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게 온 까닭은
조일희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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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저자 ‘조일희’씨는 자기 글의 원천이 외로움이라고 책소개에서 밝혔다. 그 말에 이끌려 바른북스 서평단에 신청해서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2015년에 <수필과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으며 각종 수필상을 받은 수필가이다. 나는 수필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은 있을 법하지만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므로 그저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지어낸 이야기가 타인의 내밀함을 들여다보는 수필보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욕심이 과했던 걸까? 수필이라는 문학을 유목적적 도구로 생각한 내 이기심이 이 책을 문학으로 감상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 저자의 외로움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는 것은 타인의 외로움을 엿보고 싶다는 속내가 있었다는 것을 잠시 간과했다. 그 외에도 저자의 외로움은 내 것과 어떤 유사함이 있는지, 외로움의 원천으로 쓴 글은 어떨지, 나아가 내 외로움으로도 글을 쓸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런 사심들을 내려놓고 다시 읽어야 했다.

저자의 글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미 나이 육십이 되었다고 밝혔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엊그제 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따로 살게 되면서 자신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는데(이혼은 아님)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는 생생하다. 아직까지 생생함으로 남아있다니 당시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모친이 안 계셨던 그 때,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 때 느꼈던 무서움을 아동센터의 수영이라는 아이를 통해 드디어 떨쳐내는 일화를 읽으니, 그의 외로움은 엄마의 부재로부터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꽃망울을 터트린 수영이와 꽃이 진 나의 손깍지를 끼고 동네 빵집을 향해 걸었다. 우리만의 은밀한 꽃 파티를 위해...

 

 

 

 

수영이는 자신이 느꼈던 괜한 두려움 속에 오래 갇혀있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제목과 같은 꼭지 “네가 내게 온 까닭은‘의 내용은 길에서 만난 노견을 집으로 데려와 그 생명의 마지막까지를 지켜본 이야기이다.

 

 

 

 내가 저를 품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내게 온기를 주기 위해 내 품에 깃든 거였다.

할 말을 내장에 쌓아두고 뱉지 못하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 녀석이 온 거였다.

 

 

 

길에서 떨고 있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거둔 이유가 대입을 앞둔 아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위에 서술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자신도 몰랐겠지만, 복길이라 이름 붙인 그 노견이 생명을 다하는 순간 저자는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였다고, 용기내기 위해서라고...

자세한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자는 복길이를 들인 이후에 수필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등단까지 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p. 73

나는 오랜 세월 수인처럼 나를 가두고 살았다. 순응이 복종이 되고 복종이 타성이 되어 타인 앞에 서면 자동으로 허리가 굽혀졌다. 종내에는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지마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원적인 생각이 자아의 밑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 텅 비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잃을 게 없으니 두려움도 없었다. 본연의 나를 찾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위는 학인들과 평사리에 다녀온 “발산섭수”라는 글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발산섭수(跋山涉水)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다, 즉 먼 길을 가는 노고,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며, 평사리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은 몇 년후 토지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루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 죽을 때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를 계속 자문하게 된다. 그 누가 강제한 것이 아님에도 마감이 있는 책 읽기를 자처하는 이 짓은 왜 하고 있나?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던 고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자의 외로움은 수필가로 꽃피울 씨앗의 양분이었던 것 같은데 내 외로움은 무엇에 쓸모인지 생각해본다. 어려서 나의 결핍은 돈이었지만 돌아보면 극단적이리만치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계셨지만 자매가 없던 것은 감정공유 대상의 결핍이었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여형제가 생길 것도 아니며 여태껏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그때그때의 감정을 교류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대로일 듯하다. 끝까지 함께 할 외로움을 자양분삼아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뭔가를 찾지 못해 책 읽기에 목 메는지, 찾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자신을 더 들여다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에는 아름다운 낱말이 많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았다. 문맥상의 의미를 유추해보면 뉘앙스를 알듯한 것도 있었지만 사전적 정의를 확인해보고 싶어 일일이 찾아보았다.

하늬바람 마파람은 들어봤지만 ‘손돌이 바람’과 ‘살바람’을 들어본 적 있는가?

