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 ㅣ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태 켈러 지음, 제랄딘 로드리게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이 책은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 ‘뉴베리’ 수상작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을 쓴 태 켈러의 첫 어린이 동화 시리즈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이 작가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기대가 됐다. 결국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은 그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공주’라는 단어에 붙어 있던 오래된 이미지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예쁘고, 날씬하고, 항상 웃고,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완성되는 존재. 미희는 그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 지점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공주가 되고 싶다는 꿈이 유치해지는 순간 미희는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냉장고라는 아주 일상적인 경계를 넘어 판타지 세계로 이어진다.
냉장고 너머의 왕국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구름이 말을 걸고 풀이 길을 비켜 주는 전형적인 동화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다. 오히려 미희를 더 날카로운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공주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규칙과 경쟁, 선택권 없는 삶은 미희가 기대했던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공주가 되는 것이 정말 나답게 사는 길인지 아니면 또 다른 틀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미희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겁이 많고, 낯을 가리고, 어중간한 위치에서 늘 고민하는 아이로 등장한다. 이민 가정의 아이로서 느끼는 소속감의 흔들림, 친구 관계에서의 미묘한 거리감 등이 이야기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래서 이 모험은 거창한 영웅담이라기보다 성장의 과정에 가깝다. 공주가 되는 길이 오히려 나를 잃는 길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 지금까지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의 모습이 사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는 인식이 차곡차곡 쌓인다. 미희가 위기를 넘길 때마다 해결의 실마리가 늘 현실에서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읽다 보니 이 이야기가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났다. 4권까지 이미 출간되었다는 점이 오히려 반가웠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 대신 바로 이어서 미희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미희가 이후 어떤 선택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 갈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은 공주 이야기이면서도 공주 이야기가 아니다. 나답게 산다는 말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그리고 그 질문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아이에게는 스스로를 의심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어른에게는 아이의 흔들림을 성급히 교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를 건넨다.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품은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의미를 뒤로 놓고 보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롭기 때문에 술술 읽히는 책이다. 겨울방학 동안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