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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장면 하나. 이낙연 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대하던 태도가 뉴스가 된 적이 있었다. 이낙연 총리는 품격으로 어떻게 사람을 압도하고 압살할 수 있는지를 당시에 잘 보여주었다.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대답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어떤 꼬투리를 잡을만한 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낙연 총리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동문서답을 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중들의 눈에 비상식적이고 신사 같지도 않은 사람들로 비쳐졌다.
장면 둘. 똑같은 대정부질문 현장이다. 당시 야당의 이재정 의원은 황교안 총리에게 국정논당 사태와 관련된 질의를 받는다. 둘의 목소리는 계속 커지기만 했고, 이재정 의원은 이상한 목걸이와 증거 자료를 황교안 총리에게 던지듯 가져다주었고, 둘 간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품격 없는 대정부질문의 끝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당시에 나는 받았다.
나는 솔직히 황교안 총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황교안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여우같은 인간이며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열을 보였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재정 의원의 행동과 말이 정당하고 옳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일반화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가장 생산성도 없고, 가장 추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비추어진다. 정치인들은 말과 글로 싸움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어떠한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 지지층결집? 상대방에게 창피? 자신이 우월하다는 욕구?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다. 이 모든 것들이 수렴하는 곳은 같으니까 밀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정농단 사태당시 분노했던 이재정 의원이나, 현 정부를 어떻게 해서든 괴롭히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대동소이하다.
양정철씨가 쓴 <세상을 바꾸는 언어: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을 읽으며 우리나라 정치에 문제가 됐던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다. 한순간의 불을 지르기 위해 정치인들은 과감해 보이는 듯 한 말과 글을 사용했고, 그 불은 상대당이 아닌 정치에 대한 혐오의 불씨가 됐다. 어쩌면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국회에서 제대로 된 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민주주의의 말과 글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했던 부분을 꼽으라하면 나는 당연히 외국 정치인들이 하는 위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솔직히 나는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로부터 이런 위트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정치인들이 하는 막말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여유롭게 위트나 유머를 통해 상대 당을 공격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유법을 혹은 반어법을 통해 반대세력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저 쓴웃음만 짓게 만드는 아무런 재미없는 무미건조한 공세에 불과했다. 상대방이 깨닫기보다, 더욱 강한 강도로 반대세력에 대해 비판할뿐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들을 볼 때면 우리말이 저렇게 재미없었나, 우리말이 저렇게 험악했나와 같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국가의 갈등이 모두 모여지는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에서의 말들은 언제나 눈살을 찌푸리고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위트를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상대방을 더욱 철저하게 헐뜯는 말과 글로 위협적하는 것이다. 정치적 반대세력에게 얼마나 폭언과 욕설 그리고 모욕을 할 수 있는지를 계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말이 사용 될 때마다 앞에서 말했던 불필요한 논쟁들은 계속해서 생산된다. 재미없는 말과 글이 국회에서 이렇게 엄중하게 포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치인들 얼마나 세련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언어가 만드는 제한과 분열
말과 글은 사람들의 생각을 담는다고 한다. “담는다”는 말을 “통제된다”라고 바꾸면 우리의 말과 글은 앞 문단에서 이야기한 것에 덧붙여 “혐오나 차별을 일으키는 말에 통제를 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학력에 대한, 정치에 대한, 권력자에 대한, 지방에 대한. 결국 이러한 말들이 계속해서 재생산되면서 확산된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를 어떠한 근거나 이유없이 분열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생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말을 비판할 혹은 의심할 능력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저자 양정철은 책에서 기자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을 많이 탓했다.
맞는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정보를 담고 있는 말과 글은 공기와도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습관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흡입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분열하는 언어만을 사용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넓게 봐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유지될 수 있을까?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정치인들이 가장 분열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사용하던 노무현 정부 때, 우리는 가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가장 통합적인 말들이 사용되고, 사람들의 공감이 한군데로 모아졌을 때 우리는 민주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분열의 언어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말이다. 혼란스러워야, 분열돼야 자신들이 살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양정철씨가 책에서 이야기했듯 공감의 언어를 사용할수록 그리고 소통의 언어를 사용할수록 민주사회는 튼튼해지고 공동체 분열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간에 소통을 늘리는 시간, 서로간에 공감을 할 수 있을만한 시간이 나오기 위해서는 쌍방이 그런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민주적 체력과 인내심도 뒷받침 돼야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