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과 치유, 물이 최고의 약 - 치매 걱정 없이 사는 슬기로운 치매 처방전
김영진 지음 / 성안당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 예방과 치유, 물이 최고의 약>은 건강관련 서적을 여러 권 쓴 홀리스틱 영양 지도사 김영진씨의 신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치매를 예방하는 약이 물이라고 표현한다. 치매 치료약은 계속 개발중이긴 하나 아직 이렇다할 치료 성과를 보이는 약은 없다. 그래서 치매 관련 책은 예방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보통 식이 습관, 생활 습관, 그리고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들을 다룬다. 이번 책도 그런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물이 어떻게 약이 된다는 뜻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먼저 목차부터 살펴보자면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치매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2부는 치매를 일으키는 식품과 치매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나쁜 식습관을 소개한다. 3,4부에서는 체내 물 부족이 어떻게 치매에 영향을 미치는지와 물이 치매의 예방과 치유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5부는 물, 소금 섭취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치유하는데 도움 받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치매를 다룬 서적을 읽어왔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분야는 수시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1부에서 새롭게 확인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최근 치매환자 발병 나이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대 이하의 청년에게도 발생하는 탓에 젊다는 의미의 영young과 치매의 약 76%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결합한 영츠하이머 치매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다음으로는 치매가 남성보다 여성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령별 치매환자에서 남녀 비율을 확인하니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6배정도 더 많이 치매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나와 있는 치매 치료제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한다.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치매 치료제가 가장 널리 처방되는 도네페질이라는 약의 부작용 사례는 아주 많다. 이에 저자는 물과 소금을 등한시하면 뇌 질환은 물론,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부가 치매를 유발하는 식품과 식습관이지만 사실 여기서 다루는 것들은 치매뿐 아니라 다른 질병을 유발한다. 청량음료, , 담배, 커피, 액상과당, 고기 등등. 상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저자는 이런 식품들이 치매를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 커피에 대한 설명은 좀 놀라웠다. 카페인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춘 정보만 믿고 매일 여러 잔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눈여겨 봐둘 정보다. 여러 실험과 연구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해마의 신경세포 생성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는 나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커피에 관련된 설명은 하루에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하는 사람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라서 요약 소개한다.


- 카페인은 혈관을 축소시켜 여름철에는 혈액 순환을 느리게 만들어 체내에 발생한 열을 피부의 땀구멍으로 신속하게 운반하지 못하고, 겨울철에는 열을 발생시키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게 한다.

- 카페인의 영향으로 수축된 혈관은 딱딱해져서 주변의 부드러운 피부 위로 혈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 카페인이나 마약, 담배는 두뇌로 가는 모든 영양소를 체크하는 글리아세포를 무사 통과해 뇌를 흥분시키는 물질이므로 중독성이 있다. 중독성 물질을 끊는 방법은 평소 충분한 양의 물과 적당량의 소금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3부에서는 체내 물 부족이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내용이다. 신체 특성상 여성의 몸은 아래 표처럼 남성보다 물 보유량이 적다



여성에게 치매 발병률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체내 물 부족은 치매가 아니어도 만성 변비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안구건조증과 결막염, 구강건조증, 피부경화증, 요실금 등의 원인이 된다. 요실금은 요도 괄약근 기능저하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뇌에 물이 부족해서 뇌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킨 결과라고 하면서 일본 곡사이의료복지대학의 다케우치 다카히토 교수의 책 <치매는 뇌 질환이 아니다>라는 책을 인용했다. 85세 남성의 사례를 들었다. 하루에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게 하고 운동과 산책을 꾸준히 하도록 도운 결과, 환각 증상과 요실금이 사라졌다.


