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의 사회 사상
발터 리제 쉐퍼 지음, 이남복 옮김 / 백의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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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법론은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학문적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7면)




2. 폐쇄 체계들은 직접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구조적 연계를 통하여 외부세계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6면)




3.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이행되는 동안 문제의 형식은 필연적으로 특수한 방식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17면)




4. 체계 이론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7면)




5. 그러나 “철학적 청중을 위한 눈높이는 사회학자에게는 너무 높다.” (18면)




6. 루만은 자기 관찰의 업무를 2차적 질서의 관찰이라는 측면으로 옮긴다는 급진적 구성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20면)




7. 그러나 기능 체계의 강점은 바로 끊임없는 보편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이제 사회의 총체적 합리성이라는 이상은 과거의 지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고, “문자 그대로의 유토피아”로 전락하게 된다. (22면)




8. 하버마스와 달리, 루만은 처음부터 합리성의 요구를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개념으로 구성하길 피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세 가지 선택, 즉 정보, 전달과 이해의 종합이다. 따라서 루만에게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전달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진화적으로 발전되는 선택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22면)




9. 시대에 뒤쳐진 사회학의 형식은 통합이 해체보다 낫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통합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루만에게 있어서 갈등이란 바로 부분 체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통합하려고 한 결과일 수 있다. 차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형성되기보다 오히려 차이를 없애려고 하는 시도가 곧바로 투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차라리 성공적인 탈분화 과정, 즉 부분 체계들의 상대적 관계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루만의 진단에 따르면, 고전 사회학자의 견해와는 달리, 근대 사회는 “지나치게 통합되어 위태롭게 되었다.” (26, 27면)




10. 그는 분화/통합의 도식을 자동 생산과 구조적 연계의 차이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28면)




11. 사회적 자기 기술이라는 분석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루만의 지식 사회학은 그에 경쟁할 만한 이론이 없을 정도로 최고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35면)




12. 또한 근대는 아직도 고대 유럽적 의미론의 고유한 폐쇄성과 설득력에 필적할 수 있는 의미론 형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고대 철학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36면)




13. 루만은 더 이상 관찰자와 대상간의 전통적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관찰자 자신의 관찰, 즉 2차적 질서의 관찰을 자신의 이론 속에 통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의를 변화시켜 얻게 되는 소득은 인식론적 실재론과 구성주의 사이의 비생산적 논쟁을 용해시키거나 최소한 피해갈 수 있다는 데 있다. (41면)




14. 처음에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가 있다. ... 정보란 차이를 연결시켜 주는 사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차이를 만드는 차이 (43면)




15. 인식은 차이의 구성이며... (76면)




16. 첫 번째 단계(1960년경)에서는 체계가 전체와 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관념이 체계와 환경 사이의 경계 설저응로 대체되었다. 두 번째 단계(1970년대 이후)는 이것이 자기 준거적, 자동 생산적 폐쇄성으로 이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82면)




17. 체계 이론에 의한 주체의 거부는, 이 세계는 하나의 관점에서 기술될 수 없다는 관념과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를 행하고자 했던 마지막 시도가 주체 이론이었다. (87면)




18. “일단 켜무니케이션에 연루되면, 결코 다시 단순한 영혼의 낙원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91면)




19. 그러므로 개별성은 더 이상 포용(Inklusion)을 통해서가 아니라 배제(Exklusion)를 통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116면)




20. 루만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하여 이처럼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좌파들은 언제나 루만 이론의 독특한 매력에 사로잡혔다. 이 점은 1970년대 초, 마르크스의 분석 틀과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전체 사회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학문적 요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과정에서 루만의 사상은 좌파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다른 어떤 이데올로그에 위장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59면)




21. 루만에게 있어서 철학은 단순한 기본적 사상과 낮은 복합성 수준을 지녔던 고대 유럽 시대의 산물이다. (164면)




22. 관찰자를 관찰하라. (165면)




