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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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치고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떡볶이는 대중적이고 싸고 만만해서 편한 음식이다. 물론 떡볶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쓸데없이 비싸져서 먹기 싫다고 투덜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떡볶이만큼 호불호가 적고 저마다의 추억이 깃든 음식은 없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하루라도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던 애가 있었다. 하교 시 학교 앞 분식집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친구였다. 늘 같이 하교했는데 어떨 땐 떡볶이 좀 그만 먹자며 오늘은 그냥 가자며 손을 끌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걔는 나더러 안 먹을 거면 지켜보고만 있으라 했지만 어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앉아있다 보면, 오늘은 절대 같이 안 먹어줄거라며 다짐다짐했지만 이건 거의 무조건반사인거다. 그 빨간 소스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냄새는 입안에서 침이 분수처럼 솟구치게 만드는데... 어느 순간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에 둘은 또 그렇게 꺄르르꺄르르 했던 시절이었다.

떡볶이와 얽힌 사연은 누구나 있을 것이니 일반인에게 ‘떡볶이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제각각의 답이 나올 것이다. 100인 100색의 사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소설가라면 어떨까? 여기! 골라 먹는, 아니!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떡볶이 소설집이 나왔다. 10명의 작가들이 떡볶이를 소재로 쓴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이다. 종류가 서른 한가지나 된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면 각각의 이름과 비주얼을 보고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먹으면 된다. 그러나 이 떡볶이 소설들은 제목을 보고 그 맛을 가늠하기 어렵다. 떡볶이 종류도 꽤 다양해졌다. 맛으로 따지자면 오리지널 떡볶이부터, 짜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엽기 떡볶이에다 프랜차이즈 이름을 붙인 떡볶이까지! 이 소설들은 그런 맛과 조금 다르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다.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대체 무슨 맛일지 궁금하다면 당연히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허나 책 좋아하고 떡볶이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선 이미 책장이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가군! 떡볶이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할 것이다. 어쩜 이런 상상력이 가능한지 연거푸 감탄하거나, 내 추억과 몹시 비슷하다며 공감하거나, 마치 고발뉴스 같은 것을 보는 듯 너무 현실적이라며 씁쓸해 할 수도 있다. 소설은 보통 독자가 공감할 때 가장 재미있다고 여기지만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각 소설 뒤에 붙은 ‘작가의 말’이다. 대부분 작가가 이 떡볶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히는 내용이었는데 왠지 작가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 같아 친밀감이 들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밝히는 작가, 사회 문제와 떡볶이를 연결한 작가, 소설 속 떡볶이 집이 실재하니 가 봐도 좋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작가, 번역을 하다가 처음 소설을 썼다고 밝히는 작가까지. 작가가 그리 먼 대상이 아니라 떡볶이 같이 먹을 수 있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혼자 그런거겠지만~~ㅎㅎ

이 리뷰에서 10편의 소설을 모두 소개할 순 없다. 상상력면에서 독특했다고 생각한 소설은 김설아 작가의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과 정명섭 작가의 <좀비와 떡볶이>이다.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은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이 연상되었다. <강아지 똥>은 이 세상에 똥으로 나온 시점부터 시작이었다면 김설아 작가는 똥이 되기 그 이전부터 시작한다. 그 시작은 물론 떡볶이였고.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키우듯 쫄깃쫄깃 탱탱은 빨간 고추를 키운다. 의미심장하다. 고추는 바로 떡볶이를 가장 떡볶이답게 만들어주는 주재료이지 않은가! 그 고추를 잘 키워낸 쫄깃쫄깃 탱탱은 흙 속에 스며들어 점점 형체조차 없어지며 이윽고 사라진다. 우리가 편하게 먹는 떡볶이에 거대한 자연의 순환이 숨어있음을 포착한 소설이었다.