3부에서 상식과 다른 내용은 소금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음식을 짜게 먹어서 고혈압이 되는 경우는 매우 극소수라고 했다. 고혈압이 걱정되어 소금 섭취량이 적으면 오히려 치매 예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에 음식을 지나치게 싱겁게 먹으며 부정맥과 콜레스테롤로 인해 고민이 많던 지인에게 이전보다 짜게 먹고 생수에 소금을 섞어 마시도록 했더니 부정맥이 사라지고 콜레스테롤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4부는 물의 효과와 물을 제대로 마시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혁신적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이란 출신 미국인 뱃맨겔리지 박사였다. 각종 뇌 질환의 주요 원인이 물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수많은 질병을 물과 소금으로 치유했다. 그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사람이 일본의 다케우치 교수다. 치매 환자의 여러 증상 중 80% 정도는 물과 운동만으로 치유되는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살폈더니 신경 안정제, 수면제, 항우울증 약 등을 복용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다케우치 교수가 성공한 여러 사례들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물을 많이 마실수록 뇌 속의 쓰레기를 깨끗이 씻어내 치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뇌신경 세포를 보호할 뿐 아니라 노년기를 건전한 정신으로 품위 있고 활기차게 생활하도록 돕는 가장 좋은 천연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하루에 1,5~2리터 이상을 마셔야 한다.그러나 주의할 점은 적당량의 천연 소금과 함께 섭취해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 제대로 마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상온의 물을 마신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신다.

- 식사 전후에, 식간에도 마신다.

-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하루 2.7리터를 마셔야 한다.


, 심각한 심장 질환이나 신장 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을 때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물 마시기를 해야 하다. 또한 물 중독을 막으려면 소금과 같이 마시거나 음식을 약간 짜게 먹어야 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소금은 볶은 천일염과 죽염이다.


5부에서 권유하는 운동 중에 맨발 걷기 운동을 소개한다. 걷기 운동을 하면 뇌신경 세포가 새로 생성된다는 실험 사례가 있다. 그냥 걷는 것보다 맨발로 걸으면 몸의 정전기가 빠져나가므로 흙길이나 모래사장을 한 시간 정도는 걷는 것이 좋다. 맨발로 걷기는 꼭 치매 때문이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 외 치매 예방법은 다른 건강관련 서적이나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습관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


- 1주일에 241~42도의 물로 반신욕을 한다.

- 치주염 예방을 위해 양치질을 소금으로 한다.

- 흐르는 수돗물로 손을 자주 싯어 몸의 정전기를 없앤다.

- 뇌를 보호하기 위해 휴대폰은 스피커폰이나 이어폰으로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지시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의 현재 건강 상태에 맞춰, 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 보면 된다. 치매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그동안 시도했으나 잘 안 지켜진 것들을 지키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족 중에 치매가 의심되거나 초기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거나 저자의 방법을 권유해 볼 수도 있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웃집 식물상담소>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씨의 에세이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식물상담소에서의 대화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식물상담소라고 하니 식물에 대한 Q&A일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은 일부다. 그럼 인생 상담이라는 건가? 물론 인생 상담도 포함된다. 식물상담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책 날개에 있어서 그대로 인용한다.


식물상담소를 처음 찾은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해 하세요. 처음에는 식물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는 이야기, 꿈과 미래, 고민과 즐거움, 재미난 농담 등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흐르는 대화 속에 식물에 대한 지식을 나누었고 식물에게서 지혜를 얻으며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갔습니다. 숨 가쁜 날들 속에, 진솔하고 깊은 대화로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준 것만 같습니다.



책에 실린 상담 사례들을 보면 독자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고민했던 내용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저자의 조언에 고개 끄덕이게 되고 위로에 안도하게 된다. 상담 에피소드의 시작은 식물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p.58~59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사랑을 조금 줄여보면 우리 인생에도 관계에도 기다리던 꽃이 필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식물에 대한 생각을 뒤집는 낯선 사고를 만날 수 있다. 꽃이 예뻐서 무심코 샀다던 상담자가 있었다. 가까운 데서 키운 꽃을 소비해야한다는 다큐멘터리 자막 작업을 한 후부터는 잘린 꽃을 보면 자신이 아픈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지는 저자의 절화(잘라서 파는 꽃)에 대한 언급은 이렇다.


