양한 부분들이 제각기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우리의 행동, 나아가 마음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관해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아직도 뇌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더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뇌에 비유할 만한 새로운 기술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그동안 뇌에 대해 너무 몰랐다!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뇌 과학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 -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담긴 시대정신과 욕망
엘리자베스 세멀핵 지음, 황희경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는 역사책이다. 신발의 역사를 다룬 미시사다. 이 책은 역사 속 신발 문화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저자 엘리자베스 세멀핵이 신발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토론토에 있는 바타 신발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다. 캐나다까지 가지 않아도 그의 방대한 자료를 이 책 한 권으로 섭렵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는 서문에서 신발 관련 이야기는 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므로 20세기와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이 책은 신발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내고 종류별, 시대별 핵심적인 신발들의 사진까지 만날 수 있다. 컬러풀한 신발 사진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 번 신어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장담한다!

이 책은 ‘슈즈 홀릭’이라면 소장각이다. 문화사나 신발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 전공 공부하는 사람이나 신발에 집착하는 사람만 읽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역사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글담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신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고 바로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는 신발가게 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서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오면서 차린 가게는 신발가게였다. 내 기억 속에 우리 집은 늘 가난했지만 나는 신발만큼은 부자였다. 그 사실을 몰랐는데 6학년때 쯤인가 친구 집에 갔다가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가진 신발이 운동화 단 한 켤레 뿐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나는 철마다 다른 종류의 신발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를 갈 때나 외출할 땐 그 중에서 신고 싶은 신발을 골라 신었다. 그 땐 몰랐지만 TPO에 맞춰 신었던 셈이다.

 




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을 즈음엔 내가 가게 진열장 정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진열장 유리 선반을 깨끗이 닦고 구두나 샌들 위주를 전면에 배치했다. 어떤 신발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지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 진열장의 신발을 보고 가게로 들어오면 반갑고 뿌듯했다. 진열장 정리는 엄마를 도와드린다는 명목도 있었지만 어린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고르는 즐거움이 더 컸다.

성인이 되자 나는 하이힐, 펌프스, 샌들을 종류대로 색깔별로 계절별로 다르게 사들였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으니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교복을 벗고 옷을 자유롭게 입게 되었으나 신발 자유를 더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간 것도 당연하다.

이제 이 책을 소개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가 워낙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내 요약은 필요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신발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인 내용은 대부분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던 몇 가지를 정리한다.


 


[1부 샌들]


대공황 시대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고 대부분 가난에 허덕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가보다. 세상이 망했다고 난리여도 누군가는 멋을 부리고 싶고 누군가는 돈을 벌었다. 1931년 미국 ‘섀도 샌들’ 광고 문구는 이러했다.

“이례적으로 좋지 않은 올해의 상황에 맞춰...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므로 한두 켤레의 샌들을 마다할 여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샌들은 일반 신발에 비해 소재를 적게 써서 만들 수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저렴하게 판매되었다. 여기에 장기실업사태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 여가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여가’라는 이름으로 지역 해변이나 공영 수영장에 가는 등 돈이 많이 들지 않는 활동 참여를 장려했다. 오픈 토 샌들과 함께 저렴한 패션이 사랑받았고, 나아가 건강 목적으로 페디큐어까지 장려될 정도였다니 대공황 시대를 미국인들은 꽤 긍정적인 시간으로 보낸 것 같다. 여가 장려의 영향이 신발을 포함한 패션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페라가모가 웨지힐 샌들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당시에는 몹시 혁신적인 도전이었다고 한다. 버켄스탁이 미국에서는 히피들이 유행시켰지만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인 ‘콘래드 버켄스탁’이었다. 2000년대 초반 ‘버켄스탁 진보주의자’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이 단어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무조건적인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환경 운동가처럼 반미국적 불량분자라는 이미지로 읽혔다고 한다.




위 사진의 프라다 샌들은 정말이지 한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다.


[2부 부츠]


[1부 샌들][1부 샌들]


이 책을 읽으며 절감한 사실은, 신발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신고 다녔다는 것이다. 부츠는 그저 추운 지방에서 방한용으로 만들었겠거니 했지만 부츠는 남성들의 신발이었다. 이 장의 앞부분에는 남성 부츠의 역사와 유행을 소개하고 있는데 남자들도 사치가 대단했었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부츠는 여성의 각선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니!




 

 


1차 대전에서 독일 군인이 신던 부츠, 미국 카우보이의 부츠, 오토바이 폭주족 부츠, 비틀즈의 부츠까지 남성들이 신었던 부츠의 역사는 재미있게 읽었다.