 

<좀비와 떡볶이>는 떡볶이가 만들어지려면 필요한 일련의 재료가 얼마나 힘든 공정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에 대한 고찰에 가깝다. 편하게 누리던 인류 문명이 파괴되고 좀비와 함께 살아가는 종족의 아이들이 예전에 맛있게 먹던 떡볶이 이야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듣고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해진다. 아이들은 급기야 떡볶이의 주재료인 고추장을 직접 만들기에 이른다. 분식집에서 “여기 떡볶이 1인분이요!”하면 뚝딱하고 떡볶이 한 접시를 먹을 수 있고,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도 각종 재료들을 마트에서 쉽게 사오면 만들수 있다. 그 과정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편하게 이루어 졌는데 두 소설은, 떡볶이 하나에 우주가 담겨있고 우리가 그것을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너무 교훈적일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여겼다면 내가 리뷰를 잘 못 쓴 것일 거다.

조영주 작가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떡볶이>는 스위스에서 40년 만에 귀국한 해환이라는 여성이 떡볶이 순례 중 맛 본 환상적인 맛의 떡볶이 레시피를 연구하는 내용이다. 결정적 한 방이 ‘사랑’이라는 건 식상할 수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주부든 요리사든 요리에 정성과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궁극의 맛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 죽이고 싶은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만드는 떡볶이의 맛에 점차 변화가 생겼다. 마지막에 만들 해환의 떡볶이 맛은 과연 어떨까? 작가의 말에서 추리소설가 윤해환이 등장하는 <멸망하는 세계, 망설이는 여자>를 소개해주니 또 안 읽어볼 수가 없겠다.

이리나 작가의 <송 구리 당당>에 나오는 고등학생 은서는 너무나 애잔했다. 알콜중독자 아빠를 고등학생이 돌봐야하다니...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하고 아빠 때문에 지각과 조퇴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은서는 너무나 씩씩하다. 언니처럼 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은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까지 가면 엄마도 아빠 옆에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럼 아빠 혼자 어떻게 살아요. 아빠를 지켜야죠.”

아빠 노릇 못하는 아빠를 지키겠다는 은서는, 최선생이 서른 된 새해 첫날에는 이런 문자를 보낸다.

“대박! 샘 삼십 대 된 거예요? 다 늙었네. 애인도 없이 나이만 먹은 불쌍한 샘을 위해 우리 싸장님이 메뉴에 방앗간 떡볶이를 추가했어요. 드시러 와염~♥”

스물 아홉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되어 간 모교에서 첫 담임을 맡게 되어 넘나 힘들어하는 주인공이 만난 은서는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러워보였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떡볶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은서. 그런 은서가 서른이 된 자신을 떡볶이로 위로해주는 마지막은 훈훈했다. 선생님도 은서도 덜 힘든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면서 이건 소설일 뿐이야!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힘겹게 살고 있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어린 아이들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처럼 학생인데 가장노릇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초딩이 주인공에다 반전으로 재미를 준 김동식 작가의 <컵떡볶이의 비밀>로 시작해 마지막엔 떡볶이 집 알바중인 고딩 은서의 이야기로 끝이 났다. 10편의 소설 모두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소설적 재미를 맛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 절친을 떠올렸고, 리뷰를 마치면서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오늘 저녁에 만들 떡볶이는 평소보다는 좀 더 맛있을 것 같다. 레시피는 비슷할지라도 떡볶이에 대한 생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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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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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스물 다섯 살(1774년)에 출간했다. 2년 전, 한 파티에서 19살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이야기와 유부녀와의 사랑 때문에 권총자살을 한 친구 이야기를 섞어 완성한 책이 이 소설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책 속에서 주인공의 편지를 받는 빌헬름이었고, 자신이 실제 사랑에 빠졌던 로테는 친구 케스트너의 연인이었다. 애인이 있는 여성을 사랑했던 자전적 이야기인 것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으로 나와 있지만 이번에 허밍버드 출판사의 클래식M시리즈 4번째 책, 숭실대 윤도중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컴팩트한 사이즈와 클래시컬한 표지 그림이 새로운 번역에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p.68

빌헬름, 사랑 없는 세상이 우리 심장에 무엇이란 말인가? 불빛 없는 요술 환등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베르테르에게 사랑은 전부다. 괴테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베르테르의 이 사랑(짝사랑)은 젊음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라 해도 무방하다.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며 그녀에게 짝이 있다는 것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만 눈에 보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로테를 만난다!” 라고 외친다. 처음 그녀 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인이,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고 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베르테르에겐 운명이었다.

