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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탄핵의 정치학
이철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1월
평점 :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계엄령 사태의 책임을 일선 동원된 군인에게 떠넘기고,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 었다는 주장을 했다. 간첩을 잡았던 국정원 요원을 향해선 음해 공작을 펼치고 있다 한다. 이젠 공적 지위고 뭐고 다 포기하고 이젠 나 하나만 살겠다는 (아직은) 대통령의 모습이다. ‘무책임’이란 말로는 부족한, 공직자 이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조차 회피하려는 양복 입은 불량배의 모습을, 우리는 탄핵 재판이란 거대 정치 이벤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인간에게조차 비용을 들이며 탄핵 재판 서비스를 받게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란 제도의 아이러니 아닐까 싶다.
이 어이없게 진행되는 변론은 1~2달만 참으면 앞으로는 안 봐도 될 것이다. 그간 대통령 측이 늘어놓은 변론 내용을 비롯해 반복됐던 트롤 짓은 재판 선고기일에 문형배 소장이 절제된 단어와 빈틈없는 논리로 잘근잘근 씹을 것이다. 작금의 뉴스가 답답하고 듣기 싫다면, 재판의 대미를 장식할 헌재의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12·3 내란과 윤석열에 대한 헌법상의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하겠지만, 이 사건은 갑작스레 생긴 정치 이벤트 정도로 치부할만한 건 아니다. 윤석열 탄핵 재판을 누구보다 집중해서 보고, 이를 뉴스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정치평론가조차 12·3 내란이 우리 헌정 체제의 취약성에 대한 그럴싸한 질문 하나 던진 게 없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란이 일어나기 한 달 전, 탄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여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고, 국회의원과 정치평론가로도 활약한 이철희 씨가 탄핵을 주제로 한 자신의 논문을 책으로 낸 것이다.
정치적인 재판, 탄핵 재판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탄핵 관련 뉴스로 지쳤을 사람들이 볼만한 책이다. 현재 탄핵과 관련해 나오는 보도란 시시각각 발표·발견된 이슈를 전달하거나, (좀 더 분석적인 기사라면) 과거 두 차례의 탄핵을 통해 그 결과를 점쳐 보는 것 정도다.
책에서 이철희는 노무현, 박근혜의 탄핵 심판이 있었을 때 의회 내 구도와 대중여론이란 틀로 대통령 탄핵이란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탄핵의 성공/실패에 의회와 사회운동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탄핵 소추 관련해 의회 내 구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위 질문들은 단순해 보인다. 마치 탄핵 정국 속 의회 내 정당 분포와 광장의 여론을 알려주는 여론조사만을 알면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어 보인다. 마치 현재 윤석열 탄핵 국면처럼. 하지만 중요 변수로 작용하는 언론 보도와 대통령의 행보, 의원 개개인의 행보 등을 종합하면 탄핵 소추 통과부터 헌재의 판단까지를 판단하는 것은 꽤 풀기 어려운 방정식이 된다. 그리고 이철희는 여기에 더해 탄핵 재판 자체가 정치적 특성이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탄핵 재판이 ‘정치적’이라는 주장은 불온하게 들릴 수 있다. 하원이 탄핵소추를 하고 상원이 심판하는 미국이라면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판사가 주 구성원인 우리나라 헌재에서 판결을 할 때 정치적 고려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결정이든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여지가 있다. 판사들은 그간 여론의 영향을 배척하며 법을 통해서만 판단하려 했던 사람들 아닌가. 그러나 이철희는 탄핵 심판이 정치적 특성을 띠는 이유는 “국민 의사와 대중적 합의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대개 헌법 조문은 추상성과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헌법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 의한 권위적 해석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탄핵 사유 조항을 중대한 법 위반으로 해석하고, 그 기준에 따라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중대성’의 판별은 사실상 법적 판단을 넘어서는 차원이다.”
“탄핵 사유가 얼마나 헌법에 규정된 사유에 근접하는지에 대한 법정 평가와 더불어 대중적 신뢰를 얻고 있느냐는 정치적 평가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법 위반 정도가 중단할 때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본다. 그런데 그 중대성을 확증하는 정략적 기준이 사실상 없다 보니, 정성적인 측면, 예컨대 국민의 안정적, 초당적 지지 여부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특성 띤다는 의미는, 탄핵 심판이 다른 정치적 사안들처럼 법적 판단에서 벗어나 이해관계를 고려해 적당한 결과물을 만든다는 게 아니다. 법적으로도 논란을 일으킨 부분이 있는 가운데, 탄핵을 했을 때의 득실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국민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가령 이런 것이다. 노무현 탄핵이 선고되기 전 있었던 총선에선 탄핵이 주요 쟁점이었고, 당시 열린우리당은 어려운 구도 속에서도 과반 의석을 넘기며 집권 여당이 됐다. 박근혜 탄핵 때는 수백만 명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앞서 두 차례의 탄핵이 있었을 때는 헌재를 향해 대중이라 할만한 국민들이 분명한 의사가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윤석열 탄핵을 앞둔 현재, 국민적 지지와 초당적 지지는 이전 탄핵 때보다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지만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국민접 합의 정도는 충분히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헌재가 현재의 인권위나 방통위처럼 작동한다면, 판결에 정치적 특성을 띤다는 특성은 심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이들에 휘둘리는 반정치적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두 번밖에 없었지만, 탄핵 재판 때 헌재를 움직였던 대중의 움직임은 이렇게 극단적이지도 반지성적이지도 나아가 기회주의적이지도 않았다. 모든 시민들이 계엄령이 진행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대통령의 발언이 거짓이라는 게 하나씩 드러나는 상황에서, 헌재가 이들의 말에 신뢰를 느낄 일은 없어 보인다.
