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성소은 지음, 최진영 그림 / 판미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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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못한지 오래되어 하고 싶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 지금! 여기! 있는데, 찾아야 한다고??

내가 여기 있는데 나를 잘 모른다.

나를 모르니 나를 알아야 하고 찾아야 한다.

 

파랑새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니 파랑새는 집에 있더라는 이야기처럼, 이 책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도 비슷한 면이 있다. 불교의 선종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인 십우도를 최진영씨가 다시 그렸고, 그 내용은 오강남 교수와 성소은 선생이 공동으로 정리했다. 두 공동 저자는 각 그림 내용에 대한 설명을 심도 깊게 하기 위해 그 내용과 연계되는 다른 책들을 여러 권 소개한다. 그러므로 이 책 한 권 안에 27권이 더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불교나 종교관련 책 뿐아니라 철학, 명상, 과학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간 제목만 들어봤지 읽어보지 못했거나 계속 미루었던 책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면 이번에 정독의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소를 찾아 나섰다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에서 그 소는 진짜 소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다. 책에서는 참나라고 부른다. 나를 찾아 떠났다가 근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에서 고통과 번뇌, 공부와 깨달음의 과정을 겪으면, ‘참나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과정을 겪는 건 아닐 것이다. 배경지식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저마다 갈구하는 바도 다를 것이며, 소개하는 책을 구해 읽는 실천력도 분명한 격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를 찾는 여행을 성공하기는 어렵다.

 

나는 책 소개를 보고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판사 서평단에 신청했다. 허나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야했고, 해설하는 다른 책들을 찾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쉽다. 혹 이 리뷰를 읽는 사람들도 이것을 참고했으면 한다.

 

이 책은 한 번에 쉽게 읽어지는 책이 아니다. 10개의 그림 하나하나를 보고 설명을 읽고 추가로 소개하는 책을 찾아 읽고, 그 그림이 말하는 바를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욕심 부리면 안 된다. 하나의 그림과 연계된 책까지 읽으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십우도니까 10달이다. 넉넉하게 1년으로 잡고 책에 소개된 27권의 책을 다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개한 모든 책을 다 읽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더 관심가는 분야의 책으로 확장되어 더 많은 책을 읽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처음의 과제인 참나를 찾게 된다면 성공인 셈이다.

 

물론 내가 추천하고도 위 과정을 실천하리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꼭 읽어야겠다고 고른 책은 있다. 숭산의 <선의 나침반>과 타라 브랙의 <자기 돌봄>, 김상봉의 <호모 에티쿠스>이다.

 

이 나이 먹도록 굽이치는 감정의 격랑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다. 명상을 해야 한다! 마인드 콘트롤을 하자!며 다독여봐도 안 된다. 그런 때에 맞춤한 글을 찾았다. 아래에 첨부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너무 오래 스스로를 위장한 채 살다보니 점점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그래서 이젠 자신을 찾아야겠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p. 168~169

 

내게 무시로 찾아오는 감정의

인간은 여인숙이다.

날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

 

기쁨, 우울, 슬픔

그리고 찰나의 깨어있음이

예약 없이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대접하라.

비록 그들이 방을 거칠게 어지럽히고

거칠게 휩쓸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더라도

 

손님 하나하나를 존중하라

그들이 스스로 방을 깨끗이 비우고

새로운 기쁨을 맞이하게 할 것이다.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웃으며 맞으라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찾아오든 감사하라

모든 손님은 나를 안내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분들이니.

 

- 루미, <여인숙> -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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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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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90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

우리는 지고 가지 못하고 남기지도 못한다.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위 내용을 읽는 순간,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가족끼리 사랑을 표현하자?’

