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시간의 순서로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독서에 집중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만약 서양사의 책을 다시 읽는다면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이나 사건을 통하여 내용을 전개하다 보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흥미를 유발하는 신선한 책이라고 여겨진다. 거기에다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그림을 통하여 한 번 더 관심을 끌게 되니 책을 읽고 난 후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아래는 책을 통하여 인상 깊고, 관심가는 대목들을 몇 단락으로 정리하여 보았다.
유럽을 만든 은광
서기전 483년에 라우레이온 은광이 발견되면서 아테네의 경제는 단숨에 흑자로 반전이 되었다. 당시 페르시아의 해군에 대항해 은으로 생긴 부를 에게해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200여 척의 갤리선을 건조하여 상권을 독점함으로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었다. 상권이 그리스의 도시들로 집중이 되니 곤란에 처한 페르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하면서 지중해 일대에 그리스 문화가 부흥되고, 이어서 그리스를 동경한 로마가 성장하여 독자적인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빌헬름 폰 카울바흐<살라미스해전, 1868>은 세계 최초의 동서양의 대결이라 불리는 페르시아전쟁의 결정지은 살라미스해전을 그렸다.
소금길을 만든 로마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품질이 좋고,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에서 로마는 소금의 거래로 많은 이익을 보게 된다. 로마는 아펜니노반도 동쪽 끝 아드리아해와 면한 염전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 최초의 광역권 길로 알려진 살라리아길을 만들어 소금의 거래를 확대한다. 또한, 소금의 교역을 통하여 로마는 다른 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얀 마테이코의 <소금을 바치는 러시아 사신,1872>는 1581년 폴란드와의 전투에 패한 차르국의 사신이 소금과 빵이 담긴 쟁반을 바치는 모습과 큰 절을 하는 모습과 대조적인 승리에 도취한 왕과 어깨에 깃발 장식을 한 군인의 모습은 승자의 여유로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염장이 도시를 부흥시키다
스톡 피시는 대구와 청어로 만들어진다.
중세 유럽에서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염장 생선은 금식 기간에도 먹을 수 있기에 수요가 많았다. 요하힘 뵈컬라르<생선 마켓, 1568>에 고기를 파는 상인들의 분주한 시장 풍경을, 중세 유럽에서 스톡피시의 인기를 잘 그렸다.
1492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는 그라나다를 마지막으로 이베리아반도를 안전히 수복하고 {알함브라칙령}을 발표한다. 아랍인을 물론 무슬림에 협조했던 유대인은 7월 31일까지 이베리아를 떠나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추방되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오사만 제국, 서인도, 남아메리카, 유럽의 변방이었던 네덜란드로 이동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수온의 변화로 해류가 바뀌면서 발트해에 주로 서식하던 청어가 네덜란드 연안으로 서식처를 옮기자 유럽의 부가 네덜란드로 이동하였고, 이 시기에 유대인들이 청어를 염장하는 소금을 독일 지역의 암염보다 에스파냐의 질이 좋고, 저렴한 천일염으로 무역에 종사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청어를 구입하고자 각국의 화폐가 모여 환전상이 번성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화폐의 통용을 위하여 암스테르담은행을 세웠다. 또한 무역을 위한 주식회사를 만들고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거래소를 만들었다.
분업화의 시작
우리가 알고 있는 제조업의 혁신을 일으킨 인물이 헨리 포드였다.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 체계를 만들어 대량생산의 물꼬를 텄다. 그런데 포드보다 300년 전에 벌써 분업화로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17세기 벨기에를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이다.
그는 궁정화가와 외교관으로 활동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초상화를 많이 의뢰하였는데, 그는 문하생을 두어 단계별로 제작에 참여하게 하여 제작 기간을 단축하여 작품을 완성하여 많은 부를 이루었다.
그의 분업화로 만든 작품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 1625>은 전쟁을 승리로 귀환하는 인물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페스트는 새로운 시대를 열다
페스트는 유럽 사회에 3차례 대유행을 하면서 유럽은 전쟁이 중지되고, 생산인구의 감소되었다. 급료가 높은 도시로 인구가 이동함으로 농노제가 해체되는 등 봉건제를 비롯한 중세 유럽의 근간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본가라는 새로운 계층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스트의 유행은 교회의 살림도 어려워져 성직의 매관매직과 면죄부의 남발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다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대중화되어 교회의 무능과 타락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오랜 시간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가톨릭의 권위는 점점 하락하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분열하고 프로테스탄트(신교)가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교도 부패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가 돈에 자유롭지 못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의 암울한 분위기와 페스트에 대한 유럽인들의 공포심을 잘 묘사한 그림이 있다.
바로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1563>이다.
상도를 어긴 영국의 만행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수입을 증가하면서 무역적자가 확대되었다. 거기에다 영국은 인도를 통치하게 되면서 통지 비용이 발생하여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중국으로 밀매하는 비열한 방법을 선택한다. 이에 중국은 광저우에 정박해 있던 영국 선박에서 아편을 몰수하여 불태워 버리자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였다고, 불명예스러운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후 난징조약을 맺어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홍콩을 할양 받으면서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존에버렛 밀레이<오필리아,1851>는 아편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엘리자베스 시달을 모델로 한 그림으로 아편이 만연한 영국이 그림 뒤에 숨어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