23. 그의 사고의 핵심은 자신의 전공의 전통과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개념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166면)




24. 그의 견해에 따르면, 막스 베버, 뒤르껨과 짐멜과 같은 고전 사회학자들은 “충분히 정의되지 않는 몇 가지 기본개념”으로 연구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더 이상 서술 잠재력을 지니지 못한다. (166면)




25. 이와 마찬가지로 급진적 구성주의와 진화론적 인식론과 같은 까다로운 개념을 구상해 온 것도 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 (1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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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 카이로스총서 10
게오르그 크네어.아민 낫세이 지음, 정성훈 옮김 / 갈무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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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좌파에게는 너무 많은 규범과 너무 적은 이론을 학인하기 때문이다. (32면)




2.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전의 모든 사회보다 더 긍정적인 속성과 더 부정적인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33면)




3. 루만에 대한 수용 양상은 1970년대 후반에 그리고 1980년대에 더욱 급격하게 바뀐다. ... 주체철학에 대한 비판, 인식론에 있어 구성주의적 고찰의 수용, 탈중심화라는 모티브, 자연과학과의 병행 발전, 특히 생물학과의 병행 발전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33, 34면)




4. 사회학은 일차 시선의 학설이 아니라 이차 시선의 학설이다. (35면)




5. 특정한 환경의 자극이 체계에서 가능한 단 한가지 반작용만 허락한다는 뜻에서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47면)




6. 하지만 우리는 그 체계가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볼 수 없다. (47면)




7. ‘제어되는’ 것(이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동시에 ‘제어하는’ 것(이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을 제어한다. (Glanville, 49면)




8. 기능 개념은 사회적 체계의 동역학적 면모, 즉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체계구조의 유지와 안정을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 과정을 가리킨다. (56면)




9. 루만은 다면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지향의 그러한 통일적 구조가 쉽게 형성될 수 없다고 본다. (67면)




10. 사회적 체계들은 없어져버린 수행 기여를 다른 대안적 수행을 통해 대체할 수 있다. ... 이러한 변경은 변화된 조건에서 그 체계가 계속 존속할 수 있게 하며... (67면)




11. 사회적 체계들은 가능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세계복잡성을 감축한다. .. 환경은 항상 체계보다 더 복잡하다. (70면)




12. 그에 반해 살아있지 않은 기제들은 자기생산적 체계들이 아니라, 타자생산적으로 조직된다. (79면)




13. 자기생산적 체계들은 그 폐쇄성에 근거해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 한에서 자기생산적 체계들은 자기관계적으로 혹은 자기지시적으로 작동한다. 생명 체계들의 이러한 자기관계성은 재귀성 개념을 통해 더 구체화된다. (80면)




14. 자기생산 조직의 폐쇄성은 그 개방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82면)




15. 신경체계는 그 활동에 있어 자기 자신과만 재귀적으로 관련을 맺는 작동상 닫힌 체계이다. (83면)




16. 신경체제의 폐쇄성에 관한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테제와 관련해 보면, 이런 결과는 인식이론과 지각이론에서 더 풍부한 성과를 낳는다. 그 성과에 따르면 지각은 외부세계를 적합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지각이 뜻하는 바는 외부의 세계를 체계 내부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84, 85면)




17. 모든 소통은 매순간 자신의 후속 소통을 산출한다. (101면)




18.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현행성과 가능성의 구별이다. (108면)




19. 의미의 사용을 통해 복잡성이 계속 생성된다... 각각의 의미는 모든 복잡성 속에 함축되어 있는 선택의 강제를 재정식화하며... (111면)




20. 루만은 소통을 정보, 통지, 이해를 함께 조합하는 3항의 선택 과정으로 기술한다. 선택은 여러 가능성들로부터 골라내는 것이다. (114면)




21. 이해는 소통 사건의 구성요소이지 의식의 사건이 아니다. (118면)