p.48


나는 한 번도 잘린 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뿌리도 잎도 없이 꽃만 댕강 잘려서 팔리는 꽃은 죽은 거다. 꽃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잎이나 뿌리보다 꽃에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꽃이 잘렸다는 인식보다 예쁜 꽃을 모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

생물은 진화를 통해 탄생하고 각자의 생태적 지위를 가진다. 그 지위에 맞춰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동물이라 식물을 먹고 이용한다. 그런데 나는 잘린 꽃을 파는 것을 보면 이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이 행위가 인간의 욕심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절화로 판매되는 꽃은 대부분 원예품종인데 이런 원예품종을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원예품종은 인간이 더 예쁘다고 느끼도록 개발해 만들어낸 식물이고 이 또한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진 않으니까.


나는 작년에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꽃꽂이를 시작했고 평생 사지 않았던 꽃을 직접 사게 되었다. 꽃을 화병에 꽂아 집을 꾸미는 재미에 빠지다보니 화병도 종류대로 샀다. 꽃뿐 아니라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을 자꾸 사들이며 한편 양심에 찔렸다. 예쁜 꽃을 보고 싶고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또 소비로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꽃바구니를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뿌듯함은 소비 욕심에 동반된 죄책감을 상쇄시켰다.


그런데 위 내용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꽃은 죽은 것이라는 말! 나는 굳이 시체를 먹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가 없지 않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절화를 소비하는 행위는 저자의 말대로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인간의 욕심 위한 것이 맞다. 저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꽃을 죽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꽃꽂이라는 활동을 하며 꽃과 그 관련 도구들을 사들이는 소비에 죄책감을 느꼈지 그것이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소비행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행위는 아름다움을 누리겠다는 허영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어떤 어린이 상담자는 친구들이 식물을 좋아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이에 저자가 해준 상담 내용은 꼭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던 저자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이 많았으며 지금도 새벽에 집에서 혼자 현미경을 보다가 발견한 환희를 함께 해줄 사람이 없어 고양이에게 설명다고 고백했다.


p. 116


나는 어린이 상담자에게 그런 외롭지만 즐거운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가서 식물분류학실험실에 들어가고 학회에 가니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9년을 잘 기다리면 꼭 함께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혼자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함께 좋아할 사람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그 길을 꿋꿋이 가다 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지면 나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런 때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건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식물학자가 무슨 진로상담까지 할까 싶지만 식물 관련 공부를 하거나 전공은 달라도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담은 거의 진로상담에 가까웠다. 미술을 아주 좋아하고 서양학 전공을 하는 어떤 상담자는 4학년이 되어서야 부전공으로 산림환경학을 선택해 식물분류학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 수업을 듣는 서양학과 학생을 양쪽의 교수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둘 다 좋아하니 답하기 어려웠다고, 그러면서도 미술로 돈을 번다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에 저자는 좋아하는 게 많아도 상관없다고, 평생 이것저것 해보며 살아도 된다고, 꿈과 직업을 구분해서 생각해보자고 한 상담이 인상적이었다. 요즘이야 융합이나 통합이 자연스럽지만 이전에는 하나만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한다. 자신도 그랬다고. 좋아서 한 선택이 가보니 생각했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잘못한 선택으로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보고 결정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밖에 있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고 경험한 후에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고. 좋아하는 일 앞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응원했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나 권위를 가진 어른의 조언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서 그들이 하는 조언 대부분은 그들의 경험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들은 박문호박사의 강의 내용이 겹쳐졌다. 어떤 뇌과학자의 우리의 셀프도 쳐들어온 타인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타인의 시선이 나의 사회적 셀프를 규정하는 것이니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셀프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만 전혀 아니라는 주장이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셀프는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만들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칭찬에 부응하려는 태도,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주위 어른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과 충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추종하는 분위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선택에 오롯한 자신의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가지라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때가 오면 당연한 것이니 모두 경험해보고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식물 그림들이 중간중간 실려 있는데 사진과는 다른 세밀화만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저자의 식물세밀화 이력을 모르더라도 얼마나 전문가인지 금방 알게 될 것이며 수상 이력을 확인하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식물 그림에 이름을 써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눈에 익은 식물 그림을 보니 반가웠고, 이름을 몰라 확인하고 싶었는데 나와 있지 않아 조금 답답했다.