 

폭풍같은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젊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사랑할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사랑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베르테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은 젊기 때문이다. 물론 젊지 않아도 사랑 때문에 죽냐?’고 할 수도 있고, 요즘 시각으로 보면 결혼까지 했는데 저렇게 하는 건 스토킹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성을 찾기 위해 부자가 되고 대저택을 구해 매일 밤 파티를 여는 개츠비같은 사나이도 있지 않은가. 개츠비보다 200 여 년 전의 젊은이 베르테르는 사랑의 열병을 자신의 죽음으로밖에 끝낼 수 없을 만큼 맹목적이었던 것이다.

 

p.189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혀 보세요, 베르테르. 당신이 자신을 속이고 일부러 파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못 느끼시는군요! 도대체 왜 저를, 베르테르! 어째서 하필 다른 사람의 아내인 저냐고요! 다른 사람의 아내라서 그런가요? 저는 두려워요. 저를 차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유가, 단지 그럴 수 없다는 불가능성 때문이 아닌지 걱정되네요.

 

자신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로테가 하는 저 말은 베르테르의 맹목성을 나타내지만 한편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결심에 확신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젊기에 사랑에 전부를 걸 수 있는 것이고,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씁씁한 신조어 n포세대까지 나왔다. 그들에겐 사랑도 사치라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소설에 얼마나 감정이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되었고, 사랑의 고전이라 불릴만한 작품들도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이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니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 것은 괴테가 사랑이라는 것을 젊음에 방점을 찍은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격정은 맹목적이고 순수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실제로는 죽지 않고 많은 걸작들을 남겼지만 말이다. 거의 250 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고 뮤지컬 같은 다른 장르로 재소환되는 것은 역시 사랑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랑의 의미가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읽었고 짝사랑하다 자살한 남자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이 소설을 허밍버드 출판사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었다기보다 처음 읽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나? '

'이렇게 격정적이었구나! '

'참 아프게도 사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살짝 부러웠다.

그 젊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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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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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라는 책의 제목에 너무 매몰됐었던 건지, 책 소개를 대충 읽었는지 나는 이 책이 스파이 소설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전직 CIA 비밀 요원이었던 아마릴리스 폭스의 자전적 에세이였다. 저자는 22살에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으로 선발되어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집단을 추적했다. 현재는 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방송활동도 겸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던 아버지는 외국 정부에 에너지 정책을 조언하는 일을 하느라 늘 출장이 잦았고 영국출신 어머니의 가정교육 아래 풍요로운 인문학적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어릴 적부터 세계 정세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버마 국경 난민을 돕기 위한 자원 활동을 신청했다. 그 때부터 이미 요원의 재능이 다분했던 걸까? 첩보작전을 펼치듯 위장결혼을 하여 아웅산수치 여사의 인터뷰를 하게 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법과 신학을 공부한 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테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CIA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최연소 요원으로 발탁되었다. 이제 그녀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못한 채 세계 각국에서 비밀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을 스파이 소설로 착각한 나는 영화 <무간도>를 상상하며 숨막히는 서사가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삶과 CIA요원으로서의 활동을 시간 순으로 기록했기에 드라마틱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적 즐거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나처럼 착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목만 보고 오해한 독자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겠다. 저자 자신의 삶과 몸담았던 조직의 활동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허나 독자로서 의문도 생겼다. 이렇게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직인 CIA가 하는 일을, 아무리 요원 한명의 활동이지만 그것을 책으로 내는 것에 대해 그들이 허가했을지 궁금했다. 어느 정도의 절충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 가능하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문화라니 놀랍다. 클린턴이나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이들이 폭로성 책을 출간하는 것을 봐도 미국은 이런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허용되는 나라는 맞는 모양이다.

