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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쓰담이
유혜진 지음 / 여름아이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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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잘 해야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의욕만 넘치는 신입사원에게 던지는 상사의 저 한마디는 냉정해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피드백이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결과지상주의의 한 단면이다. 현실에서 신입사원이 죽을똥 살똥 내달려서 나온 결과가 늘 좋기만 하던가. 잘 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노력한다. 열심히 한 결과가 좋게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개인에 따라 길수도 짧을 수도 있다.
뭐든 처음으로 경험하는 아이들은 어떨까. 처음 하는 어떤 시도에서 단박에 잘 하기란 쉽지 않다. 걸음마를 생각해보자. 무수한 시도 끝에, 발이 짱짱하게 땅을 딛게 되는 어떤 시점이 되어야 한 발 한 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이가 첫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와중에 양육자나 주위 어른으로부터 받는 긍정적 피드백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릴 때 부정적 피드백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긍정적이나 도리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무심코 하게 된다.
<나의 쓰담이>의 주인공 별이라는 4학년 여자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데 아직 서투르다. 제 안에서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감정의 변화를 잘 보지 못한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주위 친구나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법도 잘 모르겠다. 그런 별이에게 두려운 과제가 생겨버렸다. 마르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이어달리기 선수로 발탁된 것이다. 달리기를 못하기 때문에 안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담임 선생님과 엄마는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한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은 별이는 정말 열심히 한다.
동화의 시작 부분에서 ‘쓰담이’라는 캐릭터가 생성되는데 별이의 다른 자아나 마찬가지다.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별이 옆에서 계속 말을 하는, 별이 내면의 소리인 셈이다. 별이가 달리기를 잘 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정보를 모으고 달리기 비법을 배워 열심히 연습을 하는 동안 쓰담이는 부정적 피드백을 일삼는다. 운동회 때 달리지 못할 거라고, 총연습 때 지면 보영이가 대신 뽑힐 거라며. 보영이가 5학년 민재 오빠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 별이는 이제 달리기 잘 한다며, 보영이가 그럴 리 없다고, 쓰담이 넌 과거에서 왔냐고 되묻는다. 그런 말밖에 해주지 못하는 쓰담이도 괴롭긴 매한가지. 쓰담이는 감정 푸는 걸 도와준다고 했는데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별이는 총연습에서 열심히 뛰겠다고 의지를 다지지만 쓰담이는 넘어지라고 한다. 지는 것보다 그게 더 낫다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부정적 자아의 속삭임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질 것이다. 준비해온 어떤 일이 시작되기 전, 막상 열심히 준비했더라도 관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떤 핑계로 못한다고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째깍째깍 시계는 움직이고 결국은 그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총연습, 이어달리기 시간! 별이가 운동회에 4학년 대표로 출전했다면 좋았겠지만 쓰담이의 말대로 다 되어버린다. 별이는 열심히 달렸고,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알고 뿌듯했고, 민재 오빠의 격려까지 모두 좋았지만 보영이를 위시한 반 친구들에게서 원망의 말을 듣는다. 다 이겼는데 너 때문에 졌다고. 그리고 이어달리기 대표는 보영이에게로 넘어간다. 열심히 이렇다니 별이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어른들 때문이었다. 선생님도 엄마도 열심히 하라고 했지 않나, 이기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마침내 운동회날 별이는 자신의 감정을 선생님과 엄마 앞에 쏟아낸다.
‘혼자 열심히 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해서 했는데’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선생님 눈치를 보며 ‘그깟 이어달리기가 뭐라고’ 하자 별이는 폭발하고 만다.
“그깟 이어달리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엄마랑 선생님이 말한 가짜 열심히를 말하는 거야. 처음부터 이겨야 한다고 말했으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거야. 내 노력이 먼지처럼 사라졌어.”
별이에게 감정이입한 아이들은 별이를 응원했을 테고, 이어달리기에서 별이 팀이 이기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별이 대신 보영이로 주자를 바꿔버린 선생님이 원망스런 한편, 별이가 자신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어린이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이처럼 동화는 어린이들이 자신과 유사한 상황의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를 얻게 해준다. <나의 쓰담이>는 어린이들의 감정 관리에 관한 동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기계발서 같지만 동화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십분 공감할 책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들이 같이 읽고 아이들의 감정을 짚어주고 보살펴주면 더 좋겠다. 유혜진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어 썼다고 밝혔듯 별이를 통해 변화하는 어린이의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어린이 시기는 있었다. 모든 것이 서투르지만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희망과 절망을 왔다갔다 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자녀에게, 제자에게,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미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면 빨리 사과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쉽지 않겠지만, 유혜진 작가처럼 책으로 풀어낼 수 없으니 얼른 사과하고 보듬어주면 어떨까. 그런 어른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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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작가가 직접 그리고 쓴 이 책은 글밥이 그리 많지 않고 삽화로 들어가는 그림의 양은 많은 편이다. 초등 중학년 이상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