식물을 키우며 겪는 애로를 상담하는 책일 줄 알고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식물을 매개로 한 인생 상담이었다. 상담관련 책은 대부분 내담자가 성인인데 이번 책에는 어린이들 사례가 꽤 있었다. 아이들이 뭐 그리 식물에 관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식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으며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 책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식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식물관련 상식 및 새로운 정보를 포함하여 식물을 기르며 흔하게 겪는 어려움, 나아가 인생 상담으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식물 집사들에게는 필독서로, 식물 집사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 소설Y 대본집 <다이브>를 읽고, 줄거리 요약보다는 소설 속 문제의식을 토대로 할 수 있는 독후활동 위주로 정리해보았다.


2057, 세상이 물에 잠겨버렸다. 고층 건물 옥상만이 섬처럼 남아있고 잠수하는 물꾼들이 있다. 물꾼들은 침수된 것들 중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낸다. 댐 때문에 수몰된 마을엔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듯 물에 잠기기 전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느 날 능숙한 물꾼 소녀 선율은 큐브를 발견해서 건져 올리는데, 그 안에 든 것은 기계인간 채수호였다.


<다이브>sf 소설이다. 35년 후의 미래 배경은 두 가지 설정 아래에 있다. 하나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은 대부분 물에 잠겨버린 상황이다. 또 하나는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큐브 속 기계인간 수호가 만들어진 때는 2038년이었고 서울이 물에 잠긴 건 2042년이다. 기계를 인간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 발전을 이루었지만 15년 전에 거의 모든 게 침수된 상황이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눈부신 기술발전도 무용해진다는 것!


이러한 배경에 심어놓은 문제의식도 크게 두 축이다. “AI, 즉 기계인간(일종의 복제인간처럼 설정한 책 속의 기계인간)에게도 자의식이 있을까?” 맞춤아기로 만들어낸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인가?”이다. 큐브 속 기계인간 수호의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이다. 기계인간 수호는 암으로 죽은 딸을 대신해 부모가 주문 제작한 것이다. 기계인간 수호의 몸은 기계이나 의식은 인간 수호의 것을 그대로 장착하고 있다. 생각은 수호의 자의식 그대로인데 몸은 기계이므로 겪는 불편함 때문에 수호는 고통스럽다. 기계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기 힘들다. 이것은 넓게 보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말한다. 마음대로 자식을 키우고 싶은 부모와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자식과의 갈등이 그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35년 후의 미래이긴 하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10대이기 때문에 인류사에 꾸준히 이어져온 갈등 구조의 자장 안에 있다. 이 소설이 영어덜트 소설’, ‘소설 Y’라는 이름을 표방하므로 청소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성장소설로 맞춤하다. 물론 그 대상을 청소년에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부모 자식 간에 발생하는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읽고 아이들과 토론해보면 좋겠다. 기계문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 역시 토론 주제로 삼기에 충분하다.


또한 sf 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 다양한 토의를 해볼 수도 있다. 소설 속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 나아가 sf적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해보는 것이다. 2백 여 년 전 쥘 베른이나 스티븐슨이 상상했던 미래는 오롯이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이루어 놓은 기술적 기반 아래에서 더 디테일하고 실현가능한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호미>가 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분홍빛 표지로 단장하여 출간되었는데 출판사에서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1년에 여든 나이로 돌아가셨으니 2007년 초판본은 일흔대에 쓰신 산문들이다. 나는 초판과 2014년 개정판(맏딸 호원숙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은 못 읽었고 이번 3판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산문집의 글들을 눈으로 쫓는데마치 작가 북토크에 앉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의 어릴 적 이야기, 가족들, 생활 속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풀어내 주셨다.


