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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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하우스>는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메이(1951년생)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기자로 시작해 20대에 장편소설 <리포터>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 작품이 BBC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보폭을 넓혔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블랙 하우스>루이스 섬’ 3부작의 첫 작품이다.


내가 경험한 섬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 휘몰아치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깎아지른 절벽과 매서운 파도...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가혹한 삶까지도.”


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펼쳐든 독자들을 루이스 섬으로 단숨에 데려다 놓는다.


스코틀랜드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언덕 높은 곳에 중세 성이 있고, 성 뒤쪽으로 인도하는 카메라의 눈을 따라가면 성을 삼킬 듯한 흰 포말이 넘실대는 장면이 나타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장면은 으스스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그곳이 스코틀랜드가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루이스 섬이므로 스코틀랜드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육지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이라고 해봐야 고작 제주도 같은 관광지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섬 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위 인용한 작가의 표현처럼 위협적인 섬의 이미지에 섬칫 놀라면서도 인간과 새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활자를 읽는 게 분명한데도 루이스 섬의 척박한 날씨와 몰아치는 파도와 전반적으로 음침한 분위기, 비밀스러운 사람들의 표정, 가넷새 사냥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시나리오 작가로 오래 활약한 작가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소설이므로 타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소설도 어떨지 기대가 된다.


리뷰를 쓰자니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좀 막막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뒷 표지에 쓰인 공포의 패러다임을 재창조한 스코틀랜드 스릴러의 정수라는 문구를 넘어서거나 부연할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겠다. 어떻게 쓰면 이 글을 읽고 소설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순서대로 풀어내려고 한다. 주인공 핀 매클라우드 형사는 아들을 사고로 잃고 휴직 중이었는데 자신의 고향 루이스 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가라는 복귀명령을 받는다. 몇 달 전 그가 다루었던 살인사건과 유사하며 사망자가 핀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8년 간 찾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사를 하는 챕터에서는 3인칭으로, 핀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챕터는 1인칭 시점이며 두 장면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영화적 느낌을 준다.


핀과 절친 아슈타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만나는 마샬리라는 여자아이를 포함 다른 등장인물들 소개와 학교 생활이 앞부분에서 자세히 그려지는데다, 현재 시점의 핀이 수사를 위해 인물들(옛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들 역시 더디게 진행되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뒤에 가서 얼마나 큰 걸 터트리려고 이렇게 밑밥을 촘촘하게 까는 걸까 싶었다. 여기에 더해 그곳의 오래된 전통인 가넷새 사냥까지 들어오니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많이 펼쳐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루이스 섬에서 80km나 떨어진 안 스커라는 가넷새의 서식지에 가서 부화된 새끼 새를 사냥하는 장면과 폭풍우 몰아치는 섬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들 묘사가 소설 후반부까지 삽입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알게 되었다. 그 장면들이 없었다면 이 소설의 스릴러적 요소가 반감되었을 것이라는 걸. 가넷새 사냥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 사람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으로 사용한 걸까 의심했지만 그보다 더 주요한 쓰임, 아니 가넷새 사냥이 빠지면 이 소설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반부 즈음에 반전 내용이 하나 나오고 핀의 옛 친구들과의 사연도 까발려지면서 미스터리적 요소를 더해가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안 스커섬의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게 한다면 등장인물들 마다의 사연과 핀과 아슈타르, 마샬리의 삼각관계는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서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만들었다.


