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새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92
김용대 지음 / 길벗어린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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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작가의 그림책 <곰과 새>는 글자 없는 그림책입니다.

무채색 그림에 첫 장면부터 좀 으스스합니다.

곰이 집에 들어가 꿀을 훔쳐 먹다가 노란새가 들어있는 새장을 물고 나옵니다.

 

위 두 페이지에서 곰은 맹수같습니다.

사실 맹수 맞지만 우리가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만난 곰은 좀 어리석거나 귀여운 이미지였지요.

그런데 흑백처리된 그림 때문인지 곰의 표정 때문인지 좀 무시무시합니다.

집주인이 돌아왔어요. 사냥꾼과 개가 곰을 쫓습니다.

곰은 외나무다리를 건넌 후 더이상 사냥개가 따라오지 못하게 합니다.

곰은 숲 깊은 곳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다른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새를 지켜줍니다.

 

산 언덕배기,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새장을 입에 문 채로요...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새장을 물어뜯습니다.

마침내!!

노란새는 새장 밖으로 나오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위는 곰과 새가 인사를 나눈 마지막 장면입니다.

둘의 표정은 흐릿하지만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 마지막 두 페이지는 전체가 채색되어 있습니다.

창공과 구름과 새가 제 색을 드러낸 장면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2차원의 평면이지만 퍼덕거리며 솟구치는 노란새의 날개짓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마지막 그림은 사진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책 전체에서 흑백의 무채색이 주는 무거움은 곰의 무시무시함을 나타내고, 노란새는 밝지만 연약한 이미지로 검정색과 대비를 이룹니다.

그러나 자신의 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니고 있는 노란새의 자유로움은 갇혀있어도 풀려나도 변함없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과 색만으로도 충분히 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이런 글자 없는 그림책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텍스트가 나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이 책을 같이 읽는 어른이라면,

아이가 그림을 보며 내용을 지어내도록,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습니다.

곰과 새가 대화를 주고 받도록 유도해주면 더욱 좋겠지요.

새가 어쩌다 새장에 갇히게 되었는지,

곰은 왜 새를 새장에서 꺼내주고 싶었는지를 말이죠.

역할놀이처럼 대사를 주고받은 후 역할을 바꿔서 해보세요.

몇 번 주고받다보면 아이의 대사가 업그레이드 되는 걸 확인하게 될 겁니다.

이 책을 꼭 유아나 초등 저학년하고만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고학년, 중고생이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림 속에서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거나 우리가 가진 선입견에 대해서 얘기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곰처럼 외모 때문에 오해를 받은 경우, 혹은 오해를 했거나 목격했던 경우를 말해보는 거죠.

겉으로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 소통의 중요성으로 확장해서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림책 토론까지 가능합니다.

좋은 책은 누가 읽어도 공감하고 할 말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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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시대 여행처방전 - 지금은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시간
이화자 지음 / 책구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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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병 중에 코로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공항장애를 앓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공황장애? 아니고! 공항장애는 공항에 가지 못해 걸리는 병이다. 아무리 해외여행 못 간다고 그렇게 힘들까 싶지만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상품이 다 나왔겠는가!

얼마 전 대만에서 출발해 제주까지 왔다가 돌아간 스카이라인 투어의 순서는 이러하다.

 

1. 비행기에 탑승 후 이륙한다.

2. 목적지 영공을 돈다.

3. 착륙은 하지 않는다.

4. 출발 공항으로 돌아온다.

이 상품은 완판되었다고 한다.

 

올 들어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가서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끙끙 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관광비행처럼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이들도 있다.

 

해외로 못 간다면 국내 여행을 하면 될 게 아닌가!

국내도 좀 주저된다 싶은 사람들은 남이 다녀온 여행서를 읽으면 된다!

어쨌든 해외여행의 아쉬움을 대체할 방법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다음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 나왔다.

 

<언택트 시대 여행 처방전>이다.