22. 그에 반해 자기생산적 체계 이론에서 출발점이 되는 문제는 안정된 체계 구조의 재생산이 아니라 체계 요소들의 계속되는 재생산이다. 자기생산의 진전은 통일적이고 불변하는 체계 구조의 유지에 긴박되어 있지 않다. 체계의 요소를 토한 체계 요소들의 계속되는 재생산은 사정에 따라서는 광범한 -혁명적일 수도 있다- 구조 변동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125면)




23. 하나의 구조는 어떤 선택을 미리 취하는 것이다. (126면)




24. 구조는 배제를 통해 사전-선택을 하는 반면, 과정은 연결을 시도하면서 사전-선택을 수행한다. (128면)




25. 분명한 점은 관찰이라는 작동이 구별과 지칭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131면)




26. 저편으로 넘어감(스펜서 브라운의 crossing)은 물론 가능하지만, 구별의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건너가는 것은 언제나 더 나아간 작동을 요구하며 따라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132면)




27. 관찰은 언제나 한 체계의 구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체계에 의해 작동적으로 산출되는 구성이다. (133면)




28. 관찰은 특정한 구별을 사용하지만, 그 구별을 동일한 순간에 관찰할 수는 없다. (135면)




29. 이차 등급 관찰, 즉 관찰의 관찰은 특권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이차 등급 관찰과 일차 등급 관찰 사이에는 어떤 위계적 질서도 성립하지 않는다. (136면)




30. 하지만 관찰의 관찰은 자신의 관찰에 대한 반성적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136면)




31. 이차 등급 관찰자는 관찰된 체계가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다. (137면)




32.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차 등급 관찰의 차원에서 다맥락적 세계에 이르게 된다. 다맥락성이 뜻하는 것은 다수의 구별들이 있고 다수의 서로 다른 맥락들이 있으며, 이들 맥락들은 하나의 아르키메데스적 관찰지점에 의해 서로 옮겨지면서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138면)




33. 역설적 진술의 특징은 두 값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이 값과 저 값 중 어느 한편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141면)




34. 역설에 대한 사례들은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 이야기가 고전적이다. ... 이 사례를 통해 역설을 정의하는 두 가지 징표를 얻을 수 있다. 1) 역설적 진술은 하나의 전칭 기술(“모든 크레타인”)과 관련되며, 이런 전체성은 진술이 자기 자신을 포괄함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역설적 진술은 자기지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진술이 진술하는 것은 그 진술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2) 역설적 진술은 대립쌍(거짓말쟁이/거짓말 안하는 사람)을 포함하며, 그 결과 하나의 구별을 갖고 작동한다. 따라서 역설적 진술은 두 가지 조건, 자기지시의 조건과 하나의 구별을 이용한다는 조건에 근거한다. 두 가지 조건을 올바르게 조합한다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41면)




35. 전부 다를 보고자 의도하는 모든 관찰은 자신을 자기지시적으로 포함하자마자 하나의 역설에 연루된다. (141면)




36. 루만의 말에 따르면, “모든 관찰은 그 관찰 나름의 구별을 이용하며 그래서 구별된 것들의 동일성이라는 역설을 관찰의 맹점으로 이용하며, 그 맹점의 도움으로 관찰할 수 있다.”(Luhmann 1990, 123) (142면)




37. 그런데 이는 역설의 등장이 “규정가능성의 상실, 즉 그 다음 작동을 위한 연결능력의 상실(sosy, 59)과 결부된다는 걸 뜻한다. 근저에 놓여있는 역설이 해소되거나 보이지 않게 될 때만 연결능력은 보장될 수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바로 탈역설화 개념이다. 루만은 이런 식으로 규정 불가능한 복잡성(두 관찰값 사이에서의 탈출구가 없는 진동)이 규정 가능한 복잡성(연결능력의 보장)으로 옮겨진다고 말한다. 관찰자는 관찰의 근저에 놓여있는 역설을 점차 없어지게 함으로써 자신의 관찰 진동들을 진전시킨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이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답변은 없다. 탈역설화의 모든 형식은 우연적인 결정에 근거하며, 이런 결정은 다르게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건 관찰자가 그의 관찰 진동을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관찰자는 반드시 근저에 놓여있는 자신의 관찰을 다루어야 한다. (142면)