중요하다고 하기엔 이젠 헐거워진 제도, 탄핵
윤석열의 탄핵은 이제 상수처럼 보인다. 헌재가 내릴 사이다 판결문을 보는 것 외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국회에서 있었던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는 지켜보는 입장에서 변수가 많았고 긴장된 순간이었다. 첫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할 때 박찬대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표결 참여를 촉구했고, 악동 이준석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인 곳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다. 정족수가 부족해 표결이 성립되지 않자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의 아쉬움은 여의도를 가득 메우지 않았던가. 두 번째 표결을 때도 그렇게 낙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국회 탄핵 소추안 표결은 노무현과 박근혜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흥미진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모든 과정이 순조로우나 그렇지만은 않았다. 2016년 총선에선 여소야대 국면이 발생했고,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금이 간 상태였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된 국정농단 게이트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나왔고, 광장에선 의회를 향해 탄핵을 맹렬하게 푸시했다. 야당은 여당 의원들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며 설득했고, 여당 내부에서도 박근혜를 포기해도 대안으로 생각할 사람을 찾자 큰 이탈표도 생겼다. 탄핵을 막으려는 대중 방패는 진작 없었고, 탄핵소추를 저지할 여당 의원들은 쪼개졌다.
박근혜가 2016년 총선, 국정농단 게이트, 광장의 강한 압박으로 탄핵을 막을 방패들이 연이어 격파돼 속수무책으로 밀려난 사례라면, 노무현은 여소야대 국면 해소를 위해 탄핵을 활용했다고 한다. 당시 출발부터가 여소야대 국면이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번번이 대선불복 발언을 하며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 않을 자세를 취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노무현을 따르는 의원이 많지 않던 상황에서, 지지가 아직은 남아을 때 정치적 승부를 걸어 무기려한 상황을 일거에 타파하려 했다는 게 이철희의 설명이다. 탄핵을 노리던 한나라당에겐 여권 분열이란 기회를 주고, 민주당에겐 자기들이 선출시킨 대통령의 탈당이란 명분을 주어 탄핵에 참여할 명분을 주었다. 아웃사이더 노무현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던 총선과 (첫) 탄핵이란 도박판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며 끝내 승리해 귀환했다.
포커게임 플레이어로 3명의 대통령들을 비유해보자. 노무현, 박근혜, 윤석열은 탄핵이란 국면에 모두 다른 리더십과 행보를 보였다. 정치 생명을 올인(All-in)한 노무현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밖근혜는 이 판에서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카드를 폴드(Fold)하며 정치판에서 떠났다. 윤석열은 탄핵 재판 와중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등 틸트(Tilt) 상태에 들어갔다. “Buck stops here!”는 개뿔.
3번의 탄핵에서 각각의 대통령이 보인 모습들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민주화 이후 8명의 대통령 중 3명이 탄핵 소추됐다는 사실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박근혜, 윤셕을은 모두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탄핵을 당했다. 여소야대 국면이란, 대통령 입장에서 늘 탄핵이란 위협을 마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국면이 돼 버렸다. 물론 이 국면이 예전처럼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야당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국정 운영에 참여하려는 태도로 보이면 약이 되겠으나, 양극화된 정치 지형이 고착화 현재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여러 요인들이 겹처서 발생한 일이겠으나 급격하게 위축된 경기가 보여주듯 탄핵은 단지 정치 이벤트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 외교, 안보, 경제에 분명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었다면 더 문제가 심화될 수도 있었겠으나, 앞으로 늘 대통령 탄핵이 가능하다면 이젠 외교, 안보, 경제의 불확실성은 기본값이 될 수도 있다. 나아가 국회의 의견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성과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
현재의 정치 지도자 중에는 김대중처럼 통합을 강조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과를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소수가 있으나 그들의 집권은 요원하다. 탄핵은 분명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아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의 제도가 돼야 하나, 앞으로의 탄핵은 그것이 올바른 탄핵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회를 더 낫게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