이 책의 작가 이화자씨는 카피라이터 10, 광고학 교수 15년 경력에 세계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고 책을 쓴 여행 작가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간 밖으로만 눈을 돌리느라 별로 가보지 못했던 국내 여행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늘 하던 동네 여행부터 언젠가 가겠지 하고 미뤄두었던 소도시 여행까지, 단체 관광객 없는 한적한 섬 여행과 그 안에 보석처럼 박힌 미술관 카페들에서 세계 여행 못지않은 국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보니 국내에도 가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은데 해외여행에 목을 맸다. 작가가 24가지 테마별로 엄선한 국내 여행지를 보며 공항장애를 달래보았다.

 

 

이런 여행책은 순서대로 읽기보다 목차를 보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나 맘에 드는 테마를 골라 먼저 읽어보면 더 맛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테마는 한적한 미술관 박물관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가 본 적 있는데 가까이에 저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순교한 44인을 형상화한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은 가슴 시린 역사를 복원하여 작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서울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다. 에휴... 서울도 일 년에 최하 두 번은 갔었는데 올해는 꼼짝도 못했다.

 

↑↑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을 연상시킨다.

 

그 다음 관심 가는 장소는 완주다. 경상도에 살고 있다보니 교통편이 편리한 서울은 자주 가지만 전라도는 참 가기 힘든 곳이다. 가본 곳을 꼽아보니 거의 10여년 전 전주 한옥마을, 그보다 더 전에 기억도 가물한 변산반도 정도다. , 광주 5.18 묘역과 무령왕릉도 가봤다

 

 

완소 고택에서 특별한 하룻밤에서 소개하는 장소는 전북 완주에 있는 소양고택과 아원고택이다. 완주 소양면 대흥리에 한옥 23채가 모여 있는 오성 한옥마을에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미와 현대적 실용성을 겸비한 품겪있는 문화공간이다.

 

한옥 서점 플리커 책방과 두베 카페는 이미 인스타 성지란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커피인데 BTS덕분에 유명해진 곳이라는데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역시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그만 깝죽거려야 한다...)

 

 

이 책은 각 장소의 마지막에 이렇게 “Travel Tips”를 두어 찾아가는 법, 추천 코스, 근처 유명장소까지 소개하고 있다. 여행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마지막으로 눈 여겨 본 장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사실 멀리 가기는 쫌 무섭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마음을 내볼까 싶다. 작가가 섬을 좋아하는지 이 책엔 섬 소개가 많다. 경상도 쪽에서 작가가 꽂힌 곳은 통영인 모양이다. 통영의 섬 연화도와 비진도를 소개하고 동피랑과 서피랑 벽화 마을과 통영의 대표서점 봄날의 책방도 소개한다. 대한민국 제 1의 항구도시 부산은 딸랑 한 군데 소개하고 있다. 벽화마을 테마로 통영 동피랑 서피랑과 함께 감천문화마을을 소개한다.

 

 

 

연화도와 비진도를 읽으며 이번엔 꼭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몇 달전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통영을 읽고 가보려고 동선까지 짰는데, 허영만 화백이 추천한 시락국집 위치까지 확인했는데, 계획은 무산됐다. 마침 또 통영 책에 당첨됐다. 며칠 전 <통영, 아빠의 바다>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었으니 통영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되었다. 거의 평생을 부산에 살았지만 바닷가 근처에 살지 않았기에 일 년에 해수욕장 근처에 한 번도 안 가본 적도 있었다. 2년전 양산으로 이사 와서는 더욱 바다와 멀어졌다. 이젠 바다가 애틋해졌다. 통영 앞바다에 핀 연꽃과 산호빛 바다를 보러 꼭 갈 것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는 건 역시 설렌다. 이 책을 읽으며 나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 직접 찾아가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책만 읽고 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만 읽고 움직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마치 그 장소에 갔다온 것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있다. 코로나 블루를 날려버릴 수 있는 책으로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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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의 뒷모습 책 먹는 고래 10
양연주 지음, 김지영 그림 / 고래책빵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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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주 동화작가의 새 책 <봄이의 뒷모습>고래책빵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7편의 동화가 실렸다. 5편은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나머지 두 편은 동물이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재의 동화집이다. 각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개구쟁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속이 깊다. 어디서 이런 아이들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였다.

