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고도원 엮음, 김선희 그림 / 나무생각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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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좋아하는 것 챙겨드리기

2. 목숨 걸고 용돈 드리기

3. 그 가슴에 내가 박은 못 뽑아드리기

4. 엄마 앞에서 어리광 피우기

5. 전화 자주 걸기, 가능하면 하루 한 번씩

6.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기

7. 마음이 들어 있는 건강식품 챙겨드리기

8. 부모님의 일대기 만들어드리기

9 부모님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10. 부모님 손에 내 손을 마주 대보기

11. 내가 축하받는 자리에 부모님 모시기

12. 노화 스트레스 덜어드리기

13. 체온으로 다가가기

14. 생신을 꼭 챙겨드리기

15.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하기

16. 맛있게 먹고 "더 주세요!" 말하기

17. 부모님과 블루스 추기

18. 인생 9단인 부모님께 여쭈어보기

19. 열심히 모아서 감동 드리기

20. 미장원에 함께 가기

21. 무조건 '잘 된다'고 말씀드리기

22. 못 이룬 꿈 이루어드리기

23. 학교나 회사 구경시켜드리기

24. 부모님이랑 노래 불러보기

25. 부모님 건강이 최고

26. 자식 옷 한 벌 살 때, 부모님 옷도 한 벌 사기

27. 아버지와 포장마차에 함께 가기

28. 감사장 만들어드리기

29. 부모님도 한때 사랑받던 자식이었음을 기억하기

30. 부모의 유산 이어가기

31. 어릴 적 나에 대한 부모님의 꿈 들어보기

32.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드리기

33. 때로는 착한 거짓말하기

34. 홀로되신 부모님께 친구 만들어드리기

35. 소문난 맛집에 모시고 가기

36. 아머지 삶의 낙을 찾아드리기

37. 결정하기 전에 여쭈어보기

38. 실용적인 생활 방편 마련해드리기

39. 노부모와의 대화법 익히기

40.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모시고 여행 다니기

41. 함께 공연 보러 가기

42. 건강 프로그램 만들어드리기

43. 곁에 있어드리기

44. 부모님 댁에 들를 때마다 구석구석 살펴드리기

45. 부모님 몰래 윤달에 수의 마련하기, 묘자리 준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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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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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이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과정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이 책의 기술을 위해 내가 E.P. 톰슨의 연구에서 가장 큰 학문적 영감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톰슨의 저서는 산업화과정에서 공업노동자들의 등장과 그들이 독자적인 계급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이 산업화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과 그 과정이 단지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많은 학자들에게 일깨워주었다. (6면)




2. 계급형성에 관한 최근 이론들이 제시하듯이, 사회계급은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생활체험을 기초로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생활체험은 단지 생산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내부와 외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정치적 권력에 의해서 형성된다. (11면)




3. 그리고 계급은 사람들이 (계승되거나 혹은 공유된) 공통의 경험에 의해 서로간에는 이해의 동일성을 그리고 그들과 이해가 다른(또는 흔히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이해의 동일성을 느끼고 분명히 파악할 때 생겨난다. (19면)




4. 거대한 노동자투쟁이 폭발한 지 10년 후인 1997년 1월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 전해 12월에 통과된 노동법에 반대하기 위해 대규모 총파업을 일으킴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쟁점이 된 새 노동법은 고용주들에게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시직 노동자와 파업 대체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해주는 한편 앞으로 몇 년 동안 단일사업장에서 복수노조 결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면)




5. 이 책은 노동자들이 극도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생산체제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주적 노조의 결성을 위해 어떻게 투쟁하였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노동자로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과 공유된 이해에 기초한 연대감을 발전시켰는가를 기술한다. (23면)




6.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노동자들이 공장 안의 일상에서 겪어야 했던 극도의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었을 것이다. (25면)




7. 위계질서, 권위에 대한 존경, 협동, 근면, 가족주의를 강조하는 유교문화가 노동자들의 복종적인 태도와 경영자에 대한 협조를 촉진하고, 반면 노동자들간의 연대와 집단행동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6면)




8.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와 확대되는 취업시장에서 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성취를 추구하였고, 노동조합 가입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27면)




9. 최근, E.P.톰슨(E.P. Thompson)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에 영향을 받아서 19세기 유럽 계급형성에 관한 훌륭한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톰슨은 그의 책에서 구조적-환원주의적 혹은 결정론적 계급개념과 대조되는 역사주의적 혹은 구성주의적 관점을 확립했다. 19세기 영국 노동계급에 관한 노련한 연구에서, 그는 노동계급의 성향과 의식을 분명히 지닌 실체로서 영국 노동계급의 등장은 단순히 생산체제 내의 구조적 위치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계급이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톰슨은 “나는 계급을 구조(structure)라고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범주’(category)로도 보지 않는다. 나는 계급을 인간관계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그리고 발생해온 것이 입증되는) 현상으로 본다”고 말하고 있다. (Thompson 1963, 9면) (29, 30면)




10. 톰슨의 역사주의적, 행위자 지향적 계급개념은 생산과정과 생산과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사회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30면)




11. 계급은 사회적, 문화적 형성(자주 제도적 형태를 갖게 되는)으로서, 추상적으로 혹은 고립되어 정의될 수 없고, 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30면)




12. 최근 연구들은 각 계층집단들이 자신들의 객관적 계급위치에 의해 미리 결정된 정치적 역할을 자동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대신, 정치적 정체성과 소속은 정당과 국가의 역할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정치적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33면)




13. 그러므로 한국 노동계급 형성 연구에서 답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공장 노동자들이 공순이, 공돌이처럼 노동자를 경멸하는 문화적인 이미지와 국가가 강제한 산업전사라는 타의적 정체성을 극복하고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키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36면)




14. 확실한 것은 1980년대에 한국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과 계급의식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의 형태에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참여하는 문화활동에서도 드러났다는 점이다. (37면)




15. 그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했던 것은 임금인상이나 작업환경의 개선보다도 인간적인 대우와 사회적 정의였다. (41면)




16. 중요한 사실은 이들 노조활동가들의 대부분이 의류, 섬유, 전자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까지 현장 노동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경공업 여성노동자들이 보여준 특이한 역할이다. (42면)




17. 다른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과 비교해서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민주노조운동과 학생, 지식인, 교회지도자, 재야정치인들이 주도한 민주화운동 간에 긴밀한 연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44면)




18. 여성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농촌 출신에, 나이가 어리고, 미혼에, 학력이 낮으며, 가족부양의 책임을 떠맡고 있는, 대단히 동질적인 집단을 구성하였다. (66면)




19. 1987년 이전 한국의 공장노동에서 가장 잔인했던 점은 공장노동이 노동자들의 몸을 급속히 망가뜨린다는 점이었다. 한국 공장의 노동환경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보장하지 못했다. (90면)




20.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공장노동자들의 글을 보면,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해고이고, 고용주가 노동자들을 위협할 때 즐겨 쓰던 말도 해고였다. (94면)




21.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노동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진짜 요인은 강한 노동윤리나 일이나 회사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깊이 새겨진 가족을 위한 자기희생의 윤리였음을 알 수 있다. (99면)




22. ‘인간적인 대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이것은 기계나 동물이 아니라 인간처럼 대접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처럼 대접받는 존재는 최소한의 휴식과 여가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인정받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대접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공장생활의 실상은 자유롭고 자긍심을 가진 인간 존재로서 대접받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무참하게 짓밟는 것이었다. (100면)




23. 노동자들에 대한 전제적 통제는 업무와 노동시간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개인적 공간과 노동자의 몸에 대한 통제였다. 미셸 푸코 개념의 사회통제가 한국 공장체제에서 분명히 작동함을 볼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든 대기업에서 일하든, 공장노동자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머리 모양, 개인적 관계 혹은 화장실 사용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생활영역을 세세하게 통제당했다. (102면)




24. 1983년 울산 현대 공장에서 조사를 함께한 한국의 사회학자 배규한은 “내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많은 것이 군대 복무기간의 내 경험을 연상시켰다”라고 말한다. (104면)




