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가 사멸한 전장 위에, 남은 것은 유중혁뿐이었다.
모든 죽음을 거름 삼아 도달한 결.
그 오랜 싸움 끝에 유중혁이 원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이 빌어먹을 회귀의 끝을 보는 것‘
오직 그것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그 ‘너머‘로 가는 것을 막아선 벽이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는 정말 이 세계를 구하려고…………."
"세계 멸망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ㅡ"
"그의 희생은 숭고해요. 정말로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까?"
"아가리 안 닥쳐?"
"김독자가 왜 세계를 구해야 돼? 그 새끼가 왜 자기 목숨 희생해서 헛짓거릴 해야 되냐고! 이딴 세계에 그럴 가치가 있어?"
"구원의 마왕도 언젠가 당신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 이 세계가 과연 지킬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봐야알겠지.
"그는 지금 저기에 있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살아온 세계를지키기 위해서."
"이런 세계에서 당신들이 만났잖습니까."
"예언자인 제 말을 믿으세요.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두 재앙이 서로 싸워 공멸하는 순간을 노려야 해요. 그렇게 해야만우리 모두 생존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 미래를 아는 게 너뿐인 줄 알아?"
한수영의 주변에서 「예상표절」의 설화가 흐르고 있었다. 회귀자 유중혁 또한 [현자의 눈]을 통해 끊임없이 상황을 통찰하고 있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예언자만이 아니다. 이들 또한,
누구보다 미래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김독자를 구하는 길을 택했다.
검을 뽑은 정희원이 말했다.
"난 미래 같은 건 몰라. 하지만 하나는 알아. 당신은 세계를구하고 싶다고 했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이 내가 구하고 싶은 세계야." - P166

"넌 원래 동료고 뭐고 없는 놈이잖아. 그런데 이번 회차에들어와서 너무 많이 변했다 이거지."
"그래서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어. 대의를 위해 동료들을 저버렸던 네가 왜 김독자는 구하려는 건데?"
"이 모든 시나리오가 끝났을 때, 김독자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니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살려둘 거라 이거지?" - P221

-너는 미래에서 온 ‘김독자‘인가?
언젠가 유중혁은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 있었다.
1,863회차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아는 존재는 김독자뿐이라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던질 수 있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멍청한 질문이었다.
1,863회차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아는 존재어떤 이야기에 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는 그걸 읽은 ‘독자‘가 아니라 직접 그 이야기를 살아간 ‘등장인물‘인 법이다.
[돌아가라. 너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 - P226

어렸을 적, 나는 자주 유중혁이 되는 꿈을 꾸었다.
내게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유중혁이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는 꿈을 꾸고 나면,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여전히 유중혁인 것처럼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맞은 적도 있고, 괴로운 일을 겪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유중혁‘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 P323

"위대한 모략‘과 마주한 몇몇 공포의 기록자들은 그가 가장 오래된 꿈‘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중략)・・・・・・ 운이 좋은공포의 기록자들은 위대한 모략에게 가장 오래된 꿈‘의 정체를 물을수 있었다.」[그것은 이 우주의 시작이자, 거대한 수레바퀴의 주인. 나의 오래된 원수이자 나의 부모 모든 것의 마지막을 정하는자]」
몇몇 공포의 기록자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위대한 모략의 표정을 보았고,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그들은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 P330

그 무수한 회차에서 실패한 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수만 년, 수십만 년, 어쩌면 수백만 년에 달하는 고통의 이야기.
세계선에서 버려져 ‘설화‘로 인정받지 못한 이야기.
세계의 무의식이 되어 먼 우주를 떠돌며 오래된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실패한 설화의 파편들.
끝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 - P337

한쪽 하늘에서는 별들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다른 쪽 하늘에는 ‘그레이트 홀‘과 불길한 은하가 흐르고 있었다.
절반의 빛과 절반의 어둠.
곧 최후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그들 중 한쪽 편에 서서 세계의 결말을보아야만 할 것이다.
[당신의 두 번째 수식이 결정됐습니다.]
하늘의 건너편에서 작은 별빛이 반짝였다.
나는 그 별빛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천천히 지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계의 신격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마주 보며 내가 설 자리를 택했다.
[당신의 두 번째 수식언은 ‘빛과 어둠의 감시자‘입니다.] - P352