있을 때 잘 하자고? 그런 뻔한 말, 누구라도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

위 인용한 내용만 읽는다면 그렇겠지만 저런 말을 한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나 절절한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저자 두 명이 하는 일은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이다. 고독사나 살인 사건 현장을 청소하고, 가족의 의뢰로 사망한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저자 김새별씨는 2007년 특수청소 업체 바이오헤저드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천여건이 넘는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tvN<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우리 이웃의 죽음과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공동저자 전애원씨는 2014년부터 특수청소 현장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개정 증보판으로 나왔다. 나는 몇 달 전, 비슷한 책을 읽었다. 일본 여성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이다. 두 책의 저자는 직업이 같지만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이 청소한 현장을 미니어처로 남겼고 책에는 미니어처 사진도 같이 실려 있다. 미니어처의 장점이 현장성이 강한 반면 선정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책을 먼저 읽어서였을 것이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읽기가 수월했다. 시체만 없을 뿐 죽음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현장에서 만나는 끔찍하거나 역겨운 장면,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인간(가족 혹은 집주인)의 태도까지, 처음 접하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유난히 고독사한 아버지들의 사연이 많았는데 저자가 특별히 안타까워하는 게 느껴졌다. 고인은 자신의 병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앓다가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딸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지도 않아서 딸에게 연락이 늦게 갔고 그 딸은 부친의 사망에 대한 죄책감에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는 일은 짐 대신 죄책감을 얹어주는 일입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잠깐의 짐이 될 수 있지만,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면 자식으로 하여금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때론 자신의 짐을 다른 가족들과 나눠 질 줄 아는 현명함도 필요합니다."

 

저런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자식도 있었다. 30대 초반의 아들이 아버지가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데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고 저자는 청소를 시작했는데 전기장판 아래에 오만원 짜리 지폐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순간 아들은 대야를 들고 황급히 뛰어 들어와 장갑도 끼지 않고 지폐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 수고하란 말도 없이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깨끗이 소독 후 가족에게 전달할텐데 굳이 현장을 지켜보겠다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싶어 저자는 씁쓸했다고 한다.

 

부모의 재산은 야금야금 다 털어가고 혼자 지내는 아버지가 고독사했는데 와보지도 않는 자식도 있었다. 자식에게 부담 안 주고 싶어하는 부모와 달리 부모에게서 얻을 건 다 얻고 나몰라라 하는 자식, 죽은 뒤에도 가져갈 게 더 없는지 눈이 벌건 자식까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에 나는 나의 사후를 자주 생각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고독사후 늦게 발견될 일은 없지만 돌연사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있다. 그럴 때 가족들이 난감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 내가 가진 물건들을 가족이 처분하면서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보니 안 입는 옷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버리지 못하고 또 옷상자에 든 가을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넣었다. 자리만 바꾼 셈이다. 옷 뿐아니라 책도 너무 많다.

 

이 책에 빈번하게 나오는 내용이 쓰레기장처럼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현장 청소다. 빈 술병이 몇 백 개 쌓여 있는 현장, 비닐 포장된 새 옷이 그득하게 들어있는 옷장 등등. 그래서 저자는 정리를 습관화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이 여부를 떠나 손쉽게 물건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조언이었다.

 

"주거 공간을 정돈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삶을 방치하는 일과 같습니다. 실제로 쓰리기 집에 가보면 처음부터 쓰레기가 쌓이도록 내버려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에 상처받고, 사람에 실망하고, 먹고사는 일에 치여 삶의 의지를 놓을 때 게으름도 함께 찾아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먼지 앉은 가구를 닦고, 바닥을 걸레질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됩니다.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난 자리가 아름다울수록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덜어집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을 청소하는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 중에서 나는 위 말에 가장 공감했다. 이 책을 읽고 독자마다 공감한 지점은 다를 것이다. 떠난 이의 사연을 읽고 안타까워하고 남은 사람들의 예의없는 행동에 분노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작지만 행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저자는 일을 마치고 부친에게 안부전화를 건다고 한다. 짧은 인사가 소중한 사람이 죽음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며. 나는 당장 안 입는 옷부터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미뤄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러 가야겠다. 내 죽음이후를 처리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미리미리 하나씩 정리해두어야겠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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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아빠의 바다
김재은 엮음, 김무근 그림 / 플랜씨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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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우체국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유치환의 시, “행복”속의 그 우체국 말이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짝사랑 그녀 이영도에게 편지를 2000통이나 써서 부친 곳이 바로 통영 우체국! ‘행복’이라는 시와 유치환의 짝사랑 사연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내게 통영이라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해나 거제는 가봤지만 통영엔 가지 못했다. 부산과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을 오랜 시간이 지나 백석의 시 ‘통영’을 읽고 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백석의 ‘통영’은 오감을 일깨우는 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짭쪼름한 맛이 혀 끝에 묻어나는 듯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꽝꽝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시, 통영 중에서-

 

이 시에 등장하는 명정골 사는 난이라는 여성, 백석은 그 이가 명정골에 있을 것만 같아 만나러 갔지만 몇 번이나 허탕을 친다. 이 사연 속엔 배신자 친구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진진하다.

