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눈 창비청소년문학 84
주디 블룸 지음, 안신혜 옮김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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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여겼던 외할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은 충격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은 견뎌내기 어려운 일이다. 엄마보다도 더 살뜰하게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학교 가기 싫고 살기도 싫다며 울고불고 했다. 엄마가 훨씬 힘들었을텐데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댔었다. 안정적인 심리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디 블룸의 소설 <호랑이의 눈>의 주인공 데이비도 총기사건으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 현장까지 목격하게 되어 큰 충격에 빠진다. 이 소설은 총격으로 아빠를 잃은 16살 데이비가 상실의 아픔을 담담히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소설은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뭔가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지기에는 첫 사건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일상이란 것이 친구가 제일 중요하고,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일들로 키득거리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부모와 마찰도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일상들이 소소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읽으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시작 이후부터의 내용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느 청소년 소설처럼 성장도 들어있지만 그 나이대에 견뎌내기 힘든 상실의 고통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과해 냄으로서 한 뼘 더 성숙해진 데이비의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청소년 독자도 주인공과 함께 통과의례를 무사히 지나왔다는 안도감을 가지도록 해준다.

데이비네는 살림집이 붙어있는 가게에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남동생 세식구는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힘겨워지게 된다. 아빠의 누나인 고모와 고모부가 사는 곳으로 잠시 쉬러가게 되는데 그것이 예상보다 길어진다. 데이비는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그 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겪으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제목 <호랑이의 눈>은 협곡에서 우연히 만난 울프가 지어준 별명이다. 자신을 울프라고 소개한 마틴에게 데이비는 타이거라고 즉흥적으로 말한다. 마틴은 데이비의 눈이 빛에 따라 금색이었다가 갈색이었다가 하며 변하는 '호랑이의 눈'같다고 말하고 데이비는 그 별명을 마음에 들어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을 해칠까봐 두려워했지만 물도 얻어 마시고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협곡을 나오게 된다. 어찌보면 데이비는 울프를 만난 이후부터 자신을 스스로 챙기고 당당하게 의사표현도 하는 아이로 서서히 바뀌게 된게 아닌가 싶다. 아빠의 상실로도 이미 견디기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에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내기란 얼마나 힘든일이겠는가.

게다가 데이비의 엄마는 수동적이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처럼 묘사된다. 물론 남편의 죽음을 금방 툭툭 털고 일어서기란 어렵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독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엄마는 그렇게 비쳐지고 수용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고모부가 데이비 부모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을 때 그녀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바락바락 대들며 악을 쓰다가 결국 고모부에게 뺨을 맞고 만다. 그녀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바로 고모부다.
고모부는 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세상은 위험하니까 그에 대비해야 한다며 항상 차에 총을 싣고 다니고, 인종과 문화가 다른 이들을 무턱대고 경계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비가 하려는 일은 무조건 위험하니 하지말라며 간섭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스키는 타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배우지 말라고 하고 운전도 아직 어리니 졸업반이 되면 면허증을 따라고 한다. 이런 꽉 막히고 이중적인 태도를 데이비는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아빠였다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도록 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이 없는 고모부는 가장을 잃은 조카에게 아빠 노릇을 해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모네의 도움으로 엄마는 일자리를 구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데 데이비 눈에는 못생긴 남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변해가는 엄마가 너무 싫은 거다. 다른 남자와 만나며 점차 원래의 엄마 모습을 되찾는 것도. 하지만 마지막에 엄마의 결정으로 세 식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엄마도 데이비도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살던 집에 다시 가서 살지는 못하지만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고향으로 돌아가면 이제 세 식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한편 타이거와 울프는 헤어진 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울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씀으로써 자신이 이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그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p.226 "우리는 모두 각자의 두려움에 맞서야 하고, 두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험을 할 것인가, 두려움에 갇힐 것인가."

 

 둘 다 아빠를 잃은 상처가 있었기에 쉽게 교감할 수 있었다. 비록 재회없이 소설이 끝나게 되지만 독자는 그들이 언젠간 다시 만날 것이란 뒷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중에 데이비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타인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다. 허나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선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감정의 급변을 겪는 청소년 시기에 읽으면 좋겠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자신에게 다가온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배우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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