작가는 소설 중반이 넘도록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어쩌면 숨겨두었던 것들을 후반부에 휘몰아치듯 터트려버린다. 그러니 이 소설은 약간의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초반 진행이 조금 느리다고 덮어버리면 안 된다. 중반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삼류 막장이라며 성급히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 나 역시 이런 설정 식상한 걸 하며 살짝 실망했다. 그들(, 아슈타르, 마샬리)의 관계 설정을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비밀이 열리면서 그 이유를 수긍했다. 그러니 초중반을 잘 넘기면 후반부에 기대했던 스릴러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동네 개차반으로 이름 난 앵거스 존 맥리치(일명 에인절)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였고, 어릴 때부터 악동이었다는 자세한 서술에 독자 역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천하 무뢰한이라고 여겼던 에인절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작가가 인간의 다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인절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하다. 범인이 누군지 여기서 밝히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므로 그럴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살인자를 찾는 수사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주인공 핀의 과거 찾기이다. 간절히 떠나고 싶었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기어코 다시 발을 디디게 만든 운명이, 묻어두었던 그의 기억을 봉인해제 시킨다. 20여 년 전 핀이 죽을 뻔 했다 살아난 그날, ‘안 스커에 함께 했던 이들 모두 오랜 시간 입 다물고 있었던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 명을 위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 비밀을 통해 작가는 복잡 다단한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이면서 잔혹함을 칼처럼 휘두를 수도 잘 벼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편도 어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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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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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동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려동물이 된 고양이들 덕분에 동물복지나 개공장 관련 책들을 읽게 되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들여다 볼 눈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식물에 관심이 생겼고 관련 도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애착가는 반려식물까지 생긴 건 아니나 그동안 식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다른 집들 마당에 수국은 저리 탐스렇게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심은 수국이 시들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최근 반려식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식물 관리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식물 관련 신간이 나오면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지만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새로운 정보를 어서 섭렵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자꾸 새 책을 사라고 부추기고 신간 서평단 모집에 자동적으로 신청서를 입력한다. <나의 초록 목록>은 김영사 서포터즈로 받은 책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식물학자가 전하는 우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가 지켜야 할 풀과 나무의 기록들이라는 소개를 보니 욕심이 동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가 처음 출간한 이 책의 저자 소개에는, ‘1년의 절반 이상은 전국 곳곳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로 살아간다. 식물 관련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고 되어 있다. 저자는 그동안 비무장지대나 산간, 무인도등 척박한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식물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냈다. 일반 독자가 이 책에 소개된 식물들을 얼마나 많이 알까? 나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고 그나마 안면 있는 식물은 10%도 안되었. 집에서 화분을 키우거나 마당에 식물을 심고 가꾸는 사람이라 해도 숲이나 해안가에 피어나 자라는 식물의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전문가가 소개하는 우리 산천에서 자라는 식물이야기다.


식물분류학 전문 서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을 소재로 하는 에세이이므로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발견한 식물을 쉬운 말로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을 시와 연결하기도 한다. 현장을 누비는 사람의 글이 투박할 거라는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문학적 표현들도 자주 등장한다. 모든 관심은 식물에 기울이고 전문서적만 읽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내 편견이었다. 아마 시집을 늘 끼고 사는 사람일 게다. 그렇지 않고는 식물을 보며 시를 떠올리기가 어디 쉬운가.


또 다른 편견 하나! 저자가 할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시골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만으로 나이가 지긋할 거라고 예상했다. 초등학교 때 솔이끼와 우산이끼가 수업준비물이었다고 하기에 더 그렇게 여겼다. 치우친 눈으로 보니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는데 삼십대라니! 놀라웠다. 연구하고 현장만 다녔을 것 같은데 문학과 함께 하며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저자가 소개한 식물들 중 이름과 모양을 알고 있는 식물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 동네 공터나 길가에도 흔히 피어나는 개망초다


꽃이 계란프라이 모양 같아서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소개한 부분을 살펴보면 저자의 글솜씨와 이 책의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귀화 식물은 죄가 없다라는 꼭지인데 시로 시작한다. ‘베트남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후기 시인의 가족 도감1”이라는 시를 그대로 옮긴다.

 

엄마는 귀화식물,

주로 시골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베트남,

겁이 많고

키가 작다

 

한국 전역의

산과 들에 피어나지만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꽃말은 안녕하세요

몸은 질기고

열매는 검붉다

 

가슴속 씨방에는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있다

 

자생식물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은 외래식물이며 외래식물 중 도입 시기가 오래되어 토착한 식물을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은행나무나 수양버들 외 개화기 이후 들어온 식물에 대한 시각이 곱지는 않은데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려한다.