 

손돌이 바람은 음력 10월 20일경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이고,

살바람은 봄철에 부는 찬바람 또는 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을 뜻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 들어 있는 글은 가독성이 떨어져서 독자들이 읽기 꺼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쓸데없는 걱정이길 바란다. 어쩌면 잊혀져가는 우리 말을 사용해서 그 생명이 이어지도록 하는 게 수필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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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말할 진실 창비청소년문학 93
정은숙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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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말할 진실>은 ‘창비 청소년 문학’ 93번째로 선정된 정은숙의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단편 소설 7편이 실렸으며

각 단편은 청소년 소설임에도 다루는 소재가 다양하다. 교사의 성추행, 가족의 죽음, 학교 폭력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버티고(vertigo:비행착각현상), 가난이 성적과 연애에 미치는 상관 관계, 그리고 공연음란죄까지. 이렇게 스펙트럼 넓은 소설 속 주인공이 모두 청소년이다. 자칫 “애들이 뭘 알아?” 라며 이 복잡한 세상 속 진실을 아이들이라 불리는 청소년(이 책에서는 주로 고등학생)이 알 리가 없다고, 혹은 알아선 안 되는 존재로 치부한다.

하지만 정은숙 작가는 청소년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른인 나조차 맞닥뜨려본 적 없는 각종 사건에 내몰린 주인공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작가가 너무한 게 아닌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파르르 떨리는 나비의 날갯짓 같이, 너무 사소해서 놓칠 뻔한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차리는 건 아이들이다.

그 진실이 얼마만큼 큰지 아이들은 가늠할 수 없고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살아간다.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 비록 자신의 오류라 하더라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하지만 어른들은 그러지 않는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귀찮아서, 자신의 권력으로 숨길 수 있어서... 갖가지 이유로 모른 척 외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놓지 말아야할 정의와 신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7편의 소설 중 문제적 소재를 다룬 것은 표제작 “내일 말할 진실”이다. 주인공 세아가 따르던 임선생님이 성추행 교사로 몰려 학교를 떠나게 된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예주는 학교에 남았고, 그 일은 세아 본인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주가 밝힌 사건이 일어난 그날, 그러니까 예주가 상담실을 나간 후 세아가 임선생님과 상담실에 들어갔던 그 날 일이다. 그곳에서 임선생님은 교지 편집실에 보낼 프로필 사진을 세아에게 찍어달라고 했는데, 세아는 그 사진이 예주의 폭로에 반전용으로 사용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주가 폭로한 사건정황의 빈틈을 임선생님은 세아에게 찍어달라고 한 사진으로 뒤집었다. 늘 그렇듯 사람들은 처음엔 임선생님을, 나중엔 예주를 비난하기 바빴다. 급기야 대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임선생님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에 휩쓸린 세아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외삼촌에게 사기당해 전 재산을 날린 엄마는 끝까지 외삼촌의 진심만은 믿는다고 했다. 세아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격려하던 임선생님의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러나 세아는, ‘오래전 제일 작은 인형을 쓰다듬으며 외삼촌의 진심을 믿었던 엄마처럼 혹시 나도 안쪽에 숨어있는 인형은 까맣게 모른 채 듬직하게 우뚝 선 제일 큰 인형만을 보면서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날 상담실에서 자신이 본 것,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이 진실이라 생각하지만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다. 한편 ’무엇보다 볼품없고 초라해도 진실의 편에 서고 싶다‘는 예주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 소설의 서사는 두 축이다. 임선생의 성추행 사건과 세아의 편의점 알바 생활이다. 엄마가 사기당한 후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네 집에 얹혀사는 신세인 세아의 경제적 궁핍은 편의점 알바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고모의 생리대를 꺼내 썼다가 심한 퉁박을 받고, 진상 손님들을 대해야만 하는 스트레스는 통장에 입금되는 알바비로 상쇄된다. 작가가 예주의 성추행 사건과 외삼촌의 사기를 같이 진행시킨 것은 인간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한 면이 그의 전체가 될 수 없음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누나에게까지 사기 친 동생의 그 진심만은 믿는다는 엄마와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임선생님의 행동을 진심이라 생각하는 세아. 그들의 진심이 분명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심이 그들의 전부도 아니다. 한 번의 행동으로 인간의 다면성을 말할 순 없음을 이제 세아도 깨달아 갈 것이다. 그것을 엄마보다 일찍 겪은 세아는 어쩌면 엄마와는 다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주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는 작가의 문장이 세아를 믿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도 던진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둘 용기가 있는가?”

