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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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단어는 몇개나 될까?  금방 답해보라고 하면 서너개 이상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보통 '좋다''싫다' 이거나 긍정표현 앞에 '안'을 붙여서 부정표현을 하는등 단순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 박홍순은 <감정의 인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기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감정과 은밀한 만남을 위한 적절한 안내자로 '자화상'과 '소설'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감정은 모두 18개다. 이것을 6개씩 묶어 3부로 나누어 놓았다.
1부 숨겨진 감정을 만나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2부 새로운 감정을 찾다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3부 뒤엉킨 감정을 보듬다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

이렇게 18개의 감정이니 자화상, 소설도 각각 18개씩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화가 18명과 소설가 18명을 소개받는 셈이다. 그림과 소설이 아니라 굳이 화가와 소설가라고 한 이유는,  자화상을 소개할 때 작가의 생애나 작품세계, 또 다른 자화상이나 그림들을 풀어내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한 화가에 대해 알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주제 감정과 어울리는 소설을 소개하는데 분량은 그림쪽이 더 길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왠지 교양이 내면에 쌓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다 알만한 대중적 화가들로 소개한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처음 듣는 화가도 있었고 소설가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 책 쫌 읽었네~~' 했는데 모르는 작가 이름들을 보고 꼬리 바로 내렸다.

하지만!!
소개할 두 가지 감정은 아는 작가로 골랐다~~ 감정보다는 아는 사람 이름이 더 눈에 들어왔고 반가웠다는거!!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사람은 아는 노래만 계속 듣는다고~ 잘 모르는 클래식 음악 들으면 졸게 되듯, 나도 아는 화가의 글을 읽다보니 더 재미있더라는...
그러면!!
"책 열었더니 죄 모르는 사람투성인데요?" 이렇다하더라도 걱정마시라~~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읽다보면 교양이 쑤~~욱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울분 : 아르테미시아, 복수를 승화시키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7세기에 드물게 직업화가였다. 그런데 그림을 시작하기전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억울한 재판이 벌어지고 결혼을 해서도 고통스런 삶이 이어진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약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항거하고자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 그녀의 눈빛은 강렬하고 몸짓도 단호하다.

울분의 또다른 주인공은 '테스'다. 어여쁘고 착한 테스는 집안을 돕기 위해 부잣집에 일하러갔다가 그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비난한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울분이 솟구칠밖에... 두번째 울분은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 때문! 테스가 과거를 고백하자 자신은 방탕하게 생활했으면서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떠난다. 두 여성은 여성이라서 당해야했던 불합리한 처사에 울분을 토했고 같은 여자로써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 열망 : 이쾌대, 미래를 품다.
3년전 이쾌대를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다녀와서 알게된 매력적인 화가를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으로서 서양미술을 하는 이쾌대에게서 열망을 보았다. 그의 작품 곳곳에 암담한 민족의 상황을 고민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해방에 대한 열망이 묻어난다. 작품 "상황"에도 고통받는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이 있다.

소설 <인간문제>의 작가 강경애도 친일파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농민의 삶을 주목한다. 항일의식을 가지고 있던 청년 첫째와 신철의 삶을 비교한다. 노동쟁의  주도혐의로 체포된 후, 신철은 전향하고 지주집안 딸과 결혼하면서 저항을 멈춘다. 하지만 첫째는 식민지의 현실과 약자의 고통을 해결하기위한 고민에 빠진다. 자신같은 육체노동을 하는 민중들이 해결주체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이쾌대와 첫째의 유사성을 찾아낸다.

"이쾌대의 열망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단순한 반발을 넘어선다. 식민지라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1차적 반발을 넘어 아직 맹위를 떨치는 전근대적•봉건적 잔재에 대한 저항, 나아가서는 현실에서 민중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출발하는 계급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흡수한 열망을 회화에 담아내려 한다. "

이 책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펴보고  같은 감정을 화가랑 소설가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확인하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어쩜 진짜로 자신의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지도~~ '난 더 똑똑해져야겠다~'싶은 마음이 든다면, 책 속의 화가나 소설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보면 된다. 그야말로 확장독서로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면 자화상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자화상을 직접 그리게 될 지 누가 알겠나.