대표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온 망초는 구한말 서방 문물과 함께 식물이 들어온 후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쩜 이름부터 멍에를 뒤집어 쓴 채 사람들에게 알려지다니! 망초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지 않고 마당이나 도로변 버려진 집처럼 인간의 활동이 빈번한 곳에 무리지어 산다. 이런 망초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 마당과 정원에 침입한 망초는 아무 죄가 없다. 인간에 의해 타국에서 건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망초가 유입된 역사와 이름의 유래를 읽다보니 서두에 소개한 시와 꼭 맞아 떨어진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시가 대변하는 듯하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세상에 시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맞춤하게 연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연구하는 식물에 대한 애정은 물론 시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저 꽃을 계란꽃으로 알고 있다가 망초앞에 접두어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를 붙여개망초가 진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충격을 받았고 한다. 계란꽃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며. 개항 이후 우리가 걸었던 많은 길에 개망초가 한들대며 피어있을 것이고 그 이름에서 우리 민족의 설움이 읽히기도 한다며 한반도의 고난과 역경을 지켜본 꽃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보듬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망초의 종류와 개망초에 대한 소개 후 꼭지의 제목에 걸맞게 다른 귀화식물에 대해서도 다룬다. 병충해에 강하다는 이유로 들여온 가시박때문에 우리종인 쥐방울덩굴이 사라졌고 "꼬리명주나비"도 같이 자취를 감췄다. 북한 식물학자들이 외래종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소개하면서 외래식물이 자국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을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꼭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식물은 아무 죄가 없다. 그들은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 있어서낯선 타국에서 더 강인하게 살아갈 뿐이다."


사실 나는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부터 걱정이 앞섰다. 저자가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식물을 자세히 다루고 친절하게 사진까지 첨부한 것을 보니 우려스러웠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훼손한다거나, 아니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내용을 읽으니 기막혔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보호종이 수두룩한데 눈 밝은 이들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벌써 식물들을 싹쓸어 가버렸다니 말이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꼭지의 제목은 나를 오해하게 했다. 워낙 시가 여러 번 언급되다보니 시를 낭독하면서 뭔가 알아냈다는 뜻 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낭독(狼毒)이라는 식물이 있다. 낭독은 뿌리를 약용하는 식물로 오랫동안 뿌리 채 뽑히기만 했을 뿐 보호받지는 못했으며 국내에서 멸종되었다고 추측했단다. 그런데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저자가 발견했다.


낭독과 비슷한 다른 식물들 사이에서 발견해 찍은 사진이고 낭독이 만병에 용한 악성이 뿌리에 농축되어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나는 저자가 낭독이 있는 곳을 찾아들어가는 곳 주변에 피어난 다른 식물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만화방창(萬化方暢: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처음 알았다. 뭉게뭉게 피어난 귀룽나무와 각시붓꽃과 홀아비꽃대, 그리고 치명적 향기를 내뿜는 분꽃나무까지. 하나도 모르는 이름의 식물들이지만 그 깊은 산 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물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 식물들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으로 많은 식물들을 소개받았다. 일독으로 그칠 책이 아니다. 가까이 두고 한 꼭지씩 읽어보거나 자연에서 만나게 될 식물들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이 책을 꺼내 다시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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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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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러웠다. 몹시! 내가 꿈꿨던 편지가 이런 것이었다. 아들과 엄마가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드러내고, 다른 의견에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고 들어주며 서서히 받아들이는, 이런 거 말이다.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다.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10년차 농부 엄마와 농부가 되려고 하는 아들이 주고받은 마흔 한통의 편지 모음집이다.


부러운 거 하나 더! 이 책은 모자간의 편지뿐 아니라 아빠, , 며느리 편지까지 실려 있다. 온 가족이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는지. 지난 봄 읽었던 <한 지붕 북클럽>은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과 책을 읽고 토론한 내용이었다. 가족 간에 독서토론이라니! 정말 이런 가족이 있을까 싶었는데 저자인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선 북토크를 줌으로 직접 들으며 확인했다. 그 가족을 보고 부럽다 부럽다 했는데 부러운 가족이 추가되었다.


