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론
이상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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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단체가 지난 십수 년간 시민운동을 펼치기 매우 힘든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토양 - 예를 들면 시민들의 기부문화 결핍, 시민들의 정치의식 부족, 권위주의적 정부의 억압 - 위에서, 시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전략은 바로 스스로 자신을 - 국가권력과 거대한 산업세력에 맞설 수 있도록 - ‘권력화’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5면)




2. 시민단체의 변증은 본질적으로 최근 시민단체가 보여주는 ‘관변화’와 ‘금전화’의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6면)




3.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민단체의 ‘관변화’란 예를 들면 시민단체의 대표가 행정부의 장이 된다든지, 정부의 정책입안이 공론화되지도 않은 단계에, 관청의 밀실에서 행정관료와 협의하고, 때로는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연구용역을 받아 그 정책의 구체적인 기획을 설계하거나 정부의 정책집행을 뒷받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활동을 가리킨다. 그런 활동은 물론 한편으로는 정부의 정책원안을 교정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의 비판적 기능을 부분적으로 상실하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그와 같은 관변적인 활동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정치체계의 절대명령’(Imperative), 즉 권력의 (확대)재생산이라는 매커니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6, 7면)




4. 내가 말하는 ‘금전화’란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단체가 거대한 산업기구로부터 자금줄을 대게 되는 현상의 모든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시민단체가 거대기업으로부터 직접 연구용역을 받는다든가 아니면 시민단체의 대표가 거대기업의 경영진(예: 사외이사)으로 들어가서 받게 되는 수입을 기부금의 형태로 전환하여 받게 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재정적 연결고리에 의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한편으로는 더욱 활성화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자본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경제체계의 절대명령’이 지배하는 거대기업들의 기업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기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7, 8면)




5.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시민운동에서는 이와 같은 관변화와 금전화의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미 선행연구들은 그 원인을 우리 시민단체들의 조직이 대체로 방대하다는 데에서 찾는다. 조직이 방대해지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위계질서형의 구조를 선호하기 쉽고, 그 결과 행위방식에서도 관료사회의 그것과 유사해지게 된다. 시민단체의 조직이 (준)관료조직화되면 될 수록, 본래적 의미의 시민운동이 가져야 할 ‘자발성’에 입각한 ‘참여’가 그만큼 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8면)




6. 또한 다른 한편 시민단체의 조직이 방대해질수록 재정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특히 이런 재정적인 부담의 증대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민운동 단체들이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시민운동단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환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고 있다. (8면)




7. 여기서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대체로 명망가 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게 한다. 우리의 ‘시민운동’에는 절대 다수의 사회적 ‘지도층’이 포진해 있고, 이러한 상태를 통해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운동의 양적 기반 확보보다는 이른바 ‘계몽을 통한 동원’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면)




8. 사회운동들은 공식적인 법적 기제들이 민주적 법형성의 기능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그런 곳의 대표적인 경우는 인권운동, 시민불복종운동, 공익소송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10면)




9.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는 곧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의 문제로 그대로 연결된다. (12면)




10. 공익소송제도의 주장에서 보듯 시민단체는 그 자체로서 공익의 화신처럼 자평하고, 또 행동하는 듯하다. 어쨌든 적어도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은, 실정법의 불복종을 시민불복종으로 표제화하는 데 있어, 독점적 지위, 좀 비유적으로는 ‘인식엘리트’의 지위를 누려 왔다고 말할 수 있다. (16면)




11. 시민단체들이 이른바 ‘자연법의 확실성’을 인정하고 또한 그것을 한 개인(또는 집단)이 인식할 수 있다는 사고, 즉 ‘자연법적 사고’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확실한 자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은 도덕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도덕(주의)적 권위주의’를 가져온다. (17, 18면)




12. 이처럼 실정법과 무관한, 그것을 초월한 도덕성 개념은 자연법에 대한 완고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런 확신은 시민단체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합리성에 대한 단선적인 믿음’에까지 연장되고, 또 그 확실성이 ‘인식엘리트주의’와 결합한 다음 더 나아가 ‘권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완고함은 정반대의 사고, 즉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실증주의적 사고는 실정법이 유일한 법의 인식원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실정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국가기관에 독점적으로 귀속시킨 다음, 모든 실정법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불법행위나 범죄행위로 예외 없이 단죄하는 권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18, 19면)




13. 그러므로 여기서 시민불복종운동이나 인권운동, 공익소송운동 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태도를 ‘권위적 도덕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면)




14. “시민운동이 공공선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운동의 공공선 주장은 이제 배타적 타당성과 정합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화에 의하여 결정된다. 공공선이 일반성을 주장하면 할수록 더욱 더 대화는 요청된다. 즉 공공선은 이제 시민운동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형성하고 재구성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공선을 설득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칙적 비판과 감시의 수준을 넘어서는 비전과 추진력을 확보해야 한다.” (차성수) (19, 20면)