이것은 나서서 진실을 말하라는 말보다 무겁다. 용기있게 나서기 전, 남들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을 맞다고! 안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리려는 묘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소설 “그날 밤에 생긴 일”도 유사한 주제이다. 진미식당 앞에서 바지 지퍼에 두 손을 모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던 남자의 사진을 찍은 묘성이 경찰에 신고를 한다. 묘성이 보기에 변태 같은 짓을 한 남자를 신고했더니 경찰은 그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온다. 일단 근처 CCTV에 묘성이 특정한 사람이 찍히지 않았고, 그 시간대 근처에서 신원 확인이 된 남자는 수년 전부터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활동한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니 종결 처리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학생이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는 담배피우는 여학생인 묘성이 학교와 어른들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는지, 청소년 흡연자이기 때문에 따르는 행동 제약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 때문에 한 번 더 조사 요청을 했을 때는 오히려 묘성이 죄인인양 취급받는다. 그날 밤 CCTV에 묘성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장면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정도 되면 오순경의 말처럼 똥밟은 셈치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묘성은 그러지 못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 묘성은 ‘누가 봐도 충분히 훌륭한 그 남자도 어둡고 쓸쓸한 밤거리에서 했던 몹쓸 짓을 인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오순경에게 전화를 건다. 아직 학생이고, 학생에게 금지된 흡연을 하는 묘성의 발화는 어른들에게 신뢰는커녕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묘성의 행동은 어쩌면 세아보다 용기있다고 하겠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날의 진실을 가지고, 잘못된 건 잘못된 게 맞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교사는 한 번만 더 흡연이 들키면 퇴학이라며 협박하고, 공권력의 대표격인 오순경은 그 동네 권력자를 감싸기에 급급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는 묘성은 세아의 업그레드 버전이라 하겠다.

이 소설을 읽는 학생들에게 저런 딜레마적 상황들이 얼마나 생길지는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 제 또래의 행동을 보며 만약 유사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한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혹은 친구들과 이 소설을 읽은 후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나와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문제해결하는 다양한 방식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고 덜 우울했으면 좋겠다.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바람뿐이라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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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러블리 와이프
서맨사 다우닝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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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읽은 책 중에 작가들의 첫 소설이 꽤 여러 권이다. <마이 러블리 와이프>도 황금시간 출판사의 출간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서맨사 다우닝’이라는 작가는 이 책이 첫 번째 장편소설인데 영미권 미스터리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 권위의 애드거 상 최우수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니콜 키드먼이 영화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속도감 있는 진행과 반전이 스릴러적 긴장감을 극대화하여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소설은 미국 플로리다주 우드뷰에서도 부유층이 모여 사는 히든오크스를 배경으로 한 가정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겉으로 단란해 보이는 결혼 15년차 가정이며 4명의 구성원으로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자, 남편은 테니스 강사,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결혼 생활을 15년 정도 유지하다 보면 부부사이에 사랑보다는 의리로 산다는 말이 자연스럽고, 경제공동체를 잘 유지하면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다. 허나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은 집집마다 있기 마련이다. 그 균열이 어떤 계기에 의해 쩍 벌어질 때, 잘 봉합할 수 있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완전히 갈라져 다시 붙이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다. 그것은 동서양 막론하고 비슷하다 하겠다.

이 소설 <마이 러블리 와이프>의 가정은 겉으로 단란해 보이지만 위태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연쇄살인으로 유지되는 까닭이다. 비행기에서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 이들 부부의 오르가즘은 여성을 살해할 때에 극에 달한다. 소재가 몹시 자극적이다. 그런데 남편의 1인칭 현재 진행형의 서술은 평온하게 들린다. 그리고 잔인한 살해장면 묘사도 없다. 이런 서사가 독자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의 1인칭 서술이 반전의 요소로 사용되었음을 독자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남편이 청각장애인 흉내를 내기로 하고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지 의논하는 장면은 마치 가정사를 의논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살해 대상에게 접근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둘은 대상을 같이 고르고, 남편은 여성에게 다가가 유혹하고, 아내는 살해한다.

