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라졌다 북멘토 가치동화 75
김정숙 외 지음, 남수현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이 사라졌다>는 처음부터 결말을 숨기지 않는 책이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시장 골목에서 길고양이 바람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자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날로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의 독특함은 바로 그 과정에 있다고 본다.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을 네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바람이, 아이들, 그리고 생선 가게 아줌마의 시점이 차례로 이어지며 같은 시간과 공간이 조금씩 다르게 펼쳐진다. 어떤 장면에서는 분명히 선의였던 행동이 다른 시점에서는 무심함으로 보인다. 어떤 선택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선택이 이어지며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향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거나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같은 사건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게 하며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도 바로 이 구조였다. 하나의 상황이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이 아닌 이야기로 보여 준다. 누구도 바람이를 미워하지 않았고, 누구도 일부러 해치려 하지 않았다. 모두 나름의 이유와 사정 속에서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괜찮겠지’라는 생각들이 겹치며 바람이는 점점 위험한 쪽으로 밀려난다. 이 과정이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길고양이 바람이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조용한 역할을 한다. 말을 하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기대하지 않기에 더 쉽게 상처받는다. 바람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장 골목은 따뜻함과 차가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먹이를 주는 손길도 있고 피해야 할 발걸음도 있다. 그 균형 위에서 살아가던 바람이의 일상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닮아 있다. 차갑고 쓸쓸하지만 아주 잠깐의 온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계절 말인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책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요해진다. 사건은 커지지 않고 소리도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더 무겁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이는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슬픔이라는 감정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여운이 남은 것 아닐까. 이 책이 아이에게 준 감정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고 본다.

<바람이 사라졌다>는 생명 존중을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쉽게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기울어짐이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알려 준다.

겨울에 읽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감정처럼 바람이의 이야기는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아이와 함께 읽고, 각자의 속도로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여백을 가진 책이기에 겨울 방학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