 

표제작 봄이의 뒷모습은 주인공 봄이가 입원중인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발을 씻겨주는 모습을 엄마가 지켜보는 장면이 제목이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자신에겐 관심 없는 엄마를 원망하는 일기를 써놓은 것을 봄이 엄마가 보게 된다. 놀이공원은 고사하고 집 앞 공원 산책이라도 하고 싶다고 한 봄이의 일기를 읽고 엄마는 미안한 마음에 봄이와 공원 산책을 나간다. 진달래가 만발한 공원을 기분 좋게 걸으면서 봄이는, 외할아버지는 봄이 온 걸, 꽃이 핀 걸 알고 계실지 궁금해 한다. 짧은 산책을 끝내고 엄마는 시장으로 갔고 봄이는 학원으로 간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으로 돌아와서 봄이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뒷모습을. 세수대야의 물을 비우고 종종거리며 떠난 병실엔 봄꽃이 꽂혀 있었다. 봄이는 이름처럼 환한 봄을 할아버지에게 선사해 준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심었던 감 씨가 커다란 나무로 자라 감도 따먹고 책상의 재료가 된다는 이야기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연상되는 동화다. 감나무와 함께 자란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 동네 아이들 대부분은 그 감나무의 감을 얻어먹었을 거라는 이야기,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몰래 따먹으러 올라갔다 떨어진 고모의 이야기들을 듣고 현우는 생각했다. 감나무로 만든 이 책상은 세상 모든 것이라고.

 

다복통닭사장님인 아빠는 여섯 살 때부터 닭을 길렀다. 그래서 거의 닭 전문가다. “통닭 맛과 치킨 맛은 아빠가 치킨 맛의 달인을 찾는 TV 프로그램에 나올 뻔 했다가 무산된 이야기다. 안대를 끼고 치킨 맛을 맞히지는 못했지만 아빠가 튀긴 다복통닭의 맛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시장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맛이다. 아빠만의 레시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통닭을 튀기면 그만이지 눈감고 치킨 맛 알아내는 게 대수일까.

 

독수리 오 행제는 전래동화 재주 많은 여섯 쌍둥이패러디 동화이다. 다섯 형제라서 불편한 점이 많지만 도둑을 잡을 땐 다섯이라서 손발을 척척 맞춘다. 워낙 유명한 전래동화라서 그 동화를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행복이 알쏭달쏭은 동화지만 부모들이 읽으면 더 좋을 내용이다. 민주네 가족은 저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한다. TV채널을 고를 때도, 음식 메뉴를 정할 때도, 개인의 취향보다는 가족의 취향에 맞춰 고른다. 민주는 엄마 아빠의 기쁨을 위해 공부하며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이 동화는 우리가 흔히 행복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개인의 희생으로 얻어진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소개한 다섯 편의 동화는 가족이 주 소재가 되는 이야기들로 어린이들에게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다. 헌데 이런 내용은 자칫 교훈적 결말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부모나 교사가 같이 읽으면서 균형감 있게 지도하면 좋겠다. 조부모와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부모의 부모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뿌리를 생각해보고 그들과 함께 한 추억이 있다면 이야기 해보는 것이다

 

나머지 두 동화 투덜쟁이 괭이의 행복한 뉴스냥이들의 북카페, 이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이 등장인물이다. 마당마을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 투덜쟁이 괭이의 행복한 뉴스는 얼핏 <동물농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곳의 동물들은 서로 착취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소식을 찾아서 전하며 즐겁게 산다. 만사 툴툴거리며 싸움꾼처럼 지내던 옆 마을 투덜이 괭이(고양이)도 행복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모두 다 행복해 보이더라며 끝이 난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였다.

 

냥이들의 북카페, 이두는 고양이 시점으로 그려진 북카페 이야기다. 어린이들이 이 동화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나처럼 고양이 집사에 북카페 해보고 싶어하는 어른에게는 딱인 내용이었지만! 북카페 열어놓고 사장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고양이 손님들만 계속 오더니 점점 사람 손님들도 와서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드나들던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아 식구가 늘고... 그러는 이야기. 특별할 일 없어 보이는 이야기 같지만 하나씩 들추면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고양이 서술 시점이라서 더 포근했다.