그래서일까. 작가님의 인생 장면 장면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은 것 같았고, 다 읽고 보니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이었다. ‘맞아요, 맞아!’ 하며 고개 끄덕이게 되거나 같이 흥분하게 만든 일화들, ‘나라면 어땠을까?’ 싶은 상황들을 보니 15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공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런 표현을!’ 하며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다.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작가님은, 당신이 거둔 결과를 보잘 것 없다고 표현하면서 그래도 늘 안팎에 김 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고 하셨다.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는 문장은 펜을 호미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를 관두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그럼에도 펜을 놓지 않게 했던 동력은 바로 가족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산문집에는 그런 감사의 글이 많다. 신여성으로 키우려고 했던 친정어머니, 손주들을 보석처럼 대했던 시어머니,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남편, 아주 어릴 때부터 믿고 의지했던 맏딸까지 모두 작가 박완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사람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에서 익히 친정어머니의 지극정성을 읽었지만 이 산문집 우리 엄마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인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엄마에게서 벗어났으며 잘 사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자신에게 걸었던 과도한 기대는 늘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p.223


자식 낳고 살림 늘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도 문득 엄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초라하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처녀작을 쓸 때, 잘 안 써져서 때려치울까 하다가도 이게 만일 당선이 돼서 내가 신문에 나며 엄마가 얼마나 으스댈까, 아마 딸 기른 보람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채찍이 되어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

내가 <휘청거리는 오후>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나서 기자가 엄마에게 인터뷰를 청한 적이 잇다. 따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싸늘하게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매몰찬 혹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마 생전 엄마를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작가님은 엄마를 극복하셨을까? 내 생각에는 그런 친정어머니가 없었다면 박완서라는 작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가족들이 작가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된 것도 맞지만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작가는 되었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다른 박완서로 기억했을 것이다.


또 작가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대라는 이름에 많은 빚을 졌다며 2006년 서울대학교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쓴 글에 이렇게 밝혔다.


p.205


(8군 피엑스에 취직된 것은) 순전히 서울대 학생이라는 자기소개 때문이었습니다. 담당자는 가장 초라한 저를 군계일학처럼 바라보았고, 거짓말처럼 쉽게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서울대 학생이라는 레테르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구나 저를 아껴주고 존중해주었습니다. 그런 대학의 후광에 힘입어 저는 돈 벌기도 쉽지만 타락하기도 쉽다고 알려져 질시와 멸시를 동시에 받던 피엑스 생활을 홀로 고고한 척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식구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똘똘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고, 그 직장에서 알게 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박수근 화백은 저의 처녀작 <나목>의 주인공이 되어, 저를 주부에서 작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마흔에 등단하여 40여년 간 소설가로 살 수 있었던 건 탁월한 필력 때문이라는 식의 뽐냄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한 인간으로, 작가로 무탈하게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쓴 저 글은 박완서 작가의 인생과 성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감사의 마음을 저리도 아름답게 쓸 수 있구나 감탄했다.


"작은 기적처럼, 또는 오랫동안 뒤통수만 보고 흠모하던 이가 뒤돌아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짜릿한 기억처럼, 저 혼자만의 밀실에 두고 삶이 진부하고 지루해질 때마다 꺼내보고 위안을 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포인트를 잡아 리뷰를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남은 글들을 골라보니 작가 박완서를 만든 이들로 수렴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고마워했지만 모두 다 리뷰에 쓸 수는 없어서 친정어머니와 서울대학교만 썼다. 마지막으로 딸 호원숙 작가에게 쓴 글, ‘딸에게 보내는 편지중 일부를 인용한다.


p.259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일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딴 누구도, 네 동생들도, 나의 친한 친구도 너만큼 해줄 수는 없단다. 근심이 생겨 너한테 털어놓은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기만 해도 근심의 반은 사라지고, 미운 사람 욕을 너한테 하고 나면 미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도저히 인력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너한테 기도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하니 나는 얼마나 한심하고 뻔뻔스러운 엄마냐. 그러나 이해해다오. 내 기도발보다는 네 기도발을 더 믿는 것은 모성애보다 더 깊은, 네 진국스러운 인간성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을. 너는 딸이요 친구인 동시에 근래에는 내 문학의 적절하고 따뜻한 비평가 노릇까지 겸해주었다.