25. 개인들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일상적인 무시, 비합리적인 요구와 힘든 규율의 강제, 상관의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끊임없는 언어적, 육체적 체벌 등은 한국 군조직의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이와 똑같은 모습들이 한국 기업에서 재현되었다. 상사의 명령에 질문이나 변명을 하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군대조직과 기업체를 움직이는 지배적인 조직규범이었다. (106면)




26. 이후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폭발하는 발판을 제공한 것은 바로 공장에서 축적된 노동자들의 쓰디쓴 경험이었다. (109면)




27. 여러 의미에서 전태일의 희생은 한국 노동계급 형성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수백만명의 노동자들, 그들의 가슴 속에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그때까지 집단적인 목표를 위해 노동자들을 고취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성스러운 상징과 존경할 만한 전통이 없었던 한국의 노동계급에 강력한 상징을 제공했다. 이 사건은 또한 급속한 수출주도형 산업화과정이 만들어낸 노동문제가 산업영역에서 감추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갈들을 불러일으키는 폭발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산업노동자들이 사회적 갈등과 사회변혁의 핵심세력으로서 역사의 장에 들어선 것이다. (112면)




28. 전태일을 저항하게 만든 끊임없는 노동착취와 엄청난 인간적 고통은 1970년대 제조업 무문의 노동집약적인 수출산업에서 계속 늘어나는 공장노동자들이 처한 지배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는 주류사회에 들리지 않았다. (113면)




29.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특히 지식인사회가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어두운 면과 경제기적이라는 허울 아래 고통받고 있는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사건은 학생들이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치투쟁을 확대하여 경제정의 문제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최초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14면)




30. 그러나 조직적인 노동운동의 발전이 이루어지기에 1970년대는 아직 너무 이른 시기였다. 수출제조업 부문에 고용된 공장노동자수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신출내기 산업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노동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노동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착취와 학대가 극한 수준에 달했을 때, 노동자들의 누적된 고통과 분노가 격한 저항행위로 나타났고, 이 행위들은 자주 격렬하고 감정적이며 개인적인 행동으로 폭발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후 여러명의 다른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서 자살을 기도했다. (114면)




31. 여성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점을 떠나서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노조활동가와 교회조직 간의 긴밀한 결합이었다. 거의 예외없이,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진보적인 교회지도자들의 보호 아래 조직된 소그룹활동이나 노동자야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노조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117면)




32. 목사들은 처음에는 산업노동자와 고용주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데 관심이 있었지만, 공장을 경험하면서 개인적인 영적 접근은 공허한 것이라는 사실과 공장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118면)




33. 노동문제에 대단히 동정적이지만 조직적으로 약한 지식인들과는 달리 교회조직은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내부적인 조직구조 때문에 노동자들을 지원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더욱이 기독교의 국제적 위치 때문에 교회조직들은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국가의 이념공세로부터 지식인들이나 반체제인사들보다 비교적 더 안전했다. (122면)




34. 이 여성들은 교회가 후원하는 활동을 통해서 만난 사이였는데 주류 기독교인들의 보수적인 안이함을 뒤흔들기 위해 매주 교회에서 설교되는 평화, 사랑, 자유가 공장에서 어떻게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언론매체에 분개하였다. (136면)




35. YH무역 노동자투쟁 ... 신민당은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비약시킬 수 있는 장소이므로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간에 사회전반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139면)




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횃불을 든 것은 여성노동자들이었다. 1970년대 노조조직투쟁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노동쟁의는 섬유, 피복, 전자 그리고 수출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이 남성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경우에도 여성노동자들은 투쟁의 주된 참여자들이었고, 남성노동자들보다 더 강력한 저항심, 결의, 연대감, 끈기를 보여주었다. (142면)




37. 그러므로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노동운동 참여는 수출산업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수출자유지역의 여성들에 관한 문헌들은 그들이 얼마만큼 국제적 자본에 의해서 초과 착취당하고 저임금과 불리한 시장조건, 그리고 성적 억압으로 고통받는가를 강조한다. 아시아 여성 공장노동자들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는 순종, 수동성, 일시적인 공장생활, 노조활동에 대한 무관심 등이다. (142면)




38. 나는 경공업 여성노동자들과 진보적인 교회조직 간에 형성된 긴밀한 연계에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고 믿는다. (145면)




39. 그녀(김지선) 역시 초기 투쟁단계에서 교회집단과 지식인들의 핵심적인 역할을 인정했다. “사회에서 아무도 우리에게 인간적 대접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우리들을 존귀한 인간으로 대우해주었어요.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의미했어요. 우리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애정을 가지고 우리를 돕는 사람들에 대해서 깊은 신뢰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고, 우리는 그분의 말대로 따르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146면)




40. 여성 공장 노동자들은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은 사람들이다.” (146면)




41.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태도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노동자들 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보다 교회에 다닐 가능성이 더 컸다. 게다가 여성노동자들은 교회지도자들이 이끄는 소집단활동에 남성노동자들보다 더 관심을 가졌다. 교회와 노동자들의 연계수단은 통상적인 예배 참석보다 소모임활동이었다. 왜 여성들이 소모임활동에 참여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우리는 몇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남성에 비해서 여성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더 큰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고, 심리적으로 더 큰 정신적 위안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공장노동자로서 훼손된 자아정체성을 보상받기 위하여 교육적, 문화적 경험에 대해 더 큰 욕구를 가졌다. 그리고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다양한 여가활동에 참여할 자유가 없었다. (147면)




42. 더욱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까지 운동권은 계급문제와 분리된 채 성문제를 강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그 두 쟁점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보다는 분리된 것으로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경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149면)




43. ‘우선과제’의 잘못된 선정은 주요모순을 은폐시키고 부차적 모순을 전면 부각시키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149면)




44.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노동투쟁을 야기한 것은 외부의 선동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 나날의 노동생활에서 경험하는 실존적 현실이었다. 극도로 열약한 노동조건, 형편없는 임금, 무엇보다도 경영자들에 의한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않은 대우, 간단히 말해서 ‘비인간적인 대우’가 의심할 여지없이 1970년대 노동투쟁의 실질적인 원인이었다. (150면)




45. 더욱이 육체노동자들에 대한 경영자들의 경멸적인 태도, 특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가 깊은 심리적 상처와 분노를 야기했고 노동투쟁의 폭발 요인을 제공하였다. (151면)




46. 교회조직들은 1970년대 노동계급운동의 발전에 몇가지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진보적인 교회들은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들의 문제와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피난처와 사회적 공간을 제공했다. 1970년대에는 노동자들이 서로 자유롭게 만나서 공통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없었다. 둘째, 교회조직들은 노동자들이 간헐적이고 개인적인 시위가 아니라 자주노조 결성에 노력을 기울이도록 도왔다. (151, 152면)




47.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투쟁의 실제 주체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교회조직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놀랄 만한 연대활동을 가능케 한 것은 잔인한 노동조건과 그들의 노동경험 그리고 공통의 사회적 배경에 바탕을 둔 강한 유대감이었다. 교회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할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잠재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촉매제 역할이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152면)




48. 오글이 “1980년대 중반 남성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10년 이상 정의를 위해서 투쟁해온 여성들의 어깨 위에 자신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152면)




49. 노동투쟁에 대한 교회지도자들의 온건한 접근에 대해 노동운동가들이 점차 실망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57면)




50. 그에 비해 1970년대 노동문제에 개입했던 학생들은 주로 비인간적인 조건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에서 출발했고, 그리하여 그들의 지향은 교회지도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58면)




51. 청계피복노조는 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가장 가혹한 탄압을 받았고, 조합원들은 이러한 탄압에 저항하여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다. 군사정권은 먼저 이소선을 체포하고 - 이소선은 전태일의 어머니로서 청계지역 노동자들은 그를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 1980년 봄 노동쟁의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1년 징역형을 구형했다. (164면)




52. 세계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듯이, 계급투쟁은 장기적으로 볼 때 승리에서뿐만 아니라 실패로부터도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비록 구로연대파업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런 집단적인 경험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제고하고 기업간 노동자들의 상호연대를 촉진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투쟁의 목표나 조직적인 형태면에서 정치투쟁이었으며, 이 점에서도 구로연대투쟁은 그 이전의 모든 투쟁들보다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173면)