아, 처음 통영에 가서 내가 찾은 곳은 바다가 아니라 우체국이었다. 그런데 감성이라곤 티끌도 없는 그저 관공서일뿐이었다. 절절하던 사랑의 감정을 시어에서 낚아낼 감성충만하던 시기가 다 지나 당도한 통영우체국은 문이 닫혀 있었다.(찾은 날이 토요일이라ㅠ)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지 아닌지 확인을 못했다. 맥없이 동피랑 마을을 한바퀴 돌고 그 언덕에서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여봤다. 배가 뿡뿡하고 우는가 싶어서...

사실 통영은 유명 예술가들이 활동한 도시다. 예술가들은 통영 바다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일반인도 통영 바다에 서면 예술가가 되는가 보다. 책 <통영, 아빠의 바다>에 그림을 그린 김무근씨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일산에서 살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 후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통영으로 아예 내려왔다. 50년만의 귀향이었지만 그의 눈에 바다는 그대로였다.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 자릴 잡고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침바다”를 보는 순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겹쳐졌다. 두 그림은 분명 차이가 있다. 물감이 다르고 붓 터치가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뜨는 바다에 나간 화가의 감성은 비슷했으리라 짐작된다.

 

 ↑↑ "미래사"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또 “수련연못”이 떠오르는 그림을 발견했다. 구도와 다리가 “수련연못”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 분이 모네를 좋아하지 않을까? 또 짐작해봤다.

"엄마가 또 다리를 건너고 계시네요? 저 뒤에 손잡고 따라가는 아이랑 아이 엄마는 주원이랑 미라죠?"

 

"아이다, 그냥 절에 온 사람들이다. 철수 아저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 보고 그린기라."

 

편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통영 미륵산 남쪽 기슭, 미래사 가는 길. 통영에 가면 엄마가 앞장서서 온 가족을 끌고 가시는 단골 등산 코스라 당연히 엄마랑 올케, 조카인 줄 알았는데... 휠체어 탓에 같이 등산을 못 가시는 아빠가 직접 보신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책을 받아서 그림만 먼저 보고,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읽었다. 딸 김재은씨는 아빠의 그림을 자신의 페이스북 배경이미지로 썼다가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 아빠의 그림을 계속 올리게 되었다. 그림에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그러기 위해 통영에 계신 아빠와 자주 전화를 하고 카톡을 했다. 젊어서는 일만 하신 아빠를 보며 일을 정말 좋아하시는가보다, 딸은 생각했다. 30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온라인으로 전시회를 하며 부모님과 가깝게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보통의 부녀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없다. 멀리 떨어져 산다면 자주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안부 전화나 가끔 주고 받는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취미생활인 그림을 딸이 관심가지고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대화하게 되었다. 참 부러운 부녀사이다. 가족 간에 공통의 소재로 대화하기 쉽지 않은데 그림이 매개역할을 했으니 역시 예술이다.

그동안 통영은 나에게 시인의 도시였는데 이젠 바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내 머릿 속에 통영 바다의 이미지는 이 책의 그림, 김무근씨의 고향 바다, 김재은씨의 아빠의 바다로 각인되었다. 요 근래 통영 소개 책을 몇 권 읽었다. 마침 이번 토요일, 통영에서 홍승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어서 갈 예정이다. “등대가 있는 풍경” 그 바다를 찾아볼 시간까지 될진 모르겠지만, 통영 바다는 꼭 보고 와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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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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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이제 두 달 여 남짓 남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의 기대감이란 거의 비슷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보다 더 희망적으로 시작했다. 같은 숫자가 두 개씩 반복되는 것이 시각적으로 동글동글하고, 이공이공이라 발음하면 청각적으로도 듣기 좋지 않은가! 그저 내 기분탓이었던 거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족적으로 현대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을 냈고 문학계에서도 기획물들이 속속 출간되었다. 최근에 다양한 앤솔로지 소설집이 출간되고 있다. 아르떼 S 시리즈 7번째로 출간된 <쓰지 않을 이야기>는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다. 10개월가량 지나온 코로나 시대를 소설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를 포함하여 4편이 실렸다.