[‘이계의 신격‘들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나는 너희가 아니니까.
그렇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아직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이계의 신격‘들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직 이야기할 것들이 남았잖아."
나는 이계의 신격들을 올려다보았다.
두족류와 촉수괴물로만 묘사되는 이들. 이 세계선에 필요하지 않기에, 이 세계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형태를 부여받은 존재들.
나는 그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내가 너희를 이야기하겠어." - P359

"그놈은 네가 아니다."
"그놈도 유중혁입니다."
"그놈과 너는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걷지않을 것이다."
"초월형 몇 단계에 올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설화를 쌓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너는 겨우 세 번 회귀한 애송이일뿐이지만, 그놈이 모르는 설화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 말을 들으며 유중혁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은밀한 모략가‘에게는 닿지 못했던 주먹이었다. 천천히 펼친 주먹에서 설화가 흘러나왔다.
그가 쌓아온 설화 ‘은밀한 모략가‘는 모르는 설화.
"초월의 길은 모두 다르다. 그놈을 따라잡으려 하지 말고너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라." - P371

"혼자서 갈 것이냐?"
"저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그 길은 이미 다른 네가 걸어간 길이다."
"야, 유중혁 어디 있어! 이제 출발해야 돼!"
눈부신 빛과 함께 <김독자 컴퍼니 > 일행들이 수련장 문을열고 들이닥쳤다.
신유승, 이길영, 이지혜, 한수영.......
대체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는지 <김독자 컴퍼니>의 모두가 모여 있었다.
"저들이 바로 너의 설화다. 중혁아."
‘은밀한 모략가‘에게는 없는 것.
"이번 회차의 너는 혼자 싸울 필요가 없다." - P3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 언제쯤 환생할수 있는 거죠?
[저곳은 아해의 전장이 아닙니다. 아해는 더 커다란 의미를수행할 존재로 환생할 것입니다.]
-저들이 내 의미예요.
영혼이 되어서도 유상아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여기서 저들을 살리지 못하면 제 환생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해요.
[의미라......]
[그대는 내가 아끼던 아해의 몸에 깃들 것입니다.]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간다고요? 환생하는 게 아니었나요?
[그 몸을 화신체 삼아 환생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주의 섭리로 되돌아간 것뿐입니다. 모든 것이 수레바퀴의 공허한 회전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아끼던 사람이잖아요.
[아해도 곧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환생자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니.]
-전 아직 환생자가 아니에요.
[그런 굴레에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에게 소중하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남을 저주하는 게 취미이신가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해여.]
[성들은 평생을 불면에 시달립니다. 시나리오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꿈에서조차 다른 이의 설화를 탐식합니다. 탐식을 통해 자신이 처한 시나리오를 지우고 싶어합니다. 그리고늘 불안해하지요. 자신들이 왜 불안한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시나리오는 영원한 백일몽입니다. 죽음을 외면하기에 죽음을 모르고, 죽음을 모르기에 시나리오의 미망에서깨어나지 못하지요. 자신을 구원할 단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생자는 다릅니다.]
[환생자는 성좌처럼 영원을 살아가지만,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죽음을 알기에 깨어남을 알고, 깨어남을 알기에 자신이시나리오 속 일개 부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환생이란 시나리오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들 체념한 얼굴이에요.
[누가 이기든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는 바꿀 수 있어요. 우린 늘 그래왔어요.
[하지만 그것이 ‘시나리오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건가요? 뭘 해도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니까? 그건 도망치는 거예요. 싸워보지도 않고서 패배를 인정하는 거라고요.
[아해여, 그건 환생자의 삶을 모욕하는 말입니다. 환생자들]은 무수한 삶을 시나리오와 투쟁하며
-단 한 번의 삶도 포기 않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싸워보셨나요?
-1,800번이 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싸운 사람도 있어요.
유상아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코트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 모든 삶을 함께 지켜본 사람도 있고요.
그 옆에 선 흰 코트의 사내가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옮겨간 사내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이현성을 향했다.
[숫자를 헤아리기에 이 몸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헤아릴 수 있는 숫자도 있군요.]
석존이 이현성을 보며 말했다.
[이 섬에 늘어날 환생자가 하나] - P10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대도깨비의 신형.
모든 일행이 확실하게 살아남을 방법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대의 판단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군.]
이번만큼은 수르야도 감탄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김독자."
"왜. 또, 뭐."
"오래 생각하고 한 판단 맞지? 같잖은 동정심이라든가, 순간적인 충동은 아니지?."
"그럼 됐어."
"화내도 돼. 난 방금 엄청난 기회를 걷어찬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뭐, 그래. 이유가 있겠지. 솔직히 나도 네가 거절할 거라고생각했어."
"뭐? 왜?"
한숨을 푹푹 쉬며 대답하는 한수영의 말을 받은 것은 유중혁이었다.
"그게 네놈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평소와 같은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유중혁을 보며, 두 사람이 내게 무엇을 양보했는지 깨달았다.
맞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 P71