53. 한 노동자는 분노에 차서 ‘우리를 눈 뜨게 한 것은 선동도 배후조종도 아닌 바로 우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주장했다. (175면)




54. 노동자들이 스스로 말하듯이, 그들이 겪은 비참한 생활조건과 사회적 천대가 그들을 분노하고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구로지역 노동자들이 노조를 방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것은 자주노조만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외에 환경적인 요인들 역시 기업간 연대투쟁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단히 제한된 산업구역 내의 생산노동자들의 집중, 상당히 동질적인 노동력의 인구학적, 사회적 성격, 그리고 공단 내에서의 잦은 이직 등은 이 지역의 노동자집단 사이에서 사회적 연계와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176면)




55.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노동운동과 민주화를 위한 정치투쟁 간에 긴밀한 연계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184면)




56. 사람들은 공장노동자들이 산업화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매우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노동자들은 낮고, 하찮고, 존경받을 수 없는 지위의 사람들로 간주되었고, 이런 사회적 태도는 일상언어와 대중매체에서 표현하는 공장노동자들의 이미지에서 자주 드러났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도, 이런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도출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큰 심리적 고통을 가져다 준 ‘공순이와 공돌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었다. (189면)




57. 공장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이미지는 노동자 자신들에 의해서도 내면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 공장에 들어갔을 때는 ‘노동자’란 말의 의미도 몰랐는데, 다니다 보니까 내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천한 노동자란 것을 깨닫게 됐어요.” (190면)




58. 다른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은 초기 산업화과정에서 중간계층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초기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이미지는 거의 예외없이 더럽고 거칠며 지위가 낮은 노동자들이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노동자들의 작업내용과 작업환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산업화 초기세대 공장노동자들의 행동양식이 중간계층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191면)




59. 한국 노동자들이 사회에서 천대받았던 주된 이유는 전통적인 유교적 신분질서의 유산과 육체노동을 통해서 버는 그들의 낮은 소득 때문이었다. (192면)




60. 엄격히 말해서, 공장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경시받은 주된 원인은 전통적인 봉건적 신분질서라기보다는 유교적 신분체계의 핵심요소이자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가장 핵심적인 잣대로 남아있는 교육의 상징성이었다. 물론 교육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계층구분의 주된 기준이 된다. 그러나 큰 정치적 혼란과 심한 운명의 부침을 겪어온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더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었다. 더욱이 한국의 정치경제 풍토에서 교육은 부나 정치권력보다 더 큰 도덕적 위엄을 지녔다. (193면)




61. 노동자들은 분명히 세계를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것으로 보았지만, 그들의 일기와 수기에서 그려진 불평등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이라기보다는, 교육받은 사람과 교육받지 못한 사람 간의 불평등이었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더욱 적었다. 한 노동자는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 같고(한윤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항상 교육받지 못한 사람을 경멸스런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한다. (196면)




62.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성차별과 육체노동에 대한 문화적 폄하로 이중적 억압을 받았다. (197면)




63. 한 노동자는 “내가 이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은 못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죠.” ...  (199면)




64. 대단히 흥미롭게도 여성노동자들은 야간학교 교사들의 지도로 차츰 불평등구조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갖게 됐고, 따라서 학구열이 높은 여성노동자들의 강한 이탈성향이 ‘목소리내기(voice)'라는 긍정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200면)




65. 이것은 적대적인 생산관계에 근거한 계급의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현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상징적, 도덕적 억압이 가진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정체성 형성유형과 계급의식 발달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간단히 말해, 상징적 억압에 대한 한국 노동자들의 뿌리깊은 분노가 집단적인 행동과 계급의식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담당했다. (201면)




66. 한은 분명 계급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적 성격에 관한 이해나 자본에 적대적인 노동자들의 공통된 계급이해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은 불의에 대한 인식과 저항정신을 높이는 도덕언어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은 정신적 저항의 언어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 혹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길 때 한의 감정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에 대한 인식의 밑바닥에는 평등주의와 역사적 정통성이 없는 위계적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이 자리잡고 있다. 한이라는 언어는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동일한 경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의 강한 연대감을 촉진한다. 비록 계급언어는 아니지만 한은 그것이 품고 있는 사회정의에 대한 예민한 정서를 통해 계급인식과 계급감정을 고양할 수 있다. (202면)




67. 1079년대, 산업노동자들의 자아정체성이 발달함에 따라, 노동자라는 오래된 단어에는 정부와 고용주들이 선호하는 근로자라는 단어와는 반대로 좀 더 계급적인 의미가 실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의 저명한 노동운동가인 노회찬은 1980년대 초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정 수준의 계급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순이나 공돌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경멸적인 말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209면)




68. 민중은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 그리고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모두 포함했다. (211면)




69. 민중운동은 정치운동인 동시에 문화운동이었다. ... 당대의 한국사회를 다룬 소설들은 하층계급이 겪는 사회적 불의를 드러내고자 했고, 역사소설들은 억압받는 계층의 고통과 투쟁을 극화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민중운동에서 야기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탈춤, 풍물, 마당극, 마당굿 등 서민들이 향유하는 토속적인 문화형태를 재발견하고 재창조한 것이었다. (213면)




70. 요컨대 민중적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에 의해서 수용되고 재창조된 서민들의 일상적 전통문화는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알맞은 핵심적인 문화적 요소, 즉 공동체 정신, 민주적 참여, 사회적 불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 그리고 사회변화를 향한 집단적 투쟁을 위한 활기찬 정신을 포함하고 있었다. (214면)




71. 박노해의 존재는 안또니오 그람시의 용어인 “유기적 지식인”의 등장을 의미했다. (218면)




72. 한 노동자는 “풍물을 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함께’라는 단체의식이다”라고 보고한다. (218면)




73. 노동계급의 정체성 발달은 노동계급 형성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21면)




74. 따라서 노동자 정체성은 노동자들의 이탈성향을 목소리내기(voice) 성향으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이다. 즉, 노동자 정체성은 계급의식을 발달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222면)




75. 여러 면에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오랫동안 누적된 노동자들의 한이 폭발하고 분출되는 계기였다. 다른 말로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린 불만과 분노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격렬한 방식으로 발산된 노동자들의 거대한 한풀이였던 것이다. (231면)




76. 왜냐하면 계급정체성은 단지 같은 위치를 차지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집단에 대한 어느정도의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이 새로운 권력감은 계급정체성을 촉진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대투쟁의 경험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지배해온 패배주의와 현실 도피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51면)




77. 1987년 노동계급 투쟁에서 일단 남성노동자들이 중심을 차지하자, 여성노동자들은 급속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260면)




78. 실제로 87년 대투쟁 이후 여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 노조 운동이 ‘주류’ 담론에 포함된 적은 거의 없다. (김현미) (261면)




79. 한국 노동자들이 권리에 대한 인식과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을 획득하고, 연대와 자주노조 건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일찍이 용기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외롭고 피나는 투쟁을 통해서였다. (265면)




80.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물질적 목표의 달성보다는 인간적 존엄과 사회적 존경을 회복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고,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긍지와 인간적 존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노조 건설을 위해 투쟁했다. (266면)




81. 이제 노동자들은 멸시받는 하층계급 성원이 아니라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그리고 한국 사회 변혁의 주체로 그들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267면)




82. 향상된 경제조건과 개선된 공장 내의 노사관계가 산업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68면)




83. 보수적인 성격에 더해 악화되는 경제로 언론은 자본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72면)




84. 정당들은 중간계층의 지지 상실을 두려워해 노동세력과 동맹 맺기를 꺼려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야당들도 여당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278, 279면)




85. 노동시장 개혁의 구조적 동력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충격과 약화되는 한국경제의 위치로부터 나왔다 1997년 한국 총파업의 결과는 세계경제체제의 강압적 요구와 그것의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282면)




86. 이렇게 국제통화기금 체제하에서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는 대체로 노동자들이 산업불안정이나 사회불안을 야기하지 않고 희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284면)




87. 다른 신흥공업국들의 경험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운동은 게이 싸이드먼이 말하는 “사회운동노조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286면)




88.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은 공장 특유의 문제들에 몰두하였고, 지역사회의 소비 관련 문제들에 관심이 적었거나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싸이드먼이 그리는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노동자들의 경우와 달리, 아마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지역과 공장이 곧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288면)