'아아~~ 공부느낌 싫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도 된다. 어디가서 미술에 대해 아는 척 좀 해야할 때, 속성으로 교양 장착하기에 필수템이다. 어떤식으로 써먹든 문화예술역사영역 지식넓히기에 유용한 책이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하게 즐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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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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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여겼던 외할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은 충격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은 견뎌내기 어려운 일이다. 엄마보다도 더 살뜰하게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학교 가기 싫고 살기도 싫다며 울고불고 했다. 엄마가 훨씬 힘들었을텐데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댔었다. 안정적인 심리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디 블룸의 소설 <호랑이의 눈>의 주인공 데이비도 총기사건으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현장까지 목격하게 되어 큰 충격에 빠진다. 이 소설은 총격으로 아빠를 잃은 16살 데이비가 상실의 아픔을 담담히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소설은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뭔가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지기에는 첫 사건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일상이란 것이 친구가 제일 중요하고,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일들로 키득거리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부모와 마찰도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일상들이 소소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읽으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시작 이후부터의 내용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느 청소년 소설처럼 성장도 들어있지만 그 나이대에 견뎌내기 힘든 상실의 고통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과해 냄으로서 한 뼘 더 성숙해진 데이비의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청소년 독자도 주인공과 함께 통과의례를 무사히 지나왔다는 안도감을 가지도록 해준다.

데이비네는 살림집이 붙어있는 가게에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남동생 세식구는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힘겨워지게 된다. 아빠의 누나인 고모와 고모부가 사는 곳으로 잠시 쉬러가게 되는데 그것이 예상보다 길어진다. 데이비는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그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겪으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제목 <호랑이의 눈>은 협곡에서 우연히 만난 울프가 지어준 별명이다. 자신을 울프라고 소개한 마틴에게 데이비는 타이거라고 즉흥적으로 말한다. 마틴은 데이비의 눈이 빛에 따라 금색이었다가 갈색이었다가 하며 변하는 '호랑이의 눈'같다고 말하고 데이비는 그 별명을 마음에 들어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을 해칠까봐 두려워했지만 물도 얻어 마시고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협곡을 나오게 된다. 어찌보면 데이비는 울프를 만난 이후부터 자신을 스스로 챙기고 당당하게 의사표현도 하는 아이로 서서히 바뀌게 된게 아닌가 싶다. 아빠의 상실로도 이미 견디기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에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내기란 얼마나 힘든일이겠는가.

게다가 데이비의 엄마는 수동적이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처럼 묘사된다. 물론 남편의 죽음을 금방 툭툭 털고 일어서기란 어렵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독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엄마는 그렇게 비쳐지고 수용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고모부가 데이비 부모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을 때 그녀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바락바락 대들며 악을 쓰다가 결국 고모부에게 뺨을 맞고 만다. 그녀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바로 고모부다.
고모부는 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세상은 위험하니까 그에 대비해야 한다며 항상 차에 총을 싣고 다니고, 인종과 문화가 다른 이들을 무턱대고 경계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비가 하려는 일은 무조건 위험하니 하지말라며 간섭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스키는 타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배우지 말라고 하고 운전도 아직 어리니 졸업반이 되면 면허증을 따라고 한다. 이런 꽉 막히고 이중적인 태도를 데이비는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아빠였다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도록 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이 없는 고모부는 가장을 잃은 조카에게 아빠 노릇을 해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모네의 도움으로 엄마는 일자리를 구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데 데이비 눈에는 못생긴 남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변해가는 엄마가 너무 싫은 거다. 다른 남자와 만나며 점차 원래의 엄마 모습을 되찾는 것도. 하지만 마지막에 엄마의 결정으로 세 식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엄마도 데이비도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살던 집에 다시 가서 살지는 못하지만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고향으로 돌아가면 이제 세 식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한편 타이거와 울프는 헤어진 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울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씀으로써 자신이 이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그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p.226 "우리는 모두 각자의 두려움에 맞서야 하고, 두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험을 할 것인가, 두려움에 갇힐 것인가."

 

 둘 다 아빠를 잃은 상처가 있었기에 쉽게 교감할 수 있었다. 비록 재회없이 소설이 끝나게 되지만 독자는 그들이 언젠간 다시 만날 것이란 뒷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중에 데이비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타인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다. 허나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선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감정의 급변을 겪는 청소년 시기에 읽으면 좋겠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자신에게 다가온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배우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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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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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했다!!
청량리 창녀촌에서 당할뻔 한 일.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다음날 새벽에 목격한
생리하는 창녀의 고통.
뭐지?? 이 사람??

사진과 글이 함께 들어있는 여행에세이를 좋아한다. 언젠간 나도 써보고 싶다. 사진여행기의 전설과도 같은 후지와라신야의 책이 재출간되었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다. 목차를 보니 12장에 한반도! 맨 먼저 읽었다. 그런데 과히 기분이 좋지 않는거다. 계속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럼 사진부터 먼저 보자 싶었다.



희미한 듯 강렬한!
흔들리는 듯 또렷한!
촌스러운 듯 화려한!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였다.