38. 복잡성과 체계분화 사이에 어떤 단선적 관계도 없다는 점은 ... (152면)




39. 사회체계의 분화는 각 부분체계에 대해 세 가지 관계 형성 가능성을 창출한다. (1) 그 부분체계가 속하며 함께 실행하는 전체체계인 사회와의 관계, (2) 다른 부분체계들과의 관계, (3) 자기 자신과의 관계. (WdG, 635). 사회의 부분체계들의 분화형식과 관계 형성 가능성으로부터 한 사회체계의 구조를 읽어낼 수 있다. (154면)




40. 루만은 경직된 구조 개념을 역동적 관점으로 대체하며, 자기생산적 체계들의 경우에 ‘역동적 안정성’이라고 말한다. (156면)




41. 확실성을 부여했던 우주론적 세계상의 힘은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170면)




42. 사회의 복잡성은 말하자면 새롭게 다루도록 강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171면)




43. 사회의 상이한 영역들은 의미론적으로 자율화됨으로써 주된 사회 분화의 새로운 형식이 성립한다. 그 부분체계의 경계는 더 이상 분절적으로 분화된 사회처럼 함께 사는 지역을 기준으로 그어지거나 계층화된 사회처럼 상대적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계층을 기준으로 그어지지 않는다. 그 경계는 이제 배타적이며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사회적 기능들에 의해 그어진다. 사회의 기능적 분화가 바로 현대 사회의 주된 분화형식이다. (172면)




44. 경제적 소통은 정치적 및 법적 환경 변화에 오직 경제적으로만, 즉 지불/비지불의 구별을 다루면서 반응할 수 있다. 정치와 법은 경제적 작동에 의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정치와 법은 지불에 대한 정치적 및 법적 환경 조건들을 수립하는 한에서만 지불을 조절할 수 있다. 어떤 체계의 개입은 -예를 들어, 국가 환경 프로그램을 위한 생산관련 세금을 인상하는 정치적 결정은- 다른 체계에서는 그 정치적 의도를 좌절시킬 수도 있는 체계고유의 작동을 -예를 들어, 생산입지를 외국으로 옮기는 걸 통해- 낳을 수도 있다. 체계/환경 패러다임은 이런 식의 전개를 정치적 체계가 아직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체계들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작동적 차이라고 설명한다. ...(각주 13) 그럼에도 기능적 분화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은 전체의 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는 정식화들을 그간 선택해왔다. 예를 들어 군터 토이브너(Gunther Teubner)는 “성찰적 법을 통한 사회조절”이라는 테제를 내놓았다(Teubner 1989, 81ff). (175면)




45. 기능적 분화 이론의 루만식 변형태가 흔히 비판받는 내용은 상이한 부분체계들의 자율성을 이론적으로 너무 엄격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 뮌히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 학문적 행위 담당자들과 조직들의 노력 속에서 그들이 서로 행위를 조율하며 최소한 잠재적인 공동의 관점을 요구한다고 보며, 이것이 기능체계들이 작동상 자율적이라고 주장하는 루만에 대한 반증이라고 본다. (180면)




46. 한 체계는 그 체계의 작동 속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과 동시에 타자, 즉 환경을 함께 지시한다. (187면)




47. 개인은 자신 또한 이차 등급의 관찰에 노출시켜야 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개인은 그가 어떻게 관찰하는지, 그리고 타자를 어떻게 관찰하는지 관찰해야 한다. (204면)