말로 하는 토론도 좋지만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의 모자처럼 글로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고 서간 문학 반열에 올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논지를 정제된 언어로 심도 깊게 드러낸다. 부모님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과 자식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부모의 태도, 그 기저에 사랑이 흐르고 있다. 모자간의 편지이기에 자칫 사변적으로 흘러갈 수 있으나 그들의 편지 속 대화는 오늘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문답으로 확장되는데 이 모자의 개인적인 편지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시중에 없지 않다. 그러나 너무 철학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어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현학적 메시지에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기에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다.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하는 과정이 조근조근 입말체로 펼쳐지고, 엄마는 서서히 아들의 논리에 스며든다. 물론 이 아들은 독자도 설득해버린다.


나는 이 책의 간단한 소개만 보고 서평단 도서로 신청했다. 결국 엄마가 아들에게 설득당할 거라고 예상하며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앞부분을 읽어나가면서 이순신의 전투를 다 아는 상태로 영화 <한산>을 보는 심정이었다. 그가 학익진으로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보며 짜릿하게 밀려오는 감동을 맛보았다. 나는 기대했다. 아들이 과연 엄마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소위 자 직업이라는 변호사 준비를 하던 아들이 그것을 관두고 누구나 손사래 치는 농부가 되겠다고 나서면 나는 뭐라고 할 것인가. 분명 농부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짚었으리라.


p.29


저는 인생을 시골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쓸지 스스로 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기피하는 시골이 오히려 기회의 땅이죠. 시골에서 활용될 훌륭한 달란트를 가졌고, 농부인 부모님을 뒀으며, 시골의 삶을 해봄직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변호사가 되겠다고 학원에 가서 쓰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p.35


도시에서 가끔씩 한번 오는 시골은 낭만도 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일 거야.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어. 촌에 땅은 많은데 사람이 적으니 도시에서의 알바 자리보다는 일자리가 많을 거라는 이야기 한 적 있지? 농사일은 농번기에 집중된다. 봄여름 내 자기 일을 다 치른 이후에나 주변을 살필 수 있는데, 한 마지기라도 밭을 일구는 사람은 일자리고 뭐고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단다. 또 여기저기 농지는 비싸져서 자기 땅 갖기 어려워. 그렇다고 남의 일만 거들자니 한철일 뿐이야. ‘일하는농민 자체를 늘리는 수를 내지 않고서 시골 일자리를 운운하는 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더구나. 그러니 시골 살이 이래저래 어렵다. 돈벌이에서의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않고서 내려온다는 아들을 말릴 수밖에 없네.


이 책의 엄마 조금숙씨는 이미 10년차 농부다. 충북 괴산에 터를 잡고 농사일에 온몸으로 부딪쳐 약간의 성공과 그보다 더 많은 실패를 했다. 10년의 과정을 몇 통의 편지 속에 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농사 한 번도 안 지어봤지만 알 것 같았다. 귀하디 귀한 아들이 그 어려운 직업에 굳이 발을 딛겠다는데 어찌 말리지 않을 수 있으랴. 나도 엄마이기 때문에 그 심정에 동감했다.


편지에서 드러나는 이 청년의 가치관에 독자들은 매료되리라 나는 감히 예상한다.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용감함 때문이라기보다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변호사의 면모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는 열정을 불태웠던 태도와 학원만 가면 머리가 아팠던 시절을 이제와 고백하고, 서울에서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새 차를 구매할 꿈에 부푼 친구를 속물이라고 치부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귀농생활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모습을 보면 뉘 집 아들인지 참 잘 컸다며 등 토닥여주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귀촌이나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다.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소일하듯 상추나 오이를 키우고 싶다는 이들이 읽는다면 농촌의 분위기와 현실, 농촌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뉴스에 간간이 나오는 성공한 청년 농부의 기사들은 주로 AI 기술을 활용했다거나 특수작물 재배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물론 그 뉴스만 보고 귀농을 감행할 리 없겠지만, 청년농부의 미래를 너무 장밋빛 포장지에 담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들이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맞닥뜨릴 어려움을 예습할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태도로 농촌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조언도 만날 수 있다.