「가장 뜨거운 지옥의 중심에서,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용이깨어날 것이다.」「그는 용 중의 용. 혼돈의 중심에서 태어난 모든 용의 수장이자 세계에서 가장 늙은 증오.」
「그 용은 하늘을 한 번, 땅을 한 번 보고 꼬리를 내리칠 것이다. 한번의 꼬리짓에 별들이 추락하고 세계의 한 방위가 사라지리라.」 - P74

"묵시룡‘은 본래 ‘특정한 용‘을 지칭하는 게 아냐. ‘가장 오래된 선‘이나 ‘가장 오래된 악‘이 특정 성좌를 칭하는 게 아닌것처럼. ‘묵시록의 최후룡‘은 거대 설화 그 자체를 말한다고."
"잠깐, 그러면......"
"아직 이 시점에서 ‘누가 묵시룡이 되느냐‘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지."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난 고아원에서 국민학교에 다녔는데, 4학년 때 모래로 팔이고 장딴지고 피가 나도록 문질러댔어. 그래도 피부는 아이들과 같아지지 않고검은색 그대로였어.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죽기보다 싫은 게 뭔지알아? 튀기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놀리고 하는 거야. 난 미국에가서 감자껍질이나 벗기는 신세로 천대받아도 좋고, 버림받아도 괜찮아. 어쨌든 미국에만 가면 돼. 그럼 많은 흑인들 틈에 섞여버리니까 여기서처럼 구경거리 되는 일은 없어지거든.」 - P33

방탄조끼에 철모를 쓰고, 총까지 휴대하고 운전을 해야 하는 자신들을 그들은 ‘군번 없는 군인‘이라고 불렀다. - P42

「왜 안 그렇겠어. 그렇지만 결국 그 일을 해냈잖아?
정남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쳤다.
「그럼 됐어. 큰 고비를 넘긴 거야. 왜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게 있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너는 이제 해방됐으니 얼마나 좋아. 난 앞으로 당해야 하는데. 네가 부럽다. 가, 밥 먹으러.」「아니야, 아니야, 나 밥 못 먹어. 지금도 구역질 나」정남희는 입을 막고 돌아서며 웩웩 구역질을 해댔다.
「이것도 이겨내야 해. 밥을 굶고 어떻게 힘든 일을 하겠어. 여기까지와서 그까짓 것 못 이겨내면 안 되잖아..」
김광자는 정남희의 등을 다근다근 두들기며 좀 싸늘하다 싶게 말했다.
「너는 밥 먹을 자신 있어?
정남희는 눈물 어린 눈으로 김광자를 쳐다보았다.
「우리한테 자신이 있고 없고가 어딨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데.」
「그래・・・・・・ 그렇지, 낭떠러지지. 누구나 그렇지. 알았어, 가」 - P111

「응, 닥터 한스가 하는 말이, 일을 쉽고 즐겁게 하려면 신앙을 가져보라는 거야. 간호원을 왜 ‘백의의 천사‘라고 하느냐 하면, 간호원은 환자들을 대하는 데 마음속에다 천사와 같은 사랑을 간직해야 한다는 거야.
그냥 의무와 책임으로만 일을 하면 일이 힘들고 괴롭지만, 천사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하면 쉽고 즐거워진다는 거지. 예수를 믿으며 그 사랑을배우라는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닥터 한스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일이 한 번도 없이언제나 웃고 다정해. 꼭 친부모 대하는 것같이 - P113

근로감독관은 궁기 흐르는 전태일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반말을 던졌다. 거만하고 불친절한 공무원의 전형적인 말투를 쓰는 그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 P149