 

내 착각을 자책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 접어두고 책을 읽어 나가다보니 CIA라는 조직과 미국 리더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전쟁에 개입하고, 때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반군을 지원하기까지 한 미국의 역사를 보자면 이 책에서 드러나는 미국 우선주의 사고방식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테러범으로 오인 체포해서 불구로 만들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행위에 저자가 반기를 들자 팀장은 그 책임은 미국 시민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는 답을 한다. 세계에서 저지른 추악한 행위를 비판하는 노암 촘스키와 하워드 진 같은 학자와 저런 조직이 공존하는 사회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부부의 성생활조차 정해진 매뉴얼대로 해야 했고 간극을 좁힐 수 없었던 일반인과의 결혼과 이혼,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 조차 자신의 일을 비밀에 부쳐야 했지만 저자는 요원으로 활동했던 기간 동안 충실하고 능력있는 직원이었다. 그러나 첫 딸 조이가 비밀 요원의 딸로 살게 될 미래가 어떨지 그려졌을 때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연극 배우같은 삶을 아직 너무 어린 딸이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CIA를 떠났지만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살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자 노력하는 그녀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이 책은 이미 브리 라슨이 주인공으로 낙점되어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또 그녀는 넷플릭스의 <중독의 비즈니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권위를 실추시키고자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성장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감사를 보면 애정을 가늠할 수 있다.

 

CIA의 남녀 요원들에게. 여러분은 힘들게 일하지만 그만큼 인정을 받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은 윤리와 법률, 삶과 죽음의 문제와 씨름합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지휘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호사는 누리지 못하죠. 자신의 삶과 꿈을 담보로 재앙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음지에서 활동합니다. 여러분이 충성하는 대상은 성조기, 미국 헌법, 그리고 신이나 사랑처럼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힘입니다. 저는 당신들 사이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전통 속에서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를 지금과 같은 여성으로 성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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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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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낳았다고 해서 이름이 푸실이가 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일곱살 난 남동생 이름은 귀손입니다. 태어난지 여섯달된 막내동생은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여자아이라서 안 지어준걸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걸까요?

제 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인 동화<담을 넘은 아이>의 주인공 푸실이는 너무나 배가 고픕니다. 나무껍질과 풀을 넣고 끓인 멀건 죽조차 배부르게 먹지 못할 형편에 동생 귀손이까지 아픈데 약을 구할 돈이 없습니다. 푸실이 어머니의 선택은 대감마님댁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그댁 손자의 유모가 되는 대가로 귀손이의 약값을 받은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유모라는 단어를 알까요? 어쩌면 이 책에서 처음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유모는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젖이 나오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김정민 작가는 여러 유모이야기를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특히 엄마 젖을 빼앗긴 아기가 방치되거나 굶어 죽었고 유모로 간 엄마 역시 불행했다는 기록을 보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담을 넘은 아이>는 조선후기 지지리도 가난한 집, 푸실이네의 안타까운 사연과 글(언문)을 배우며 인간의 도리를 깨쳐나가는 푸실이의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됩니다. 귀손이는 약을 쓴 덕에 겨우 살아났고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했지만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아기에게는 젖을 물리지 않습니다. 아니 주려고 해도 귀손이가 다 먹어버려 젖이 나오질 않는거죠. 아버지와 동생들을 잘 돌보고 집안 살림까지, 즉 어머니가 할 일을 푸실이에게 모두 맡기고 어머니는 대감마님댁 유모로 들어갑니다. 집안살림을 떠안은 푸실이는 꿋꿋하게 해내지만 아기에게 젖을 줄 수는 없지요. 동네에 젖동냥을 다니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횟수가 늘수록 동네 아주머니들도 더이상 젖을 물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푸실이에게 숨쉴 틈은 언문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산에서 주운 책 '여군자전'이 언문으로 쓰여 있었는데 푸실이는 무슨 내용인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언문을 알고 있는 돌금이에게 배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어느덧 책의 내용을 몽땅 외우기에 이릅니다.