그렇게 그들만의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아내 밀리센트의 언니 홀리가 정신병원에서 나오면서부터다. 그들의 집으로 찾아와 협박하자 남편이 홀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아니다. 남편이 유혹한 여성과 섹스를 하면서부터인지도! 아니, 자신들의 행동을 예전에 그 동네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남성 오언으로 가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건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14살 아들 로리와 11살 딸 제나였다. 대체로 요즘 부모들은 십대 자녀를 컨트롤하기가 아주 버겁다. 로리는 아빠의 밤외출을 외도하는 것으로 확신한다. 엄마에게 알리겠다고 아빠에게 협박을 하여 자신의 일탈을 눈감아주는 것으로 협상을 한다. 아빠가 아들에게 거의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다. 딸 제나는 더 심각하다. 연쇄살인범 오언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며 학교에 칼을 들고 가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제나를 위해서라도 멈추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살인을 할 수 없고, 오언으로 가장하는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부부가 내린 결론은 오언이 떠나겠다고 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찰에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더 이상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으나 오언의 여동생이 나타나 자신의 오빠는 이미 죽었다고 밝히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것으로 제나의 공포심이 되살아난다. 이제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을 여기에 쓰면 소설을 읽을 맛이 뚝 떨어질 것이므로 쓸 수가 없다.

오언이 다시 나타나 연쇄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며 떠나겠다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진짜 살인범이므로 이제 진범을 찾아야 한다. 그 내용이 이 소설의 마지막 4분의 1 정도이다. 그 부분을 읽기 위해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 부부가 왜 살인을 해야만 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결혼은 현실이다. 연애의 유효기간도 최대 3년이라 하지 않나. 그런데 결혼생활을 잘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배려는 결혼생활을 유지함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에 아이까지 태어나면 몇 배나 더 노력해야 한다. 밀리센트 부부가 선택한 원만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살인이었다. 사건을 모의할 때 그들은 엔돌핀이 솟았고 팀플레이가 성공할 때 안정감을 느꼈다. 이러한 설정은 물론 과도하다. 결혼생활의 원만한 유지를 위해 연쇄살인이라니! 아마 작가는 그만큼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극적 설정을 한 것이겠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그럴바에야 이혼이 낫겠다.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지 못했기에 이 소설은 좀 아쉽다. 아, 그러고보니 이 소설에서 남편은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흉내를 내기 위해 토비아스와 퀜틴이라는 이름 둘 중 토비아스로 정했다. 초반에 토비아스를 사용하고 끝일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퀜틴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소오름이었다. 소설 속 남편은 자신의 진짜 이름 없이 가명만 쓰는 것이다. 소설 제목은 또 My lovely wife다. 누가 진짜 주인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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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 -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천둥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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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덕통사고로 만난 그 분, 덕주!

입덕했대도 한동안 뉴비로 어리버리!

덕주를 향한 쉼 없는 덕질로

일취월장하는 덕력!

30초 순삭 티켓팅에 밀려도

애걸복걸해서 신분상승 노오력!

스탠딩하며 미친 뜀박질에 다리 후달려도

덕친들과 날밤 새며 희희낙락!

덕주 팔로업하며 전국 누비고

떼창과 올공은 자동 플레이!

덕주 굿즈를 직접 만드는

금손 경지에 이르면 이른바 덕업일치!

앤드 성덕 등극!

 

머글에서 일코로 기웃거리던 뉴비가 덕밍아웃 후 성덕이 되기까지의 좌충우돌 덕질기가 책으로 나왔다.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

부제는,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작가 이름이 거창하다. ‘천둥’

여기까지 책 소개를 읽은 당신의 첫 마디는 이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수 덕질한 사람이 책 썼나?”

“누구지? BTS인가?”

“그런데 책 제목에 철학은 뭥미? 철학자를 덕질했다는 건가?”

“아니, 부제를 보니 세상 모든 덕후들을 응원하는 책인듯...”

이 책은 호불호가 극명할 것으로 보인다. 호불호라는 말보단 이 책을 읽을 사람과 읽지 않을 사람이 확 구분될 듯하다. 맨 처음 소개한 저 내용이 뭔 소린지 알아듣는 사람은 이 작가가 누구 덕질을 한 건지 궁금해서 읽어볼 것이다. 대체 이 무슨 외계어냐고 할 사람은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상당히 위험하다.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받았으니 책을 잘 소개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리뷰를 읽는 사람이 혹 하도록 자~알 포장해야 한다.

앗, 여기서 주의!

이 리뷰 분식리뷰 아니다!(분식회계의 그 분식 맞습니다~ 뽀샵처리죠^^)

좋은 리뷰는 그 책의 장점을 부각시켜서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처음의 소개가 덕질 좀 해본 이들에겐 궁금증 유발이지만, 어떤 사람들(머글 입장)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니 별 관심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리뷰의 성패는 후자들의 관심을 끌어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면 성공한 것이다.