 

아, 이 사람 사진가였지...
80년에서 81년까지 400여 일에 거쳐 여행하고 촬영한 아시아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풀어놓은걸까? 40여 년 전, 아시아를 여행하며 쓴 글이 지금, 어떤 감흥을 줄까? 철지난 사진첩 열어보며 '그땐 그랬지' 로 급마무리 되면 어쩌나 저어되는 마음이 있었다.

강렬한 사진을 모두 본 후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고국 일본을 제외하고 마지막 여정의 한국을 먼저 읽었으니 그럼 거꾸로 읽어보자 싶었다. 나는 작가의 코스와 역순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거다!!

도시별로 가장 사람이 많고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번화가나 시장, 식당, 혹은 창녀촌을 찾아다니고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하고픈대로 행동에 옮긴다. 예컨대 이럴 정도다. 터키에서 본 창녀사진의 실제 모델을 찾아서 이미 지나왔던 곳(무려 450km)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물어물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가 있는 곳 근처까지 갔으나 실체와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녀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죽음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실은 남자였던 것!

티베트 심산의 협곡 속 절에서 보낸 21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휴대폰도, 길찾기 앱도 없던 시절! 그저 버스기사가 알려준 간단한 설명만으로 찾아들어간 곳.
작가는 그 곳에서 의도치 않게 단식을 하다가 이런 낙서를 썼다.
"밥을 먹으며 자살을 생각했다"
그 곳 스님들이 먹는 음식을 그는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음식설명을 읽어보면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이런 음식들을 역겨워하다가 엿새째 날 혀의 혁명을 경험한다. 갑자기 맛이 느껴지며 맛있었다고!! 2주일쯤 지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게 되었단다. 그 산사에서 적응되는 인간, 유혹당하는 인간을 경험하고 떠나오던 날 노승의 사진을 찍게 된다. 노승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듯한 순간을 포착하려 카메라를 든 것이다. "노승의 미소는 무섭도록 조용히" 자신을 허용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을 사람들도 그 미소를 꼭 보길 권한다.

그의 글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피' 그리고? '냄새'이다. 물론 사진가이기에 색감도 중요하지만 방문한 곳, 만나는 사람들은 다 달라도 그가 잡아낸 것은 그 곳만의 독특한 냄새이고, 피로 연결된다.

 

<이스탄불, p45>

무르익고 부패하고 도시나 대지의 냄새와 혼동될 만큼 발효되어 마침내 도시의 냄새, 천지의 냄새가 되어버리는 그 뻔뻔하고 유들유들한 냄새. 이것이 동양의 냄새일까? ...... 여자가 짐승처럼 킁킁대며 몸을 뒤척였다. 영문 모를 냄새의 씨앗들이 꿈틀거린다. 그 때 문득 머나먼 이국의 하늘과 한 줄기 피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작가가 여행한 반대의 코스를 돌아 일본에 당도했다. 400일의 기간을 압축하여 며칠만에, 그것도 37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왔다. 이제, 이 책을 재출간한 이유를 알겠다. 그가 쓴 글은 시공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본능에 대한 통찰, 동양의 종교들에 대한 비교와 사색, 그리고 다시 '나'와 조국에 대한 고뇌에까지 이른다.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 아니겠는가.


<동양방랑>은 사진 찍고 글쓰기를,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한 번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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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 소심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 순무의 묘생 일기
윤다솜 지음 / 북클라우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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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sns냥스타는 '히끄'였다. 제주도 게하냥 히끄는 히끄무레 해서 히끄다. 그런데 히끄랑 비스무리하게 허연 '순무'라는 냥스타도 있다는 거다. 그 순무가 주인공인 에세이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를 받았다.

 표지를 보니 음... 올화이트으~~가 아니다? 얼굴에 누런색이 쪼금~ 앗, 그런데 내가 너무나 키우고 싶어하는 스코티시폴드종이다. 홍홍홍 

1장 들어가자마자 심장 저격이다!

 빨려들 것 같은 하늘색 눈동자, 스타들의 기본인 45도 얼짱 각도, 깨물어 보고 싶은 찹쌀떡, 부농부농 젤리까지!! 얜 모든 걸 다 갖췄구나~~ 아, 나도 얼른 요런 냥이 데려오고 싶닷!!

