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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낭만. “술”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한 사람의 오감을 마비시키고, 긴장을 풀게 만들며, 괜히 기분 좋게 만드는 액체가 어쩌다 낭만과 연결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빈낙도? 자연에서 술을 자유롭게 술을 마시는 선인. 뭐 그런 것인가? 술은 어떻게 보면 매우 기계적인 액체다. 현재 인간들이 마시는 술은 자연에서 원료가 된 것이긴 하지만, 산업화 시대 이후 그것이 만들어 지는 과정은 매우 공업적이다. 뿐만 인가. 술은 사람들의 감정을 기계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게 술이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의 저자 다니엘 또한 술과 낭만을 접목시킨 애주가였다. 혼자 마시는 술은 외로움의 상징이고, 빨리 잠들기 위한 물약에 불과하시만, 여럿이 마시는 술은 낭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이런 좋은 분위기를 겪은 이후다. 즉, 그가 애주가가 된 것은 술과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이 아닌 우리 몸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 사람이 술을 마시며 무엇을 느끼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분이 좋아서 먹든, 기분이 나빠서 먹든, 우울해서 먹든. 술은 술일 뿐이다. 그리고 그 술을 마시만 마실수록 중독되고, 몸은 쉽게 망가진다. 그게 진정한 술의 모습이다.
인간은 왜 술을?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왜 술을 마시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부자든 빈자든 술을 마신다. 그 사람이 먹는 술의 종류가 어떤 것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부자는 투명한 와인 잔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오는 몇십 혹은 몇백년 된 포도주를 마시지만, 가난한 사람은 근처 가게에서 파는 차가운 소주를 안주 없이 마신다. 술에 대한 낭만을 생각해보면 전자가 훨씬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낭만. 무언가를 즐기고 있다는 낭만은 술을 더더욱 즐기기 쉽게, 그를 알콜 중독자들이 가는 세계로 유연하게 밀어 넣는다. 어찌됐든, 관리를 받든 안받든 우리는 술을 소비하며, 우리의 몸의 생명을 갉아 먹는다.
나 또한 혼술하기를 좋아한다. 낭만? 이제 그러한 것은 없다. 뭔가 시원한. 알콜이 약간 가미된 것이 목으로 타고 들어가는 것. 그리고 고소한 동그랑땡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는. 뭐 이렇게 말할수도 있겠지만, 술을 먹는 이유는 술이 술을 부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유혹, 이 투명한 액체의 마력에 혼술을 하는 동안 나는 빠져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멍의 세계를 저벅저벅 걸어간다고 해야 할까. 실제 의학적으로 술은 술을 부른다고 한다. 술을 먹으면 안주를 먹고 싶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입 속으러 넣게 만든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술은 탐욕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과거 어렸을 적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한 왕이 세상의 모든 먹을 것을 자신의 입속으로 넣었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몸까지 모두 먹어치워버리고, 남은 것은 자신의 이빨밖에 남은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읽으며 술은 그냥 순수하게 탐욕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됐다. 그저 사람이 주위의 모든 것을 탐(貪)하게 만드는 것이 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