과~~~연??

그럼 지금부터 떠먹여주는(혹은 적나라한) 책 소개 시작!

(최대한 덕질 전문 용어 자제를 목표로 함!)

이 책은 천둥이라는 필명을 쓰는 본명 조용미님의 덕질 후기이다. 49살 어느 날, 가수에 꽂혀서(BTS아님 주의!) 시작된 활동은 갱년기 여성의 인생을 다시 꽃피게 해주었다. SNS 계정을 여러 개 만들고, 팬카페 없는 가수의 스케줄을 따라 다니고, 다른 팬들(특히 젊은 팬들)을 만나 새롭게 배우는 것도 늘어가고, 응원하는 가수를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며, 그렇게 그렇게 덕후가 되어갔다. 작가는 팬클럽 활동(흐미, 이 단어! 덕질 대신 쓰니 늠 올드한...) 이 꼭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에 빠져서 열중하는 태도는 나이 여부와 상관없이 아름답다. 그런 행동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어릴 때 가수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행동에 구박과 비난만 받았기에 덕질을 바라보는 시선에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있었다.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돈 뺏기고 시간 뺏기는 저런 비생산적인 짓을 굳이 왜? 이런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 덕질의 순기능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밝힌다.

p.37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처럼 덕질을 하면서 나는 많이도 괴로워했다. 내 정체성이 덕후인 것을 받아들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덕질을 하고 앉아있는가’라는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생산적인 일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의미 있는 일만이 사는 길이라고 여겼다. 아니라고, 즐거운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무리 나를 설득해도 어느 순간 처음으로 돌아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다! 우리가 받은 교육의 내재화는 이런 것이었다. 사람 구실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사람구실이란 돈을 벌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활동도 충분히 의미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덕질은 가수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짓이라는 죄책감 듬뿍 든 워딩으로 폄하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그래서 힘이 나고 삶이 풍성해졌는지를 소개한다. 작가와 같은 덕주를 모시는 이들은 너무나 공감할 것이다. 앗, 어쩌면 이미 그들 사이에 이 책이 필독서로 소문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려되는 지점은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의 숫자가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읽어보길 권한다. 덕질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니 추천한다. 이제 입덕한 사람들에게는 더 좋다. 덕후 세계의 전문용어와 덕질 노하우를 배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초보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비생산적 활동이라는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 물론 그렇지 않다. 이 책이 단순히 가수 쫓아다닌 아줌마 이야기 하나로만 구성되었다면 아마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덕질이라곤 해본 적도, 아니 그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이 책에는 가수와 노래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책과 문학,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에 연결된 작가의 사생활도 사이사이 끼워져 있어 재미있다.

책 제목에 ‘철학하기’라는 말은 왜 들어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이 누구나 읽어도 괜찮은 이유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이라는 책을 이 책에 가져와 교양과 덕질의 유사성을 비교 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p.6~7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덕질’이 비에리가 말하는 ‘교양’과 너무나 흡사하게 느껴져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교양이라는 단어를 덕질로 바꾸어 읽어도 조금도 위화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

교양은 교육과 달리 자신을 위해 혼자 힘으로 쌓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덕질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나는 덕질이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놀이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책을 읽을수록 그의 교양과 필력이 하루 이틀에 쌓은 게 아닌 듯했다. 그럼 그렇지. 이번이 첫 책이 아니다. <어서 와, 학부모회는 처음이지>와 그림책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를 낸 작가다. 덕질을 시작하면서는 매일 그림 그리기를 3년째, 매일 글쓰기를 1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쌓아둔 내공이 덕질로 활짝 꽃 피운 것이다. 작가는 철학책의 본문과 덕주의 가사를 사용하여 인생의 즐거움에 대해, 즉 뭔가에 꽂힌다는 건 이런 것이다! 라는 정의를 이 책으로 내렸다. 이런 식의 콜라보로 책을 낸 사람이 있었나?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러니 어찌 덕질 찬양을 하지 않을 수가!