48. 관찰자에게 그의 입지점이 상대적이라는 점과 자기관찰이란 역설에 빠질 수밖에 없는 점을 보여주는 루만의 이차 등급 관찰 이론은 사회가 본래 어떠하며 심지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가르쳐주는 시대 진단에 대한 정식화를 배제한다. 더구나 이차 등급 관찰 이론을 일관되게 적용할 경우 또 다른 물음이 제기된다. 그 물음은 사회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그리고 자기관찰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가이다. (213면)




49. 미국의 조직사회학자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는 연구위원회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틀렸고 그 대신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규정하며 진술하는 것은 사후에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15면)




50. 위험부담은 시간의 문제이며, 미래의 문제이다. (216면)




51. 미래의 잠재적 손상을 줄이기 위해 현재의 결정 자체가 미래를 선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찰을 통해 위험부담 연구는 위험부담이란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217면)




52. 위험부담에 대한 연구나 실천적으로 위험부담을 다루는 것은 취상급에서 비교급으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217면)




53. 시간 차원에서는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문제가 은폐되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결정자의 문제가 은폐된다. (218면)




53. 어떤 손상이 결정의 결과라고 보인다면, 즉 결정에 책임이 귀속된다면, 우리는 위험감수이고, 결정에 의한 위험감수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고 어떤 손상이 외부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면, 즉 환경에 책임이 귀속된다면, 우리는 위해라고 부른다. (Soziologie des Risikos, 30f) (219면)




54. 과거와 미래의 불연속성이 거의 모든 현재 속에서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현대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결정에 귀속시키게 된다. (220면)




55. 위험부담/위해의 구별이 특히 겨냥하는 것은 위험감수 행동의 사회적 측면이다. 누가 결정자이고 누가 해당자인가, 즉 결정이 누구에게 위험감수이고 누구에게 위해인가? (221면)




56. 위험사회의 저항운동은 더 이상 경제적 분배정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며 저항의 새로운 유형, 즉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험한 행동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거부”에 초점을 맞춘다(Soziologie des Risikos, 146). 사회 운동은 결국 위험부담/위해 형식을 위해의 측면으로부터 보고 이를 통해 결정의 책임귀속 문제를 가시화시키는 사회의 관찰자이다. (222면)




57. 윤리는 도덕에 대한 반성이론... (228면)




58. 루만은 철학적 윤리 구상들이 지금까지 눈감아왔던 문제인 도덕의 주요한 문제점 중 하나가 도덕적 소통이 매우 자주 갈등을 만들어 내거나 갈등을 첨예화게 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230면)




59. 이 진술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가 도덕 소통을 통해 통합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232, 233면)




60. ‘비판적 합리주의’, ‘비판이론’ 등은 언제나 더 나은 앎이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 이론들은 흠잡을 데 없는 도덕적 충동과 더 나은 통찰을 갖고 경합하고 있는 기술자라고 자신을 내세운다. (239면)




61. 이데올로기 비판자는 언제나 동시에 또한 이데올로기이다. (240면)




62. 사회적 체계 이론은 대안적 가능성들을 밝히려는 시도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고 가능한 대안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 즉 기능적으로 등가적인 문제해결 가능성들을 대립시키는 것이 루만이 구상한 등가적 기능주의의 방법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 지점에서도 비판적 사회학과 사회적 체계이론이 나란히 갈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 (2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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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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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역시 고귀한 사람이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가슴속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니라. (19면, 헤시오도스의 말)




2. 그런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즉 실체는 본성상 관계보다 먼저이다. 관계는 존재(on)의 곁가지, 존재에 부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하나의 공통된 이데아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22면)




3.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7면)




4. 인간적인 좋음은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일 것이다. (30면)




5. 즉 정확성이란 모든 분야에서 한결같이 찾을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마다, 주어진 주제에 따라, 또 각각의 탐구에 적합한 바로 그 만큼만 추구해야 할 것이다. (31면)




6.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활동은 불행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40면)