전태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근로감독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공장 얘기를 듣고도 놀라거나 동정하는 빛은 전혀 없이 무작정 간단하게 말하라고 몰아댔다. 일거리가 너무 많아 그런 것일까? 몸에 밴 공무원 행투 때문일까? 근로기준법은 분명히 나라가 만들었고, 근로감독관은 그 법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는 사람 아닌가? 그러면 틀림없이 우리 공원들 편이어야 하는데.... - P152

「야, 느네 학교는 데모 안 해?」유일민의 옆에 앉은 대학생이 낮은 소리로 친구에게 물었다.
「더 하면 뭘 해. 공화당에서 3선개헌을 하기로 결의해 버렸는데.」
「하긴 그래. 야당이야 자릿수 모자라 있으나마나니까. 근데 박 그사람 어쩔려고 그러지? 이승만이 당하는 걸 뻔히 봤으면서도」「권력의 맛이 좋은 걸 어쩌겠어. 자긴 안 당할 자신이 있다 그런 배짱인거지. 그런 착각과 오만이 인간의 한계고 어리석음 아니겠어.」
「글쎄 말야, 우리들도 다 아는 걸 어째서 그 사람들은 모르지? 권력을잡으면 다 그렇게 바보가 되나?」
「그게 권력의 속성이고 마성이래잖아. 왜 조지 워싱턴을 위대하다고하겠어. 국민 여론이 나라를 위해 당신은 대통령을 세 번 해도 된다고했을 때 워싱턴은 단호하게 말했어. 나는 대통령을 세 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후에 나보다 못한 자가 나를 빙자하여 세 번 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자 한다. 그래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룩된 거야.」
「참 부러워. 우리도 그런 인물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쨌거나 박은 제무덤 파고 있어. 」
「당연하지. 경제 건설 팔아대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고 있지만,
그거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이승만도 건국대통령 내세우며 자기 아니면안 된다고 했거든. 하여튼 정치가들이란 염치없이 뻔뻔스럽고, 양심 없이 거짓말해 대는 못된 인간들의 표본이야. 어쨌든 정치란 아더메치야」
‘아더메치‘란 귀를 덮는 장발과 함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로,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는 줄임말이었다. - P167

고정된 레일을 가진 전차가 팽창하는 도시의 교통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모르지만 시민들 의견은 아예 들어보지도않고 하루아침에 없애버린 것이 서울의 전차였다. 그건 군 출신 시장이보여준 대표적인 군대식 행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저돌성이 ‘과감한 추진력‘으로 미화되면서 군대식의 효과가 사회 전반을 물들이고 휘어잡아가고 있었다.
유일표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언뜻언뜻 몸서리치고는 했다. ‘군대는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이 억지는 그래도 유식한 말로 포장이나 되어있었다. ‘으로 밤송이 까라면 깠지………… 3년 동안 넌덜머리 나게 들었던 이상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 바로 한국 군대의 동력이었다. 그런 어거지와 우격다짐의 군대식이 언제부턴가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 되어 있는 것을 느끼며 두렵고도 암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P200

작은 고추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세상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부르는별명이 아니라 애칭이었다.
「누구 덕에 이만큼 잘살게 됐는데.」「그럼. 그저 조선사람은 작은 고추야. 그만한 인물 없어.」사람들의 이런 맞장구를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엄연히 피땀 흘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모든 공이 박 대통령 차지가 되고 있는 게 그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건 3선개헌을 해놓고 불안 상태에 있는 공화당이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말을 사람들이 어리숙하게 되뇌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 때문에 다 망했잖아!"

"내가 쓰라고 적어둔 방법 있잖아. 어떻게 된 게 매뉴얼대로하라는 것도 못하냐? 너흰 이현성보다 멍청해! 알았어?"
"감독자 내가 써둔 세 가지 방법 훑어봐."
"첫 번째 방법, ‘퓨전 판타지‘ 루트"
이계의 신격의 힘을 빌려서 시나리오를 클리어.…… 야, 애초에 이건 말도 안 되는 방법이잖아."
"그래서 두 번째는?"
나는 알 수 없는 억울함을 느끼며 교과서를 읽듯 한수영의책을 읽었다.
"두 번째 방법, ‘판타지."
"내용은?"
"역성혁명을 일으켜 왕을 살해한다. 아니, 왜 내가 이걸 읽어야 하는.......‘
한수영의 손바닥이 다시 한번 내 뒤통수를 갈겼다.
제기랄, 이 자식이.
"세 번째 방법, ‘로맨스‘."
"내용은?"
"유리 디 아리스텔과 결혼한다."
"그래서 네가 택한 건 뭐지?"
"네 번째 방법."
"내가 방법이 세 개라고 써놨지?" - P130

