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강물결 지음 / 메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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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래로부터 장수를 꿈꿨다.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고, 현대는 안티에이징 산업이 활황이다.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본주의는 십분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돈을 쓰고 누군가는 그 돈을 벌어들인다.


이젠 백세시대를 너머 12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만약에 죽지 않고 계속 계속 산다면 어떨까? 직관적으로 죽지 않는다? 건 쫌 아닌 듯...’ 할 것이다. 만약 죽지 않고 계속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 미래 언젠가는 인간의 죽음을 계속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향연>의 작가 강물결씨도 인간이 죽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같은 상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다. 고즈넉이엔티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향연>에는 작가의 말이 없어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아무리 미래가 배경이고 상상력이 기반이라지만 누구나 죽지 않는 건 아니다. 작가는 자비인지 고난인지 모를 기회를 사형수에게 주었다. 중범죄 사형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생인간이 된다. 사형 집행 후 자신의 뇌에 아미토(유도 전능 줄기세포에서 인간 체세포에 존재하는 핵지도를 결합한 것으로, 주입된 지도에 맞게 배아 단계부터 스스로 분화하는 일종의 씨앗)로 재배한 신체가 이식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재생인간의 굴레는 죽을 수 없고 평생 감시당하며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


재생 인간도 두 종류로 나뉜다. 무죄의 재생인간은 죄를 짓지 않는 한,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만큼 복역한 후 다시 일해야 하지만 그 죄가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라면 콜로니 행판결이 내려진다. 형장 콜로니는 중죄를 지은 유죄의 재생인간을 미립자로 완전히 소거하기 전에 머무는 최종의 장소다. 주인공 유진은 콜로니21에서 일한다. 유진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를 죽여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유진이 하는 일은 유죄의 재생인간의 죽음을 다룬다. 그런 죽음을 환원이라고 부른다. 환원을 희망하는 재소자를 배웅하는 마지막 잔치가 향연이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기본 뼈대다. 재생인간으로 태어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뇌는 그대로인 채 몸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동만 하고 사는 그들이 행복해 보일 리 없다.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미래의 신기술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소설 속 미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면 작가가 이런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에서 환원은 중요한 의식이다. 주인공 유진도 재소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배려가 환원이라고 생각한다. 고통 없이 생명을 끊어주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 삶에 의욕이 없는데 원치 않는 목숨이 붙어있다면? 불행일 것이다. 재소자들이 자살을 택하는 방법에 SF적 상상력이 동원되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을 종결하기를 원한다. 아쉽게도 그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 종교적으로는 신의 뜻이라 하고, 주역에서는 사주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도 한다. 우리가 원해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듯 사라지는 것 역시 원하는 대로 가능하지 않다.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몸이 주어져 계속 산다는 것을 반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현실에서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존엄사가 떠오른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자살과는 달리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의지다.


책으로 다시 돌아가면 죄인은 영원히 노동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없나?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있다. 또한 그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세력과 그 죽음을 도와주려는 이가 있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에 집중하면 그저 사람 사는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살인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존엄하지 못한 상태로 생명을 연명하느니 자신의 삶을 종결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니 겸손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그러기 위해 건강한 식사는 필수다. 환원의 마지막 행사인 향연이 식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죽을 텐데 뭘 굳이 먹나? 하지만 마지막 식사의 메뉴가 자신의 추억이 깃든 먹고 싶은 음식인 것은 죽기 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굴 만나면 뭐 먹을까?부터 생각하고 여행을 가서도 맛집을 찾는다. 맛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죽기 전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채우고 함께 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작가는 향연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수기장밥, 근대된장국, 파래무침과 콩나물무침, 두부조림과 애호박볶음, 배추김치


위는 유진의 향연 식단이었다. 엄마가 해준 평범한 집밥 같다. 그리고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된다. 이 곡의 부제는 부활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해 여름엔 죽음이 속출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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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 패싱 - 튀고 싶지만 튀지 못하는 소심한 반항아들
윤석만.천하람 지음 / 가디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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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 패싱>이라는 제목을 보고 갸웃했다.

 

낀대? 낀세대라고 한다. X세대, MZ세대는 들어봤어도 낀세대라니? 그럼 어디와 어디에 끼어 있는 세대일까? 이 책에서는 낀대를 구분하기 전에 먼저 이런 설명을 한다.

 

"MZ세대에 앞서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X세대, 1960년생들은 586세대로 불러왔다.

세대를 10, 20년 주기로 나누는 구분법은 착각이다."