7.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추구하는 안정성을 갖게 될 것이며, 그의 일생 내내 행복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그는 언제나, 혹은 다른 누구보다도 탁월성에 따르는 것들을 행하며 그것들을 사색할 테니까. 또 그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며 어느 구석 빠지는 데 없이 반듯한 사람’이라면 인생의 갖가지 운들을 가장 훌륭하게, 모든 점에서 전적으로 적절하게 견텨낼 테니까. (41면)




8. 칭찬은 탁월성에 관련한 것이다. 사람들은 탁월성을 통해 고귀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45면)




9.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어떤 활동... (46면)




10. 탁월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적 탁월성이며, 다른 하나는 성격적 탁월성이다. 지적 탁월성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가르침에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 성격적 탁월성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51면)




11. 따라서 절제와 용기, 그리고 다른 탁월성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무슨 일이든 회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자리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무슨 일이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에 탐닉하면서 어떤 것도 삼가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즐거움이라면 전부 회피하는 사람은 촌뜨기들처럼 일종의 목석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55면)




12. 우리는 나쁜 일들을 행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며, 고귀한 일들을 멀리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니까.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죽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육이다. (56면)




13. 우리가 선택하여 취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고귀한 것, 유익한 것, 즐거운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회피하는 것도 세 가지가 있으니 앞의 것에 반대되는 것들, 즉 부끄러운 것, 해가 되는 것, 고통스러운 것이다. (58면)




14. 그래서 모든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지나침과 모자람을 피하고, 중간을 추구하고 이것을 선택하는데, 이때의 중간은 대상에 있어서의 중간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간이다. (64면)




15. 그렇다면 세 가지 성향이 있는 셈인데, 그중 둘은 악덕으로서, 하나는 지나침에 따른 악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자람에 따른 악덕이다. 나머지 하나는 중용이라는 탁월성의 성향이다. (72, 73면)




16. 모든 것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즐거운 것들과 즐거움이다. 우리는 이것을 공평하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6면)




17. 또 합리적 선택은 그것이 옳게 선택되기 때문이기보다는 마땅히 선택할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 반면에, 의견은 (무엇에 대해 가지든지 간에) 참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다. (88면)




18. 즉 탁월성의 유는 중용이며, 품성상태라는 것, 탁월성은 자신이 연원하는 행위들을 자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 탁월성은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자발적인 것으로 올바른 이성이 명령한 방식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논의했다. (99면)




19. 명예는 탁월성에 대한 상이며,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되는 것이니까. (138면)




20. 정의는 다른 사람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164면)




21. 정의로운 것은 일종의 비례적인 것이다. (169면)




22. 부정의한 것은 유익과 해의 비례에 어긋나는 지나침과 모자람이다. 이런 까닭에 부정의는 지나침과 모자람인데, 그것은 부정의가 지나침과 모자람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180면)




23. 그러나 어떻게 행위해야만 하고, 어떻게 분배해야 정의롭게 되는 것인가? 이것을 아는 것은 건강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보다 더 큰일이다. (195면)




24. 오래 숙고하는 것은 아직 잘 숙과하는 것이 아니다. 잘 숙고한다는 것은 유익함에 따른 올바름이자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것, 마땅히 해야 할 방식, 마땅히 해야 할 시간에 따른 올바름이다. (222면)




25. 전성기의 사람에게는 고귀한 행위를 하는데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둘이 함께 가면’ 사유에 있어서나 행위에서 있어서 더 강해진다. (277면)




26. 절제 있는 사람의 특징은 지나침을 갖지 않고 나쁜 욕망도 갖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자제력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 (237, 238면)




27. 친구여,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 실로

그것이 결국 인간의 본성이 되네. (2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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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 알베르트 슈바이처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권혁준 옮김 / 정원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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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에 대한 나의 열정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독서욕은 지금도 나를 따라다닙니다. 나는 일단 읽기 시작한 책은 손에서 놓지를 못합니다. 밤을 세워서라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자세히는 아니고 대충 읽더라도 끝까지 읽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이면 곧바로 두세 번을 연이어 읽었습니다. (50면)