89.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들은 한국 노동운동을 사회운동노조주의 대신에 경제노조주의로 형성했다. (288면)




90.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사회의 힘있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을 대하고 바라보던 방식에 대한 한국 노동자들의 뿌리깊은 적개심과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성과 존중을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294면)




91. ... 낙인찍는 정체성에 대한 대항정체성 ... (294면)




92. 민주화의 또다른 중요한 결과는 노동계급투쟁과 사회, 정치운동의 점진적인 분리였다. 군사정권의 종말과 함께 이 두 운동은 과거 둘을 묶고 있던 공동의 적을 상실했다. 변화된 정치환경에서 민주주의 운동은 노동문제로부터 눈을 돌려 좀더 광범위한 사회문제인 분배, 환경, 성적 불평등, 시민적 도덕성의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중간계층 지식인 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의식적으로 노동운동조직과 급진적인 민중운동에 거리를 두었다. 많은 지식인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운동을 떠나 새로운 사회운동에 가담하거나 기존의 정당정치에 포섭되었다. 동시에 노동운동의 주류는 사회, 정치운동에 거리를 두면서 더욱 실리적, 경제지향적으로 되었다. (302, 303면)




93. 한국 자본가들은 외부적으로는 수출시장에서 증대되는 경쟁에, 국내적으로는 강력해진 노조에 직면해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현장에서 노동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 새로운 기업전략들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효과를 지녔다. 이전에 동질적이었던 노동계급은 점차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 보호받는 노동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로 내부 분화하게 되었다. (303면)




94. 10여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완성된 이 책은 한국 노동운동에 관한 역사적 연구이지만 단순한 서술적인 노동사 연구가 아니라 영국 역사학자인 E.P.톰슨이 제기한 계급형성론의 관점에서 한국 노동운동을 분석하고 있다. 계급형성론은 계급을 생산관계 내에서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경제적 관점과는 달리 공통의 생활경험, 전통, 언어,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계급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집단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행위와 의식을 정의하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3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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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금욕과 탐욕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 청소년 철학창고 16
막스 베버 지음, 김상희 옮김 / 풀빛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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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버가 어떤 지역의 종교와 직업에 관한 통계를 통해 주목한 것은 “자본가와 기업가들, 특히 근대 기업의 숙련된 상급 노동자와 관리자 계급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었다. 즉, 베버는 신앙과 계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31면)




2. 사실상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감독은 느슷한 것이었다. 오히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면서 가톨릭이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행동의 규제를 받았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 신자들보다도 휴식이나 향락, 오락 등에 대해 더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를 취해야 했다. 이 점은 특히 칼뱅교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베버는 만일 우리가 프로테스탄트와 경제적 발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지닌 특유한 성격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31면)




3. 이른바 종교 개혁이란 삶 전반에 대한 교회의 지배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배 형식이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종교 개혁 이전에는 교회의 지배가 아주 편안하고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이었는데, 종교 개혁 이후에는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 전부를 포함해 모든 생활에 대해 교회가 엄격히 규제했다. 따라서 종교 개혁은 개인에 대한 매우 엄격하고도 광범위한 교회의 지배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33면)




4. 이렇게 행동의 차이를 낳는 원인은 각각의 종파가 처한 그때그때의 외적인 이유 즉,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내적 작용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어떤 종파적 특성과 요인이 경제적 합리주의의 성향을 만들어 냈고 또 일부는 현재에도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37, 38면)




5. “가톨릭은 영리 충동이 적기 때문에 평온하다. 위험하고 자극적인 생활을 통해 명예와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수입이 적더라도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익살맞은 농담의 하나로 ‘잘 먹을 것인가 아니면 발 뻗고 잘 것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두 신앙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프로테스탄트는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쪽이고, 가톨릭은 발 뻗고 자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오펜바하) (38, 39면)




6. 가장 철저한 경건성과 함께 뛰어난 자본주의적 영리 감각, 이 두 가지를 한 개인이나 집단이 동시에 소유하는 경우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성향이 공존하는 것은 역사상으로 볼 때 모든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그 분파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이었다. (41면)




7.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서의 일에 대한 자신의 엄격한 책임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정당한 경제적 활동을 통해 부를 획득하려는 헌신이 이를 통해 얻어진 소득을 개인적 향략에 사용하지 않으려는 금욕적인 태도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특징짓는다. 프로테스탄트가 의무와 미덕으로서 ‘직업의 소명’을 신에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한 점은 프로테스탄트 특유의 종교적 가치에 뿌리를 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자연스런 향략을 엄격하게 억제하면서 더욱더 많은 돈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순수한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개인의 행복이나 효용을 초월하는 매우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윤을 획득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렇게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획득이 금욕적인 성격으로 바뀌면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초기 자본의 축적을 이끌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주도 원리로 작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베버는 초기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 원인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제시한다. (46, 47면)




8. 신용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의 채권자가 새벽 다섯 시나 저녁 여덟 시에 당신의 망치 소리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기꺼이 당신에게 지불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해야 할 시간에 당구장에 있는 당신을 보게 되거나 술집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의 채권자는 다음 날로 당장 모든 빛을 갚으라고 독촉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내는 망치 소리는 당신이 자신의 채무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이는 당신을 성실하고 주의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따라서 당신의 신용도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0면)




9. 당신은 지금 지니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이 바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신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작은 지출이 모여서 얼마나 많은 돈이 되며 무엇이 절약되었고 또 앞으로 무엇을 절약할 수 있을 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0, 51면)




10. 게으름을 피우며 5실링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5실링을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다. 5실링을 잃은 사람은 단지 5실링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 즉, 젊은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계산한다면 엄청난 금액까지 잃는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1면)




11. “네가 자신의 사업에 충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서리라(구약성서 잠언 22장 29절)” (55면)




12. 제3장에서 베버는 루터가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Beruf’(직업 또는 소명이라는 의미의 독일어)라는 단어를 쓴 것에 주목한다. 이 단어를 번역하자면 영어의 ‘calling'(소명, 즉 신이 인간에게 명령하고 부여한 부름)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천직 즉 타고난 직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84면)




13. 루터가 말하고 가르친 직업 개념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가장 고결한 표현은 수도원의 금욕주의나 은둔 생활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주어진 의무를 실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84면)




14. 일찍이 밀턴이 예정설에 대해서 “설령 내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이러한 신은 결코 존경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비판은 매우 유명하다. ... 당시 루터 교회의 지도자 멜란히톤은 이 ‘어둡고 위험한 이론’(예정설을 말함)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에서 채택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107면)




15. ‘나는 선택을 받았는가? 만일 내가 선택을 받았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이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자 다른 모든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 분명하다. (117면)




16. 각 개인들이 자신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그저 칼뱅이 말하는 대로 ‘지칠 줄 모르는 신앙이 곧 은총의 징표를 나타내는 자기 증거’라는 입장에 머무르기란 불가능했다. (119면)




17. 개혁파 교회 가운데서도 특히 네덜란드에서 금욕주의가 부흥한 것은 잊었거나 약화되었던 예정설의 재현과 항상 결부되어 나타났다. (137면)




18. 경건주의는 신자들의 보이지 않는 교회를 지상에 세우고자 했다. (138면)




19. 루터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개혁파 프로테스탄트에게는 자신이 부여받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노동할 것이 의무로서 부과되었다. 즉 자신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신이 부여한 재능을 허비하는 것이고, 또 현세에서의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64면)




20.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나타난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 발생의 원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확정된 직업에 금욕적으로 충실하라는 요구는 근대의 전문화된 노동 분업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이윤 행위는 하느님의 섭리로 해석함으로써 사업가의 활동 또한 정당화했다. 사치와 방종은 금기 대상이 되었던 반면 스스로 부를 이룩한 중산층은 최고의 윤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합리화 과정을 확대시키는 데 공헌하게 된다. (164, 165면)




21.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일 뿐만 아니라 근대 문화를 구성하는 직업 사상에 기초한 합리적인 생활 태도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165면)




22. ... 따라서 일상생활의 행동에 영향 미쳤던 종교의 힘이야말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165, 166면)




