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을 만드는 사람

 

우리 모두에게 웨나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정확히 언제 존재하고, 어디에 존재하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웨나이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있는 웨나같은 존재들은 하나씩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웨나를 갖고 있으면서도 찾지 않는 것은, 자신의 웨날를 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이러한 의지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웨나에 대한 부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웨나를 찾겠다는 의지는 한 사람에게 상당한 것들을 요구한다. 웨나가 언제,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듯, 모든 사람들의 웨나 또한 언제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서 오는 불안감은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웨나를 찾기 위해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전부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레오가 웨나를 찾기 위해 쏟아 부었던 시간은 30세 전후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네레오는 어쩌면 자신의 평생을 가도 찾지 못하는 것을 찾을 각오를 하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웨나를 찾겠다고 생각하는 것, 웨나가 있겠다고 믿기만 하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 정도의 작은 차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운 좋게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한 생명이 자신의 운을 최대한 활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로 보여 질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자신의 시간을 바칠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자신의 웨나를 잊고 그저 남들처럼 속세에 묻혀 사는 것도 한 사람의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네레오 또한 세속적인 욕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루이사와 결혼을 하고 (나름)행복하게 살다가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수많은 가축들을 키우는 일을 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네레오 또한 평범하게 가정을 짓고, 그 가정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며 자신의 웨나를 잊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네레오는 자신이 키우던 소를 보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여행을하며 자신이 찾던 웨나를 다시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네레오는 진짜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를 웨나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끝나지 않을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속세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네레오의 이러한 선택이 맞을지 모르겠다. 네레오의 마지막 여행지에서 그 오카 인형을 만드는 사람을 만난 뒤 웨나에 대한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면, 다시 루이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정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네레오가 자신의 루이사와 딱히 좋게 지낸 것도 아니고, 그만 두어도 괜찮을 일이었긴 했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네레오의 이러한 행동은 커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이 못 되긴 하지만,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긴 했다.

조금 이야기가 세어 나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웨나를 잊을 준비 혹은 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그들의 웨나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다시 되살아났을 때의 고통받을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싶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려고, 누구나 하는 일을 하며 살기 위해 100년 이라는 시간을 하나에 종속되어 살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연금술사라는 책이 기억났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를 생각해보면 네레오보다는 조금 깔끔하게 자신의 웨나(연금술사 책에서는 보물이긴 했다)를 찾았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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