그럼 낀대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을 뜻한다. X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에 중첩돼 있다. 위로는 586세대에 치이고 아래로는 진짜 MZ세대에 낀 샌드위치 세대다.”

 

이 책은 낀세대 두 명(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 윤석만, 변호사이자 국힘당 소속 천하람)이 공동집필했다.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서는낀대의 실체와 의미를 살펴보고 낀대들의 특성이 다른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살펴본다. 2부는 정치사회 영역에서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하는 문제점을 짚는다. 3부에서는 낀대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 중요 쟁점들을 짚고, 4장에서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D세대(디지털 세대:90년 이후 출생자들)를 맞이할 때임을 강조한다.

 

낀대는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하고,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청소년기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월을 보내고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성년이 되고 현실에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세대적 좌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X세대의 반골적 기질은 그들이 이미 사회 주류가 된 뒤에도 DNA처럼 남아 사회 전반과 조직 내에서 중추가 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겉돌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5060세대가 보기에 낀대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워라밸을 추구하고 윗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낀대는 5060이 보기에 덜 치열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낀대는 개인주의적 성향과 동시에 조직에 대한 충성심, 국가에 대한 사명감을 지닌 세대다. 506020대와 직접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고, 20대도 벽을 느끼기 쉽다. 낀대가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처럼 낀대는 특히 조직이나 사회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입시제도와 정년연장, 정규직 전환, MZ노조, 연금 개혁등 낀대에게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2,3부에서 풀어내고 있다. 낀대를 포함 586세대, MZ세대에게 이 책은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참고서가 될 것이며 저자들의 문제의식과 해법에 찬반 의견을 개진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으로 낀대의 가치와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낀대를 젊은 꼰대라고 단정하기 전에 낀대가 없는 회사나 단체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586세대 부장님과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신입사원이 직접 소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 환경에서 가난과 독재, 민주화를 경험한 586세대와 디지털 환경에서 선진국 국민의 삶을 살아온 90년대생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아우르면서, 중진국의 설움도 느껴본 낀대의 존재가 소중한 이유다. 앞으로 낀대가 변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어댑터(Adapter)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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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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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문화심리학자 한민씨의 신간이다. 2년 전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를 인상 깊게 읽어서 이번 신간 서평단에 신청하게 되었다.<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책이다. 문화심리학자이므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다루고 있다.


이번 책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문화를 위시한 여러 분야에서 한마디로 잘나가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 점점 쭈그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무역제재를 가뿐히 넘겼다. 2020년 이후 코로나를 대처하는 일본정부의 무능함을 보니 좀 이상했고, 일본인들은 아베나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일어가 안 되니 일일이 일본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나의 이런 궁금증을 저자가 해결해주었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를 비교하고, 2부는 민족의 특징적인 면을 비교한다. 3부는 양국 문화에 숨어있는 특이점을, 4부에서는 심층적인 심리를 비교한다. 저자는 일본을 전공하거나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심리학에 기반하여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고 다양한 일본 저자들의 책을 인용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1부 첫 챕터의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먹방의 나라 한국 VS 야동의 나라 일본

성생활 만족도가 낮다는 일본에서 성산업이 아직 활발한 이유가 뭘까? 저자는 일본인의 욕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성으로 표현되는데 일본인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인 엿보기로 나타난다 는 것이다. 일본인은 자신과 타인, 내부와 외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 일본에 몰래카메라 형식의 예능이 많고 카메라 기술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즉 야동은 교류와 엿보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에게는 밥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고마울 때 밥 한 번 살게.”라고 하고,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도 저랑 밥 한 번 드실래요?”, 친구가 아프면 밥 꼭 챙겨 먹어.”라고 할 정도다. 밥을 함께 먹는 행위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혼밥, 혼술의 시대이고 1인 가구가 늘어나도 함께 밥을 먹으며 충족해왔던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저자는 먹방이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난 문화현상으로 본다. 즉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이다.