 

p. 112

먼 훗날 '초승달 고양이 문학판'을 만들면 어떨까? 흰냥이랑 얘기해봐야겠다. 보름달 뜬 날은 집사한테 양보하고, 초승달 뜬 날 하루쯤은 북카페 이두에서 고양이들이 판을 벌여도 좋겠다. 벌써부터 흥겹다. 역시 꿈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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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 바일라 9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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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소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은 주인공인 여고생 와 친구 와 스무 살 네이의 이야기다. ‘의 중심은 가족인데 집에서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편하다.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 ‘는 전학한 학교에서 이사한 집으로 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기록한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집으로 가는 길도 써둔다. 이름 없는 주인공, ‘의 가정은 평범해 보인다. 부모님이 있고 언니와 오빠도 있는 집의 막내딸이다. 하지만 언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프다. 무슨 병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불치병 같은데 시한부인 것도 같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불친절하다. 친구 둘의 이름은 있고 마지막엔 언니 이름도 한 번 나오는데 는 이름이 없다. 어찌 보면 또 아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주인공이 네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나오는 게 당연하니 말이다. ‘는 집에서 관심과 귀여움을 받는 막내딸이 아니다. 집안의 모든 일은 아픈 언니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일찍 철들 수밖에 없고 남의 눈치를 잘 본다. 분위기 파악이 빠르단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요구가 수용된 적이 없었기에 원하는 것이 있어도 지레 포기한다

 

일견 답답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이사 후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 생긴다.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 루트를 보는 독자들 중 자신의 집 근처라서 그 경로가 머리에 선연히 그려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역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인 사람도 있을 테고, 아주 낯선 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기록한 길의 이름을 알고 모르는 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좀 힘들 경우, 소설 속에 나오는 것들 중 무엇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반갑다. ‘에게 감정이입하기 쉽지 않았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왔지만 나는 장녀이고 가족 중에 환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의 루트를 보며 내가 가본 곳이라며 반가워했다가 의 생각과 행동을 보며 요즘 저런 아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는 길을 찾고, 모는 글을 쓰고, 네이는 오래된 물건을 모은다. 아래는 이들 셋이 무언가를 모으고 기록하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걸 확인한 후 주인공이 한 생각이다

 

"왜 모으고, 기록하고, 알려 했을까? 무엇이 결핍되었기에 그런 것들로 채우려 했던가? 우리가 뭔가를 특별히 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만족이란 뭘까?"  p.89

 

모와 네이가, ‘가 기록한 길을 알아보는 것에 는 놀란다. 알아본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라는 발견을 하다니! 일찍 철든 아이들의 특성이다. 나이보다 어른스럽다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칭찬이라기보다 애잔함이다.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어왔다는 뜻이므로.

 

는 언니가 네이에게 중고 직거래로 판 포세린돌갖고 싶었다. 그 인형의 주인은 물론 언니지만 팔지 말고 자신에게 줬으면 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동생이라면 언니에게 징징거릴 수도 있을 텐데, 내게 주면 안 되냐는 그 말을 못했다. 제법 고가의 인형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대신 그것을 꼭 사야만 하는 이유를 손 편지로 쓰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유별난 요구를 충족시킨 사람이 네이였다. ‘와 모는 그 직거래에 같이 나갔고 그렇게 셋은 만나게 된다.

 

둘은 의 무채색 일상에 들어와 색을 입힌다. 책을 많이 읽는 모에게서는 보르헤스 소설을 이야기로 듣고, 재개발 현장에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물건을 줍는 네이와 함께 다니며 타인의 삶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여백 많던 '나'의 도화지에 여러 색들이 칠해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23가지다. 단순한 길도 있고 복잡하고 긴 방법도 있지만 그 길들은 모두 다르기에 풍광도, 색감도, 다르다.

 

집으로 가는 방법 23번째는, 언니를 찾아서 집으로 데려오는 길이다. 네이와 언니가 말없이 떠난 속초 여행을 와 오빠와 모가 뒤따라가서 함께 돌아오는 길이다.

모는 자신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만 있는 것 같고 는 아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로서 살고 있는 것 같아. 길을 찾는 거, 그것도 그래.”

 

네이도 말한다.

나도 두려운 게 많아. 하지만, 사랑은 …… 모든 두려움을 이긴다고 했어.”