 

 

 

 

상것인 푸실이가 글을 알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왜 필요했을까요? 학식 높은 대감마님 면전에서 겨우 책 한 권 외운 것 뿐인 푸실이가 당당하게 외칩니다.

"대감마님은 군자가 아니십니다!"

 

 

돈주고 산 유모(푸실 어머니)의 젖을 아기에게 물리게 한 것은 도둑질이니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대감마님에게 한 말입니다. 불쌍하고 약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이가 참 군자라고 덧붙이기까지 합니다. 당장 멍석말이를 하라는 대감마님앞에 그의 아들이 나섭니다. 퇴계선생의 유모 일화와 정조 임금의 말을 빌려 죽어가는 어린 목숨을 그냥 놔두라고 하지는 않았다면서요.

사실 여군자전은 대감마님의 며느리가 쓴 책이었습니다. 여성은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관직에 나갈 수가 없었고 글을 배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때에 군자의 도를 책으로 쓴 여성이 있었고 그 책을 읽은 천한 여자아이가 대감마님 앞에서 인간의 도리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쓸데없을 것 같았던 한 여성이 쓴 책이 다른 여성에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푸실이는 죽을뻔했던 동생을 구하고 해님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문자를 깨침으로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다른 사람(양반 남성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지요.

글을 읽고 쓰는 게 아주 당연한 요즘 아이들 입장에서 푸실이의 행동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이 잘 안 될 것입니다. 또 푸실이 부모의 행동에 기막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차고 똑똑한 푸실이에게 반해 순식간에 책을 읽어내릴 겁니다. 

이 책을 아이와 같이 읽는 어른이라면 시대 상황(조선의 신분제) 설명과 유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푸실이라는 아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대감마님의 손녀 효진과 푸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말입니다. 문이 막히면 담을 넘겠다는 푸실이에게 "너는 담을 넘는 아이로구나."라고 효진이가 말하지요. 담을 넘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책이든 마음껏 읽을 수 있고 꿈꾸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도 담이 있을까요? 조선시대 푸실이에게 담과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담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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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함께여서 좋다? - 치매간병을 힘들게 만든건 착한며느리 증후군이었다
정유경 지음 / 노드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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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씨가 쓴 시아버지 치매 간병 에세이 <그래도 함께여서 좋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책을 확 집어 던질 뻔 했다. 밖에서든 집에서든 시도 때도 없이 시아버지의 대변처리를 하는 장면을 읽으며 구역질이 올라왔고,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어쩜 이렇게 부당한 시집살이를 몇 십년 씩이나 했단 말인가 싶어 너무 화가 났다. 서평용으로 받은 책이 아니었다면 더 이상 읽기를 포기했을 책이다. 그래도 서평을 쓰려면 다 읽어야 하니까 잠시 다른 짓을 하다가 책으로 돌아왔다. 실은 마지막이 궁금했다. 저런 경험을 책으로 내다니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끝까지 읽을 동력이 되었고, 글쓴이의 부당한 상황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해졌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사람은 이제 그 수렁같은 시월드에서 벗어났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첫 문단을 쓰고 보니 조금 우려가 된다. 책을 잘 알려서 많은 사람이 읽게 하는 것이 리뷰의 목적인데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고 이 책을 읽었다가는 고구마 100개 삼킨 듯한 답답함이 예측되어 아예 읽기를 시작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저자가 한 각 장별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다.

 

1장에서는 치매의 증상과 관련된 그간의 사건을 위주로 적었고, 2장에서는 간병의 고통과 그로 인한 문제를 적었다. 3장에서는 간병 이후의 치유를 이야기 했고, 4장은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적었다.

