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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세계대전’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어릴 적, 머릿속으로 자연스러 떠올랐던 상황이다. 이것은 영화 <킹스맨>에서 귀 뒤에 심은 칩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난투극을 벌인 풍경을 상상했던 것과 같다. 국가와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과 사정없이 싸우는 그런 풍경 말이다.
그러나 말에서 풍기는 대로 상상하기 보다 현실을 토대로 생각하면 세계대전이란 말은 그래도 정확한 규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조직들이 몰린 곳은 유럽이었고 그 외 근대적인 문명국이라 하면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겠으나) 대개는 식민지 아니었던가. 격전은 유럽 대륙과 태평양에서 벌어졌지만, 그 싸움을 위해 동원된 유무형의 자원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세계대전이 맞다.
그러나 이 책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는 그 ‘유무형의 자원들’이란 납작한 말로 전쟁의 양상들을 나열하기 보다, 약소국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세계대전이란 거대한 파고 앞에서 이들이 했던 일련의 선택들과 그 선택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들이 크고작은 파장이 돼 거대한 전쟁에서 어떤 영향과 최종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추적한다. 이 소국들이 내린 결정의 중요성을 영국, 프랑스, 소련, 독일급으로 끌어올리는 서사적 무리수를 던지기보다는 주요국들이 만들어 낸 주전장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주목함으로써, 2차 대전이란 거대한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돕는다.

약소국들의 선택
2차세계대전의 서사는 그간 주요 국가들로만 쓰였다. 워낙 거대한 사건이기에 그들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는 가능했다. 물론, 종종 나온 콘텐츠 중에는 당시의 숨어있던 영웅들을 조명한 것도 있다. 단순히 어떤 전투의 영웅을 기리는 것이 아닌, 히틀러가 숨긴 유물을 찾는데 기여한 군인들(영화 <모뉴먼츠맨>), 전쟁의 참상을 모험적으로 전한 사람(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독일군의 암호룰 플기 위해 노력했던 천재(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등등. 재밌기는 하지만 내게 이런 이야기들은 전쟁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데는 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적으로 흥미롭지만, 실질적으로 독자 입장에서 전쟁을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데는 한계를 가진 콘텐츠들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어렸을 적, 2차 세계대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국가들은 많은데 연합군에 소속된 국가도, 추축국에 속한 국가도 왜 이리 적은가?”였다. 2차 세계대전을 더 깊이 파고들면 이 아이러니는 더 강해진다. 사실상 유럽 전선에서도 태평양 전쟁에서도 싸워 승리를 얻어낸 것은 미국뿐이었다. 추축국 또한, 유럽에선 독일과 이탈리아가 있었지만,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준 책이다. 먼저 추축국 진영을 보자.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은 인물인데, 2차 대전은 하드캐리한 인물은 히틀러였다. 무솔리니는 그렇게 히틀러에게 협조직인 인물이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요샛말로 히틀러란 버스를 탄 무임승차자였다.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고 다닐 때 무솔리니가 한 것은 히틀러를 방해하지 않는 정도였다.
“알프스 브렌네르 고개에서 히틀러를 만난 무솔리니는 참전을 종용하는 히틀러에게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독일군이 확실히 우세할 때만 개입하겠다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영불 연합군을 쉽게 꺾을 것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그로서는 힘든 싸움은 죄다 독일에 더맡길 참이었다. 언제나 거득먹거리기만 할 뿐 도무지 믿음직하지 못한 동맹자였지ㅣ만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연합군의 편에 서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만으로도 흡족해했다.”
2차 대전이 시작되고 나서 독일이 거듭 확장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추축국으로 같은 편이었고 계속해서 독일의 영토가 팽창하는 그림을 떠올렸다면, 우리는 그들 사이의 동맹이 상당히 단단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장할 뿐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2차 세계대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의 하나의 말로서만 그 주변국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두고 동등한 관점에서 판세를 읽고 선택을 한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약했던 것은 국력이었지만, 그렇다고 강대국만큼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벨기에는 전쟁 발발 직후 왕실과 내각이 대립했다. 레오폴트 국왕은 파죽지세인 독일군 앞에서 싸울 의지를 잃었고, 내각은 결사항전을 원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2차 대전의 결과를 안다고 해서 레오폴트 국왕의 선택을 비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식적인 동맹국도 아니었다. 또한, 이후 덩케르크 철수 작전 때는 벨기에 군이 최전선에서 독일을 막아냈지만, 영국군은 벨기에군까지 챙기며 철수를 한 건 아니었다. 위기 앞에서 저마다의 생존본능이 발현됐고, 협력 보다는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들을 했다. (물론,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히틀러의 느린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프랑스에 있던 8만5천의 벨기에 군도 프랑스 붕괴와 함께 괴멸됐다.