제목과 같은 챕터는 2부에 나온다. 한국인의 선 넘기는 오지라퍼들에게서 볼 수 있다. 저자는 오지랖의 긍정적 사례로 2001년 도쿄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를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이유는 남이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참견은 사생활 침해나 갑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을 지지해 줄 버팀목이 될 수도 있고, 공통의 문제에 대처하는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IMF 금모으기나 태안 유조선 사고, 코로나 사태 등 우리에게는 국난극복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참견을 극도로 꺼리는데 그 이유는 민폐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동기에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민폐라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 국가나 사회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자신이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 할머니는 자신을 구조해준 구조대원에게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입은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을 온가에시라고 한다. (:태어나면서 주군, 천황, 국가, 일반적인 사회와 타인들의 존재로부터 받게 되는 사회적 의무를 뜻함) 따라서 일본인은 애초에 남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일 자체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일본인은 수동적이고 변화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3부에서 찾았다

아버지면 죽이고 보는 한국 VS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일본이다. 정신역동이론에서 부친살해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근대는 아버지를 죽인 자식들이 새롭게 연 시대를 의미하는데 일본은 한 번도 기존의 권위를 타파하고 새 질서를 구축한 적이 없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일본을 연 것은 기존 지배계급이었고 그들은 과거의 권위 위에서 새 시대를 원했다. 그 후손들은 아버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2차 대전 패망 후 미군정에 의해 사회 개혁이 이루어질 때도 천황을 비롯한 기존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결국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자신들의 모습만을 부각시키려는 행태는 일본이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객체로서 자신들이 당한 일에만 민감한 경험 방식 때문인 것이다.


p. 271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 자식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강하고 잘난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에 의존해 버릇한 자식은 자신의 앞날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의지를 갖기 힘든 법이지요.

 

이에 비해 한국현대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버지가 나타나고 자식들은 그 아버지를 죽이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제 강점기동안 독립 투쟁, 전쟁 분단이후 사상투쟁, 독재와 싸웠던 4.19, 5.18, 6월 항쟁, 2016년 촛불까지 우리의 역사는 부당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을 물리치고 주체로 서기 위한 자식들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다보니 그만큼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은 것이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숙제이긴 하다.


이 책에서 짚어주는 비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딴죽을 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린 너무 정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많아서 자꾸 참견을 한다지만 실제 내 주위에서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남 참견하는 거 싫어한다. 일본사람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다 저럴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의 종적 보편성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상대성을 만들어 내고 문화적 상대성은 개개인의 성향 및 생물학적 보편성과 만나 무수한 개별성을 만들어 냅니다. 개별성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 개개인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모두 똑같다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전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죠. 우리가 진정 가져야할 의문은 보편성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에게서 왜 차이가 나타나는가’ ‘개개인의 행동들에서 왜 특정한 행동의 패턴이 관찰되는가같은 것들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려면 이러한 것들을 후속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교육을 통해 후속 세대는 해당 문화에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통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유형입니다. 저는 바로 이 관점, 상대성의 차원에서 문화의 유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보편성의 틀 안에서 규정되지만 문화에 따른 상대성으로 구분되고 개개인은 개별적 존재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행동을 패턴화시키니까요.



일본 여행을 언제 갈지도 모르겠고, 일본인을 만날 일도 없는데 이 책은 일본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의 문화적 특징과 심리를 비교하며 설명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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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책방
안미란 외 지음, 국민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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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책방>은 부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책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을 모델로 한 작품집이다. 10편의 짧은 동화 속 배경인 자꾸자꾸 책방의 모델이 바로 책과 아이들이고등장인물인 잠잠이 선생님과 구름아저씨는 책과 아이들의 공동대표 둘의 별명이다. 2019년 이곳에서 열렸던 동화 창작 공부모임이 독립출판으로까지 이어져 동화로 완성된 것이다.


10편의 동화 속 배경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책과 아이들의 실제 장소와 같고 이야기들은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 것과 지어낸 이야기가 섞여있다책방에서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의 이야기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 이야기 같은어릴 때 상상해본 적 있는 그런 이야기 속에전래동화 속 인물 우렁각시와 실제 인물 소파 방정환 선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연하다책방에는 책과 사람이 있고 어떤 꿈도 꿀 수 있는 장소이니 말이다자꾸자꾸 책방에 자꾸 가고 싶고자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10편의 동화들은 어린이나 동화작가를 꿈꾸는 어른들 모두가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자녀와 같이 읽을 부모라면 아이의 취향에 맞춰 독후활동을 해보면 되겠다저학년이라면 이 책의 삽화를 참고삼아 책방을 그려보면 좋겠다그대로 따라 그려도 좋고 자신이 원하는 책방의 모습을 그려도 좋다가까이 산다면 책과 아이들을 직접 방문해도 된다.


