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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 홍비 - 2025년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작 ㅣ 도토리숲 문고 10
임성규 지음, 박희선 그림 / 도토리숲 / 2025년 12월
평점 :

<붉은 여우 홍비>는 익숙한 구미호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래 동화 속 여우가 지닌 공포와 속임의 이미지를 걷어 내고 여우를 자연의 일부이자 기억을 지닌 생명체로 그린다.
이 책의 주인공 홍비는 사라진 가족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세계는 단순한 판타지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지우고 감정을 통제하려는 질서와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생명의 세계가 대비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가 읽기에는 설정 자체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단번에 이해되는 재미보다 곱씹으며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다.
초등학생 독자에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도움은 의미를 생각하는 힘을 키워준다는 점 같다. 왜 기억을 없애려 하는 존재가 등장하는지, 기억을 지닌다는 것이 왜 위험하면서도 소중한지, 생명을 지킨다는 선택이 왜 희생을 동반하는지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는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라고 본다. 아이는 이 과정을 통해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여우 구슬에 대한 설정은 중요한 장치다. 설화 속에서 욕망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구슬이 이 작품에서는 생명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재해석된다. 이 변화는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경험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경쟁이나 승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홍비가 성장하는 과정은 상대를 이기거나 강해지는 방향이 아니라 타인과 기억을 나누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림 역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림과 흑림의 대비는 색감으로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하며 글로 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완해 준다. 글과 그림을 함께 읽으며 아이의 상상력과 해석 능력은 동시에 성장하게 된다.
<붉은 여우 홍비>는 어느 정도의 독서 경험이 쌓인 뒤 다시 만났을 때 더 많은 의미를 건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지금은 모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통해 남는 감정과 장면이 훗날 다시 생각의 씨앗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