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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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치고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떡볶이는 대중적이고 싸고 만만해서 편한 음식이다. 물론 떡볶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쓸데없이 비싸져서 먹기 싫다고 투덜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떡볶이만큼 호불호가 적고 저마다의 추억이 깃든 음식은 없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하루라도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던 애가 있었다. 하교 시 학교 앞 분식집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친구였다. 늘 같이 하교했는데 어떨 땐 떡볶이 좀 그만 먹자며 오늘은 그냥 가자며 손을 끌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걔는 나더러 안 먹을 거면 지켜보고만 있으라 했지만 어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앉아있다 보면, 오늘은 절대 같이 안 먹어줄거라며 다짐다짐했지만 이건 거의 무조건반사인거다. 그 빨간 소스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냄새는 입안에서 침이 분수처럼 솟구치게 만드는데... 어느 순간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에 둘은 또 그렇게 꺄르르꺄르르 했던 시절이었다.

떡볶이와 얽힌 사연은 누구나 있을 것이니 일반인에게 ‘떡볶이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제각각의 답이 나올 것이다. 100인 100색의 사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소설가라면 어떨까? 여기! 골라 먹는, 아니!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떡볶이 소설집이 나왔다. 10명의 작가들이 떡볶이를 소재로 쓴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이다. 종류가 서른 한가지나 된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면 각각의 이름과 비주얼을 보고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먹으면 된다. 그러나 이 떡볶이 소설들은 제목을 보고 그 맛을 가늠하기 어렵다. 떡볶이 종류도 꽤 다양해졌다. 맛으로 따지자면 오리지널 떡볶이부터, 짜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엽기 떡볶이에다 프랜차이즈 이름을 붙인 떡볶이까지! 이 소설들은 그런 맛과 조금 다르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다.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대체 무슨 맛일지 궁금하다면 당연히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허나 책 좋아하고 떡볶이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선 이미 책장이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가군! 떡볶이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할 것이다. 어쩜 이런 상상력이 가능한지 연거푸 감탄하거나, 내 추억과 몹시 비슷하다며 공감하거나, 마치 고발뉴스 같은 것을 보는 듯 너무 현실적이라며 씁쓸해 할 수도 있다. 소설은 보통 독자가 공감할 때 가장 재미있다고 여기지만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각 소설 뒤에 붙은 ‘작가의 말’이다. 대부분 작가가 이 떡볶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히는 내용이었는데 왠지 작가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 같아 친밀감이 들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밝히는 작가, 사회 문제와 떡볶이를 연결한 작가, 소설 속 떡볶이 집이 실재하니 가 봐도 좋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작가, 번역을 하다가 처음 소설을 썼다고 밝히는 작가까지. 작가가 그리 먼 대상이 아니라 떡볶이 같이 먹을 수 있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혼자 그런거겠지만~~ㅎㅎ

이 리뷰에서 10편의 소설을 모두 소개할 순 없다. 상상력면에서 독특했다고 생각한 소설은 김설아 작가의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과 정명섭 작가의 <좀비와 떡볶이>이다.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은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이 연상되었다. <강아지 똥>은 이 세상에 똥으로 나온 시점부터 시작이었다면 김설아 작가는 똥이 되기 그 이전부터 시작한다. 그 시작은 물론 떡볶이였고.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키우듯 쫄깃쫄깃 탱탱은 빨간 고추를 키운다. 의미심장하다. 고추는 바로 떡볶이를 가장 떡볶이답게 만들어주는 주재료이지 않은가! 그 고추를 잘 키워낸 쫄깃쫄깃 탱탱은 흙 속에 스며들어 점점 형체조차 없어지며 이윽고 사라진다. 우리가 편하게 먹는 떡볶이에 거대한 자연의 순환이 숨어있음을 포착한 소설이었다.

 

<좀비와 떡볶이>는 떡볶이가 만들어지려면 필요한 일련의 재료가 얼마나 힘든 공정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에 대한 고찰에 가깝다. 편하게 누리던 인류 문명이 파괴되고 좀비와 함께 살아가는 종족의 아이들이 예전에 맛있게 먹던 떡볶이 이야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듣고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해진다. 아이들은 급기야 떡볶이의 주재료인 고추장을 직접 만들기에 이른다. 분식집에서 “여기 떡볶이 1인분이요!”하면 뚝딱하고 떡볶이 한 접시를 먹을 수 있고,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도 각종 재료들을 마트에서 쉽게 사오면 만들수 있다. 그 과정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편하게 이루어 졌는데 두 소설은, 떡볶이 하나에 우주가 담겨있고 우리가 그것을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너무 교훈적일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여겼다면 내가 리뷰를 잘 못 쓴 것일 거다.

조영주 작가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떡볶이>는 스위스에서 40년 만에 귀국한 해환이라는 여성이 떡볶이 순례 중 맛 본 환상적인 맛의 떡볶이 레시피를 연구하는 내용이다. 결정적 한 방이 ‘사랑’이라는 건 식상할 수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주부든 요리사든 요리에 정성과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궁극의 맛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니까. 죽이고 싶은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만드는 떡볶이의 맛에 점차 변화가 생겼다. 마지막에 만들 해환의 떡볶이 맛은 과연 어떨까? 작가의 말에서 추리소설가 윤해환이 등장하는 <멸망하는 세계, 망설이는 여자>를 소개해주니 또 안 읽어볼 수가 없겠다.

이리나 작가의 <송 구리 당당>에 나오는 고등학생 은서는 너무나 애잔했다. 알콜중독자 아빠를 고등학생이 돌봐야하다니... 공부보다는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하고 아빠 때문에 지각과 조퇴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은서는 너무나 씩씩하다. 언니처럼 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은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까지 가면 엄마도 아빠 옆에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럼 아빠 혼자 어떻게 살아요. 아빠를 지켜야죠.”

아빠 노릇 못하는 아빠를 지키겠다는 은서는, 최선생이 서른 된 새해 첫날에는 이런 문자를 보낸다.

“대박! 샘 삼십 대 된 거예요? 다 늙었네. 애인도 없이 나이만 먹은 불쌍한 샘을 위해 우리 싸장님이 메뉴에 방앗간 떡볶이를 추가했어요. 드시러 와염~♥”

스물 아홉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되어 간 모교에서 첫 담임을 맡게 되어 넘나 힘들어하는 주인공이 만난 은서는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러워보였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떡볶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은서. 그런 은서가 서른이 된 자신을 떡볶이로 위로해주는 마지막은 훈훈했다. 선생님도 은서도 덜 힘든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면서 이건 소설일 뿐이야!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힘겹게 살고 있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어린 아이들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처럼 학생인데 가장노릇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초딩이 주인공에다 반전으로 재미를 준 김동식 작가의 <컵떡볶이의 비밀>로 시작해 마지막엔 떡볶이 집 알바중인 고딩 은서의 이야기로 끝이 났다. 10편의 소설 모두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소설적 재미를 맛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 절친을 떠올렸고, 리뷰를 마치면서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오늘 저녁에 만들 떡볶이는 평소보다는 좀 더 맛있을 것 같다. 레시피는 비슷할지라도 떡볶이에 대한 생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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