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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ㅣ 문제적 인간 7
리오 담로시 지음, 이용철 옮김 / 교양인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1. "아버지 앞에 그분의 작업 도구들과 함께 뒤섞여 있는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크로티우스의 책들이 눈에 생생합니다." (39, 40면)
2. 하인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미래의 어느 날 '인간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으로 세상을 경탄하게 할 인식이 형성되고 있었다. (96면)
3. 푸펜도르프 덕분에 루소는 일생의 작업에서 중심이 된 정치적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사회계약론'에서는 푸펜도르프를 날카롭게 비평하였다. (120면)
4. 1754년의 질문은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가?"라는 것이었다. 루소는 그 주제에 충격을 받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테레즈와 같이 생제르맹의 숲에 들어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뗄 수 없는 착취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342면)
4. 루소는 불평등을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로 접했다. ... 루소는 주요 작품들을 완성한 후 자신의 경력을 되돌아보면서,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있는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신분에 따라 규정하는 문화에 특별한 통찰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신분이 없는 상태로 왕좌를 빼고는 가장 낮은 신분에서 가장 높은 신분까지 모든 신분을 알았고 모든 신분의 삶을 살아보았다." (342, 343면)
5. 루소는 현존하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기보다는 사회 그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기를 원했고 놀라운 결론을 제시했다. 첫번째 논문에서 그는 진보가 인류를 타락시켜 원초적 단순성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그는 바로 사회의 존재 자체가 실수라고 주장할 각오를 했다. (343면)
6. 이러한 계몽주의적 공감대에 반대하며 루소는 완전히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라로슈푸코와 홉스가 이기심에 대해서는 완전히 옳지만, 이기심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는 가정에서 그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했다. 그 가정과는 반대로 인간을 이기적이고 악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이며, 반면 진정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선량했던 것이 틀림없다.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과 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345면)
7. 사회가 우리가 가진 문제들의 해결책이기는커녕 바로 사회가 문제였다. (346면)
8. "나는 편견을 지닌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역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346면)
9. 루소보다 훨씬 이전에 고대 로마의 작가 타키투스도 잃어버린 황금시대를 아주 비슷하게 묘사했다. "원시인들은 악한 욕망이 전혀 없었다. 비난받을 점이 없고 순진무구했기에 그의 삶은 억제하기 어려운 충동이나 그에 대한 처벌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는 또 아무런 보상도 필요없었는데 천성적으로 선량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루소의 통찰력은 훨씬 더 도전적이었다. 그의 논제는 경쟁과 불평등이 모든 사회에 내재해 있으며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게 황금 시대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49면)
10. 볼테르는 비꼬는 투로 루소에게 그가 쓴 "인류에 반대하는 새 책"에 감사한다는 편지를 쓰고는, 불행히도 네 발로 기어다니는 습관을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350, 351면)
11. 루소의 비평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평등한 특정 사례들을 비판하고 개혁을 요청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불평등이 용납하기 힘든 동시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창적이었다. (353면)
12. 계몽주의는 진보의 기초로서 기술을 옹호했지만, 루소는 단순한 삶을 선택했고 진보가 가져다주는 의심스러운 선물들을 거절했다. 계몽주의는 회의주의적이고 심지어 무신론적이기까지 했지만, 루소는 신과 영혼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다. 게다가 철학자들은 미덕을 말했지만, 루소는 겉으로는 윤리적이지만 속으로는 냉소적인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425면)
13. '에밀'에서 그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 가정교사는 맨 처음부터 책임을 맡고, 아이가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발전하도록 격려하는 섬세하고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일할 것이다. (475면)
14. 모든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아원에 맡긴 자식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루소는 서신을 교환하는 한 사람에게 "아직 나에게는 책을 써서 속죄를 해야 하는 오래된 죄가 있습니다. 대중은 그 후에 나를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476면)
15. '사회계약론'의 도전은 바로 시작부터, 루소의 찬란한 머리말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머리말에 예고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497면)
16. 이전 저술가들은 계약을 역사적 사건으로 생각했던 반면 루소는 계약을 역사와 관계없는 것으로 보는 혁신을 가져왔다. (497, 499면)
17. 사람보다는 법의 지배를 요구하는 것이 진보주의자들의 일반적 경향이지만, 루소의 견해를 볼 때 그것은 부적절한 해결책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하듯이 "법은 항상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롭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해롭기 때문이다." (501면)
18. 사회 계약이 공허한 무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 계약은 그것 하나로 다른 약속들에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약속, 즉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집단 전체에 의해 일반의지에 복종하도록 강제당할 것이라는 약속을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는 의미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503면)
19. "기독교 정신은 전제 정치에 너무나 호의적이어서 전제 정치가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참된 기독교인들은 노예이게끔 되어 있다." (504면)
20. 출판물 '에밀'은 재판소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계단 아래에서 찢어서 태우기로 했으며, 루소에 대한 구속영장이 실제로 발부되었다. (514면)
21. "고결하거나 유용한 생각을 할 때마다 교수대나 처형장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교수형을 당하느니 호주머니에는 린네의 책을 넣어 다니고, 머리에는 건초를 쑤셔 넣은 상태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544면)
22.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더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며, 루소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는 내가 '고백록'을 쓰기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 따르기 쉬운 좌우명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그토록 간단하게 보였던 자기 인식이라는 바로 그 개념 자체가 점점 애매해진다. "나 자신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내가 여전히 탐구하는 것이다." (6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