15. 우선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시민운동은 - 적어도 현재까지의 현상에서 바라보면 - 시민불복종 아니면 인권운동 아니면 공익소송 가운데 어느 한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21면)




16. 그런 이상은 ‘공식적인 입법기제’(의회, 행정입법, 법원의 구체적 법규범 형성)가 모든 사람의 관점을 형평 있게 그리고 최대한 교환시켜 진정한 의미의 합의(상호이해)에 도달케 하는 - 하버마스가 말하듯 - ‘이상적인 대화상황’(ideale Sprechsituation)에 완전하게 수렴될 수 있을 때에야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입법기제가 갖는 대화적 의사형성(대화적 법규범의 형성)의 역량은 대화의 시공간 제약과 대화자들의 당파성이나 전략적 행동경향으로 인해 언제나 제한된 범위에 머무른다. (22면)




17. 이렇게 볼 때 인권운동, 시민불복종운동, 공익소송운동은 모두 민주적 법치국가의 공식적인 입법기제가 민주적 의사형성을 다하지 못하는 부족부분을 메워주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성찰적 기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24면)




18. 인권운동은 입법기구에 적극적(positiv)으로 인권사상을 밀어 넣는다면, 시민불복종운동은 현행법의 소극적인(negativ) 거부를 통하여 법체계의 변화를 촉발시킨다. 인권운동이 의회의 적극적인 입법조치를 추구하는 행위인 반면, 시민불복종운동은 의회에서 입법된 규범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행위이다. 또한 공익소송운동은 권리를 실현하거나 새로운 권리를 구성하긴 하지만 직접 의회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권리구제를 추진할 뿐이며, 그런 점에서 시민불복종운동처럼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소송은 재판을 통해 새로운 법규범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역시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두 가지 특성을 아울러서 공익소송은 능동적(aktiv)으로 민주적 법형성의 부족을 메우는 기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24, 25면)




19. 이처럼 인권운동이나 시민불복종운동 그리고 공익소송운동이 가질 수 있는 힘은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리면 ‘의사소통적 권력’(kommunikative Macht)이라고 부를 수 있다. (26면)




20. ‘권력은 단순히 행동하거나 그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단합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의사소통적 권력은 오직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의 훼손되지 않은 상호주관성 구조로부터 나온다. (하버마스) (26면)




21. 자연법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의회의 공식적인 입법기제가 수행하는 인권실현적 기능을 지워버린다. 그런 믿음을 강하게 가진 시민단체일수록 그 단체가 펼치는 인권운동은 오히려 비민주적이기 쉽다. (33면)




22.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즉, 생활형식이 전체사회적 통일성을 상실하고, 가치판단이 중층적인 구조를 띠며, 사회현실이 일상지식의 규율지평을 넘어선 복잡성을 보이는 사회에서는 자연법은 그 구체적 모습을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34면)




23. 법실증주의적 사고와 자연법적 사고는 실천적으로는 매우 상반된 결론에 이르러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특히 인식론적으로는 매우 친화적인 구조, 즉 ‘주체-객체’-인식모델(Subjekt-Objekt- Erkenntnisodell)의 구조를 취한다.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는 입법자(주체)가 실정법텍스트(객체)에 입력한 실천적 명령이 완전무결한 법규범이 되는 반면, 자연법적 사고에서는 개인(주체)이 홀로 인식한(인식할 수 있는) 올바른 규준(객체)이 배타적인 법규범이 된다. 다시 말해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는 명령으로 표현되는 ‘주체의 인식’(활동과 그 권위)이 전제되어 있고, 자연법적 사고에서는 올바른 규준으로 수렴되는 ‘주체의 인식’(능력과 그 이성)이 법생산의 구성적인 요소가 된다.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사고이든 한 개인이나 집단, 그러니까 입법자(의원집단)나 시민단체가 각각 ‘배타적인’ 법인식의 권한을 누리는 셈이 된다. 이를 법인식의 ‘엘리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5, 36면)




24.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주체-객체’-인식모델, 즉 과학주의적 법인식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상호주관적(또는 대화적) 인식모델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즉, 정의를 정하는 이성도, 권력을 낳는 절차(입법절차)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 사이의 대화적 의사소통에 의해 ‘상호이해’가 가능한 규범만이 법규범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법인식의 주체는 한 개인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모든 사람들이며, 이를 ‘상호주관성’(Intersubjektivitaet)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36, 37면)




25. 그런 의사소통적 흐름에 폐쇄적일수록 실정법은 그만큼 더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든다. (38면)