p.154


노나메기정신이라고 들어봤니. 온몸의 힘을 박박 긁어낼 때 흘리는 박땀, 안간땀, 피땀, 그렇게 흘린 땀만큼 서로서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노나메기란다. 농사란 게 그렇더라. 꾀를 내어서 땀을 덜 흘리고 더 많은 열매가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는 애초 시작하면 안 되는 거지. 박땀 흘려가는 농부들을 보면서 나 혼자 뻔뻔치가 되면 안 되겠다매일같이 다짐해. 농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이 먼저 노나메기 정신을 익히고 왔으면 좋겠다 싶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기꺼이 땀 흘리고자 하는 마음은 꼭 익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p.193


관광지로서의 제주나 완주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곳들이라서 그런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찾는 거겠죠. 강아지를 대하는 태도, 도자기나 헝겊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 무엇 하나로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장소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귀농을 결정한 마당에 이제는 작게나마 농사를 짓더라도 어떻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농가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겠어요.



모친 조금숙씨가 농부 이전에 환경활동가로서 했던 일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아들 선무영씨가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농촌에서 이러이러한 활동을 꼭 하겠다고 엄마를 설득한 그 의지는 모두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조금숙씨가 아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지, 팥 나지는 않으니까.



리뷰가 너무 길어졌다. 마무리해야할 시점이 왔는데 아직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많고 더 알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보다 더 압축하여 맛깔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내 실력부족 탓이다. 그렇기에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아들 선무영씨의 생각과 이 가족의 글 솜씨를 더 알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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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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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팍 꽂혔다. <딜리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 소설인줄 뻔히 안다. 그래도 나는 원했다. 사라지게 해달라고! 내 손으로 못하니까. 꺼져 달라고 제발! 할 수 있다면 의뢰하고 싶었다. 그래, 알고 있다.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걸... 책으로라도 대리만족하고 싶어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작가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썼을지 궁금해 하며 가제본을 펼쳤다.

 

 

그런데! 심각한 오해였다. 제목만 보고 내 맘대로 생각했던 거다. 책엔 나처럼 불순한 의도로 의뢰하는 이는 없었다. 딜리터가 가장 빈번하게 하는 일은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딜리터는, 현실에서 말하자면 이른바 마이너스의 손이다. 어릴 때부터 손만 대면 물건이 사라져서 계속 찾는 일이 빈번했던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설마 나도 딜리터? 하면서 잠시 설렜을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거짓말처럼 술술 써내려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강치우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그가 내뱉는 말은 진짜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때가 많은데 자신이 딜리터라는 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소설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외에 여러 겹의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레이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층의 레이어로 이동 가능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딜리터이다. 고수 딜리터는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이동시킬 수 있는데 마술사들이 무대에 있던 사람이나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과 유사하다.

 

 

딜리터의 능력도 차이가 있다. 물건만 이동시키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범죄 현장을 정리하고 돈을 많이 버는 딜리터도 있다. 이동 능력은 없지만 다른 레이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픽토르도 있다. 이런 등장인물들과 실종자를 찾는 모임 회원들, 강치우 주변의 주요 인물 출판사 사장, 형사까지 가세해 소설을 이끌어간다. 시작은 강치우의 여자친구 소하윤의 실종사건이다. 처음에는 강치우가 참고인 정도로 조사를 받고, 형사와의 대화에서 빙빙 돌려 말하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소설 강치우가 하려는 일이 소하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작가가 창조한 것이므로 그것을 중심으로 소개하려니 줄거리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스러웠다. 소설 리뷰에서 줄거리를 자세히 쓰면 읽는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김이 새서 소설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저하시키게 된다. 반전이 있는 소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번 소설의 경우 실종된 소하윤이 살아 돌아올 지 여부와 강치우가 그의 능력으로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할지가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줄거리로 쓸 순 없다. 정말이지 맥 빠지는 일이 될터이니.