23.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온 힘을 다해 소비적 향락에 반대했다. 특히 사람들의 사치성 소비를 억제하는 한편 재화의 획득을 가로막던 전통적 윤리로부터 벗어난 이윤 추구를 정당화했다. 또한 신이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윤추구라고 설명함으로써 이윤 추구를 억제해 온 전통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켰다. (184면)




24. “내가 염려하는 것은 재산이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씩 종교 정신은 감소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상황 속에서 참된 신앙의 부흥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는 근면과 절약으로 곧 부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부가 늘어나면 모든 형태의 자만과 열정, 그리고 세속적 애착도 커진다. 가슴속에서 움터 나온 종교인 감리교, 현재는 푸른 나무처럼 한창 자라나고 있지만 이 상태가 얼마나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감리교 신도는 어디에서나 근면하고 성실하다. 자연히 재산도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자만과 육신의 욕망, 그리고 삶의 교만함도 커진다. 종교의 형식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그 정신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순수한 종교가 이렇게 부패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 (웨슬리) (189면)




25. 오늘날 종교적인 금욕주의 정신은 이 우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영원히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라는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더 이상 정신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의 유쾌한 후계자인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완전히 빛이 바랜 듯 하고, ‘직업 의무’ 사상은 지나간 종교 신앙의 유령이 되어 우리 삶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직업 수행의 의미를 찾거나 직업 수행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늘날 직업 수행은 더 이상 초고의 정신적 문화 가치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197, 19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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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소송론
이상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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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을 정치사상적으로 돌려보면 공익소송은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근대 자유주의 이념에 공동체주의적 관념을 많은 부분 가미하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미국에서의 공익소송 논의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전개와 밀접하게 관련지어 전개되었다. 공익소송은 좀더 공동체주의적 경향을 띤다. (9면)




2. 사실 공익소송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때때로 손해전보가 아닌 제도개선에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 즉 승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와 광범위한 사회적 관심의 유도에 방점을 놓는 것이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제도개선에 영향을 미친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9면)




3.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익소송에 대한 분쟁해결이 소송 ‘내’의 분쟁해결이 아니라, 소송을 오히려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그 이슈에 대한 여론의 조성과 공론의 형성을 통해 소송의 결과를 ‘의사소통적으로’ 조종하는 매커니즘이 공익소송의 기획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10면)




4. 사회운동으로서의 공익소송은 매우 투쟁적인 성격을 띤다. 대개 공익소송은 잘게 쪼개어지고 흩어진 개인들, 특히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고, 그 투쟁이 현재의 소송법체계에서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다. ... 바로 그런 이유로 공익소송은 새로운 권리화, 즉 새로운 권리유형으로서 ‘말하여지는’ 섬약한 목소리들을 포착해내어 권리‘화’하는 기획을 수행하는 실천이자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11면)




5. 즉 사적 개인이 소를 제기하면 이를 확인하고 구제해주는 수동적 법원의 상을 넘어서, 소외되었거나 아직 권리화되지 않았던 인권을 캐내어내고 표제화하는 능동적인 법원상으로의 확장을 요구한다. (11, 12면)




6. 이 정의에서 공통된 공익소송의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는 1) 주체(공익법운동단체, 공익변호사), 2) 확산이익, 3) 제도의 개선이나 법의 개정 및 판례의 변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8면)




7. 그런데 이 중에서 공익소송 개념은 공익소송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조직에 의해 공익성이 판정되는 신분(또는 주체)편향적 구조를 갖고 있음이 눈에 띤다. 이 편향이 커질수록 공익소송은 사법을 정치화할 위험도 수반한다. 다시 말해 시민성을 가장한 ‘공동선’(common good)에의 상징을 정치(예: 낙천낙선운동)의 영역에서 사법(공익소송)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시민단체의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면)




8.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개인이익의 표출방식이 공개화되고 다양해짐에 따라, 실정법보다는 더욱 동태적이고 유동적인 공익결정방식이 요청되게 되었다. 국가의 전통적인 통치기구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언론, 사회단체, 시민운동주체들까지 개별적으로 혹은 연합하여 공론경쟁 속에서 공익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정당성은 법다원주의(legal pluralism)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22면)




9. 이처럼 법이 다양한 영역들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점의 교환절차 속에 머물면, 합법성은 언제나 상호적인 형태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22면)




10.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주체가 목적에 우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리(the right)가 선(the good)에 우선한다는 사고에 기초한다. (24면)




11. 이처럼 합리적 개인에 의한 중첩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의 난점은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와 무임승차의 문제(the free-rider problem)를 통해 잘 나타난다. 여기서 전자, 즉 죄수의 딜레마는 각자의 행동이 지극히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고립된 채 이루어진 개인들의 결정의 결과는 최적이지 못한, 집단적 비합리성으로 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5면)




12. 자유주의가 상정하는 합리적 개인은 만일 공동체가 산출될 정도로 타인들의 기여가 이미 충분하다면 자기가 기여하지 않아도 공공재에 대한 자신의 향유가 감소되지 않을 걸로 생각된다. (26면)




13. 그렇기에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주의적 전제조건들로부터 출발한 자유주의가 결과적으로 자유 실현의 가능조건들마저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간이 이미 주어진 가치체계 속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오류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언제나 이미’ 존재했던 비자발적인 공동체에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정체성은 문화적이고 언어적이며 종교적인 공동체들에 의해 규정된다. (26, 27면)




14. 이들은 공동선의 가치를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동등한 비중으로 고려할 것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개개이익에 종속되지 않는 공익의 독자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 때 문제는 공동체에 뿌리내린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복합적 결정체로서의 ‘덕’을 실현하는 기제이다. 덕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중심체는 국가이다. 그처럼 ‘공적인 것’을 ‘국가적인 것’과 동일시한다면, 공동체적 덕의 논거가 전제적인 국가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을 지닌다. 즉 공동체주의자들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공동체가 근대국가라는 강력한 정치체제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27면)




15. 하지만 공동체와 공동선의 강조는 자칫 개별적 자유와 자율성을 부정하는, 그리하여 또다시 차이를 억누르는 동질적인 사회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수자의 은폐된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힘과 정당화근거로서 공동체와 공동선은, 현대사회의 다층적인 차이의 문제를 단순화 내지 획일화할 위험성을 지닌다. (28면)




16. 이런 공익개념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인 것이다. 이렇게 절차적인 개념으로서 공익은 물론 합의의 변화에 따라 그 실제 내용이 변화할 수 있다. (29면)




17. 이처럼 흩어져 있는 이익은 흩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받을 수 밖에 없고, 제도를 통해 구제받으려 해도 비용 때문에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공익이란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30면)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공익소송위원회운영규정 제2조도 ‘공익소송’에 대한 개념 정의에서 “공익소송이라 함은, 다중의 확산이익이 있는 소송으로서 ...”라고 규정함으로써, ‘확산이익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30면)




19.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잘게 쪼개져 있는 권리는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권리이며, 이와 같은 의미에서 강한 사회적 힘으로 뭉쳐져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흩어져 있는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익을 ‘소수자, 약자, 피해자의 권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30, 31면)




20. “의뢰자가 빈곤한지 여부를 떠나 비용면에서 부담이 되고, 따라서 변호사의 측에서 보면 채산이 맞지 않는 사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당사자의 권리옹호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시민의 공통된 권리를 수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37면)




21. 우리나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38면)




22. 이와 같이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가 변호사단체의 내부 규칙 등에 맡겨져 있지 않고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는 경우로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40면)




23. 또한 많은 변호사들도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타 영역의 전문성과 결합하여 운동 차원의 공익소송을 제기해가고 있다. (41면)




24. 공익‘소송’은 소송을 통해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제도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무자력자를 도와 소송을 진행하는 무료변론 형태의 변호사공익활동과는 구별된다. 즉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잘게 쪼개져서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 게 흩어져 있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는 사회적 인식이 미흡하며, 그렇기에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권리를 캐어내고 보호해줌으로써 사회여론을 촉진시키고 판례를 축적해가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42면)




25. 공익소송은 단지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이익을 구성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43면)