첫 작품 조수경 작가의 “그토록 푸른”의 주인공 주소영은 여행사에서 일했지만 전염병 때문에 해고되어 새벽배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냉동고다. 주문명세서대로 냉동제품을 찾아 바구니에 담고 분류하는 일이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영하 20도가 넘는 냉동고에서 일하는 걸 시원한 곳이라 다행이라 여긴다. 그만큼 그녀가 생계를 잇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행인지 아닌지 전염병의 확산은 주문량 증가로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물류센터에 확진자가 생기면 폐쇄가 되므로 모두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소영은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고 있고 아직 젊으니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영의 발가락 끝에 푸르스름한 색이 보였다. 이 전염병의 증상중 하나가 손발끝이 푸르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그런데 점점 손끝도 푸른빛을 띠게 되어 출근 시 검사에 걸리지 않으려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간다.

그런데 정육코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직원이 피부가 진한 녹색빛을 띤 것을 확인하고 소영이 팀장에게 묻는다.

“이제 어떡하죠?”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독자는 예상할 수 있다. 소영이 파운데이션을 바르면서 했던 생각 때문이다.

‘좀 더 지켜보다가 상태가 나빠진다 싶으면 그때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게 나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에서 지급하는 일당에 생계가 걸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잔인하고 비루한 현실이다. 전염병의 위험보다 내게 닥칠 생계의 위협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은폐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 행동을 한 개인은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물류센터가 문을 닫으면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을테니까. 그렇게 속이는 것이 가능할까? 금방 드러나지 않을까? 다른 이들에게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만 같다. 냉동고의 그 두 명이 한 생각과 행동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우울한 예측을 하게 하는 결말이었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과학의 발전으로 지극히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염병 하나를 막지 못해서 직장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현실이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하루살이 인생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국가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돈을 풀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진척이 더디던 ‘기본소득’문제가 이번 기회에 화두로 치고 올라온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생존의 기본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소설 속 사람들처럼 거짓말로 문제를 더 키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소설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은 코로나 발생 초기에 청도 요양병원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한 상황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는 4편의 소설 중 이 소설에 가장 공감이 되었다.

주인공 일남은 일찍 엄마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살림을 살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돌봤고, 남매를 키웠다. 그정도면 그만할 때도 됐건만 그녀의 돌봄노동은 계속 됐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낳은 딸을 거두어야했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그 둘을 한 집에서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전염병 때문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욕하다, 부친은 사망했고 일남의 평생 가장 황량한 장례식을 치르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지 않나?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평생을 가족 챙기는 일만 하며 살아야 하나? 더 기막히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을 일남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 피해 지원금을 받으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집에만 있는 남편과 손녀의 삼시 세끼를 해먹여야 하는 일상에 지쳐간다. 딸은 시집가서 자기 살림을 살고 있지만,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줄 알았던 아들은 연애하다 덜컥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엄마는 저런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는 못 키우겠다며 일남에게 맡기고 가버렸다. 그래서 끝날 것 같았던 육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10년 동안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혀서 이쁘게 키웠는데 그 가영이 성착취물 피해자가 됐다.

일남은 도무지 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했는데 장례식장에, 필리핀 사는 남동생도 서울서 아직도 시험 공부하는 아들도 오지 못했다.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인 거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녀가 온라인상으로 피해자가 되다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막막하다.

이 소설은 코로나19와 n번방 사건을 섞었다. 여성은 늘 가사와 육아의 당사자였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도 늘어난데다 외출도 못하다보니 가족구성원이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주부의 가사노동량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코로나로 파생된 문제가 많지만 돌봄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소설 주인공 일남처럼 평생을 해온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런 문제가 닥치면 대부분 여성의 차지가 된다. 거기다 손녀까지 얄궃은 일을 당했으니 일남에게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가중된 것이다. 그녀는 교묘히 진화하는 온라인 성범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아들에게 가영이에게 신경쓰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소설 마지막에 일남은 익명으로 온 택배 박스를 받는다. 내용물인 어린이용 마스크를 의심의 눈초리로 요리조리 살펴보다 바닥으로 떨어진 종이에

"힘내라, 대구 경북!"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본다. 그 문구가 일남에게 정말 힘을 주었을까?

나는 공허하게 들렸다. 현실에서 “해시태그 힘내라! oo”운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속 일남이 처한 상황에서 그 문구는 모순적이다. 그녀의 일상은 또다시 남편과 손녀를 위해 삼시세끼 차려야 하고 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아마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가영의 친구들이 알게 되면 안 되니까...