호원숙 작가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돈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던 맏딸이었다고 한다. 딸이자 친구이자 따뜻한 비평가라는 표현은 딸에게 하는 최상의 표현이 아닐까. 당신 생에서 뽑아버릴 수 없는 말뚝 같은 존재였던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부 혹은 맘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무한 신뢰한다는 편지를 받은 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부럽고 부러웠다.


이 산문집은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앞부분에 정원을 가꾸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못했다. 그런 글을 포함하여 작가님의 생활이 녹아있는 글들이 많으니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유 작가의 신간 <크게 그린 사람>은 인터뷰집이다. 20201월부터 20213월에 걸쳐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은유의 연결에서 만난 16인에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한 2인을 더해 책으로 엮어냈다. 제목을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한 이유가 에필로그에 나오는데, 작가 자신이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시지를 확대해서 쓴 글이므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면서 18명의 인터뷰는 증명사진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인터뷰하던 시점에 천착하던 문제를 깊게 파고 들 수밖에 없으므로 양해해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유독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 몇몇은 있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 혹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인물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졌으리라. 은유 작가의 스펙트럼을 투과하여 자신 앞에 도착한 것과는 다른, 어쩌면 더 큰 그림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인물화 18편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다. 동시에 독자만의 스페셜한 한 명을 그릴 화폭을 제공해준다. 작가가 책장을 덮는 독자에게 감사를 전했듯 독자도 크게 그려보고 싶은 인물을 떠올리며 감사해하리라 생각한다.


인터뷰이 18명은 목차대로 아래와 같다.


1부에서는 누구나 가는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름으로써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들.

2부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힘을 믿고 긍정하며 나아가는 이들.

3부에서는 나의 힘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존가들.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에서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청년 예술가 조기현씨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의 작가로 최현숙 작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읽을 책 리스트에 몇 년 전부터 올려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조기현씨를 이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셈이다.


조기현씨는 1992년 생으로 스무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쓰러져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병원비를 구하고 보호자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치매까지 온 아빠를 돌본 세월이 9년이다. 병원비를 구하려고 가난을 증명해야했고, 제도가 있어도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 중심의 복지정책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아버지를 돌보며 오히려 자존감을 지키려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낸 후에야 세상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의사들과 한 가지 의제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자리가 주어진다.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 대화기구의 공동위원장을 맡게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규정한 기특한 젊은이에 맞서 나는 효자가 아니고 시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정의하는 시민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감독, 작가가 꿈이었던 조기현씨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왔다. 자신이 말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이미 작가의 꿈은 이루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화감독 조기현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부당하다고 느낀 일들을 바꾸어 낼 그를 응원하며 계속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 이젠 진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을 시점이다.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에서는 의사 두 명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과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어떤 면모 때문에 은유 작가가 인터뷰했을지 궁금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고 의사의 자리에서 역할을 굳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영전 교수가 말하는, 공감능력과 회복력이 있는 의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의사는 공감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쿠션이 튼튼한 사람이다. 의사는 건강을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켜야하기 때문이라고.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을 읽고 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씨를 알게 되었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는 1부에 나온다. 김미숙씨는 각종 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김도현씨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삶은 각각 동생과 아들의 죽음이전과 이후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도현씨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한다. ‘다시는2019년에 발족했는데 누구도 다시는 산재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버티어낸 부모님들이 동생을 잃은 그에게 힘을 주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산재로 한해에 2400명이 죽어나가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작지만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의 사고 후 생업을 포기하고 고용노동부, 경찰서, 현장을 돌며 도생의 죽음에 관련된 자료를 하나하나 모았다. 증거를 제시해 재수사를 진행시켰음에도 2심 판사가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라면서 합의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 생명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계속 외칠거라고 했다. 은유작가는 김도현씨를,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앞으로도, 김도현씨는 그런 사람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답답한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오고 이런 세상에 살아야하냐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은유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위 리뷰는 한겨레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