26. 민주적 의사형성의 보완적 기능은 이제까지는 주로 인권운동과 시민불복종운동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 그런데 인권운동에서나 시민불복종운동에서나 그 운동주체들이 갖는 정의(또는 자연법적 인권)에 관한 주관적 확신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적 투쟁이 정작 그 운동이나 투쟁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은 현대사회의 법사회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통찰이 되었다. (46, 47면)




27. 공익소송은 그것이 주장하는 인권사상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가 광범위해질수록, 즉 공론경쟁에서 더 타당한 것으로 승인될수록, 그 주장내용을 실정법으로 제도화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47면)




28. 먼저 공익소송이 되려면 인권을 실현하는 기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공익소송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49면)




29. 공익소송의 정당성은 새로운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시민사회에서 더욱 광범위한 동의와 공감을 얻어냄으로써 형성되고, 그러할 때 실정법으로 제도화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50면)




30. 공익소송은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되지 않았던 이익’,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시민권,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 ‘그동안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권리’의 보호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50면)




31. 새로운 권리를 발견해내는 건 ‘인권을 말함(말하는 행위)’이 갖는 수사학적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53면)




32. 즉 인권이 한편으로는 자연법적 절대서으로 회귀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 단순히 국가가 법으로 ‘이미’ 보장해 주는 경우에만 존재하는 실정법적 권리로 남지 않을 제3의 가능성은 언어 속에, 다시 말해 ‘말함’ 속에 존재한다. 즉 태초부터 어떠한 권리가 절대불가침한 형태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권리’를 호소하는 행위가 있고, 그 행위가 어떤 사태의 규범적 의미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합의된 의사를 이끌어낼 때 그 사회에서 ‘인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처럼 인권을 말하고, 듣고, 다시 말하는 행위, 즉 인권에 관한 거시적 대화는 ‘인권담론’을 형성한다. (53면)




33. 이처럼 공익소송은 이제껏 인식되지 못하였던 혹은 저평가되었던 권리를 호소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 거기서 이끌어내어진 새로운 판결이 ‘규범적 의미에 대한 사회적 설득과 합의의 산물’이라 전제한다면, 공익소송운동이 소송이라는 도구를 갖고 인권담론에 참여하는, 하나의 ‘강력한 실천’이 될 것이다. (55면)




34. 즉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요구를 받아 끌어안는 게 아니라, 요구 자체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며, ‘조직화’한다. (56면)




35. 더 나아가 집단적 사익이 공익소송이라는 우산 아래서 모조리 인권의 옷을 덧입을 때, 인권개념이 갖는 상징성과 선언적 의미가 희석될 위험이 있다. 새로운 인권실현이라는 ‘미사어구’를 앞에 내세워 공익소송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시킨다면 인권은 단지 언어적 ‘수사’ 차원에 머물고 만다. (57면)




36. 그러나 가치판단의 주체가 일부 시민단체나 이익집단에 국한된다면, 이 역시 정치화될 위험이 다분하다. (58면)




37. 이렇게 작게 보이는 이유는 그런 권리를 관철하는 힘이 강력한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뭉쳐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60면)




38. 요구 자체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며 또 조직화한다. (65면)




39. 어떤 단체든 간에 시민성의 원천은 그 조직의 활동에 기반이 되는 재정이 국가(행정, 정치)로부터 또는 산업(경제, 시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그 조직의 시민운동 모습을 보고 자발적으로 내는 작은 기부금들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 (67면)




40. 이와 함께, 조직의 핵심 구성원들이 관료가 되거나 정치인이 되는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야 한다. (67, 68면)




41. 공익소송제도를 설립하려면 인권실현과 확산이익보호라는 요소 이외에 소송주체의 공익성과 시민성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71면)




42. 선정당사자제도(민사소송법 제53조)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자가 그들 중 1인 또는 수인의 대표자인 선정당사자로 뽑아서, 그의 이름으로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으면 효력이 다수인 전원에게 미치도록 하는 제도이다. (77면)




43. 부권소송은 주정부가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소를 제기하는 소송형태이다. (96면)




44. 부권소송은 분명 집단소송보다 공익소송의 윤곽을 훨씬 더 많이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권소송이 공익소송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남아 있다. 그것은 소송의 주체가 갖추어야 할 공익성이 ‘시민성’과 절연된 채 관료들의 엘리트주의적 결정능력에 의해 그 내용이 좌우된다는 점에 있다. (100면)




45. 집단소송보다 좀더 공익소송화된 부권소송, 이보다 좀더 공익소송화된 모델로 단체소송을 들 수 있다. 단체소송은 공익소송이 거의 완성된 형태를 띤다. (103면)




46. 단체소송은 일정한 자격을 가진 단체가 일정한 분쟁에 있어서 불이익을 입은 자를 대신해서 소송을 제기함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103면)




47. 즉 단체소송에 의한 권리확인은 인권형성적 측면을 매우 강하게 가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단체소송은 공익소송의 ‘인권실현’이라는 요소를 집단소송에 비해 좀더 많이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108면)




48. 독일의 단체소송자격을 개관하고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는 1) 공익목적의 정관, 공익목적의 (인적, 물적) 수행능력과 그것을 입증하는 활동업적,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2) 비영리성과 시민의 자유참여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는 단체소송주체의 ‘공익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시민성’을 요구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공익성과 시민성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시민성의 토대 위에서 공익 개념을 지속적으로 반성되고, 변화/발전해 나갈 수 있고, 시민성 또한 공익성에 지향되지 않고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0, 111면)




49. 왜냐하면 공익소송은 확산이익의 표지를 충족해야 하고, 이는 개별피해는 작아도 피해자집단은 커야 하므로, 공익에 대한 상호주관적 확신 아래서 원고가 됨을 수락할 수 있는 피해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3면)




50. 더욱이 그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른바 ‘무임승차’의 문제, 즉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 공익은 함께 누리려는 경향은, 사익이 안정되게 추구될 수 있는 토대마저 붕괴시킬 위험을 지닌다. (128면)




51. 실제로 공익법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은 법원의 권리구제기능보다도 정책형성기능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런 경향은 입법, 행정영역에서 나오는 해결책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사안들을 법원에 가져와서 실현해 달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법원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로 나타난다. (129, 1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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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론
이상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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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단체가 지난 십수 년간 시민운동을 펼치기 매우 힘든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토양 - 예를 들면 시민들의 기부문화 결핍, 시민들의 정치의식 부족, 권위주의적 정부의 억압 - 위에서, 시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전략은 바로 스스로 자신을 - 국가권력과 거대한 산업세력에 맞설 수 있도록 - ‘권력화’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5면)




2. 시민단체의 변증은 본질적으로 최근 시민단체가 보여주는 ‘관변화’와 ‘금전화’의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6면)




3.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민단체의 ‘관변화’란 예를 들면 시민단체의 대표가 행정부의 장이 된다든지, 정부의 정책입안이 공론화되지도 않은 단계에, 관청의 밀실에서 행정관료와 협의하고, 때로는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연구용역을 받아 그 정책의 구체적인 기획을 설계하거나 정부의 정책집행을 뒷받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활동을 가리킨다. 그런 활동은 물론 한편으로는 정부의 정책원안을 교정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적 기능을 부분적으로 상실하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그와 같은 관변적인 활동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정치체계의 절대명령’(Imperative), 즉 권력의 (확대)재생산이라는 매커니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6, 7면)




4. 내가 말하는 ‘금전화’란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단체가 거대한 산업기구로부터 자금줄을 대게 되는 현상의 모든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시민단체가 거대기업으로부터 직접 연구용역을 받는다든가 아니면 시민단체의 대표가 거대기업의 경영진(예: 사외이사)으로 들어가서 받게 되는 수입을 기부금의 형태로 전환하여 받게 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재정적 연결고리에 의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한편으로는 더욱 활성화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자본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경제체계의 절대명령’이 지배하는 거대기업들의 기업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7, 8면)




5.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시민운동에서는 이와 같은 관변화와 금전화의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미 선행연구들은 그 원인을 우리 시민단체들의 조직이 대체로 방대하다는 데에서 찾는다. 조직이 방대해지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위계질서형의 구조를 선호하기 쉽고, 그 결과 행위방식에서도 관료사회의 그것과 유사해지게 된다. 시민단체의 조직이 (준)관료조직화되면 될 수록, 본래적 의미의 시민운동이 가져야 할 ‘자발성’에 입각한 ‘참여’가 그만큼 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8면)