 

는 모와 네이의 말을 들으며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살면서 매 순간을 다 마음으로 느끼다간 눈이 짓무를 정도로 눈물이 날지 모르겠다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길을 기록해 두는 것에 의미도 찾지 못했던 가 친구들과 함께한 그 때만큼은 간절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게 습관이 된 경로 기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수한 가정 상황 때문에 어리광같은 건 부릴 줄 모르고, 자심의 감정도 꾹꾹 눌러 숨겨야 했던 소녀가 집으로 가는 길을 기록하면서 타인의 길을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며 재미와 감동을 느끼려고 읽는다. 이 소설은 그 둘 모두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은 문장들을 건진 건 수확이었다.

 

- 우리는 기억을 먹고 산다. 가끔 꺼내 씹고, 맛보고, 도로 넣어 놓는다. 쓰거나 시거나 고소한 기억들이 밥솥의 밥처럼, 가방 속 껌처럼 뭉쳐 있다.

-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은 지금 내 옆의 누군가에 대한 신뢰로 변했다.

-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두 복권을 뽑은 거야. 그게 상인지 벌인지는 모르지. 그리고 그걸 언제 받게 될는지, 지금 받고 있는지도 우리는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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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고전 읽기 - 신화부터 고대까지 동서양 역사를 꿰는 대표 고전 13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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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고전 읽기>는 유수의 출판사 편집장과 대표를 엮임한 최봉수씨의 책이다. 그는 고전에서 사람과 인간관계와 역사를 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사람 내면의 목소리를 상상해 보고, 그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음대로 해석해 본다. 그는 마음대로 고전을 읽은 것을 이 책으로 썼고,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이 책으로 입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감사하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읽은 고전은 대부분 역사서이다. 1부 서양 고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그리스 비극> <역사> <변신 이야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부 동양 고전은 <사기>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를 소개한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전쟁사를 포함한 역사이다. 목차를 본 순간 뭔가 뜨끔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읽다가, 앞부분만 읽다가 포기한 책의 제목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책, 제목은 알고 내용도 대충 알지만 사실 잘 모르는 책등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뜨끔했다고 읽어 본 책이 한 권도 없다 하더라도 너무 죄책감 가지진 말길! 우스갯 소리로 누구나 아는 제목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고 하지 않나.

 

저자가 먼저 읽고 요약해 준 것을 고맙게 받아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진짜 고마운 일이다. 표지의 부제에도 쓰여있다시피 “16만 쪽에 달하는 동서양 고전을 한 권으로 읽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내용 중간중간에 요약 내용을 초록색 박스안에 넣어두었다. 아주 컴팩트한 요약되겠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영웅, 전쟁에 관심 많지만 읽지 못한 독자라면 워밍업 하듯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소개된 13권의 책 중에서 더 자세히, 직접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긴다면 저자가 진짜 감사해할 것 같다.

 

고백하자면 13권 중에 내가 완독한 책은 한 권도 없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단편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읽으며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영웅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나 삼국지, 열국지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그리스 비극>이나 <변신 이야기> <사기>처럼 등장인물들의 기구한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2부에서 <삼국사기><일본서기> 설명은 흥미로웠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저자가 꽂힌 부분을 자세히 기술했다.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평가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특히 어떤 시인의 역사 지식 부재로 인해 김부식을 잘못 평가했다는 내용이다. 어떤 시인이 쓴 시집은 <만인보>라고 굳이 제목을 밝혔다. <만인보>면 고은 시인이 아닌가. 이름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직접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는 김부식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보인다. <삼국사기>편 마지막에는 이렇게 쓴 것으로 보아 김부식이라는 인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고 싶은 것 같았다.

 

김부식을 유교적이니 사대적이라는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김부식이 유교적, 사대적이라 <삼국사기>사대주의적 역사서라는 비판은 서투르다. 더욱이 대표 편찬자에 의해 <삼국사기>가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까지 폄훼하는 것은 편협한 접근이다

 

<일본서기>는 일본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라고 한다. 역사시간에 제목만 들어봤지 내용은 전혀 몰랐는데 이 책 덕분에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일본서기> 원저를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책의 내용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그래도 될 만큼 요약이 잘 되어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출간되어 있는 고전 읽기 책에서 소개하는 책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이 책은 주로 역사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소설보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역사적 흐름을 먼저 정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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