 

 

나는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평행우주 이론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보아왔는데 이 소설처럼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고 그곳으로 이동 가능한 존재들이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그곳으로 간 사람들이 꽤 평화로워 보였는데 그곳에 계속 머물 수도 돌아올 수도 있다는 설정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다하고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고? 현실이라는 지긋지긋하고 아수라장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것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강치우가 보는 책점이 흥미로웠다. 오늘의 운세처럼 가벼이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점이 강치우가 그날 겪게될 일의 결과와 비슷하게 펼쳐진다. 소설의 진행과 함께 계속 나오는 책점은 독자가 이어질 스토리를 예측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미스터리적 요소를 독자 스스로 증폭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한데 잘 꽂히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가 소설에서 책점을 본 책이 진짜 책을 사용한 것인지 소설가의 오롯한 창작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말고 옆에 있는 책을 집어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물론 소설 속 책점에 사용된 책과 같은 책이 있을거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강치우처럼 책점을 본 건 아니나 들춰보는 재미는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 이십여권을 몽땅 다 꺼내서 펼쳐보는 짓을 저질렀다.

 

 

처음 펼쳐본 책의 문장이 재미 있어서 인용한다.

 

[왼쪽 페이지]

어느 날 갑자기, 첫사랑이 이별을 통고하겠죠?


[오른쪽 페이지]

당신이 둔감하다고 여겨서 고민 끝에 헤어지자고 하는데, 그 고민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달리면, 얼마나 둔감해 보이겠습니까?

 


너무 신기했다. 처음 해봤는데 우연히 펼친 책의 좌우 내용이 자연스레 연결되다니! 그럼 왼쪽 첫 문장인 저 내용 이하의 왼쪽면의 내용은 다 뭐란 말인가? 저 두 문장만 보면 연애지침서 같지만 이 책은 일종의 철학서다. 물론 ‘OO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딜리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는 내용적 재미 뿐 아니라 작가가 소설 속에 장치해 둔 소소한 설정의 맛을 찾아내어 즐기는 재미도 있다. 그것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또 문장의 맛도 느낄 수 있는데 말장난 같이 툭툭 던져지는 대화 속 의미심장함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절묘한 비유들도 여럿 나오는데 글쓰기와 마약이 비슷하다는 내용에선 고개 끄덕였다. 글쓰기와 마약은 이렇게 비슷하단다.

 

첫째,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한 사람은 없다.

둘째, 한번 중독되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가상 세계에 빠져 산다.

셋째 손목과 팔목이 거덜난다.


 

나는 마약 경험은 없지만 글쓰기가 중독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게 2018년이니 4년째이다. 3년간은 강박적으로 매일 글을 썼고 작년부터 매일 쓰지는 못했으나 또 다른 강박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달하는 글을 쓰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글은 대부분 리뷰이다. 리뷰는 가상세계에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주 소재로 새롭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펼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난 4년간 서평단 활동을 하며 중독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었다. 글쓰기 중독의 장점은 이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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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쓰담이
유혜진 지음 / 여름아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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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잘 해야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의욕만 넘치는 신입사원에게 던지는 상사의 저 한마디는 냉정해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피드백이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결과지상주의의 한 단면이다. 현실에서 신입사원이 죽을똥 살똥 내달려서 나온 결과가 늘 좋기만 하던가. 잘 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노력한다. 열심히 한 결과가 좋게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개인에 따라 길수도 짧을 수도 있다.


뭐든 처음으로 경험하는 아이들은 어떨까. 처음 하는 어떤 시도에서 단박에 잘 하기란 쉽지 않다. 걸음마를 생각해보자. 무수한 시도 끝에, 발이 짱짱하게 땅을 딛게 되는 어떤 시점이 되어야 한 발 한 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이가 첫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와중에 양육자나 주위 어른으로부터 받는 긍정적 피드백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릴 때 부정적 피드백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긍정적이나 도리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무심코 하게 된다.