중학년 이상은 마음에 들었던 동화의 뒷이야기를 이어 써보기를 추천한다자신이 원하는대로 이야기를 바꾸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두 활동 모두 글 짓는 활동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학년 구분 없이 부모가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귀로 들으며 머릿 속에서 장면을 상상해 보게 하는 거다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단어를 말하게 하면 집중해서 듣게 된다단 이 활동을 할 때 들려주는 분량은 한 장면이나 하나의 사건이 들어간 짧은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


이 책에는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책을 읽고 싶어하는 강아지와 몸이 바뀌는 이야기책방과 책 속에서 나온 먼지를 모아 책을 쓰는 쥐동화마다 배경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고양이까지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마지막 동화 동백나무 책방은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가 주인에게 말을 걸고 씨앗을 주는데 실제 책과 아이들 책방 마당에 있는 나무라고 한다서점 운영이 어려워 지친 주인에게 동백나무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알게 된 게 있어책방에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따는 것그 이야기 속에는 책방도 있고 나도 있었어이야기에 나오는 기분나쁘지 않았어아니참 좋았어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마당 식구들도 다 그랬나봐이제 이곳은 두 사람만의 책방이 아니야여기 오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곳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어.”


그리고 다음날 힘센 지킴이들이 책방으로 우르르 들어온다. 1학년 꼬맹이들이책방을 지켜줄 어린이가 있고 동화를 만드는 어른들이 있는 한 자꾸자꾸 책방에 오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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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인연 - 외로움이 깊어 인연이 되었던 어느 젊은 날
이은주 지음 / 헤르츠나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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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작가의 신간 <동경인연>의 출간소식을 보고 서평단 이벤트에 신청했다. 내게 작가는 대단한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작년에 친정엄마를 간호하며 끙끙댈 때 나를 위로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로 만난 그는 천사였다


작년 엄마의 병실에서 나는 이은주 천사를 떠올렸었다. 설사가 넘쳐버린 기저귀를 갈고 뒤처리를 다한 후 땀범벅이 된 채 나는 보조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가 생각났다. 휴대폰을 열어 내가 썼던 그 책의 리뷰를 읽어보았다. 화와 억울함, 연민으로 뒤범벅이 된 감정이 바닥으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친정엄마 간호도 이렇게 힘든데 아무리 직업이라도 노인들을 어쩜 그리 살뜰하게 돌볼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히 따라하기 어렵다.


처음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직업으로 만나는 사람부터 가족과 조카들까지 진심으로 돌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책 <동경인연>은 일본 유학시절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의 20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들뜬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쉰의 바다를 건넌 내가 <동경인연>을 끝으로 이은주 에세이 3부작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오래 울었으니까 힘들거야>, 그리고 <동경인연>은 돌봄과 인연의 변주곡이었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나아가서는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문학과의 인연이 힘이 되었다."

 

이은주 에세이 3부작의 마지막을 청춘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이후의 행보 계획은 쓰지 않았으나 나는 바랐다. 예전에 했던 번역을 계속 하기를. 생활고와 현실 등 여러 문제로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번역가로 다시 돌아가길...


사설이 너무 길었다. <동경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이 책은 옥죄어오는 현실에 인공호흡기가 되어준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이에는 문학이, 작가의 문학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었지만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학과에 입학했다. 문학가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꿈을 버리지 않게 해준 동경에서의 인연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작가의 모습을 시미즈 선생님은 황야의 이리라고 표현했다. 생활고에 찌든 거친 눈빛 안에 문학에 대한 애정만은 반짝이고 있었다.


p.25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데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싫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비평수업에 제출할 레포트를 쓸 체력이 안 되니 나는 자꾸 병들어갔다. 무기력해지고 부정적이 되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도, 학교도, 다 손을 놓으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몸살을 앓으며 3학년을 보냈고 마침내 4학년이 되자 나는 학교가 가기 싫어졌다. 밤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 말이 10시간이지 깨어있는 시간은 뇌가 긴장해서 아침까지 잠 못 이루다가 간신히 잠이 드는데 시간표를 아무리 오후수업으로 짜두어도 수업시간에 맞춰서 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삶은 쓸데없는 농담 같았다.


이렇게 지쳐 있는 그를 깨워 수업에 나오게 하고 시작 시간도 배려해준 분이 시미즈 선생님이었다. 작가는 선생님을 주변 사람들 재능을 일깨우고 주목하여 하나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닮고 싶어 했다. 선생님이 별이라고 해준 단 한명의 작가가 제자였고, 귀국 후에도 시미즈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시미즈 선생님의 관심과 격려와 배려 덕분에 작가는 유학생활을 벼텨냈다. 작가가 선생님에게 소개했다는 김영동의 멀리 있는 빛을 틀어놓고 작가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작가가 한여름 밤, 오이차이 다다미 방에 누워 흘렸던 외로움이 한국의 겨울 밤에도 몸서리치게 휘감겨왔다.