"당신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야."
"‘판타지‘나 ‘퓨전 판타지‘도 아니고."
설화가 없는 존재는 없다. 단지, 그것이 너무 작다는 이유로설화라 부르지 않을 뿐이다.
"당신의 장르는 ‘마르텔 디 루트비어‘야."
귀족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한수영은 그 옆의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케인 폰 발로드. 에리메인 반 에크리드 슈트리안 엑셀"
오래전에 사라진 이야기의 이름을 되찾아주듯, 한수영은 모두의 이름을 차례차례 불러주었다. 기억력이 좋은 한수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족도, 혁명단원도, 근위기사도 그 순간만큼은 얌전히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수영은 이름을 다 부른 후 이렇게 말했다.
"그 이름이 당신들의 장르야." - P145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정의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갈 선택지는 우리 스스로 정할 겁니다."
세상의 성좌들을 향해 나는 선언했다.
"누구도 그 선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 P185

[<스타 스트림>은 꺾이지 않는 이야기를 싫어하지. 그대들처럼 순수한 이야기는 더욱]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움직였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왜냐하면 그 말은 지금껏 우리가 걸어온 모든 길을 부정하는 말이니까.
"우린 이미 수십 번도 더 꺾였습니다."
<김독자 컴퍼니>는 처음부터 두 발로 서 있지 않았다.
한반도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성좌들의 농락과 근본 모를증오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겁니다."
그런 우리에게 ‘순수하다‘라는 말은 차라리 모욕이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침착하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거친 울음을 삼킵니다.]
내 말에 동조하듯 두 개의 거대 설화가 반응했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겁니다."
[발아 중인 세 번째 ‘거대 설화‘가 태동합니다.]
거기다 곧 깨어날 세 번째 거대 설화까지. - P190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자들에게 예비되어 있다.」 - P194

[그리고 어떤 설화는, 애써 소비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된다다.]
죽어가는 설화들이 포크 끝에서 부스러졌다.
오랫동안 누구도 찾지 않던 설화들은 먹히는 그 순간까지도 메르세포네의 혀끝에서 황홀한 문장을 토해냈다.
복잡한 심정으로 그 모습을 보는 나를 향해 페르세포네가 웃었다.
[네가 성좌들의 식성에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단다. 화신들의 희로애락을 너무나 쉽게 소비하는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
[하지만 우주의 모든 사건은 설화로 남을 수밖에 없어 너도 나도 그리고 다른 모든 화신과 성좌도 결국 무언가에 의해 소비되기는 모두 마찬가지란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삶은 <스타 스트립>에서 이야기가 된다.
[어차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다양한 설화의스펙트럼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성좌들이 할수 있는 최선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양한 설화를 남기고, 다양한 이야기를 보존한다. - P260

