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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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러웠다. 몹시! 내가 꿈꿨던 편지가 이런 것이었다. 아들과 엄마가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드러내고, 다른 의견에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고 들어주며 서서히 받아들이는, 이런 거 말이다.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다.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10년차 농부 엄마와 농부가 되려고 하는 아들이 주고받은 마흔 한통의 편지 모음집이다.


부러운 거 하나 더! 이 책은 모자간의 편지뿐 아니라 아빠, , 며느리 편지까지 실려 있다. 온 가족이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쓰는지. 지난 봄 읽었던 <한 지붕 북클럽>은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과 책을 읽고 토론한 내용이었다. 가족 간에 독서토론이라니! 정말 이런 가족이 있을까 싶었는데 저자인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선 북토크를 줌으로 직접 들으며 확인했다. 그 가족을 보고 부럽다 부럽다 했는데 부러운 가족이 추가되었다.


말로 하는 토론도 좋지만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의 모자처럼 글로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책이고 서간 문학 반열에 올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논지를 정제된 언어로 심도 깊게 드러낸다. 부모님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과 자식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부모의 태도, 그 기저에 사랑이 흐르고 있다. 모자간의 편지이기에 자칫 사변적으로 흘러갈 수 있으나 그들의 편지 속 대화는 오늘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문답으로 확장되는데 이 모자의 개인적인 편지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시중에 없지 않다. 그러나 너무 철학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어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현학적 메시지에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기에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다.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하는 과정이 조근조근 입말체로 펼쳐지고, 엄마는 서서히 아들의 논리에 스며든다. 물론 이 아들은 독자도 설득해버린다.


나는 이 책의 간단한 소개만 보고 서평단 도서로 신청했다. 결국 엄마가 아들에게 설득당할 거라고 예상하며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앞부분을 읽어나가면서 이순신의 전투를 다 아는 상태로 영화 <한산>을 보는 심정이었다. 그가 학익진으로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보며 짜릿하게 밀려오는 감동을 맛보았다. 나는 기대했다. 아들이 과연 엄마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소위 자 직업이라는 변호사 준비를 하던 아들이 그것을 관두고 누구나 손사래 치는 농부가 되겠다고 나서면 나는 뭐라고 할 것인가. 분명 농부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짚었으리라.


p.29


저는 인생을 시골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쓸지 스스로 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기피하는 시골이 오히려 기회의 땅이죠. 시골에서 활용될 훌륭한 달란트를 가졌고, 농부인 부모님을 뒀으며, 시골의 삶을 해봄직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변호사가 되겠다고 학원에 가서 쓰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p.35


도시에서 가끔씩 한번 오는 시골은 낭만도 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일 거야.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어. 촌에 땅은 많은데 사람이 적으니 도시에서의 알바 자리보다는 일자리가 많을 거라는 이야기 한 적 있지? 농사일은 농번기에 집중된다. 봄여름 내 자기 일을 다 치른 이후에나 주변을 살필 수 있는데, 한 마지기라도 밭을 일구는 사람은 일자리고 뭐고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단다. 또 여기저기 농지는 비싸져서 자기 땅 갖기 어려워. 그렇다고 남의 일만 거들자니 한철일 뿐이야. ‘일하는농민 자체를 늘리는 수를 내지 않고서 시골 일자리를 운운하는 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더구나. 그러니 시골 살이 이래저래 어렵다. 돈벌이에서의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않고서 내려온다는 아들을 말릴 수밖에 없네.


이 책의 엄마 조금숙씨는 이미 10년차 농부다. 충북 괴산에 터를 잡고 농사일에 온몸으로 부딪쳐 약간의 성공과 그보다 더 많은 실패를 했다. 10년의 과정을 몇 통의 편지 속에 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농사 한 번도 안 지어봤지만 알 것 같았다. 귀하디 귀한 아들이 그 어려운 직업에 굳이 발을 딛겠다는데 어찌 말리지 않을 수 있으랴. 나도 엄마이기 때문에 그 심정에 동감했다.


편지에서 드러나는 이 청년의 가치관에 독자들은 매료되리라 나는 감히 예상한다.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용감함 때문이라기보다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변호사의 면모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는 열정을 불태웠던 태도와 학원만 가면 머리가 아팠던 시절을 이제와 고백하고, 서울에서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새 차를 구매할 꿈에 부푼 친구를 속물이라고 치부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귀농생활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모습을 보면 뉘 집 아들인지 참 잘 컸다며 등 토닥여주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귀촌이나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다.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소일하듯 상추나 오이를 키우고 싶다는 이들이 읽는다면 농촌의 분위기와 현실, 농촌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뉴스에 간간이 나오는 성공한 청년 농부의 기사들은 주로 AI 기술을 활용했다거나 특수작물 재배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물론 그 뉴스만 보고 귀농을 감행할 리 없겠지만, 청년농부의 미래를 너무 장밋빛 포장지에 담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들이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맞닥뜨릴 어려움을 예습할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태도로 농촌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조언도 만날 수 있다.


p.154


노나메기정신이라고 들어봤니. 온몸의 힘을 박박 긁어낼 때 흘리는 박땀, 안간땀, 피땀, 그렇게 흘린 땀만큼 서로서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노나메기란다. 농사란 게 그렇더라. 꾀를 내어서 땀을 덜 흘리고 더 많은 열매가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는 애초 시작하면 안 되는 거지. 박땀 흘려가는 농부들을 보면서 나 혼자 뻔뻔치가 되면 안 되겠다매일같이 다짐해. 농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이 먼저 노나메기 정신을 익히고 왔으면 좋겠다 싶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기꺼이 땀 흘리고자 하는 마음은 꼭 익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p.193


관광지로서의 제주나 완주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곳들이라서 그런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찾는 거겠죠. 강아지를 대하는 태도, 도자기나 헝겊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 무엇 하나로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장소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귀농을 결정한 마당에 이제는 작게나마 농사를 짓더라도 어떻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농가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겠어요.



모친 조금숙씨가 농부 이전에 환경활동가로서 했던 일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아들 선무영씨가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농촌에서 이러이러한 활동을 꼭 하겠다고 엄마를 설득한 그 의지는 모두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조금숙씨가 아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지, 팥 나지는 않으니까.



리뷰가 너무 길어졌다. 마무리해야할 시점이 왔는데 아직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많고 더 알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보다 더 압축하여 맛깔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내 실력부족 탓이다. 그렇기에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아들 선무영씨의 생각과 이 가족의 글 솜씨를 더 알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라.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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