6. 또한 다른 한편 시민단체의 조직이 방대해질수록 재정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특히 이런 재정적인 부담의 증대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민운동 단체들이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시민운동단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환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8면)




7. 여기서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대체로 명망가 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게 한다. 우리의 ‘시민운동’에는 절대 다수의 사회적 ‘지도층’이 포진해 있고, 이러한 상태를 통해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운동의 양적 기반 확보보다는 이른바 ‘계몽을 통한 동원’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면)




8. 사회운동들은 공식적인 법적 기제들이 민주적 법형성의 기능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그런 곳의 대표적인 경우는 인권운동, 시민불복종운동, 공익소송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10면)




9.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는 곧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의 문제로 그대로 연결된다. (12면)




10. 공익소송제도의 주장에서 보듯 시민단체는 그 자체로서 공익의 화신처럼 자평하고, 또 행동하는 듯하다. 어쨌든 적어도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은, 실정법의 불복종을 시민불복종으로 표제화하는 데 있어, 독점적 지위, 좀 비유적으로는 ‘인식엘리트’의 지위를 누려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6면)




11. 시민단체들이 이른바 ‘자연법의 확실성’을 인정하고 또한 그것을 한 개인(또는 집단)이 인식할 수 있다는 사고, 즉 ‘자연법적 사고’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확실한 자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은 도덕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도덕(주의)적 권위주의’를 가져온다. (17, 18면)




12. 이처럼 실정법과 무관한, 그것을 초월한 도덕성 개념은 자연법에 대한 완고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런 확신은 시민단체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합리성에 대한 단선적인 믿음’에까지 연장되고, 또 그 확실성이 ‘인식엘리트주의’와 결합한 다음 더 나아가 ‘권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완고함은 정반대의 사고, 즉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실증주의적 사고는 실정법이 유일한 법의 인식원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실정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국가기관에 독점적으로 귀속시킨 다음, 모든 실정법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불법행위나 범죄행위로 예외 없이 단죄하는 권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18, 19면)




13. 그러므로 여기서 시민불복종운동이나 인권운동, 공익소송운동 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태도를 ‘권위적 도덕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면)




14. “시민운동이 공공선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운동의 공공선 주장은 이제 배타적 타당성과 정합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화에 의하여 결정된다. 공공선이 일반성을 주장하면 할수록 더욱 더 대화는 요청된다. 즉 공공선은 이제 시민운동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형성하고 재구성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공선을 설득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칙적 비판과 감시의 수준을 넘어서는 비전과 추진력을 확보해야 한다.” (차성수) (19, 20면)




15. 우선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시민운동은 - 적어도 현재까지의 현상에서 바라보면 - 시민불복종 아니면 인권운동 아니면 공익소송 가운데 어느 한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21면)




16. 그런 이상은 ‘공식적인 입법기제’(의회, 행정입법, 법원의 구체적 법규범 형성)가 모든 사람의 관점을 형평 있게 그리고 최대한 교환시켜 진정한 의미의 합의(상호이해)에 도달케 하는 - 하버마스가 말하듯 - ‘이상적인 대화상황’(ideale Sprechsituation)에 완전하게 수렴될 수 있을 때에야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입법기제가 갖는 대화적 의사형성(대화적 법규범의 형성)의 역량은 대화의 시공간 제약과 대화자들의 당파성이나 전략적 행동경향으로 인해 언제나 제한된 범위에 머무른다. (22면)




17. 이렇게 볼 때 인권운동, 시민불복종운동, 공익소송운동은 모두 민주적 법치국가의 공식적인 입법기제가 민주적 의사형성을 다하지 못하는 부족부분을 메워주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성찰적 기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24면)




18. 인권운동은 입법기구에 적극적(positiv)으로 인권사상을 밀어 넣는다면, 시민불복종운동은 현행법의 소극적인(negativ) 거부를 통하여 법체계의 변화를 촉발시킨다. 인권운동이 의회의 적극적인 입법조치를 추구하는 행위인 반면, 시민불복종운동은 의회에서 입법된 규범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행위이다. 또한 공익소송운동은 권리를 실현하거나 새로운 권리를 구성하긴 하지만 직접 의회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권리구제를 추진할 뿐이며, 그런 점에서 시민불복종운동처럼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소송은 재판을 통해 새로운 법규범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역시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두 가지 특성을 아울러서 공익소송은 능동적(aktiv)으로 민주적 법형성의 부족을 메우는 기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24, 25면)




19. 이처럼 인권운동이나 시민불복종운동 그리고 공익소송운동이 가질 수 있는 힘은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리면 ‘의사소통적 권력’(kommunikative Macht)이라고 부를 수 있다. (26면)




20. ‘권력은 단순히 행동하거나 그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단합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의사소통적 권력은 오직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의 훼손되지 않은 상호주관성 구조로부터 나온다. (하버마스) (26면)




21. 자연법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의회의 공식적인 입법기제가 수행하는 인권실현적 기능을 지워버린다. 그런 믿음을 강하게 가진 시민단체일수록 그 단체가 펼치는 인권운동은 오히려 비민주적이기 쉽다. (33면)




22.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즉, 생활형식이 전체사회적 통일성을 상실하고, 가치판단이 중층적인 구조를 띠며, 사회현실이 일상지식의 규율지평을 넘어선 복잡성을 보이는 사회에서는 자연법은 그 구체적 모습을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34면)




23. 법실증주의적 사고와 자연법적 사고는 실천적으로는 매우 상반된 결론에 이르러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특히 인식론적으로는 매우 친화적인 구조, 즉 ‘주체-객체’-인식모델(Subjekt-Objekt- Erkenntnisodell)의 구조를 취한다.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는 입법자(주체)가 실정법텍스트(객체)에 입력한 실천적 명령이 완전무결한 법규범이 되는 반면, 자연법적 사고에서는 개인(주체)이 홀로 인식한(인식할 수 있는) 올바른 규준(객체)이 배타적인 법규범이 된다. 다시 말해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는 명령으로 표현되는 ‘주체의 인식’(활동과 그 권위)이 전제되어 있고, 자연법적 사고에서는 올바른 규준으로 수렴되는 ‘주체의 인식’(능력과 그 이성)이 법생산의 구성적인 요소가 된다.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사고이든 한 개인이나 집단, 그러니까 입법자(의원집단)나 시민단체가 각각 ‘배타적인’ 법인식의 권한을 누리는 셈이 된다. 이를 법인식의 ‘엘리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5, 36면)




24.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주체-객체’-인식모델, 즉 과학주의적 법인식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상호주관적(또는 대화적) 인식모델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즉, 정의를 정하는 이성도, 권력을 낳는 절차(입법절차)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 사이의 대화적 의사소통에 의해 ‘상호이해’가 가능한 규범만이 법규범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법인식의 주체는 한 개인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모든 사람들이며, 이를 ‘상호주관성’(Intersubjektivitaet)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36, 37면)




25. 그런 의사소통적 흐름에 폐쇄적일수록 실정법은 그만큼 더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든다. (38면)




26. 나는 대화이론적으로 재구성된 시민운동은 다음과 같은 표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성, 비폭력성, 공공성, 비례성, 공론경쟁력 (41, 42면)




27. 퍼트남(Putnam)도 시민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간의 미시적 협력을 기초로 형성되는 자발적이고 협력적이며 수평적인 네트워크, 규범, 신뢰 등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으로 규정한다. 그는 사회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참여를 창출하고 시민적 덕목(civic virtue)을 배양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46면)




28. 이상과 같은 시민운동의 대화이론적 이해는 낙천낙선운동을 정점으로 부정의 변증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시민운동에게 반성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48면)




29. 새로운 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란 지난 1970-80년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크게 증대한 환경, 평화, 여성, 인권, 반문화 운동 등의 다양한 시민운동들을 지칭한다. 그것이 ‘새로운’(New) 사회운동으로 불리는 것은, 이 운동들이 이제까지 산업사회의 대표적 사회운동 형태인 노동운동과 비교할 때 위치(시민사회), 목표(가치 및 생활양식 변화, 시민사회 방어), 조직(네트워크, 풀뿌리), 행동수단(직접행동, 문화혁신)의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48, 49면)