[아주 오래전, 우리 부부는 ‘운명의 세 여신‘에게 계시를 받은 적이 있단다.]
"계시요?"
[오래된 신화를 끝낼 가장 어두운 밤의 후예가 나타날 것이다.]
문득, 언젠가 디오니소스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 나와 몇몇 성좌는 네가 ■■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어쩌면 그 ‘몇몇 성좌‘는 페르세포네와 하데스를 지칭하는것일지도 모른다. 페르세포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 그 신탁을 받았을 때, 나는 화가 났단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설화‘를 가지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쩌면 이번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 이야기를 기억해줄, 어여쁜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비록 이곳에는 어둠과 지옥과 감옥뿐이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올림포스> 12신중 누구보다도 더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아이에게다른 존재의 어둠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고, 타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지옥을 알려주고, 정의를 짓밟는 악을 엄벌할 감옥을 보여주겠노라고.][수백 년 동안 그런 착각 속에 살았다.]
[하데스와 나는 오랫동안 둘이서 모든 것을 헤쳐왔단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불행하지 않았어. <명계〉가 설령 우리 세대에서 끝나고 우리가 살아왔던 설화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다른 12신과는 다르다고, 자신의 설화를 자식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그런 부모와는 다르다고. 우리는 그저 우리로서 오롯하다고.]
[그런데 어느 날, 네가 나타나고 말았구나.]
[사실 너를 먼저 발견한 것은 그이였단다.]
[지하철에서 네가 살아남던 순간부터 그이는 줄곧 네 역사를 지켜봐왔단다. 처음에는 너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않았다. 이제 이 세계에 그런 설화는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내게 신나서 떠들던 그이 목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아.]
[외로이 자란 작은 설화가 세상과 싸우는 모습을 우리는 줄곧 지켜보았단다. 쟁쟁한 성좌들과 겨루고, 이계의 신격과 맞서고, 도깨비의 시나리오에 저항하며 ■■■■■… 기어코 다섯 개의설화를 쌓아 하나의 별자리로 태어난 작은 성좌를]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네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고, 진짜 부모가 아니라도 좋으니, 그런 지지자가 되고 싶다고.]
[하데스와 나는 네가 명왕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네가 우리에게 구속되길 바라지도 않고, 우리가 살아온 삶이 우리가살아온 역사가 너의 삶을 규정짓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너는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대로 모든 시나리오의 마지막을 향해나아가면 된다.]
[너는 우리의 아들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제가 이 모든 시나리오의 ■■에 도달했을 때……… 반드시,
당신들의 이야기도 함께할 겁니다."
[테라스로 가보거라. 네 아비가 너를 기다린다.] - P264

[보고 있느냐?]
[저것이 명계다.]
"아버지"
[군대를 데려가라.]
[<명계>를 위하여!]
첫 번째 심판관이 외쳤고.
[<명계>의 왕자를 위하여!]
두 번째 심판관이 부복하며 날 바라보았다. 세 번째 심판관의 창이 하늘을 찌름과 동시에, 모든 영혼이 함께 부르짖었다.
[모든 시나리오의 영원과 종장을 위하여!]
그 함성 속에서 명왕이 말했다.
[가거라.]하데스는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보고 있었다.
[<명계>는 지금부터 너의 편이다.] - P269

내가 살아온 시간으로는 무리인가.
[<김독자 컴퍼니>의 가호가 강화됩니다!]
무언가가 그런 정희원에게 힘을 보탰다.
[거대 설화, ‘카이제닉스 제도‘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녀가 살아온 역사들이었다.
[성좌, ‘강철의 주인‘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녀가 사랑한 것을 함께 사랑한 이들.
까가가가각!
정희원은 양손으로 검을 쥔 채 바르바토스의 총검술을 받아냈다.
총검술. 그녀가 아는 사내도 총검술에 능숙했다.
"군대에서는 힘들수록 더 큰 소리를 지릅니다. 매일 아침 한껏 소리를 지르고 나면, 어떻게든 그날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들었습니다."」
"하아아아아악!"
정희원은 이현성처럼 기합을 터뜨렸다.

"저도 일단 지르고 볼 때가 있습니다. 항상 모든 걸 계산하고 있는건 아니에요."」김독자처럼 용기를 냈고
그렇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유중혁처럼 검을 휘둘렀다.
언뜻 한수영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알지? 어차피 마지막에 웃는 놈이 승자야."」

그런 한수영처럼 정희원이 말했다.
"뼈를 원한다면 뼈를 주고 심장을 원한다면 심장을 주겠어."
자신이 무슨 공격을 받든 상관없다는 태도,
오직 상대방을 함께 파멸시키기 위한 전투법
"하지만 너도 네 설화의 절반은 걸어야 할 거야"

정희원은 바닥에 늘어진 이현성의 몸을 끌어안았다.
현성 씨. 나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는 정말 한 줌의 여한도 없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내 모든 시나리오가 끝나더라도.
나는 제대로 이 순간을 살아냈다. - P373

"우리엘・・・・・…."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자신의 화신을 바라봅니다.]
상처투성이의 우리엘이 정희원을 보고 있었다. 희미한 탁기가 서린 날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희원은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었다.
우리엘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선의 교환만으로도 알수 있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괜찮아요, 우리엘."
우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정희원은 잠시 우리엘을 바라본 뒤, 말없이 바닥을 보았다.
그들은 성좌와 화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마음인지를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고통스럽게 눈을 감습니다.] - P3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