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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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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스물 다섯 살(1774년)에 출간했다. 2년 전, 한 파티에서 19살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이야기와 유부녀와의 사랑 때문에 권총자살을 한 친구 이야기를 섞어 완성한 책이 이 소설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책 속에서 주인공의 편지를 받는 빌헬름이었고, 자신이 실제 사랑에 빠졌던 로테는 친구 케스트너의 연인이었다. 애인이 있는 여성을 사랑했던 자전적 이야기인 것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으로 나와 있지만 이번에 허밍버드 출판사의 클래식M시리즈 4번째 책, 숭실대 윤도중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컴팩트한 사이즈와 클래시컬한 표지 그림이 새로운 번역에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p.68
빌헬름, 사랑 없는 세상이 우리 심장에 무엇이란 말인가? 불빛 없는 요술 환등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베르테르에게 사랑은 전부다. 괴테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베르테르의 이 사랑(짝사랑)은 젊음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라 해도 무방하다.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며 그녀에게 짝이 있다는 것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만 눈에 보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로테를 만난다!” 라고 외친다. 처음 그녀 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인이,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고 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베르테르에겐 운명이었다.
폭풍같은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젊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사랑할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사랑과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베르테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은 젊기 때문이다. 물론 젊지 않아도 ‘사랑 때문에 죽냐?’고 할 수도 있고, 요즘 시각으로 보면 ‘결혼까지 했는데 저렇게 하는 건 스토킹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성을 찾기 위해 부자가 되고 대저택을 구해 매일 밤 파티를 여는 개츠비같은 사나이도 있지 않은가. 개츠비보다 200 여 년 전의 젊은이 베르테르는 사랑의 열병을 자신의 죽음으로밖에 끝낼 수 없을 만큼 맹목적이었던 것이다.
p.189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혀 보세요, 베르테르. 당신이 자신을 속이고 일부러 파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못 느끼시는군요! 도대체 왜 저를, 베르테르! 어째서 하필 다른 사람의 아내인 저냐고요! 다른 사람의 아내라서 그런가요? 저는 두려워요. 저를 차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유가, 단지 그럴 수 없다는 불가능성 때문이 아닌지 걱정되네요.
자신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로테가 하는 저 말은 베르테르의 맹목성을 나타내지만 한편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결심에 확신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젊기에 사랑에 전부를 걸 수 있는 것이고,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사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씁씁한 신조어 n포세대까지 나왔다. 그들에겐 사랑도 사치라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소설에 얼마나 감정이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되었고, 사랑의 고전이라 불릴만한 작품들도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이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니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 것은 괴테가 사랑이라는 것을 ‘젊음’에 방점을 찍은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격정은 맹목적이고 순수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죽지 않고 많은 걸작들을 남겼지만 말이다. 거의 250 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고 뮤지컬 같은 다른 장르로 재소환되는 것은 역시 사랑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랑의 의미가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읽었고 짝사랑하다 자살한 남자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이 소설을 허밍버드 출판사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었다기보다 처음 읽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나? '
'이렇게 격정적이었구나! '
'참 아프게도 사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살짝 부러웠다.
그 젊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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