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us Gabriel VS -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는 철학,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쓰키타니 마키.노경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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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마르쿠스 가브리엘 철학, 고전문헌학,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박사 논문으로 Ruprecht-Karls상을 수상했다. 사상 최연소인 29세로 독일 본대학교 정교수로 취임. 철학과에서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서양 철학 전통에 뿌리를 두고 ‘신실재론(New Realism)’을 제시함으로써 21세기 현대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저서『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예술의 힘』, 『생각이란 무엇인가』,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초예측: 부의 미래』(공저),『나는 뇌가 아니다』, 『욕망의 시대를 철학하기』,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내용>

타자와의 관계

타자란 나와의 차이가 나는 상대로,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정보를 교환하면서 차이를 확인과 교정을 반복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란 사회적인 존재를 표출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고립된 생활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타자와의 사회적인 정보를 교환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나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릴 것이다.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사회의 조직이라는 배를 타고 있어야 함을 다시 재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인터넷 세상에는 현실의 내가 존재함과 동시에 가상세계에도 또 다는 내가 존재한다. 소셜 미디어의 세계는 다양한 의견도 존재하지만 이분법적 의견을 조성하는 단점이 있다. 또 개인정보의 노출도 문제, 정치적 선동 등으로 저자는 소셜 미디어가 마약과 비슷하게 정신을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가상세계에서 타자와의 관계와 현실 세계에서의 타자와의 관계를 잘 정립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성적인 가족

나와 가장 가까운 타자인 가족은 더 깊은 내면의 무언가를 공유하는 결합체로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친밀감이 있다. 자식은 친밀함을 이유로 가족 간에서 타자와의 관계를 교정하면서 성장한다.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 자녀를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소유하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하나의 인격체의 독립을 지지해 주는 존재로서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 간의 가장 큰 속박을 가하는 존재이지만 속박이 없는 자유란 자유가 아닌 방종을 의미하므로 서로가 공존할 정도의 속박은 꼭 필요하다.


성숙한 국민

타자와의 안정적인 관계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은 안정을 변화가 없는 상태로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이다. 안정이란 변화 그 자체이다. 

사회 속에서 상반되는 의견을 보이는 상황에는 자신과 다른 관점의 타자를 승인하고 허용하는 태도의 범위를 넓혀주므로 관계가 원만해진다. 헤겔도 승인을 추구하는 싸움의 해결책으로 “화해”와 “허용”의 두 단어를 제시하였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는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관계의 상부는 국가라는 조직이 있으며, 이 조직에는 정치가가 있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국민에게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한다. 국민이 무지해야 정치가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가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어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권력을 이용한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현실은 국민을 더 나락에 빠뜨리는 상황을 만든다.

그래서 능숙한 토론가인 철학자 정치인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필요하다. 진실한 토론이 있어야 올바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사회

종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초래하였다. 문제점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나 도덕에는 종교가 필요하지 않다. 윤리적 진실은 종교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은 완벽한 세속의 것이자 완벽한 인간의 것이다. 종교적인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보편적인 도덕이 아닐 것이다. 도덕은 종교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고차원적이다.

앞으로는 도덕관, 즉 윤리학을 차세대에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진보한다는 것과 동시에 지구 환경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좀 더 고차원적인 일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기술을 더 높은 윤리에 종속시켜야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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