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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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팍 꽂혔다. <딜리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 소설인줄 뻔히 안다. 그래도 나는 원했다. 사라지게 해달라고! 내 손으로 못하니까. 꺼져 달라고 제발! 할 수 있다면 의뢰하고 싶었다. 그래, 알고 있다.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걸... 책으로라도 대리만족하고 싶어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작가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썼을지 궁금해 하며 가제본을 펼쳤다.

 

 

그런데! 심각한 오해였다. 제목만 보고 내 맘대로 생각했던 거다. 책엔 나처럼 불순한 의도로 의뢰하는 이는 없었다. 딜리터가 가장 빈번하게 하는 일은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딜리터는, 현실에서 말하자면 이른바 마이너스의 손이다. 어릴 때부터 손만 대면 물건이 사라져서 계속 찾는 일이 빈번했던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설마 나도 딜리터? 하면서 잠시 설렜을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거짓말처럼 술술 써내려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강치우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그가 내뱉는 말은 진짜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때가 많은데 자신이 딜리터라는 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소설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외에 여러 겹의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레이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층의 레이어로 이동 가능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딜리터이다. 고수 딜리터는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이동시킬 수 있는데 마술사들이 무대에 있던 사람이나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과 유사하다.

 

 

딜리터의 능력도 차이가 있다. 물건만 이동시키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범죄 현장을 정리하고 돈을 많이 버는 딜리터도 있다. 이동 능력은 없지만 다른 레이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픽토르도 있다. 이런 등장인물들과 실종자를 찾는 모임 회원들, 강치우 주변의 주요 인물 출판사 사장, 형사까지 가세해 소설을 이끌어간다. 시작은 강치우의 여자친구 소하윤의 실종사건이다. 처음에는 강치우가 참고인 정도로 조사를 받고, 형사와의 대화에서 빙빙 돌려 말하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소설 강치우가 하려는 일이 소하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작가가 창조한 것이므로 그것을 중심으로 소개하려니 줄거리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스러웠다. 소설 리뷰에서 줄거리를 자세히 쓰면 읽는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김이 새서 소설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저하시키게 된다. 반전이 있는 소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번 소설의 경우 실종된 소하윤이 살아 돌아올 지 여부와 강치우가 그의 능력으로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할지가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줄거리로 쓸 순 없다. 정말이지 맥 빠지는 일이 될터이니.

 

 

나는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평행우주 이론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보아왔는데 이 소설처럼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고 그곳으로 이동 가능한 존재들이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그곳으로 간 사람들이 꽤 평화로워 보였는데 그곳에 계속 머물 수도 돌아올 수도 있다는 설정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다하고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고? 현실이라는 지긋지긋하고 아수라장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것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강치우가 보는 책점이 흥미로웠다. 오늘의 운세처럼 가벼이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점이 강치우가 그날 겪게될 일의 결과와 비슷하게 펼쳐진다. 소설의 진행과 함께 계속 나오는 책점은 독자가 이어질 스토리를 예측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미스터리적 요소를 독자 스스로 증폭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한데 잘 꽂히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가 소설에서 책점을 본 책이 진짜 책을 사용한 것인지 소설가의 오롯한 창작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말고 옆에 있는 책을 집어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물론 소설 속 책점에 사용된 책과 같은 책이 있을거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강치우처럼 책점을 본 건 아니나 들춰보는 재미는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 이십여권을 몽땅 다 꺼내서 펼쳐보는 짓을 저질렀다.

 

 

처음 펼쳐본 책의 문장이 재미 있어서 인용한다.

 

[왼쪽 페이지]

어느 날 갑자기, 첫사랑이 이별을 통고하겠죠?


[오른쪽 페이지]

당신이 둔감하다고 여겨서 고민 끝에 헤어지자고 하는데, 그 고민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달리면, 얼마나 둔감해 보이겠습니까?

 


너무 신기했다. 처음 해봤는데 우연히 펼친 책의 좌우 내용이 자연스레 연결되다니! 그럼 왼쪽 첫 문장인 저 내용 이하의 왼쪽면의 내용은 다 뭐란 말인가? 저 두 문장만 보면 연애지침서 같지만 이 책은 일종의 철학서다. 물론 ‘OO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딜리터:사라지게 해드립니다>는 내용적 재미 뿐 아니라 작가가 소설 속에 장치해 둔 소소한 설정의 맛을 찾아내어 즐기는 재미도 있다. 그것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또 문장의 맛도 느낄 수 있는데 말장난 같이 툭툭 던져지는 대화 속 의미심장함을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절묘한 비유들도 여럿 나오는데 글쓰기와 마약이 비슷하다는 내용에선 고개 끄덕였다. 글쓰기와 마약은 이렇게 비슷하단다.

 

첫째,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경험한 사람은 없다.

둘째, 한번 중독되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가상 세계에 빠져 산다.

셋째 손목과 팔목이 거덜난다.


 

나는 마약 경험은 없지만 글쓰기가 중독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게 2018년이니 4년째이다. 3년간은 강박적으로 매일 글을 썼고 작년부터 매일 쓰지는 못했으나 또 다른 강박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미달하는 글을 쓰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글은 대부분 리뷰이다. 리뷰는 가상세계에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주 소재로 새롭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펼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난 4년간 서평단 활동을 하며 중독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었다. 글쓰기 중독의 장점은 이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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