일본여행에 대한 열망은 없지만 진보쵸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일본 소설에서, 출판 관련 서적에서 늘 서점거리의 대명사처럼 등장하는 그 곳을 가보지는 못한 채 동경만 키우다보니 아스라이 멀리 있는 별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 헌책방 거리나 헌책방을 가보아도 책에서 읽은 진보쵸 거리와는 사뭇 다른 것만 같다. 직접 가보지 못한 폐해다. 작가도 진보쵸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도쿄니까, 문학을 사랑하는 가난한 유학생이니까.


작가가 만난 헌책방 시바타 아저씨와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으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시바타 아저씨는 작가를 헌책 도매상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도스토예스키 전집 18권을 발견한다. 두어 달이 걸려 전집이 도착했을 때 가격은 도매상에서 본 2천엔 그대로였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수수료 같은 이문은 붙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좁은 다다미방에 아저씨를 초대한 후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진보초의 헌책방에 취직했다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자기가 집을 떠나 동생들이 밥 한 공기를 더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 작가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저씨는 작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 값으로 점심을 사주었다.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괜찮다고 해도, 진보쵸 헌책방 단골손님들이 찾는 고서적을 구해주면 돈이 꽤 된다고 걱정마라고 했다. 시바타 아저씨는 한국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에게 책도 주고 밥도 주었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준 은인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친구에게서 아저씨의 소식을 듣게 되는데 헌책방 앞에 꽃이 놓여있더라며, 너처럼 아저씨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더라고 전해주었다.


p.68


나는 늘 나이 차이가 나는 우정을 동경해왔다. 장 그르니에와 까뮈의 우정을. 헤어져 있어도 서로의 가슴에 별로 빛나는 만남을. 어떤 관계는 대부분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영원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에 나도 공감한다. 나도 그런 우정어린 인연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만들지 못했다. 만남이 있어야 인연이 될 것인데 요 몇 년 사이 그나마 있던 만남도 속속 끊어지는 형국이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이 아니고서야 영원한 인간관계란 있을 수 없는 게 맞는 가보다. 평생 갈 거라고 장담했던 관계가 있었는데 코로나가 정리해주었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또또 코로나 타령이다.


작가의 동경인연 중에서 가장 마음 찡했던 이는 우체국의 마리 아줌마다. 마리 퀴리부인을 존경해서 닉네임을 마리라고 지었다는 그이와의 인연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지속되는 인연도 있다. 20대 초반 여성의 눈에 비친 마리 아줌마는 독립적이고 멋진 여성이었다.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직장인으로 진지하게 정성을 다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반한 것이다. 또한 아줌마의 딸 안과 나나 덕분에 타국에서 가족의 사랑 안에 있는 것 같은 안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줌마의 라보모임에 초대를 받아서 겪은 일은 작가에게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할 길을 열어주었다. 사진작가라고 한 남성이 작가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한 일이 있었다. 그 후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후지타니 선생의 단편 <을지로 입구의 푸시킨>을 접하면서 향후 한일관계에 대한 고민을 했고, 이어 한국판 <을지로 입구의 푸시킨>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동경인연> 구상의 토대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상은 안과 나나의 언니, 이상은 나의 딸입니다.’


는 마리 아줌마가 쓴 편지 속 문구이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유학을 가서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족이나 지인은 작가에게 상처를 주었고, 어깨를 한없이 무겁게 했다. 그러나 가족을 버릴 수 없었고 한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고단한 삶을 살았다. 물론 때때로 행복한 나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작가가 힘들고 외로울 때 옛 일기를 들춰보며 미소 지었을 것 같다. 사납게 번뜩이던 이리의 눈빛 속 별을 알아봐주고, 들썩거리던 어깨를 다독여준 인연들을 일기장 속에 가두어두는 것보다 한 권의 책에 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동경인연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제부터는 쓰기 싫은 부분을 기록하는 일이 남았다고 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쓰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나는 작가에게 바란다. 오욕의 역사도 쓰라고!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며 간간이 번역도 하라고! 꼬옥 문학가의 꿈을 이루시라!


물론 독자 입장에선 이미 문학가입니다! 작가님 책 두 권밖에 안 읽었지만요~~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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