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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권
1. 과거에 쓰인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지평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린 우리 시대의 지평을 떠날 수 없다. 우린 언제나 현재의 지평에서 과거를 볼 따름이다. 그 결과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에게선 과거와 현재 „지평의 융합“이 일어나게 된다. 작품을 이해한다는 건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전승 과정 속에 들어가는 걸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현재의 지평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틈이야말로 적극적이며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 왜? 바로 이 틈이 우리로 하여금 시대마다 작품을 새로이 해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원작이 탄생한 시기에서 멀어질수록 원작은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우린 원작을 새로 이해해야 하고, 그것과 새롭게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 새로운 대화과정에서 원작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그 결과 원작이 갖는 의미가 날로 풍부해진다. 이건 물론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다. 작품은 더 잘 이해되어야 할 객관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건 매번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작품의 의미는 시대마다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예술작품은 원제품이 아니다. (미학 오디세이 2, 138, 139쪽)
2.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모방으로 보고, 모방의 본질을 재인식의 쾌감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재인식의 즐거움은 이미 알고 있던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데 있다. 가령 오이디푸스 왕의 얘기는 그리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줄거리를 뻔히 아는 그 작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을 보려고 그 귀중한 시간을 쪼갰을까? 물론 그들이 거기서 뭔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오이디푸스를 보면서, 관객들은 아마도 맹목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을거다. 이건 일종의 자기인식이다. 저 무서운 운명이 바로 나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 자기인식은 관객들에게 이제까지의 삶을 바꾸도록 요구했을 것이다. 그들이 공포와 연민의 눈으로 별로 유쾌하지 않는 얘기를 바라본 건 바로 이러한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143쪽)
3. 이전에 따르면 원래 미는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미가 가리키는 게 있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다. 말하자면 미의 본질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있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다. 미에선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가령 우리는 기분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디언 부족은 이걸 다르게 말할 줄 안다. „내 마음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도다.“ 어느 쪽이 더 미적인가? (150쪽)
4. 이제 다 왔다. 이제까지의 미학은 주로 „작용미학“이었다. 말하자면 주로 작품이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력만을 강조해 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용미학은 거기에 독자의 적극적인 수용의 측면을 결합하여,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수용자 중심의 예술론을 만들어 냈다. 이제 예술작품은 텍스트가 독자의 의식 속에서 재정비되어 구성된 것으로 규정된다. 예술작품은 마침내 수용자의 머리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기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자. 우리는 예술가의 직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리의 발길은 그새 수용자에게 와 있다. 정보원인 예술가의 머리를 떠나, 작품을 거쳐, 마침내 정보 전달의 목표인 수용자의 머리에 도달한 거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51쪽)
5. 장미의 이름의 저자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는 여기서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본다. 말하자면 현대 예술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의 완성을 독자의 손에 맡기는 데 있다. 오늘날의 예술에선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에 문을 열어 놓는 경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제 예술작품은 완성품의 형태로 독자에게 배달되지 않는다. 현대 예술은 열려 있다. 이런 특징을 예코는 „개방성“이라 부른다. 열린 예술작품은 더 이상 일률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독자는 작품 속에 들어가 작품을 스스로 완성하는 가운데, 거기서 무한히 다양한 의미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예술은 움직이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241쪽)
7.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 한깟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훈데르트바서)
8. 마티스 (색), 피카소 (형태), 이 두 표지판은 위대한 목표로 지향하기 시작했다 (칸딘스키). … 대상성의 파괴는 형태와 색채의 해방을 가져온다. 이제 형태와 색채는 대상을 재현할 의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유희하게 된다. (15, 24쪽)
9. 그리스인들은 진리는 „알레테이아(aletheia)“라 불렀다. 이 말은 원래 „비은폐성“, 즉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87쪽)
10. 해석학에 따르면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면 인간은 자기 시대의 선입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선입관 (과학적 세계관)을 버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선입관이라면 나쁜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거야말로 선입관에 대한 선입관이다. … 이 선입관의 체계를 이해의 지평이라 부르자. 이 이해의 지평 위에 올려 놓아야 비로소 우리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이해의 지평을 갖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 이해의 지평도 달라진다. 같은 작품이라도 그 작품이 놓이는 이해의 지평이 바뀌면 그 해석도 달라진다. (135쪽)
11. 먼저 내가 예술의 종말을 얘기했을 때, 그건 어느날 갑자기 예술이 자취를 싹 감춘다는 뜻이 아니었소. … 내 말은 예술이 더 이상 진리가 생기는 결정적인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었소.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