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금욕과 탐욕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 청소년 철학창고 16
막스 베버 지음, 김상희 옮김 / 풀빛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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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버가 어떤 지역의 종교와 직업에 관한 통계를 통해 주목한 것은 “자본가와 기업가들, 특히 근대 기업의 숙련된 상급 노동자와 관리자 계급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었다. 즉, 베버는 신앙과 계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31면)




2. 사실상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감독은 느슷한 것이었다. 오히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면서 가톨릭이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행동의 규제를 받았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 신자들보다도 휴식이나 향락, 오락 등에 대해 더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를 취해야 했다. 이 점은 특히 칼뱅교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베버는 만일 우리가 프로테스탄트와 경제적 발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지닌 특유한 성격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31면)




3. 이른바 종교 개혁이란 삶 전반에 대한 교회의 지배가 끝났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배 형식이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종교 개혁 이전에는 교회의 지배가 아주 편안하고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이었는데, 종교 개혁 이후에는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 전부를 포함해 모든 생활에 대해 교회가 엄격히 규제했다. 따라서 종교 개혁은 개인에 대한 매우 엄격하고도 광범위한 교회의 지배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33면)




4. 이렇게 행동의 차이를 낳는 원인은 각각의 종파가 처한 그때그때의 외적인 이유 즉,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내적 작용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어떤 종파적 특성과 요인이 경제적 합리주의의 성향을 만들어 냈고 또 일부는 현재에도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37, 38면)




5. “가톨릭은 영리 충동이 적기 때문에 평온하다. 위험하고 자극적인 생활을 통해 명예와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수입이 적더라도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익살맞은 농담의 하나로 ‘잘 먹을 것인가 아니면 발 뻗고 잘 것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두 신앙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프로테스탄트는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쪽이고, 가톨릭은 발 뻗고 자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오펜바하) (38, 39면)




6. 가장 철저한 경건성과 함께 뛰어난 자본주의적 영리 감각, 이 두 가지를 한 개인이나 집단이 동시에 소유하는 경우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성향이 공존하는 것은 역사상으로 볼 때 모든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그 분파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이었다. (41면)




7.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서의 일에 대한 자신의 엄격한 책임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정당한 경제적 활동을 통해 부를 획득하려는 헌신이 이를 통해 얻어진 소득을 개인적 향략에 사용하지 않으려는 금욕적인 태도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특징짓는다. 프로테스탄트가 의무와 미덕으로서 ‘직업의 소명’을 신에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한 점은 프로테스탄트 특유의 종교적 가치에 뿌리를 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자연스런 향략을 엄격하게 억제하면서 더욱더 많은 돈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순수한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개인의 행복이나 효용을 초월하는 매우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윤을 획득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렇게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획득이 금욕적인 성격으로 바뀌면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초기 자본의 축적을 이끌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주도 원리로 작용하게 된다. 이와 같이 베버는 초기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 원인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제시한다. (46, 47면)




8. 신용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의 채권자가 새벽 다섯 시나 저녁 여덟 시에 당신의 망치 소리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기꺼이 당신에게 지불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해야 할 시간에 당구장에 있는 당신을 보게 되거나 술집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의 채권자는 다음 날로 당장 모든 빛을 갚으라고 독촉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내는 망치 소리는 당신이 자신의 채무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이는 당신을 성실하고 주의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따라서 당신의 신용도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0면)




9. 당신은 지금 지니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이 바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신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작은 지출이 모여서 얼마나 많은 돈이 되며 무엇이 절약되었고 또 앞으로 무엇을 절약할 수 있을 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0, 51면)




10. 게으름을 피우며 5실링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5실링을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다. 5실링을 잃은 사람은 단지 5실링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 즉, 젊은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계산한다면 엄청난 금액까지 잃는 것이다. (밴저민 프랭클린) (51면)




11. “네가 자신의 사업에 충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서리라(구약성서 잠언 22장 29절)” (55면)