2. 따라서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문제는 나에게 또 하나의 큰 체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늘 해왔던 생각, 즉 우리 주변의 세상을 지배하는 고통에서 받은 충격과 더불어 제기되었습니다. (86면)




3. 21살이 되던 해에 나는 중대한 결단을 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오순절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는데, 30살까지만 설교자의 직분, 학문, 음악에 헌신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계획했던 정도의 성과를 이루게 되면, 이후에는 인류에 직접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봉사의 길이 어떤 길이 될지는 도중에 정황에 따라 알게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7면)




4. 나는 대담하게도 신학과 철학, 음악을 한꺼번에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88면)




5.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타자로서만 존재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계속해서 완전한 타자로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이란 서로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타자에 대한 생소함을 극복하고 서로에 대해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게 해 주는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100면)




6.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현실이 우리에게서 선한 것과 참된 것에 대한 믿음, 이에 대한 열정을 앗아가려 한다는 사실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상을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상이라는 것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흔히 실제의 현실에 눌리게 되는 것은, 이상이 처음붜 현실에 굴복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상이 충분히 강렬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이 충분히 강렬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 이상이 순수하고 강렬한 형태로 우리 안에 변함없이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05면)




7. 이상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상입니다. ... 그러나 이상이 한 정화된 인간의 영혼과 결합하면, 잠재되어 있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도달해야 할 성숙함은, 더욱 소박해지고, 더욱 진실해지고,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화평을 추구하고, 더욱 온유하며, 더욱 선한 마음과 동정의 마음을 갖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106면)




8. 사람들과 현실만을 고려하려 들지 않고, 모든 체험에서 본연의 자신에게로 돌아가며, 외부에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사물의 궁극적 동기를 찾는 사람은 이러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107면)




9. 따라서 우리 성인들이 청소년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인생의 지혜는 “현실이 곧 너희들이 품은 이상을 잠식할 것이다”가 아니라 “인생이 너희가 품은 이상을 앗아가지 않도록 이상과 하나가 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07면)




10. 폭력이 거짓의 가면을 쓰고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도 나는 진리, 사랑, 화평케 하는 것, 온유, 박애의 정신은 모든 폭력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확신합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 진리, 화평케 하는 정신, 온유의 정신을 순수하고 강렬하게 계속 생각하고 이러한 정신에 따라 살아간다면 세상은 그렇게 변할 것입니다. (1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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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에버그린북스 13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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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그(베만 박사)의 수업을 받는 동안 그가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언제나 세심한 준비를 해가지고 온다는 사실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내게 의무 완수의 본보기가 되었다. (11면)




2. 특히 나는 학문적 성과에 대한 그(카를 부데 신학교수)의 간결하고 빈틈없는 설명을 좋아했다. 그의 강의가 나에게는 하나의 예술적 즐거움이었다. (19면)




3. 그때 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들었다. 나는 이 음악에 너무나 압도되어 며칠 동안 학교 수업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였다. (20면)




4 빈델반트의 강점은 고대 철학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그의 세미나는 실로 나의 대학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24면)




5 1899년 여름 나는 베를린에서 주로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냈다. 나는 고대 철학과 근대 철학의 주요 저작들을 읽어두고 싶었다. (30면)




6. 그러나 설교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제 내적인 욕구였다. 주일마다 모여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생존의 궁극적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34면)




7. 나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문제의 영역에서 바로 원시 기독교에 관한 문제로 들어갔던 것이다. (41면)




8.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의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행할 힘이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위해서만 힘이 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64면)




9. 결정적인 것은 처음부터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 윤리적 진리가 인간에게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67면)




10. 기독교의 본질은 세계 부정을 거쳐온 세계 긍정이다. 예수는 세계 부정의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 활동적 사랑의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69면)




11. 1903년과 1904년은 모든 자유 시간을 바흐에 바쳤다. (75면)




