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자네는 말이 많지만 남에게 해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을 아낀 건 말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곤 해서야. 그저과묵한 게 남에게 피해를 덜 주는 거더군." "하지만 배워야했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재료는 말이었어. 점장님의 두서없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잔소리 같지만 사실은 배려라네. 자네의 수다 역시 나쁜 의도가 아니란 걸 알고 있고, 나는 그렇게 할 말재주도 심성도 부족했던 것이고." "어휴, 말씀 적재적소에 잘하시던데요." "그래도 여기 와서 접객을 하며 젊은 사람들도 만나고, 좀 배웠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이곳에서 근무한 보람이 있었어."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 모쪼록 저도 잘해보겠습니다." - P179
비교 암, 걱정 독.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 나만 생각하고 살렴." - P186
"누구긴, 누구예요. 양아치죠. 양아치가, 왜 양아친지, 아세요? 일제강점기 때 거리에서 동냥하던 자들을 동냥아치라고 불렀대요. 동, 냥. 아. 치. 근데 말이 기니까 나중에 양아치라고 줄어든 거죠. 양아치. 지금 돈도 안 내고 물건 달라는 동냥질하고 계시니, 양아치, 맞죠. 그쵸?" - P197
민식이 잔을 들어 보였다. 그가 잔을 부딪쳐 동참해주었다. 민식은 간절했다. 외로웠다. 세상이 모두 자기를 엿 먹일 궁리만하는 것 같았고, 밀리지 않기 위해 허세를 떨며 살았다.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마음껏 비교하며 살았다. 앞서 나가기 위해 앞장서서 무리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실패였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남남이 되었고, 기드래곤은 뒤통수를 치고 사라졌고, 곽 씨 아저씨도 그를 실망시켰다. 누나는 평생의 라이벌이었고, 엄마는 그의 편이었으나 지금 옆에 없다. 하지만 이제 학교 선배이자 편의점 일도 봐주는 든든한 형이 생겼다. 사업도 사람부터 시작이다. 민식은 이 사람만은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 P237
"엄마 이제 돌아와."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내가 데리러 갈게. 내일이라도 당장. 내가 이제 낮에 자고 밤에 일하러 가니, 엄마랑 집에서 마주칠 일 별로 없어, 엄마, 나 이제 편의점 도시락도 잘 먹어. 밥 차려줄 것도 없고 가게 팔겠다고 설치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돌아와 내가 데리러 갈게. 응?" 여전히 전화기 너머에는 침묵이 그득했다. 민식은 울먹임이 저너머로 들리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그때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들려왔다. "데리러 갈게 아니고, 모시러 갈게라고 해야지." "으응. 모시러 갈게. 엄마 모시러 갈게요!" 이번에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다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렴." - P246
이곳에서 나는 숨이 좀 트였고, 지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고, 묵은 생각을 꺼내 햇살에 말릴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옥죄는 문제들을외면하기보다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전원주택에 끊이지않는 벌레들을 모조리 살충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살며 얻어가는 불편하고 곤란한 일들을 받아 안고 사는 법을 체득해갔다. 평안.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 가능했다. 늘 잘해왔다 여기기 위해 덮어둔 것을 돌아보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호수에 유유히 떠있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분주히 발을 놀리는 것처럼, 평안을 위해부지런히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 P250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 P281
영상을 되감기하듯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시현은 훈훈해졌다. 좌절해 있을 때 신 선생님이 번역한 그 드라마를 못 봤다면? 그걸 보고도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 남영동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일본어 학원에서 가까운 ALWAYS편의점에 찾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게 맞물려 준성을 다시 만났고, 사장님과도 재회할 수 있었다. 좋은 관계는 절로 맺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살피고 찾으려는노력이 필요하다. 초식동물 같은 시현은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조심스러웠기에 주의 깊었고, 자신에게 호의를 지닌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채는 데 민감했다. 신 선생님도 염 사장님도 그래서 인연이 이어진 게 아닐까? ‘사람‘을 땐 남자친구 역시 말이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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