지금도 많은 치매 가정의 주 보호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현실과 싸우며 버텨내고 있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떠도는 미아가 된 느낌이다. 그것은 어느 가정의 어떤 치매 환자도 같은 증상과 상황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치매 환자의 망가진 뇌를 붙잡아 주고, 왜곡된 기억과 현실을 다독여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워주고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으로 독자는, 치매 환자를 간병하면서 겪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간접경험 해 볼 수 있으며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겠거니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4장에서 치매 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도 여럿 소개하고 있어서 현재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 치매 환자를 집에서 간병하는 사람이 있나? 아니, 이 책의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아무리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 해도 개별 가정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지극히 다르기 때문에 가족인 치매 환자를 모두 요양병원 같은 곳으로 보낼 수 없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가 아님에도 맏며느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가정이 아직도 있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며느리의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간병하는 내용은 이 리뷰에서 굳이 옮겨 적고 싶지는 않다. 여자로서 남자인 시아버지의 대변을 처리하고 씻기는 일이 어떠할지는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과연 저자처럼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인내심의 대가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심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인용해본다. 끝없이 계속되는 시아버지의 뒤처리 끝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런 모습에 인상을 쓰고 잔소리를 한다면 환자와 보호자 사이엔 벽이 생기고 만다. 아버님과의 시간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치매를 통해 인내심의 한계를 높이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 덕분에 그리고 벼랑 끝의 고통 덕분에 감사한 것이 많아지게 되었다. 삶의 절벽에서 고통 속으로 떨어졌더니 비로소 날개가 달려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시아버지의 간병보다 더 화가 났던 부분은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의 태도였다. 특히 시어머니는 악랄했다. 25년이 넘도록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바보 같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시월드가 있고 거기서 노예로 살아가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남편 조상님의 제사를 며느리라는 이유로 봉사해야하는 것도 어불성설인 것을 몇 백년간 관습이라는 이유로 하고 있는데, 시아버지의 치매 간병을 왜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도맡아야 하는가? 시월드의 모든 구성원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녀는 순종했으며 매 순간 태풍이 휘몰아치는 절벽에 선 것 같은 아내에게 남편은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않았다.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내 눈에 그곳은 지옥이었다.

 

시아버지 간병 6년차에 저자는 가출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다. 자발적 감금상태였던 그곳에서 벗어나서야 겨우 자신이 있었던 곳을,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정생활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시댁에서 사랑받는 맏며느리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족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삶이 세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시어머니가 손주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저자는 효부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좋아하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유튜브로 여러 강연들을 들으며 무너진 자아를 찾고자 했다. 베이커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로 베이비시터 일을 했다.

 

이 책에서 저자에게 공감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이는 없었다. 가족들 중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공감을 전한 이는 바로 베이비시터로 일했던 아이의 엄마였다. 그 사람이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나도 울컥했다.

 

저자는 힘들었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살풀이하듯 풀어냈다. 마음 가득 차 있던 돌덩이를 밖으로 많이 끄집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시간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약이 되었기를 바란다. 마지막에 저자는 치매환자와 간병하는 가족, 요양사를 위한 당부로 마무리한다.

 

307~308

치매노인은 약자다. 자신에 대한 제3자의 무심코 하는 말과 눈빛을 느끼지만 제대로 된 표현도 방어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간과하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 느낀 감정을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아 어느 순간 표출하게 된다. 그것도 폭발하듯. 환자를 간병하는 요양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간병의 손길을 위해서도 예의를 갖추지만, 대부분은 따뜻한 인격과 소명감으로 치매환자를 대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타고난 이타심이 없다면 오랫동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렇지 않은 요양사도 있지만 내가 겪은 대부분의 요양사님에게서 책임감과 배려심을 경험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약자를 성심성의껏 대하는 일을 하는 분이기에 더욱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이제 부디 저자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 편하게 하면서 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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