12. 제3장에서 베버는 루터가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Beruf’(직업 또는 소명이라는 의미의 독일어)라는 단어를 쓴 것에 주목한다. 이 단어를 번역하자면 영어의 ‘calling'(소명, 즉 신이 인간에게 명령하고 부여한 부름)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천직 즉 타고난 직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84면)




13. 루터가 말하고 가르친 직업 개념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가장 고결한 표현은 수도원의 금욕주의나 은둔 생활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주어진 의무를 실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84면)




14. 일찍이 밀턴이 예정설에 대해서 “설령 내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이러한 신은 결코 존경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비판은 매우 유명하다. ... 당시 루터 교회의 지도자 멜란히톤은 이 ‘어둡고 위험한 이론’(예정설을 말함)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에서 채택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107면)




15. ‘나는 선택을 받았는가? 만일 내가 선택을 받았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이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자 다른 모든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 분명하다. (117면)




16. 각 개인들이 자신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그저 칼뱅이 말하는 대로 ‘지칠 줄 모르는 신앙이 곧 은총의 징표를 나타내는 자기 증거’라는 입장에 머무르기란 불가능했다. (119면)




17. 개혁파 교회 가운데서도 특히 네덜란드에서 금욕주의가 부흥한 것은 잊었거나 약화되었던 예정설의 재현과 항상 결부되어 나타났다. (137면)




18. 경건주의는 신자들의 보이지 않는 교회를 지상에 세우고자 했다. (138면)




19. 루터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개혁파 프로테스탄트에게는 자신이 부여받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노동할 것이 의무로서 부과되었다. 즉 자신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신이 부여한 재능을 허비하는 것이고, 또 현세에서의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64면)




20.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나타난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 발생의 원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확정된 직업에 금욕적으로 충실하라는 요구는 근대의 전문화된 노동 분업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이윤 행위는 하느님의 섭리로 해석함으로써 사업가의 활동 또한 정당화했다. 사치와 방종은 금기 대상이 되었던 반면 스스로 부를 이룩한 중산층은 최고의 윤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합리화 과정을 확대시키는 데 공헌하게 된다. (164, 165면)




21.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일 뿐만 아니라 근대 문화를 구성하는 직업 사상에 기초한 합리적인 생활 태도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 정신에서 태어난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165면)




22. ... 따라서 일상생활의 행동에 영향 미쳤던 종교의 힘이야말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165, 166면)




23.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온 힘을 다해 소비적 향락에 반대했다. 특히 사람들의 사치성 소비를 억제하는 한편 재화의 획득을 가로막던 전통적 윤리로부터 벗어난 이윤 추구를 정당화했다. 또한 신이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윤추구라고 설명함으로써 이윤 추구를 억제해 온 전통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켰다. (184면)




24. “내가 염려하는 것은 재산이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씩 종교 정신은 감소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상황 속에서 참된 신앙의 부흥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종교는 근면과 절약으로 곧 부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부가 늘어나면 모든 형태의 자만과 열정, 그리고 세속적 애착도 커진다. 가슴속에서 움터 나온 종교인 감리교, 현재는 푸른 나무처럼 한창 자라나고 있지만 이 상태가 얼마나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감리교 신도는 어디에서나 근면하고 성실하다. 자연히 재산도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자만과 육신의 욕망, 그리고 삶의 교만함도 커진다. 종교의 형식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그 정신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순수한 종교가 이렇게 부패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 (웨슬리) (189면)




25. 오늘날 종교적인 금욕주의 정신은 이 우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영원히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라는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더 이상 정신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의 유쾌한 후계자인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완전히 빛이 바랜 듯 하고, ‘직업 의무’ 사상은 지나간 종교 신앙의 유령이 되어 우리 삶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직업 수행의 의미를 찾거나 직업 수행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늘날 직업 수행은 더 이상 초고의 정신적 문화 가치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197, 19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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