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평점 :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단어는 몇개나 될까? 금방 답해보라고 하면 서너개 이상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보통 '좋다''싫다' 이거나 긍정표현 앞에 '안'을 붙여서 부정표현을 하는등 단순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 박홍순은 <감정의 인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기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감정과 은밀한 만남을 위한 적절한 안내자로 '자화상'과 '소설'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감정은 모두 18개다. 이것을 6개씩 묶어 3부로 나누어 놓았다.
1부 숨겨진 감정을 만나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2부 새로운 감정을 찾다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3부 뒤엉킨 감정을 보듬다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
이렇게 18개의 감정이니 자화상, 소설도 각각 18개씩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화가 18명과 소설가 18명을 소개받는 셈이다. 그림과 소설이 아니라 굳이 화가와 소설가라고 한 이유는, 자화상을 소개할 때 작가의 생애나 작품세계, 또 다른 자화상이나 그림들을 풀어내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한 화가에 대해 알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주제 감정과 어울리는 소설을 소개하는데 분량은 그림쪽이 더 길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왠지 교양이 내면에 쌓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다 알만한 대중적 화가들로 소개한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처음 듣는 화가도 있었고 소설가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다. '나 책 쫌 읽었네~~' 했는데 모르는 작가 이름들을 보고 꼬리 바로 내렸다.
하지만!!
소개할 두 가지 감정은 아는 작가로 골랐다~~ 감정보다는 아는 사람 이름이 더 눈에 들어왔고 반가웠다는거!!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사람은 아는 노래만 계속 듣는다고~ 잘 모르는 클래식 음악 들으면 졸게 되듯, 나도 아는 화가의 글을 읽다보니 더 재미있더라는...
그러면!!
"책 열었더니 죄 모르는 사람투성인데요?" 이렇다하더라도 걱정마시라~~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읽다보면 교양이 쑤~~욱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울분 : 아르테미시아, 복수를 승화시키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7세기에 드물게 직업화가였다. 그런데 그림을 시작하기전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억울한 재판이 벌어지고 결혼을 해서도 고통스런 삶이 이어진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약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항거하고자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 그녀의 눈빛은 강렬하고 몸짓도 단호하다.
울분의 또다른 주인공은 '테스'다. 어여쁘고 착한 테스는 집안을 돕기 위해 부잣집에 일하러갔다가 그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비난한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울분이 솟구칠밖에... 두번째 울분은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 때문! 테스가 과거를 고백하자 자신은 방탕하게 생활했으면서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떠난다. 두 여성은 여성이라서 당해야했던 불합리한 처사에 울분을 토했고 같은 여자로써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 열망 : 이쾌대, 미래를 품다.
3년전 이쾌대를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다녀와서 알게된 매력적인 화가를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으로서 서양미술을 하는 이쾌대에게서 열망을 보았다. 그의 작품 곳곳에 암담한 민족의 상황을 고민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해방에 대한 열망이 묻어난다. 작품 "상황"에도 고통받는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이 있다.
소설 <인간문제>의 작가 강경애도 친일파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농민의 삶을 주목한다. 항일의식을 가지고 있던 청년 첫째와 신철의 삶을 비교한다. 노동쟁의 주도혐의로 체포된 후, 신철은 전향하고 지주집안 딸과 결혼하면서 저항을 멈춘다. 하지만 첫째는 식민지의 현실과 약자의 고통을 해결하기위한 고민에 빠진다. 자신같은 육체노동을 하는 민중들이 해결주체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이쾌대와 첫째의 유사성을 찾아낸다.
"이쾌대의 열망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단순한 반발을 넘어선다. 식민지라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1차적 반발을 넘어 아직 맹위를 떨치는 전근대적•봉건적 잔재에 대한 저항, 나아가서는 현실에서 민중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출발하는 계급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흡수한 열망을 회화에 담아내려 한다. "
이 책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펴보고 같은 감정을 화가랑 소설가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확인하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어쩜 진짜로 자신의 감정과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지도~~ '난 더 똑똑해져야겠다~'싶은 마음이 든다면, 책 속의 화가나 소설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보면 된다. 그야말로 확장독서로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면 자화상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자화상을 직접 그리게 될 지 누가 알겠나.
'아아~~ 공부느낌 싫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도 된다. 어디가서 미술에 대해 아는 척 좀 해야할 때, 속성으로 교양 장착하기에 필수템이다. 어떤식으로 써먹든 문화예술역사영역 지식넓히기에 유용한 책이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하게 즐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