26. 나는 대화이론적으로 재구성된 시민운동은 다음과 같은 표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성, 비폭력성, 공공성, 비례성, 공론경쟁력 (41, 42면)




27. 퍼트남(Putnam)도 시민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간의 미시적 협력을 기초로 형성되는 자발적이고 협력적이며 수평적인 네트워크, 규범, 신뢰 등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으로 규정한다. 그는 사회자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참여를 창출하고 시민적 덕목(civic virtue)을 배양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46면)




28. 이상과 같은 시민운동의 대화이론적 이해는 낙천낙선운동을 정점으로 부정의 변증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시민운동에게 반성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48면)




29. 새로운 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란 지난 1970-80년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크게 증대한 환경, 평화, 여성, 인권, 반문화 운동 등의 다양한 시민운동들을 지칭한다. 그것이 ‘새로운’(New) 사회운동으로 불리는 것은, 이 운동들이 이제까지 산업사회의 대표적 사회운동 형태인 노동운동과 비교할 때 위치(시민사회), 목표(가치 및 생활양식 변화, 시민사회 방어), 조직(네트워크, 풀뿌리), 행동수단(직접행동, 문화혁신)의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48, 49면)




30. 먼저 불복종행위는 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들이 공통된 확신에 기초하여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행위이어야 한다(조직성). 이처럼 조직화된 불복종행위는 더 나아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어야 한다. (53면)




31. 불복종행위는 ‘이질적’인 사회집단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즉, 신분적으로(직업적으로) 폐쇄되지 않고, 지역적으로 편중되지 않으며, 아울러 계층적으로도 분파되지 않은 주체들의 집합이어야 한다(이질적 구성). (54면)




32.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은 행정관료가 되거나 거대기업의 경영진(예: 사외이사)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이 얻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권력은 의사소통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56면)




33. 시민단체의 의사형성의 분산되고 비체계적인 시민들의 의견을 조직화하는 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는 과정이고, 그러한 의견조정에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이론의 동원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시민단체의 시민운동이 문어발식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되고, 전문영역별(예: 환경, 의료, 경제, 교통, 교육 등의 영역별)로 특화되어 전개될 것을 요구한다.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인 조희연 교수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이 일단 현재의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지적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종합적 시민운동이 포괄하는 각각의 독립적 부분단체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57면)




34.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이란 시민단체의 리더인 개인의 인격적 수준(예: 복잡한 애정관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 의사형성에 다른 시민들과 동등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자세(대화윤리 Diskursethik)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시민단체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때 개개의 시민이나 특정한 집단보다는 더욱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적 태도를 지양하고, 상호이해에 지향된 의사소통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60, 61면)




35. 인권법이론은 인권이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다만 인권 개념을 해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인권의 실현 기제를 법적 정당화의 절차로 짬으로써 그 기획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70면)




36. 먼저 이성의 개인주의적 이해에서는 첫째, 이성이 소유의 대상이 되기 쉽다. 즉 이성적 인간상은 소유적 개인상에 머무른다. 이처럼 소유적 이성으로서의 인권은 이성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권 침해적이기 쉽다. (75면)




37. 둘째, 이성주의적 인권은 서구문화와 비서구문화를 이성과 비이성(또는 야만)의 이분법 속으로 몰아넣는다. 예컨대 이슬람문화권의 여성할례는 야만이고, 기하학적 조형미를 좇는 서구사회의 성형수술은 심미적 이성이라는 식으로 차별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실현을 위한 ‘인도적 개입’은 언제나 서양 강대국이 야만적 문화로 차별화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지배의 기획을 품고 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런 기획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기도 하다. 비서구권에서 이성주의적 인권의 수용은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역시 서구의 아시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형이상학적 수사이며, 아시아의 개발독재국에서 정치적 권력을 비민주적으로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식으로, 인권과 대립항을 설정하게 만든다. (76, 77면)




38. 소유권, 이성,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사상의 한계는 인권이 국가나 법에 앞서 이미 주어져 있는 실체나 고정된 크기의 이익이 아니라 인권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의 지속적이며 개방적인 대화적 과정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고 봄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83면)




39. 인권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타당한 것임을 근거지어야 하고, 사람들이 그 타당성을 널리 인정할 때 비로소 인권으로 승인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인권에 대해 말하고 근거짓는 행위는 역사적으로는 비판과 토론의 대화적 과정(인권담론)을 구성한다. (91면)




40. 하지만 “인권이 말함 속에 있다”는 명제는 권리의 생성 일반에 대해 적용될 수 있다. 인권 개념의 고유성은 말행위의 실행적 부분(perforativer Teil)에 있다. (91면)