나머지 두 소설도 전염병이 소재이지만 “두”는 성병으로 의심되는 병이 시골 분교에서 퍼지고 있는 이야기다.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는 중국에서 20년간 일하던 아버지가 전염병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와 예전에 가족이 살던 동네를 남자친구와 다니는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4편 모두 전염병이 일상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 같았다. 우리가 어디 이런 날이 올 줄이나 알았나! 삼복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게 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세상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현타시간도 주었다. 마스크 속 입 냄새에 화들짝 놀라 자신이 이런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인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나이가 몇이건 태어나 살아온 시간들과 전혀 다른 일상을 1년 가까이 살았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한 방에 소탕되길 바란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던 일을 예전처럼 하길 원한다. 허나 그 일은 점점 요원해 보인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것이 일상이라는 것도 안다.

현실 속 뉴스에서 듣고 본 것을 소설에서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처절하고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코로나를 소재로 한 밝은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소설가들도 앞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지 않어서 제목을 <쓰지 않을 이야기>로 정한건 아닐까? 내 맘대로 생각해봤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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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 하니? - 잠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마음
이현경 지음, 선미화 그림 / 책밥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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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밤중에 뭔가를 한다. 주로 책 읽기와 리뷰 쓰기이다. 사위가 고요함으로 깊숙이 물드는 때는 자정 즈음이다. 자정을 지나 한시, 두시로 넘어가며 들리는 일정한 소리는 시계 초침 소리뿐이다. 음악도 라디오도 틀지않고 메트로뇸처럼 똑딱거리는 초침만이 배경음이 되는 시간이다. 가끔 고양이 토르가 놀아 달려며 우애앵 거리거나 저 혼자 종이 박스를 들락거리며 내는 소리는 안도감을 준다.

 

 

 

그렇게 오롯한 내 시간을 즐기다보면 가끔 어슴프레한 새벽 기운이 창안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예전에 이 시간대에는 라디오를 주로 들었었다. 요즘이야 유튜브나 팟캐스트처럼 듣고 볼거리들이 늘어나다보니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허나 아직 라디오라는 매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새벽시간까지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하니?>는 늦은 시간? 아니 이른 시간이라 해야 할까? SBS 러브FM에서 “이현경의 뮤직토피아”를 진행하는 이현경 DJ가 낸 책이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보내온 청취자들의 사연과 DJ의 목소리를 토대로 구성되었다. 그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보내온 사연들은 공통점이 있다. 새벽 2시부터 4시라는 시간대는 조용해서 그런지 조금은 분위기가 다운되는 또는 센티멘털한 사연들이 많았다. 일과를 마치며 늦은 마무리를 짓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싶어 했고,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8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이현경 아나운서는 베테랑답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주로 책의 문구를 인용했는데 그 책들은 마지막에 “디제이의 목소리에 도움을 준 책들”로 소개해주고 있어 더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각 사연(챕터)뒤에 어떤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었을지가 궁금했다. 뮤직토피아 애청자라면, 책에 자신의 사연이 채택된 사람은 음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음악 덕분에 더 위로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같이 이 프로를 듣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 정보도 제공해 주었다면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청취자 사연에서 노래를 신청한 경우도 몇 건 있긴 했다.

 

 

 

 

 

 

p.58

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면 안 되죠.

왜 이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일에 파묻히면 안 되죠.

자꾸만 기분이 처지거나 힘들 땐

묻어두고 감추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토해내고 내뱉어야 해요.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해요.

(……)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답답한 가슴, 멍울이 짓누르기 전에

차안에서 혼잣말로 심경을 토로하고

노래방에서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요.

글로 끼적이고 저장 버튼 클릭하세요.

문자로 적어 보내기 버튼 눌러버리세요.

 

수신은 이현경의 뮤직토피아로요.

 

 

 

 

 

 

p.74

며칠 전 어떤 분이 제가 참 부럽다며 사연을 보내주셨지만

저도 주변을 돌아보면서 ‘왜 나만 이러고 있지?’ 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 많거든요.

다들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하지만 힘은 내야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우리가 행복하진 못해도 의미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지친 하루 많이 힘드셨죠?

힘 좀 달라고 하셨죠?

제 힘 나눠드릴게요.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각각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음성을 통해 같은 사연을 공유하고 같은 음악을 들을 때는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뉴미디어가 출현해도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 그림들이 내용과 꼭 어울리고 내 취향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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