 순무네 엄빠는 순무가 아들이다. 결혼 후 아기는 갖지 않겠다던 이들이 5개월짜리 아깽이를 데려오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의 절대 매력은 순무의 사진이다. 일반인이 찍었다고 하기엔 놀랄 정도다. 절묘한 장면, 놀라운 포즈, 기막힌 각도로 전문가 뺨치는 작품들이라서 사진만 보고 있어도 마냥 좋고 입이 절로 헤벌쭉한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관련 에세이가 나왔다하면 사보는 편이다. 이 책은 사서 읽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사진 못지않은 미덕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처음 키우게 되며 겪는 초보 집사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친절하게 펼쳐진다. 고양이 처음 키우게 될 사람들이 미리 읽어보면 꽤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스코티시폴드의 슬픈 사연, 털과 함께 살아야하는 숙명, 순무에게 간호 받고 치유받은 일 등등~ 일상이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순무의 성격이 까칠한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적응하고 맞춰가는 그런 아이라는 것이다. 그걸 순무네 엄마아빠도 맞춰주고 지켜보며 살아간다. 그렇게 그렇게, 세가족은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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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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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출판사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던 나는 4년전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면서 친정가족들로부터 이상한 눈빛을 받게 되었다. 최근엔 "비글구조협회" 라는 카페에 가입해서 실험동물들과 유기견의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프롤로그를 읽고 일단 책을 덮었다. 몇 해 전 ebs에서 본 프로그램의 영상이 떠오르면서 냄새까지도 같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 책이 르포라고 했는데 이 작가는?? 하며 작가 프로필을 보니 소설가였다. 아 그래서...

 

 1챕터 '어떤 시작'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왜 하려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나오게 될 인터뷰한 이들과의 첫만남, 첫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맛보기 정도인데 뒤로 갈수록 읽기가 힘겨워졌다. 어떻게 이 모든 사례를 취재하고 글로 다 써냈는지 놀랍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었다.

 

"어쩌라고? 그것들은 동물이잖아." 타자의 고통은 언제나 추상적이다. 동물이 겪는 고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발휘하든 하지 않든 그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챕터 '새끼 빼는 기계들'은 번식장과 경매장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와 인터뷰한 이들을 보니 한결같이 타 존재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인 것 같다. 이 챕터에는 애견미용사, 번식업자, 유기견보호소 소장이 나오는데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되지만, 개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며 못 본체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허술하고 모순된지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더더욱 개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고 개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다. 강아지들이 경매장에서 등급별로 경매 처리되고 높은 값을 받기 위해서는 일찍 어미와 떨어져야만 한다. 그런  강아지들이 펫숍 윈도우에 장식된다. 읽을수록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 쳐지고 법을 바꿔야하는 국회는 뭐하나 싶어 분통이 터졌다.

 

 3챕터 '죄 없는 사형수와 무기수들'은 공설 보호소와 사설 보호소에 대한 이야기다.

 

"정부예요, 정부. 나라에서 제대로 된 동물 관련법을 만들지 않아서 생기는 일을 힘없는 개인이 독박쓰고 감당하는 거에요."

 

 "단지 애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우리 모두 유기견을 살리고 싶어서 구하잖아. 그런데 기껏 살려서 감옥살이 시키면서 뭣하러 구하는 거야?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어디 있어? 안락사 없고 평생 굶주릴 걱정 없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사람이면 자기가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데 죽임당하지 않고 밥 굶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할거야? 왜 얘들한테는 밥만 먹고 살라고 해? 왜 그거면 충분하다고 해?"

 

 공설과 사설보호소 실태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품종을 만들기 위해 혼종을 한 후 근친교배를 수십세대에 거쳐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개들을 '품종견'이라 부르며 비싼 값에 팔고 그 외의'믹스견'이라 불리는 개들은 키우다  버려지거나 잡아먹힌다.

 

 4챕터 '쓸모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은 개농장과 개시장 도살장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때는 몹시 불편하다. 그 장소들의 적나라한 묘사는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동안 쟁점이 되었던 개의 식용이 과연 문화적 차이에 대한 논쟁뿐인가, 개식용을 합법화하는 것만이 대안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또한 우리가 마구 뒤섞어 사용하고 있 용어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덕이라는 것도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가깝냐 안 가깝냐, 나와 함께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도덕이 뭐 대단한 양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이토록 이기적인 '나'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은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에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5챕터 '어떤 응답'은 작가 개인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와 왜 개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을 포함한 동물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생명을 얼마나 싸구려 물건처럼 취급해왔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스템 안에서 동물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이야기하는 일, 그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질문하는 일이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는 아무 자격도 필요치 않다며, 미코라는 개가 자신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기에 자격없어도 이 책으로 답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의 이 책이, 나 개인이 하는 작은 행동이 거대한 시스템에 작은 변화의 물꼬를 트는데 시작이 되길 바라며 나는 무엇을 할지 비장한 각오를 하다가... 박준시인의 추천의 글을 읽으며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옆집 사람들의 보신탕이 되고 말았을 그 비글, 누피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글을 키우진 않고 있지만 약 4개월간 비글구조네트워크 카페를 들락거리며 만난 비글들의 그 촉촉한 눈망울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이번 달 애들 사료값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네... 얼른 송금해야겠다. 그리고 동물들의 고통을 볼모로 영위하고 있는 내 생활을 돌아보며 자격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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