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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전쟁 -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 ㅣ 걸작 논픽션 28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지음,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평점 :
‘리산 알 가입’이란 환호 속에서 우뚝 선 폴의 모습은, 그 집단이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는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프레맨 앞에서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쥔 폴의 모습에서 감독은 “이게 종교로 만들어진 권력이야”란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이 장면은 불온하지만 신선하다. 종교적 예언에 기대어 카리스마로 대중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폴의 모습은 자유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색해야만 한다. 중요한 결정을 하려면 연극이라 할지라도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하며, 지도자는 언제나 견제받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또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구린지 언론을 통해 매일 학습하고 있지 않은가. 프레맨이 폴에 환호했던 것은, 그의 잘생긴 외모와 예언을 실현시킬 자가 왔다는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 <영원의 전쟁>은 폴처럼 잘생기지도 않고 종교적 신념마저 약한 자유주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전통주의라는 세계관을 갖고 최고 권력에 개입하는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다룬다. 저자는 전통주의를 T와 t를 구분해 설명한다. traditionalism은 우리가 보통 전통을 중시하는 감각으로서 보수주의에 일부분으로 볼 수 있다.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며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사고한다. 반면, Traditionalism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그농이 하나의 세계관을 갖고 만든 이념이다. 현실은 자연스레 창조되고 파괴된다는 윤회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문명의 파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촉진할 수도 있는),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번영과 평화를 가져올 메시아 같은 전사를 기대한다.
안 싸워도 될 것으로까지 싸우지만 근본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문제 해결의 속도로 갈등을 빚어왔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그러나 전통주의는 그 문제를 방치하거나 더 심화하도록 부채질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의 역사를 보면 전통주의처럼 교조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 시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독일이나 스웨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을 위한 과도기라며 똑같이 아무것도 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모두 이념에 기반한 망상이었으며 만약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공황의 피해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집단엔 다른 생각을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통주의자였다면? 아마 “때가 됐다”며 정말 메시아만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전통주의란 기괴한 창조적 파괴
근래 국내에서 전통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책은 임명묵의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하는가>이다. 몇 년 전 나온 이 책은 러우전쟁을 비롯한 러시아의 그간 행보를 러시아 역사에 내재된 맥락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러시아에 대해 내밀하게 알지도 해석할 능력이 없는 언론이 ‘러시아의 행보=푸틴’으로 맞춘 것과 달리, 푸틴이 어떤 질서와 사상 안에서 움직이는지를 임명묵으 설명했다.
유럽과 아시아에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못해왔으며, 공산주의와 함께 경제마저 수렁에 빠지며 무너진 국가 국민의 깊은 수치심과 비참함을 책은 보여준다. 또한, 푸틴이 집권한 후 변화된 러시아에서 그 국민들이 (간접적일지라도) 어떤 위안을 받고 푸틴이 전쟁이란 극단적 정치적 모험을 벌이는데도 시민들이 침묵으로 동의를 표하는지 설명한다. 임명묵은 수치심·비참함을 느끼던 국민들의 자존감은 경제 재건만이 아니라 무너졌던 정체성이 푸틴의 통치 동안 회복됐다고 봤다. 그리고 두긴은 푸틴의 통치를 전통주의란 큰 그림을 통해 조언하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임명묵이 러시아에 초점을 맞추며 전통주의의 문제성을 드러냈다면, <영원의 전쟁>의 벤자민은 전통주의의 세계가 러시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베넌과 올라부를 통해 자유주의 세계의 문제로까지 가져온다. 저자는 이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세 사람이 서로 교류하며 나눴던 대화 그리고 이들이 전통주의를 왜 필요하는지를 드러냄으로써 전통주의 세계관의 윤곽과 그것이 세계 곳곳으로 퍼질 수 있는 내적 합리성과 현재의 풍토를 갖고 있는지 설명한다.
물론, 세 명의 전통주의자가 연대하며 세상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러우전쟁 판세를 보며 두긴은 웃고 있을지 모르나, 베넌은 브라이트바트 뉴스에서도 사임한 상황이다. 올라부는 코로나로 죽었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세력 간 연대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유주의 세계에서 극우는 분명 포기를 몰랐고 현재는 급격히 성장했다(이런 현상을 보면 잘못됐더라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현재의 극우는 이 세 사람처럼 그농의 책을 읽고 전통주의에 감화된 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나, 유럽에선 극우 세력은 소수에 머물지 않고 주류가 돼 가고 있다. 반이민·자국 우선주의·민족주의 등을 내세우기에 나치와 비슷하다고 하여 철저하게 고립되고 낙인까지 찍어왔으나 이제는 의회란 체제의 질서 안에서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는 단계에 이르렀다. 양당제인 나라에선 트럼프의 당선과 브렉시트로 큰 판을 흔들었다면 다당제 국가에선 점진적으로 의석을 늘리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권능을 유럽 곳곳에서 획득해 가고 있다.
지금 약진하고 있는 것은 전통주의에 기반한 극우는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들은 지적으로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전통주의자를 보며 그들의 품에 안길 것으로 점쳐진다. 전통주의는 모험적인 정치와 사람들의 분노만 자극하는 이들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울분을 포용할 줄도 않고 하나의 세계관을 통해 그간 이들의 삶을 온전히 인정해준다. 트럼프와 베넌의 관계처럼 이 둘은 갈등도 있겠으나, 선동된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하며 장기적으로 따를지는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자신을 대표하는 자로서 광대보다는 위대한 사상을 갖고 거대 비전을 제시하는 자를 선택할 게 뻔하다.
벤저민이 두긴·베넌·올라부를 인터뷰한 이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몇몇은 있으나, 전통주의에 기반한 정당이나 세력은 아직 없다. 두긴이 있는 러시아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전통주의자들의 이상처럼 세계는 다극화의 단계로 가는 것처럼 보이며, 미국에서 정권에 상관없이 자국 우선주의의 움직임을 보이자 다른 나라들 또한 이에 동조하고 있다. SNS는 사람들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그 연결 밖에 있는 고립된 사람도 양상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양극화는 사회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람들은 원자화 되고 있다. 한 개인의 가난과 고립부터 자국 우선주의란 추세까지. 개인의 울분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한 집단의 울분 그리고 세계의 움직임까지. 우리 세계에는 전통주의에 기반한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심층에서부터 퇴적되는 듯 보인다(물론, 이는 우리가 자유주의 체제란 것을 너무 당연시해 그 밖의 생각을 터부시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일 수도 있다).
조커? 인셀? 일베? 전통주의자?
책의 서평을 영화 듄2의 하이라이트를 활용하긴 했으나, 읽는 내내 생각난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불행을 즐기는 풍조에 관한 것들이다.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뜻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처럼, 소소한 일에 대해선 모두가 이런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 기류란 누군가의 불행을 “쌤통”이라고 느끼는 것을 넘어선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불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고, 사이버렉카 처럼 기회가 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명묵도 자신의 책 <K를 생각한다>에서 “<조커>에 나오는 아서 플랙처럼,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분노한 이들이 오직 시스템을 파괴하고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증오를 쏟아내는 데서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나의 삶에서 성취할 수 있는 무언가 혹은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없으니, 예능프로에서 실수하거나 한심한 실수를 해 불행에 직면한 사람들을 보면서 웃듯, 현실의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웃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이 또한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우면 안타까울수록 학습되고 심화될 수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통주의라는 게 어느 정도 위안을 주는 부분이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위안은 어떤 측면에서 독처럼 위험할 것처럼 보인다. 위안을 느끼더라고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