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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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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죽을 예정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산다. 그러나 자살과 고독사의 숫자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자살률은 14년째 OECD가입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인 가구와 노인 가구의 증가로 고독사의 숫자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고독사 관련 직업, 유품정리인이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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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간이 멈춘 방>은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하는 일본인 여성 ‘고지마 미유’씨가 쓴 책이다. 유족의 요청으로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직업이다. 저자는 책에 자신의 일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고독사 현장을 미니어처로 만든 사진까지 함께 실었다. 평범하지 않은, 놀라운 발상이다. 어떻게 보면 험한, 역겨운 사망 사고의 현장인데 그곳을 미니어처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사실 나는 책 소개를 보고 두 가지 편견에 빠져버렸다. 책을 읽고 나서야 편견이란 걸 깨달았다.
먼저 저자가 남자일 줄 알았다. 일본인 이름만 보고 남녀 구분을 할 정도는 아니기도 하거니와 일의 특성상 당연히 남자가 할 일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저자가 좀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보기만으로도 힘든 장면을 굳이 미니어처로 만들어두는 건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얼마나 세상 일을 한쪽으로만 보고 사는지, 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생각하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부친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한 후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 부친을 미워했으면서도 한편 존경심과 애정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아버지를 피하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고 했다.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릿 속에 계속 남아있었던 저자는 이 일을 22살에 시작했다. 당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반대는 심했지만 결국은 하게 되었다. 이제 이 일을 한지 5년이 지났다는 저자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청소의 마지막 단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현장의 특수 청소와 유품 정리만 하는 게 아니라 에어컨과 주방, 유리창 청소까지 다 하고 마지막에는 현관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고인이 생활하던 그 집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하루아침에 혈육을 잃은 유족의 심정을 매듭짓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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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유족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에 숙연해졌다. 책에 나오는 갖가지 사례를 보면 더욱 그러했다. 고독사한 집이 공실로 남아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며 쉬쉬하는 집 주인은 차라리 약과다. 살아있는 동안 왕래도 없었고 아무 도움도 없었는데 청소와 정리 비용을 왜 내야 하냐며 화내는 유족, 친구라면서 청소 현장에 들이닥쳐 돈 될 물건만 챙겨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것같았다. 고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어쩜 저럴 수 있나 싶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도입부에서도 유사한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죽자 주위 사람들이 겉으로는 애도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인사이동으로 얻게 될 자신의 이득만 계산한다. 죽는다는 것은 지독히도 외롭고 고통스럽다. 이반 일리치는 아내와 자식, 하인까지 옆에서 지켜주었지만 외로움에 몸서리쳤는데 대처 혼자 죽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
<시간이 멈춘 방>의 저자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독사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남 일처럼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작업 광경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 미니어처를 만들면, 모형이니 과하게 생생하지 않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시작했다.
역시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가 만든 미니어처는 고독사 현장의
끔찍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고독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지금까지 아홉 점의 모형을 완성했으며 책에는 여덟 점을 소개하고 있다. 직접 전시장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렇게 책으로 내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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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청소현장에 얽힌 사연과 미니어처 사진은 한 사람의 생과 사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누구나 고독사할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자연스레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최근 죽음학 관련 책을 여러 권 같이 읽는 중이다. 그 책들은 고독사보다는 주로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 위주였기 때문에 고독사 이후에 남겨진 자신의 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 숨이 멎은 후, 시간이 멈춘 그 방의 문을 누군가가 열었을 때 너무 힘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자신이 남긴 물건들로 생전의 삶을 말하되 역겹지는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