41. 인권주장은 같은 성격의 행위인 시민불복종과 반대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불복종이 실정화된 규범적 명제인 권리성을 부인하는 것인 반면, 인권주장은 어떤 규범적 명제가 실정화되어야 함을 공식적인 입법메커니즘에 촉구하는 것이다. (92, 93면)




42. 우리 사회에서 볼 때 가령 동성애자의 결혼권이나 독신여성의 입양권 등이 생성중인 인권 단계에 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권은 보편적 인권의 단계에 거의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94면)




43. 인권의 형성을 이렇게 단계적으로 명확하게 해놓고 보면, 무엇보다도 인권의 개념과 그 실현이 분리될 수 없으며, 아울러 인권의 실현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협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95면)




44. 이런 현상에서 보듯 인권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지만, 그 인권의 보편성을 마련해줄 절차적 정당성의 기반인 주권은 아직 세계적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지 않다. (100면)




45. 세계화 시대의 인권의 보편성은 서구문화와 비서구문화를 ‘이성과 야만’으로, 선진국의 공론과 비선진국의 공론을 ‘합리와 비합리’로 차별화하는 근본관점과 그런 차별을 덮어두는 ‘세계주권’이나 ‘통일적인 세계공론’ 또는 인권‘법 개념의 통일성’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아울러 ‘초국가적 규범의 제정자는 선진국이며 비선진국은 단지 그런 규범의 수신자가 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비로소 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100면)




46. 또한 더 큰 문제는 인권문제의 이와 같은 과학기술적 차원은 인권을 형성하는 기반인 공론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인권침해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경험과학적 방법이 언제나 구조적인 결핍상태에 있고, 사용가능한 경험과학적 지식마저 전문가집단에 의해 선별되어 매스컴에 의해 편파적으로 대중에 전달됨으로써, 공론영역은 정보지배자나 이해집단이 힘의 경쟁을 펼치는 전략적 행동의 장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109면)




47. 이처럼 인권침해가 소외된 자들의 경험에서 드러난다면, 인권운동은 그렇게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의 목소리를 복원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114면)




48. 여기서 소외이론으로서 인권이론은 숨겨진 소외현상을 드러내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복원시키는 방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방법은 무엇보다도 인문학과 법학의 학제 간 연구에 의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법문학은 그런 개발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문학은 법학보다, 그리고 사회과학보다 더 기민하고 예민하게 인간의 내면의식에 반영된 소외현상까지 담아내곤 하기 때문이다. (114면)




49. 즉, 한편으로 특정한 실정법불복종행위에 세심한 분석 없이 단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한편 그 실정법은 악법으로 낙인찍는 태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불복종행위를 국가와 법 또는 사회의 ‘기강’을 흔들어 놓는 불법행위로 단죄하는 국가권력의 경직된 태도가 있다. ... 그러나 앞의 태도는 자연법적 사고와 투쟁적인 정치철학의 연정이 가져온 성찰의 빈곤이라면, 뒤의 태도는 관료적 권위주의와 법실증주의적 사고의 연정이 가져온 성찰의 빈곤이라고 할 수 있다. (121, 122면)




50. 다시 말해 개인의 실천적 이성능력만으로도 구체적인 내용의 자연법(정법)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136면)




51. 그런 의사소통적 흐름에 폐쇄적일수록 실정법은 그만큼 더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든다. 다시 말해 법규범이나 정책적 결정의 정당성은 단지 다수결원칙에 의해 의회를 통과하였다는 사실(절차적 합법성)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실정법상의 결정절차가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적 교류에 끊임없이 문을 열어놓고, 그 교류 속에서 형성되는 광범위한 합의를 지속적으로 반영하였다는 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140, 141면)




52. 바꿔 말하면 시민불복종운동은 국가권력(과 법)의 횡포에 대해 자신들의 자연법적 인권을 단지 수호하는 ‘방어적 태도’의 시민상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법)의 민주적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146면)




53. 설령 시민불복종행위는 오로지 공익의 실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 선다고 해도, 시민불복종행위를 공익성에 국한시키는 일은 실천적으로 점점 더 불가능해져만 가고 있다. 이것은 다원화되고, 탈중심화되고, 복잡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런 현대사회에서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모호해진 것처럼 공익과 사익이라는 개념은 어떤 이익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이롭게 하는 공익(이익)’(공익)인지를 지시해줄 수 있는 의미론을 잃어버리고 있다. (161면)




54. 공익소송의 가장 고유한 표지는 아마도 확산이익의 개념에 있을 듯하다. 실정화되었건 안 되었건 어떤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보호되어야 마땅한 권익이 침해되었지만 그 이익이 잘게 쪼개져 흩어져 있기 때문에 권리자들이 피해를 그냥 감수하고 권리관철을 위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특성의 사건들이 있다. (200, 2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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