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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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동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려동물이 된 고양이들 덕분에 동물복지나 개공장 관련 책들을 읽게 되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들여다 볼 눈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식물에 관심이 생겼고 관련 도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애착가는 반려식물까지 생긴 건 아니나 그동안 식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다른 집들 마당에 수국은 저리 탐스렇게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심은 수국이 시들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최근 반려식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식물 관리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식물 관련 신간이 나오면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지만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새로운 정보를 어서 섭렵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자꾸 새 책을 사라고 부추기고 신간 서평단 모집에 자동적으로 신청서를 입력한다. <나의 초록 목록>은 김영사 서포터즈로 받은 책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식물학자가 전하는 우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가 지켜야 할 풀과 나무의 기록들이라는 소개를 보니 욕심이 동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가 처음 출간한 이 책의 저자 소개에는, ‘1년의 절반 이상은 전국 곳곳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로 살아간다. 식물 관련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고 되어 있다. 저자는 그동안 비무장지대나 산간, 무인도등 척박한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식물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냈다. 일반 독자가 이 책에 소개된 식물들을 얼마나 많이 알까? 나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고 그나마 안면 있는 식물은 10%도 안되었. 집에서 화분을 키우거나 마당에 식물을 심고 가꾸는 사람이라 해도 숲이나 해안가에 피어나 자라는 식물의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전문가가 소개하는 우리 산천에서 자라는 식물이야기다.


식물분류학 전문 서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을 소재로 하는 에세이이므로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발견한 식물을 쉬운 말로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을 시와 연결하기도 한다. 현장을 누비는 사람의 글이 투박할 거라는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문학적 표현들도 자주 등장한다. 모든 관심은 식물에 기울이고 전문서적만 읽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내 편견이었다. 아마 시집을 늘 끼고 사는 사람일 게다. 그렇지 않고는 식물을 보며 시를 떠올리기가 어디 쉬운가.


또 다른 편견 하나! 저자가 할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시골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만으로 나이가 지긋할 거라고 예상했다. 초등학교 때 솔이끼와 우산이끼가 수업준비물이었다고 하기에 더 그렇게 여겼다. 치우친 눈으로 보니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는데 삼십대라니! 놀라웠다. 연구하고 현장만 다녔을 것 같은데 문학과 함께 하며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저자가 소개한 식물들 중 이름과 모양을 알고 있는 식물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 동네 공터나 길가에도 흔히 피어나는 개망초다


꽃이 계란프라이 모양 같아서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소개한 부분을 살펴보면 저자의 글솜씨와 이 책의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귀화 식물은 죄가 없다라는 꼭지인데 시로 시작한다. ‘베트남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후기 시인의 가족 도감1”이라는 시를 그대로 옮긴다.

 

엄마는 귀화식물,

주로 시골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베트남,

겁이 많고

키가 작다

 

한국 전역의

산과 들에 피어나지만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꽃말은 안녕하세요

몸은 질기고

열매는 검붉다

 

가슴속 씨방에는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있다

 

자생식물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은 외래식물이며 외래식물 중 도입 시기가 오래되어 토착한 식물을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은행나무나 수양버들 외 개화기 이후 들어온 식물에 대한 시각이 곱지는 않은데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려한다.


대표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온 망초는 구한말 서방 문물과 함께 식물이 들어온 후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쩜 이름부터 멍에를 뒤집어 쓴 채 사람들에게 알려지다니! 망초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지 않고 마당이나 도로변 버려진 집처럼 인간의 활동이 빈번한 곳에 무리지어 산다. 이런 망초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 마당과 정원에 침입한 망초는 아무 죄가 없다. 인간에 의해 타국에서 건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망초가 유입된 역사와 이름의 유래를 읽다보니 서두에 소개한 시와 꼭 맞아 떨어진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시가 대변하는 듯하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세상에 시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맞춤하게 연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연구하는 식물에 대한 애정은 물론 시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저 꽃을 계란꽃으로 알고 있다가 망초앞에 접두어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를 붙여개망초가 진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충격을 받았고 한다. 계란꽃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며. 개항 이후 우리가 걸었던 많은 길에 개망초가 한들대며 피어있을 것이고 그 이름에서 우리 민족의 설움이 읽히기도 한다며 한반도의 고난과 역경을 지켜본 꽃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보듬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망초의 종류와 개망초에 대한 소개 후 꼭지의 제목에 걸맞게 다른 귀화식물에 대해서도 다룬다. 병충해에 강하다는 이유로 들여온 가시박때문에 우리종인 쥐방울덩굴이 사라졌고 "꼬리명주나비"도 같이 자취를 감췄다. 북한 식물학자들이 외래종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소개하면서 외래식물이 자국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을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꼭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식물은 아무 죄가 없다. 그들은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 있어서낯선 타국에서 더 강인하게 살아갈 뿐이다."


사실 나는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부터 걱정이 앞섰다. 저자가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식물을 자세히 다루고 친절하게 사진까지 첨부한 것을 보니 우려스러웠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훼손한다거나, 아니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내용을 읽으니 기막혔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보호종이 수두룩한데 눈 밝은 이들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벌써 식물들을 싹쓸어 가버렸다니 말이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꼭지의 제목은 나를 오해하게 했다. 워낙 시가 여러 번 언급되다보니 시를 낭독하면서 뭔가 알아냈다는 뜻 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낭독(狼毒)이라는 식물이 있다. 낭독은 뿌리를 약용하는 식물로 오랫동안 뿌리 채 뽑히기만 했을 뿐 보호받지는 못했으며 국내에서 멸종되었다고 추측했단다. 그런데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저자가 발견했다.


낭독과 비슷한 다른 식물들 사이에서 발견해 찍은 사진이고 낭독이 만병에 용한 악성이 뿌리에 농축되어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나는 저자가 낭독이 있는 곳을 찾아들어가는 곳 주변에 피어난 다른 식물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만화방창(萬化方暢: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처음 알았다. 뭉게뭉게 피어난 귀룽나무와 각시붓꽃과 홀아비꽃대, 그리고 치명적 향기를 내뿜는 분꽃나무까지. 하나도 모르는 이름의 식물들이지만 그 깊은 산 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물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 식물들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으로 많은 식물들을 소개받았다. 일독으로 그칠 책이 아니다. 가까이 두고 한 꼭지씩 읽어보거나 자연에서 만나게 될 식물들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이 책을 꺼내 다시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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