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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현복 옳김)
1.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는 엄청난 덕행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엄청한 악행도 할 수 있으며,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 (146쪽)
2. 게다가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판단할 때 자만보다는 불신 쪽으로 기울려고 노력하고, 또 철학자의 눈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와 시도들을 바라볼 때, 이것들에 있어 공허하고 무용하지 않은 것은 거의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지만, 진리 탐구에 있어 내가 이미 성취한 것으로 보여지는 진보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또 순전히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정말로 좋고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할 정도로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48쪽)
3. 어릴 적부터 나는 여러 학문을 배웠다. 이런 학문을 통해 삶에 유용한 모든 것에 대해 명석하고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항상 들어 왔으므로 나는 그것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학자들 축에 끼어들자마자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무지하다는 것만 점점 더 발견될 뿐 그 어떤 이득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많은 의심과 오류에 빠져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150쪽)
4.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여행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자기 나라의 사정에 대해 어둡게 되고, 또 지난 시대의 일에만 너무 몰두하면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모르게 된다. (152쪽)
5. 나는 특히 수학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는 그 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아직 수학의 참된 용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기계학에만 응용되고 있음을 보고서는, 그 토대가 그토록 확고부동함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도 지금까지 이 위에서 더 탁월한 것을 세우지 않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도덕을 다룬 고대 이교도들의 저서는 나는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모래와 진흙 위에 세워진 궁전으로 비교했다. 그들은 덕을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존중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덕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려 주지 않고 있으며, 또 그들이 덕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종종 냉혹이나 교만, 절망이나 친족살해와 다름아닌 것이다. (154쪽)
6. 나는 우리의 신학을 존경했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천국에 이르길 바랐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은 가장 유식한 사람 못지않게 가장 무식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열려져 있다는 것을, 또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계시 진리는 우리 지성의 역량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다음에는, 이 진리들을 내 빈약한 추리력으로 감히 포착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것에 있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각별한 도움이 있어야 하며, 또 우리들은 인간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54, 55쪽)
7.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155쪽)
8. 그래서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내 자신 속에서 혹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어떤 학문도 찾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남은 청년 시절을 여행하는 데 사용하면서 이곳저곳의 궁전과 군대를 관람하고, 온갖 기질과 신분을 지닌 사람들을 방문하면서 갖가지 경험을 거듭하며, 운명이 나에게 몰아치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내 스스로를 시험하려고 했고, 내 앞에 나타나는 온갖 일들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반성해 보았다. 왜냐하면 학자가 서재에서 하는 추리보다는 자기에게 소중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일에 대한 추리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6, 157쪽)
9. 학자가 하는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 행동을 분명히 직시하면서 확신을 갖고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늘 구별할 수 있기를 늘 극도로 갈망했다. (157, 158쪽)
10.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관찰해 보았을 때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철학자들의 의견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때도 아주 다양한 생활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이로부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우리에게 아주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이로써 나는 선례와 관습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우리 자연의 빛을 흐리게 하고 이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숱한 오류로부터 차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책 속에서 공부하고 얼마간의 경험을 쌓는 데 몇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나는 어느 날 나 자신 속에서 연구하기로, 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데 정신의 온 힘을 기울이자고 결심했다. (158쪽)
11. 처음에 가진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보다 완전성에 있어 종종 떨어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건축가가 시공하고 완성한 건물은 다른 목적으로 세워진 낡은 성벽을 활용해서 여러 사람들이 개조한 건물보다 더 아름답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159쪽)
12. 그러나 이것들을 검토해 보니 논리학에 있어서, 삼단논법 및 다른 대부분의 규칙들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되거나 혹은 룰루스의 기예처럼 자신도 모르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임을 알게 되었다. (167쪽)
13. 그리고 법률이 많으면 악행에 구실을 주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법률을 조금만 가지면서 아주 엄격하게 지킬 때 국가가 더 잘 다스려지는 것처럼, 내가 이탈하지 말자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심만 견지한다면 논리학의 그 많은 규칙들 대신에 다음의 네가지 규칙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명증성의 규칙),
둘째,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분해의 규칙),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합성의 규칙),
끝으로, 아무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열거의 규칙) (168, 169쪽)
14.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학문의 난제를 모두 검토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방법이 명하는 순서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런 학문의 원리는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철학에 있어 나는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에 있어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172쪽)
15. 사람들이 똑같이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의견 가운데서 내가 온건한 의견만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이런 의견은 언제나 보다 용이하게 실행에 옮겨질 수 있고 또 사실 더 좋은 것이고, 극단적인 것은 보통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온건한 의견을 선택했을 경우가 극단적인 의견들 중의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나중에 그 반대되는 쪽을 따라야 했음을 알게 되는 경우보다 참된 길에서 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75쪽)
16. 두번째 격률은, 행동에 있어서 가능한 한 확고하고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아무리 의심스런 의견이라도 일단 그것을 취하기로 결정했다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 나는 숲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우왕좌왕하면서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갔다하거나 혹은 한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비록 그저 우연하게 한 방향을 선택했을지라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 태도를 본받으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나그네는 자신이 원했던 장소로 곧장 가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숲 한가운데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어떤 장소에 결국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175, 176쪽)
17.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면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즉,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가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5쪽)
18. 왜냐하면 첫째로, 내가 앞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 즉 우리가 아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명제의 진리성조차도, 신이 존재 혹은 현존한다는 것, 그가 완전한 존재라는 것, 또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193쪽)
19. 그러나 이성이 우리에게 분명히 명하는 바는, 모든 우리의 관념 혹은 개념은 어떤 진리의 토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완전하고 진실된 신이 이런 토대없이 관념들을 우리 속에 집어넣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195쪽)
20. 그리고 나는 또 강단에서 행해지고 있는 논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진리가 발견된 경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각자가 이기려고 애쓰는 동안은 상대방의 근거를 저울질하기 보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내세우는데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고, 오랫동안 훌륭한 변호사였던 사람이 반드시 나중에 뛰어난 재판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28쪽)
21. 다만 어떤 것을 남에게 배울 때에는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때만큼 잘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 나는 아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들에게 내 의견 몇가지를 설명해 본 적이 있는데, 내 말을 듣고 있는 동안은 아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입으로 그것을 말할 때에는 거의 항상 다르게 변색이 되어 내 의견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되어 버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228, 229쪽)
22. 즉, 오늘날 알려진 것보다 더 확실한 의학적 규칙들을 끌어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어떤 지식을 얻는 일에 내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계획들, 특히 어떤 사람에게 이익이 되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계획들은 내 성향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므로, 내가 어쩌다가 그런 일에 종사하도록 강요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잘 해 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세상에서 존경받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지만, 존경받고 싶은 생각도 사실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을 주는 사람보다도, 아무런 방해 없이 한가로운 여가를 즐기도록 배려해 주는 사람을 나는 항상 더 고맙게 여길 것이다. (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