<나의 쓰담이>의 주인공 별이라는 4학년 여자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데 아직 서투르다. 제 안에서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감정의 변화를 잘 보지 못한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주위 친구나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법도 잘 모르겠다. 그런 별이에게 두려운 과제가 생겨버렸다. 마르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이어달리기 선수로 발탁된 것이다. 달리기를 못하기 때문에 안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담임 선생님과 엄마는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한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은 별이는 정말 열심히 한다.


동화의 시작 부분에서 쓰담이라는 캐릭터가 생성되는데 별이의 다른 자아나 마찬가지다.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별이 옆에서 계속 말을 하는, 별이 내면의 소리인 셈이다. 별이가 달리기를 잘 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정보를 모으고 달리기 비법을 배워 열심히 연습을 하는 동안 쓰담이는 부정적 피드백을 일삼는다. 운동회 때 달리지 못할 거라고, 총연습 때 지면 보영이가 대신 뽑힐 거라며. 보영이가 5학년 민재 오빠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 별이는 이제 달리기 잘 한다며, 보영이가 그럴 리 없다고, 쓰담이 넌 과거에서 왔냐고 되묻는다. 그런 말밖에 해주지 못하는 쓰담이도 괴롭긴 매한가지. 쓰담이는 감정 푸는 걸 도와준다고 했는데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별이는 총연습에서 열심히 뛰겠다고 의지를 다지지만 쓰담이는 넘어지라고 한다. 지는 것보다 그게 더 낫다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부정적 자아의 속삭임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질 것이다. 준비해온 어떤 일이 시작되기 전, 막상 열심히 준비했더라도 관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떤 핑계로 못한다고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째깍째깍 시계는 움직이고 결국은 그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총연습, 이어달리기 시간! 별이가 운동회에 4학년 대표로 출전했다면 좋았겠지만 쓰담이의 말대로 다 되어버린다. 별이는 열심히 달렸고,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알고 뿌듯했고, 민재 오빠의 격려까지 모두 좋았지만 보영이를 위시한 반 친구들에게서 원망의 말을 듣는다. 다 이겼는데 너 때문에 졌다고. 그리고 이어달리기 대표는 보영이에게로 넘어간다. 열심히 이렇다니 별이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어른들 때문이었다. 선생님도 엄마도 열심히 하라고 했지 않나, 이기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마침내 운동회날 별이는 자신의 감정을 선생님과 엄마 앞에 쏟아낸다.

혼자 열심히 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해서 했는데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선생님 눈치를 보며 그깟 이어달리기가 뭐라고하자 별이는 폭발하고 만다.


그깟 이어달리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엄마랑 선생님이 말한 가짜 열심히를 말하는 거야. 처음부터 이겨야 한다고 말했으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거야. 내 노력이 먼지처럼 사라졌어.”


별이에게 감정이입한 아이들은 별이를 응원했을 테고, 이어달리기에서 별이 팀이 이기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별이 대신 보영이로 주자를 바꿔버린 선생님이 원망스런 한편, 별이가 자신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어린이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이처럼 동화는 어린이들이 자신과 유사한 상황의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를 얻게 해준다. <나의 쓰담이>는 어린이들의 감정 관리에 관한 동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기계발서 같지만 동화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십분 공감할 책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들이 같이 읽고 아이들의 감정을 짚어주고 보살펴주면 더 좋겠다. 유혜진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어 썼다고 밝혔듯 별이를 통해 변화하는 어린이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어린이 시기는 있었다. 모든 것이 서투르지만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희망과 절망을 왔다갔다 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자녀에게, 제자에게,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미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면 빨리 사과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쉽지 않겠지만, 유혜진 작가처럼 책으로 풀어낼 수 없으니 얼른 사과하고 보듬어주면 어떨까. 그런 어른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유혜진 작가가 직접 그리고 쓴 이 책은 글밥이 그리 많지 않고 삽화로 들어가는 그림의 양은 많은 편이다. 초등 중학년 이상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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