 

 

꼭 연예인 덕질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부제처럼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 가 될 수 있는 거다. 이미 덕후라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덕질에 더욱 의미 부여를 하며 뿌듯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덕질할 대상을 곰곰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독의 피폐함보다는 덕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아래 인용은 거의 첫사랑을 되찾은 행복에 버금간다!

p.273

덕친 큰언니는 첫사랑이 다시 온 것 같다고 한다. 나이 70을 앞두고 첫사랑의 감정을 다시 맛본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애틋하겠는가. 애틋함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 호호 불어가며 감정을 부풀리고 싶지 않겠는가. 첫사랑이 끝나도 그 소중함은 사라지지 않듯이 덕질의 감정을 부풀린다고 해서 그 감정이 가짜인 것은 아니다. 소중한 일상에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덕질의 감정도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것뿐이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서 더 큰 것을 감지할 줄 알기에 스치듯 지나가는 덕주의 등장에도 나노로 쪼개보며 행복을 그러모은다.

앗차차, 작가의 덕주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게 궁금하면 꼭 책을 사보길~~ (이미 알고 있다면 쏴리!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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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구나 죽을 예정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산다. 그러나 자살과 고독사의 숫자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자살률은 14년째 OECD가입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인 가구와 노인 가구의 증가로 고독사의 숫자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고독사 관련 직업, 유품정리인이라는 것이 있다.

 

 

<시간이 멈춘 방>은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하는 일본인 여성 고지마 미유씨가 쓴 책이다. 유족의 요청으로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직업이다. 저자는 책에 자신의 일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고독사 현장을 미니어처로 만든 사진까지 함께 실었다. 평범하지 않은, 놀라운 발상이다. 어떻게 보면 험한, 역겨운 사망 사고의 현장인데 그곳을 미니어처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사실 나는 책 소개를 보고 두 가지 편견에 빠져버렸다. 책을 읽고 나서야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먼저 저자가 남자일 줄 알았다. 일본인 이름만 보고 남녀 구분을 할 정도는 아니기도 하거니와 일의 특성상 당연히 남자가 할 일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저자가 좀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보기만으로도 힘든 장면을 굳이 미니어처로 만들어두는 건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얼마나 세상 일을 한쪽으로만 보고 사는지, 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생각하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부친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한 후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 부친을 미워했으면서도 한편 존경심과 애정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아버지를 피하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고 했다.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릿 속에 계속 남아있었던 저자는 이 일을 22살에 시작했. 당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반대는 심했지만 결국은 하게 되었다. 이제 이 일을 한지 5년이 지났다는 저자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청소의 마지막 단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현장의 특수 청소와 유품 정리만 하는 게 아니라 에어컨과 주방, 유리창 청소까지 다 하고 마지막에는 현관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고인이 생활하던 그 집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하루아침에 혈육을 잃은 유족의 심정을 매듭짓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유족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에 숙연해졌다. 책에 나오는 갖가지 사례를 보면 더욱 그러했다. 고독사한 집이 공실로 남아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며 쉬쉬하는 집 주인은 차라리 약과다. 살아있는 동안 왕래도 없었고 아무 도움도 없었는데 청소와 정리 비용을 왜 내야 하냐며 화내는 유족, 친구라면서 청소 현장에 들이닥쳐 돈 될 물건만 챙겨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것같았다. 고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어쩜 저럴 수 있나 싶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도입부에서도 유사한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죽자 주위 사람들이 겉으로는 애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인사이동으로 얻게 될 자신의 이득만 계산한다. 죽는다는 것은 지독히도 외롭고 고통스럽다. 이반 일리치는 아내와 자식, 하인까지 옆에서 지켜주었지만 외로움에 몸서리쳤는데 대처 혼자 죽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

 

<시간이 멈춘 방>의 저자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독사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남 일처럼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작업 광경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 미니어처를 만들면, 모형이니 과하게 생생하지 않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시작했다.

역시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가 만든 미니어처는 고독사 현장의

 끔찍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고독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지금까지 아홉 점의 모형을 완성했으며 책에는 여덟 점을 소개하고 있다. 직접 전시장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렇게 책으로 내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효과도 있다.

 

 

각각의 청소현장에 얽힌 사연과 미니어처 사진은 한 사람의 생과 사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누구나 고독사할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자연스레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최근 죽음학 관련 책을 여러 권 같이 읽는 중이다. 그 책들은 고독사보다는 주로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 위주였기 때문에 고독사 이후에 남겨진 자신의 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 숨이 멎은 후, 시간이 멈춘 그 방의 문을 누군가가 열었을 때 너무 힘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자신이 남긴 물건들로 생전의 삶을 말하되 역겹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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