덴마크를 보자. 덴마크는 침공되고 불과 4시간 만에 독일에 굴복했다. 빠른 인정 덕분이었는지, 벨기에는 네덜란드나 폴란드처럼 파괴되는 운명은 피했다. 무고한 국민들에 대한 희생도 없었고 국인들 또한 해방됐다. 독일에 점령된 나라들에 괴뢰 정부가 세워지는 것도 피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편에 붙자 연합군은 덴마크의 해외 영토인 페로제도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봉쇄했다. 외부에서 덴마크로 들어가던 원자재도 끊겼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이 위기에 몰리자 덴마크 또한 자유군단이란 이름으로 국민들을 징집해 전선으로 보냈다. 전선으로 간 6천명 중 2천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이 유럽대륙의 주도권을 잡는 데 있어 탄력을 받은 순간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의 순간은 어땠을까.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했기에, 으레 국력은 약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었다. 괴벨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요새 선을 시찰한 후 여길 톨파했으면 엄청난 피를 흘렸을 것이라고 썼다. 히틀러를 타도하고 싶어 했던 독일 장군들 또한 영국의 협조로 독일이 체코를 손쉽게 손에 넣으니 대항할 수가 없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었던 베네시는 젊은 시절 합스부르크 제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으로서 배짱까지 가진 인물이었다. 주변 국가들이 무관심과 방관, 뮌헨 조약을 체결한 영국의 협조, 이후 히틀러에 붙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뜯어먹으려는 주변국들에 의해, 어쩌면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첫번째 울타리라고 할 수 있는 장애물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강대국 못지 않은, 약소국의 현실적 선택들
“전쟁에서 총성이 멈추는 순간은 양심이나 도의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싸울 의지가 완전히 꺾였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나는 이 주장과 비슷한 결의 주장을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봤다. 우러 전쟁이후 피폐해진 러시아의 경제를 다룬 이 기사의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진 않을 것”이란 것이었다. 전쟁을 활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저자의 말처럼 지도부가 전쟁을 포기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작금의 미국과 이란 전쟁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지만, 전쟁이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마주하게 된 약소국의 상황들은 오늘날의 약소국들과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다. 단순히 우리나라가 주변 강대국들에 치이는 상대적 약소국이란 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독일이 전쟁을 벌이는 데 약소국이라 할 수 있는, 체코,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국가가 먼저 점령된 것은 이들 나라들이 기본적으로 평화에 안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언제나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생존할지를 입체적으로 생각한다면, 강대국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고민을 덜 할 것처럼 생각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던가?” 강대국의 병력과 맞서든 항복을 하든, 실제 군인들이 문앞까지 쳐들어온 상황에 맞닥뜨린 약소국들은 늦긴 했지만, 적어도 이러한 고민의 정도가 강대국에 비해 결코 얕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적어도 (영국이란 나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단지 국력이었다.
이 당시 연합군이든 추축국에 섰던 약소국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답을 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각심 정도는 심어준다. 최근 벌어진 이란-미국 간 전쟁이 이란 입장에선 어떤 전쟁인지. 이제는 지지부진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어떤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우리는 서구를 중심으로 사고를 할 뿐, 우크라이나나 이란이 처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적게 접하고 있다. 종종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의 이들 국가의 ‘민중’의 관점으로 전쟁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지만, 이 또한 전체적인 모습보다 한쪽이 치우친 모습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역사이기 보단 내가 보기에 그러한 글도 그냥 콘텐츠다.
이 책은 이미 역사적 결론이 내려진 2차 대전이란 사건에서 약소국들의 모습들은 우리가 지금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현실을 좀 더 우리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제질서가 붕괴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전 국제질서가 붕괴 됐을 때 어떤 생각들이 경쟁했는지 그 속사정을 아는 것일 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