12. 그랜드 피아노는 이 부자연스러운 풍부한 음감을 얻는 대신 피아노 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잃었다. (98면)




13. 지금 실행하기로 한 이 계획을 품은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그 근원은 학생 시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근심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만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1896년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생각해본 끝에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102면)




14. 무슨 일에나 가치를 발견하고 완전한 책임감을 갖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자연적으로 주어진 일 대신 비상한 일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108면)




15. 활동하는 시간이 찾고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긴 사람들은 행복하다. 자신을 완전히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러한 행운아들은 겸손해야만 한다. 시련이 오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09면)




16. 내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나는 말에도 정력을 쏟았다. 신학 교수직과 목사직에 기꺼이 종사했다. 그러므로 나의 새로운 활동은 사랑의 종교에 대한 설교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11면)




17. 그러나 이렇게 다니면서 경험한 사랑에 비한다면 내가 겪은 굴욕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132면)




18. 그 이후부터 나는 줄곧 어떤 문제의 본질을 그 자체로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방법에 관해서도 파악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왔다. (137면)




19. 나는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곧 예술가로서의 나의 생애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익숙해 있었고, 그래서 손가락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녹슬게 하면 단념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우울한 마음으로 바흐의 파이프오르간 푸가를 치고 있었을 때 아프리카에서의 자유 시간을 내 연주 솜씨를 보완하고 심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동시에 나는 단 하나의 곡에 수주일, 또는 수개월씩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바흐, 멘델스존, 위도르, 세자르 프랑크, 막스 레거의 작품을 하나씩 붙들고 가능한 대로 상세하게 연구하여 모두 암기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165면)




20. “사실이지 우리는 뭐니뭐니해도 모두 아류에 지나지 않네.” (166면)




21. 문화의 파국이 세계관의 파국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된 문화의 이상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이상주의적 세계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169면)




22. 사랑의 윤리는 행동의 윤리로서 그 본래의 바탕이었던 세계 및 인생 부정의 세계관에서 뛰쳐나와 세계 및 인생 긍정과 결합함으로써 정신적 윤리적 세계의 구현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172면)




23.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내가 도달한 철학의 중심지대가 실제에 있어서는 아직 탐험되지 않은 땅임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6면)




24.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178면)




25. 아무런 사상도 없는 현대의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이 지식과 능력과 권력의 이상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데 반해 사고하는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은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완성을 다른 모든 진보 이상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최고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181면)




26. 남들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생명을 구해주며 다가올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날마다 커다란 은총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182면)




27.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껏 요리하는 것이지요” (190면)




28. 이 몇 해 동안 나는 얼마나 훌륭한 경험을 했던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나는 세가지 희생을 각오했었다. 즉, 파이프오르간 예술을 단념하고,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대학 교직을 버리고, 물질적 독립을 상실하게 되어 앞으로의 생활을 친구들의 도움에 의존할 각오를 했었다. 나는 이 세가지 희생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까운 친구들만이 알고 있었다. ... 이미 바친 세가지 희생이 면제되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고무적인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비참한 전쟁 기간에 겪어야 했던 온갖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고 여하한 어려움이나 체험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221면)




29.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이다. (227면)




30. 나의 삶에는 두가지 체험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세계가 말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또 고뇌에 차 있다는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정신적 쇠퇴기에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에 대한 외경심이라는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으로 나를 인도해준 사고를 통하여 이 두가지 체험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의 삶은 이러한 원칙 속에 의지할 곳과 방향을 발견했다. (245면)




31. 근본적인 사상이란 세계에 대한 인간 관계와 삶의 의미와 선의 본질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사상을 말한다. ... 그와 같은 근본적인 사상은 스토아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나는 스토아 철학을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251면)




32. 생에 대한 외경심의 윤리는 보편적인 것으로 확대된 사랑의 윤리이다. (259면)




33. 내가 비관적이냐 낙관적이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나의 인식은 비관적이나 내 의욕과 희망은 낙관적이라고 대답한다. (2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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