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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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하우스>는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메이(1951년생)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기자로 시작해 20대에 장편소설 <리포터>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 작품이 BBC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보폭을 넓혔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블랙 하우스>루이스 섬’ 3부작의 첫 작품이다.


내가 경험한 섬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 휘몰아치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깎아지른 절벽과 매서운 파도...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가혹한 삶까지도.”


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펼쳐든 독자들을 루이스 섬으로 단숨에 데려다 놓는다.


스코틀랜드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언덕 높은 곳에 중세 성이 있고, 성 뒤쪽으로 인도하는 카메라의 눈을 따라가면 성을 삼킬 듯한 흰 포말이 넘실대는 장면이 나타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장면은 으스스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그곳이 스코틀랜드가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루이스 섬이므로 스코틀랜드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육지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이라고 해봐야 고작 제주도 같은 관광지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섬 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위 인용한 작가의 표현처럼 위협적인 섬의 이미지에 섬칫 놀라면서도 인간과 새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활자를 읽는 게 분명한데도 루이스 섬의 척박한 날씨와 몰아치는 파도와 전반적으로 음침한 분위기, 비밀스러운 사람들의 표정, 가넷새 사냥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시나리오 작가로 오래 활약한 작가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소설이므로 타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소설도 어떨지 기대가 된다.


리뷰를 쓰자니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좀 막막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뒷 표지에 쓰인 공포의 패러다임을 재창조한 스코틀랜드 스릴러의 정수라는 문구를 넘어서거나 부연할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겠다. 어떻게 쓰면 이 글을 읽고 소설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순서대로 풀어내려고 한다. 주인공 핀 매클라우드 형사는 아들을 사고로 잃고 휴직 중이었는데 자신의 고향 루이스 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가라는 복귀명령을 받는다. 몇 달 전 그가 다루었던 살인사건과 유사하며 사망자가 핀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8년 간 찾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사를 하는 챕터에서는 3인칭으로, 핀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챕터는 1인칭 시점이며 두 장면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영화적 느낌을 준다.


핀과 절친 아슈타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만나는 마샬리라는 여자아이를 포함 다른 등장인물들 소개와 학교 생활이 앞부분에서 자세히 그려지는데다, 현재 시점의 핀이 수사를 위해 인물들(옛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들 역시 더디게 진행되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뒤에 가서 얼마나 큰 걸 터트리려고 이렇게 밑밥을 촘촘하게 까는 걸까 싶었다. 여기에 더해 그곳의 오래된 전통인 가넷새 사냥까지 들어오니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많이 펼쳐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루이스 섬에서 80km나 떨어진 안 스커라는 가넷새의 서식지에 가서 부화된 새끼 새를 사냥하는 장면과 폭풍우 몰아치는 섬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들 묘사가 소설 후반부까지 삽입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알게 되었다. 그 장면들이 없었다면 이 소설의 스릴러적 요소가 반감되었을 것이라는 걸. 가넷새 사냥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 사람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으로 사용한 걸까 의심했지만 그보다 더 주요한 쓰임, 아니 가넷새 사냥이 빠지면 이 소설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반부 즈음에 반전 내용이 하나 나오고 핀의 옛 친구들과의 사연도 까발려지면서 미스터리적 요소를 더해가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안 스커섬의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게 한다면 등장인물들 마다의 사연과 핀과 아슈타르, 마샬리의 삼각관계는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서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만들었다.


작가는 소설 중반이 넘도록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어쩌면 숨겨두었던 것들을 후반부에 휘몰아치듯 터트려버린다. 그러니 이 소설은 약간의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초반 진행이 조금 느리다고 덮어버리면 안 된다. 중반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삼류 막장이라며 성급히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 나 역시 이런 설정 식상한 걸 하며 살짝 실망했다. 그들(, 아슈타르, 마샬리)의 관계 설정을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비밀이 열리면서 그 이유를 수긍했다. 그러니 초중반을 잘 넘기면 후반부에 기대했던 스릴러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동네 개차반으로 이름 난 앵거스 존 맥리치(일명 에인절)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였고, 어릴 때부터 악동이었다는 자세한 서술에 독자 역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천하 무뢰한이라고 여겼던 에인절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작가가 인간의 다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인절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하다. 범인이 누군지 여기서 밝히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므로 그럴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살인자를 찾는 수사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주인공 핀의 과거 찾기이다. 간절히 떠나고 싶었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기어코 다시 발을 디디게 만든 운명이, 묻어두었던 그의 기억을 봉인해제 시킨다. 20여 년 전 핀이 죽을 뻔 했다 살아난 그날, ‘안 스커에 함께 했던 이들 모두 오랜 시간 입 다물고 있었던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 명을 위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 비밀을 통해 작가는 복잡 다단한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이면서 잔혹함을 칼처럼 휘두를 수도 잘 벼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편도 어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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