2장 여성의 부츠는 발에 신는 코르셋 에서는 부츠가 페티시적인 특징을 가지게 된 역사를 설명한다. 신발에도 성차별적 문화는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겨울 거리를 어그 부츠가 점령한 적이 있었다. 이것도 당연히 극지방 같은 한대 기후에서 유래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호주에서 양털 깎는 사람들이 발을 따뜻하게 하려고 신었던 부츠였다. 1960년대에는 남성 서퍼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 해변에서 어그 부츠를 신었다.


[3부 하이힐]


힐도 원래 남자들의 신발이었다.




특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남성 힐이 루이 14세에 이르러 정치적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남성 힐은 더 높아지고 두꺼워졌고 여성 힐은 가늘고 홀쭉해졌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앙증맞은 발을 더 선호하게 만들었다. 여성 힐에 왜곡된 성적 욕망이 덧씌워졌고 경멸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여성을 패션의 노예로 만드는 분위기로 몰아가다 점점 에로틱해졌다. 포르노 판타지를 찾다가 전문직 여성의 상징으로 보는 등 이중적인 태도는 계속 됐다.


 


그런데 하이힐이 서구의 자유와 여성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기표가 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 911 기념관에 전시된 ‘피 묻은 하이힐’은 당시 여성 피해자들의 취약성을 보여주었기에 테러의 공포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는 힐의 인기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 예견은 빗나갔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이힐을 금지한다고 보도되었는데, 여성이 걸을 때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을 뿐 아니라 하이힐이 서구의 퇴폐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일이었다.


하이힐은 자존심이라며 나이 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하이힐이라고 했던 어느 여배우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키가 작기 때문에 20~30대 때는 7cm가 넘는 구두만 신고 다녔다. 하이힐은 내 마음의 키 높이였고, 다리 라인을 살려주는 보조제라 여겼다. 하이힐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배우가 아니기에 일치감치 포기했다. 나이 들면 편한 신발이 제일 좋더라는 말이 정답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신발장 정리를 하다가 몇 년 째 신지 않고 방치된 가죽 샌들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는 걸 발견했다. 특이한 디자인이라서 자주 신었었는데 이렇게 외면 받고 마는구나 싶어 미안했다. 나는 신발장을 문 한번 열어보지 않는 창고처럼 취급했지만 예의를 갖춘 여성들도 있었다.

아래 사진이 뭐로 보이는가?



신발 전용 트렁크다. 1920년대 부유한 여성들이 휴양 여행을 떠날 때 신발 서른 켤레를 넣을 수 있는 트렁크로 여행패션을 완성했다. 이 트렁크는 루이비통에서 만들었다.



위 스트리퍼 슈즈는 공격성과 구속을 동시에 표현하는 역설성을 보여준다. 정말 이 하이힐에는 발을 집어넣어보고 싶은 욕망이 절로 들었다.

스니커즈가 뭐 그리 특별할 게 있다고? 아래 사진들을 보자.


 



 

스니커즈도 특별한 함의를 지닌 역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현대의 스니커즈 제조에 있어서 문제는 역시 환경이다. 한 의류 재활용 회사가 밝히길, 매년 약 200억 켤레의 러닝화가 생산되고 3억 켤레가 버려진다고 한다. 또한 2013년 MIT 연구에 따르면 13.5kg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이제 스니커즈는 탈산업 시대의 흐름에 맞춰 3D프린팅, 플라이니트 기술, 주문맞춤 제작 단계에 와있다.





20세기 들어 신발이 패션아이템으로 거듭나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했고 어떤 이들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내 이멜다이다. 그녀가 수집한 신발은 3천 켤레가 넘었다. 남성들의 신발 수집도 늘었는데 신발 수집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 여성의 신발 수집을 과도한 욕망과 소비행위로 치부하는데 반해 남성의 수집은 이윤 창출을 위해 계산된 행위임을 강조한다. 희귀한 스니커즈는 투자수준의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를 반영해 재판매 가격이 수 만달러에 이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즐거웠다. 신발의 역사와 문화를 너머 신발이라는 재화 속에 숨은 성차별적 인식태도 등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사진들을 보며 바타 신발박물관에 입장한 듯했다. 내 어릴 적 신발 기억도 소환해 주었다. 가난을 깨달은 건 중학교 이후였고, 내 어린 시절은 부자였다. 신발 부자! 그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