30. 먼저 불복종행위는 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들이 공통된 확신에 기초하여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행위이어야 한다(조직성). 이처럼 조직화된 불복종행위는 더 나아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어야 한다. (53면)




31. 불복종행위는 ‘이질적’인 사회집단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즉, 신분적으로(직업적으로) 폐쇄되지 않고, 지역적으로 편중되지 않으며, 아울러 계층적으로도 분파되지 않은 주체들의 집합이어야 한다(이질적 구성). (54면)




32.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은 행정관료가 되거나 거대기업의 경영진(예: 사외이사)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이 얻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권력은 의사소통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56면)




33. 시민단체의 의사형성의 분산되고 비체계적인 시민들의 의견을 조직화하는 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는 과정이고, 그러한 의견조정에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이론의 동원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시민단체의 시민운동이 문어발식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되고, 전문영역별(예: 환경, 의료, 경제, 교통, 교육 등의 영역별)로 특화되어 전개될 것을 요구한다.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인 조희연 교수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이 일단 현재의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지적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종합적 시민운동이 포괄하는 각각의 독립적 부분단체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57면)




34.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이란 시민단체의 리더인 개인의 인격적 수준(예: 복잡한 애정관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 의사형성에 다른 시민들과 동등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자세(대화윤리 Diskursethik)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시민단체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때 개개의 시민이나 특정한 집단보다는 더욱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적 태도를 지양하고, 상호이해에 지향된 의사소통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60, 61면)




35. 인권법이론은 인권이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다만 인권 개념을 해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인권의 실현 기제를 법적 정당화의 절차로 짬으로써 그 기획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70면)




36. 먼저 이성의 개인주의적 이해에서는 첫째, 이성이 소유의 대상이 되기 쉽다. 즉 이성적 인간상은 소유적 개인상에 머무른다. 이처럼 소유적 이성으로서의 인권은 이성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권 침해적이기 쉽다. (75면)




37. 둘째, 이성주의적 인권은 서구문화와 비서구문화를 이성과 비이성(또는 야만)의 이분법 속으로 몰아넣는다. 예컨대 이슬람문화권의 여성할례는 야만이고, 기하학적 조형미를 좇는 서구사회의 성형수술은 심미적 이성이라는 식으로 차별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실현을 위한 ‘인도적 개입’은 언제나 서양 강대국이 야만적 문화로 차별화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지배의 기획을 품고 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런 기획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기도 하다. 비서구권에서 이성주의적 인권의 수용은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역시 서구의 아시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형이상학적 수사이며, 아시아의 개발독재국에서 정치적 권력을 비민주적으로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식으로, 인권과 대립항을 설정하게 만든다. (76, 77면)




38. 소유권, 이성,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사상의 한계는 인권이 국가나 법에 앞서 이미 주어져 있는 실체나 고정된 크기의 이익이 아니라 인권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의 지속적이며 개방적인 대화적 과정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고 봄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83면)




39. 인권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타당한 것임을 근거지어야 하고, 사람들이 그 타당성을 널리 인정할 때 비로소 인권으로 승인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인권에 대해 말하고 근거짓는 행위는 역사적으로는 비판과 토론의 대화적 과정(인권담론)을 구성한다. (91면)




40. 하지만 “인권이 말함 속에 있다”는 명제는 권리의 생성 일반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 인권 개념의 고유성은 말행위의 실행적 부분(perforativer Teil)에 있다. (91면)




41. 인권주장은 같은 성격의 행위인 시민불복종과 반대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불복종이 실정화된 규범적 명제인 권리성을 부인하는 것인 반면, 인권주장은 어떤 규범적 명제가 실정화되어야 함을 공식적인 입법메커니즘에 촉구하는 것이다. (92, 93면)




42. 우리 사회에서 볼 때 가령 동성애자의 결혼권이나 독신여성의 입양권 등이 생성중인 인권 단계에 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권은 보편적 인권의 단계에 거의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94면)




43. 인권의 형성을 이렇게 단계적으로 명확하게 해놓고 보면, 무엇보다도 인권의 개념과 그 실현이 분리될 수 없으며, 아울러 인권의 실현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협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95면)




44. 이런 현상에서 보듯 인권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지만, 그 인권의 보편성을 마련해줄 절차적 정당성의 기반인 주권은 아직 세계적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지 않다. (100면)




45. 세계화 시대의 인권의 보편성은 서구문화와 비서구문화를 ‘이성과 야만’으로, 선진국의 공론과 비선진국의 공론을 ‘합리와 비합리’로 차별화하는 근본관점과 그런 차별을 덮어두는 ‘세계주권’이나 ‘통일적인 세계공론’ 또는 인권‘법 개념의 통일성’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아울러 ‘초국가적 규범의 제정자는 선진국이며 비선진국은 단지 그런 규범의 수신자가 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비로소 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100면)




46. 또한 더 큰 문제는 인권문제의 이와 같은 과학기술적 차원은 인권을 형성하는 기반인 공론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인권침해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경험과학적 방법이 언제나 구조적인 결핍상태에 있고, 사용가능한 경험과학적 지식마저 전문가집단에 의해 선별되어 매스컴에 의해 편파적으로 대중에 전달됨으로써, 공론영역은 정보지배자나 이해집단이 힘의 경쟁을 펼치는 전략적 행동의 장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109면)




47. 이처럼 인권침해가 소외된 자들의 경험에서 드러난다면, 인권운동은 그렇게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의 목소리를 복원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114면)




48. 여기서 소외이론으로서 인권이론은 숨겨진 소외현상을 드러내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복원시키는 방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방법은 무엇보다도 인문학과 법학의 학제 간 연구에 의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법문학은 그런 개발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문학은 법학보다, 그리고 사회과학보다 더 기민하고 예민하게 인간의 내면의식에 반영된 소외현상까지 담아내곤 하기 때문이다. (114면)




49. 즉, 한편으로 특정한 실정법불복종행위에 세심한 분석 없이 단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한편 그 실정법은 악법으로 낙인찍는 태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불복종행위를 국가와 법 또는 사회의 ‘기강’을 흔들어 놓는 불법행위로 단죄하는 국가권력의 경직된 태도가 있다. ... 그러나 앞의 태도는 자연법적 사고와 투쟁적인 정치철학의 연정이 가져온 성찰의 빈곤이라면, 뒤의 태도는 관료적 권위주의와 법실증주의적 사고의 연정이 가져온 성찰의 빈곤이라고 할 수 있다. (121, 122면)




50. 다시 말해 개인의 실천적 이성능력만으로도 구체적인 내용의 자연법(정법)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136면)




51. 그런 의사소통적 흐름에 폐쇄적일수록 실정법은 그만큼 더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든다. 다시 말해 법규범이나 정책적 결정의 정당성은 단지 다수결원칙에 의해 의회를 통과하였다는 사실(절차적 합법성)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실정법상의 결정절차가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적 교류에 끊임없이 문을 열어놓고, 그 교류 속에서 형성되는 광범위한 합의를 지속적으로 반영하였다는 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140, 141면)




52. 바꿔 말하면 시민불복종운동은 국가권력(과 법)의 횡포에 대해 자신들의 자연법적 인권을 단지 수호하는 ‘방어적 태도’의 시민상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법)의 민주적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146면)




53. 설령 시민불복종행위는 오로지 공익의 실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 선다고 해도, 시민불복종행위를 공익성에 국한시키는 일은 실천적으로 점점 더 불가능해져만 가고 있다. 이것은 다원화되고, 탈중심화되고, 복잡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런 현대사회에서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모호해진 것처럼 공익과 사익이라는 개념은 어떤 이익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이롭게 하는 공익(이익)’(공익)인지를 지시해줄 수 있는 의미론을 잃어버리고 있다. (161면)




54. 공익소송의 가장 고유한 표지는 아마도 확산이익의 개념에 있을 듯하다. 실정화되었건 안 되었건 어떤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보호되어야 마땅한 권익이 침해되었지만 그 이익이 잘게 쪼개져 흩어져 있기 때문에 권리자들이 피해를 그냥 감수하고 권리관철을 위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특성의 사건들이 있다. (200, 2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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