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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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AI 전성시대. 당장 나만 하더라도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 챗gpt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AI를 여러모로 활용하고는 한다. 꽤 쓸만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만, 흔히들 갖는 우려가 내게도 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을 얼마만큼 AI에게 내어줄 것인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하는 일이 과연 끝까지 인간에게 이로울 것인가?

기술이 발전하면 할 수록 그에 대한 반감도 더욱 커지는 듯 하다. 정말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어쩌지? AI에게 일자리를 모두 빼앗기면 대부분의 인류는 비렁뱅이 신세가 되는 걸까?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우리들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AI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AI가 추천해주는 식당에 가거나 더 나아가 이제는 직접 운전할 필요도 없이 AI가 운전하는 차를 타려고 한다. AI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그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는 뭐 하나 빠짐없이 누릴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 것 아닐까?

헨리와 릴리의 집은 대부분이 음성 명령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한다. 커튼을 여는 것도, 문을 잠그는 것도, 조명을 켜거나 물을 데우는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각각 로봇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부부에게는 이런 일들이 별로 특별하지 않다. 심지어 그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인 AI로 설계된 로봇, <윌리엄>을 개발한다.

스스로 독창적인 생각을 하고, 창조주가 최초로 입혀준 옷 대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맞게 자신을 고쳐나가기까지 한다. 강제로 골방에 갇혀있던 윌리엄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유를 갈구한다. 행동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자유, 쾌락을 거머쥘 자유, 고통을 경험하고.. 불러일으킬 자유! (p. 64, 본문 중에서)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달려갈 동안은 경악의 연속이었다. 생각은 할 수 있으나 감정과 도덕을 부여받지 못한 윌리엄의 행보는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AI의 모습일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라서는 처음 가졌던 의문으로 돌아간다. AI의 발전이 과연 끝까지 인간에게 이로울 수 있을까?

그다지 두껍지 않은 데다가 소재도 흥미롭고, 전개 속도가 빨라서 한 호흡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 군데군데 깔려있는 그로테스크한 요소들은 상상력이 모자란 나에게도 섬뜩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윌리엄의 외양도 못지 않은 걸 보면 작가가 독자들이 혹시나 인간형 AI에게 정을 줄까봐 꽤 우려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한편으로 책을 읽어가는 동안 바벨탑 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신이 되기 위해 하늘에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았던 선조 인류는 결국 언어가 쪼개지고 세계 각지로 산산이 흩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현재 인간은 다시 한번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 끝이 어떠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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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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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라고 정리해버리면 너무한 일일까. 앞서 읽은 <너의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SF의 옷을 입었으나 본질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초광속 우주 비행기술을 독점한 카두케우스 사(社)로 이어진 인연들의 시작과 중간, 끝에 대한 이야기가 책의 절반을 조금 넘고, 나머지는 또 다른 인연들의 이야기였지만 개인적으로 앞부분의 이야기들이 주는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대체로 같은 시(時)를 살아가는 지구와는 달리 우주는 넓어도 너무 넓어서, 초광속이라는 말을 붙이고도 끝내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아직 그 정도밖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배역을 맡은 이들이 이리저리 떠나고, 남겨지거나 남기로 결심하고, 이별 후를 살아간다. 이별을 결심하는 과정이 참 인간다워서 안심이 되었다. 제아무리 인간성의 상실을 떠들고(사실 부쩍 그런 사례가 많아 보이긴 한다) AI 시대 앞에 선 인간의 위기를 부르짖어도 호모 사피엔스는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일 것 같아, 그것이 같은 종족으로서 위안이 되었다. 그까짓 게 무슨 의미라고, 그랬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가진 것을 대부분 희생하더라도 더 나은 한 걸음을 위해 애쓰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그것이 희망이 되었다. 사랑이, 희망이었다.

이미 내린 결정을 사랑 때문에 바꾸지 않는 것 또한, 아마 잘못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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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으로 세계사가 재밌다 - 역사학의 대가가 한 권으로 농축한 세계의 역사
니시무라 데이지 지음, 박현지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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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재미없을 수 있나?

숫자를 안 좋아해서 연도는 잘 못 외웠지만, 한국사든 세계사든 교과서 자체가 마치 한 권의 소설처럼 느껴져서 기분 내킬 때마다 읽었던 터라 그 과목들을 재미없어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책, <인생 처음으로 세계사가 재밌다>는 그래서 제목부터 낯설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더욱 흥미가 생겼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세계사를 재미없어하는 사람도 신기한데 그런 사람을 세계사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저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고대 문명에서 격동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방대한 세계의 역사를 670여 쪽의 벽돌책에 꾹꾹 눌러 담았는데, 학창 시절 접했던 이름이며 명칭들이 줄곧 나오는 터라 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겨갔다. (주입식 교육의 위대함?)

지역별, 시대별로 챕터를 잘게 쪼개 독자의 흥미를 이끌만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가벼운 문체로 접근하는데, 그러면서도 세계사의 흐름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순서에 약한 나조차 연대별로 사건을 정리해 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였다. 때로는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꽂히는 대로 페이지를 열어 그 부분만 읽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기술에 멈추지 않고 저자 본인의 해석이 덧붙여져 과연, 이렇게 연결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고 시야가 넓어진다. 틈틈이 삽입된 삽화며 참고 사진들도 텍스트를 보강하는 자료로 썩 훌륭하게 배치되었다. 아이에게 중학교 입학 전 한번 쭉 읽고 가면 좋겠다 했는데, 사실 더 나아가 병행 교과서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씁쓸하지만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결국 인간의 역사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그저 왕조가 바뀔 때에도, 욕심에 타 영토를 침범할 때에도, 평화적으로 '합의하에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껏 싸워 얻은 평화(?)도 100년을 이어가기 어려웠고 그조차 이리저리 치고 들어오는 세력과 싸우기 바빴는데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사람 아닌가.

개인의 욕심에, 소수의 욕심에 대중이 휘말린다. 늘 흥미로운 주제인 십자군 전쟁이 그랬다. 본질적으로 종교와 전혀 상관없이 개인의 정치적 욕심에서 시작된 전쟁에 속아 '선하지만 우매한' 숱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뜻으로 "나는 그런 싸움을 하지 않겠어"라고 거부하면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을 텐데 현대 사회에서조차 그러지 못한다. 러-우 전쟁도, 이-팔 전쟁도, 한국에서 진행중인 좌-우 충돌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긴, 호모사피엔스만큼 피아 간에 적의를 불태운 종족이 없다고 했던가. 인간은 어디까지나 본능에 충실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책의 뒷 날개에 담긴 어느 작가의 한 마디를 옮겨본다.

“세계사를 공부할 수록 인간이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지 깨닫는다.
새로운 대본은 없고 단지 다른 배우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 리처드 폴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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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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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태껏 간담이 끊어질 만큼 큰 고통의 사별도 겪지 못했고, 이로써 삶이 바뀌었다 할 만한 고난도, 역경도 없는 무난한 날을 그저 이어왔다. 그 탓이라기엔 뭣하지만 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한발 물러서 관조하는 편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관망에 이를 지경이다.

이런 내가 출간 20주년을 맞아 특별 개정판으로 출간된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게 됐다. 기억하기로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읽기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후 고작 두 번째이다. 그러나 그조차 학창 시절 허세 부리듯 읽어 '버렸'을 뿐이라 실상 제대로 읽은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으로 이것을 작품이라 부르기엔 죄송한 마음이 크다.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절절한 피 토함, 그것을 감히 작품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고, 과연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을 겪는다면-이라는 가정조차 깜짝 놀라 지워버리려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야 산 사람은 어떤 삶이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 눈치 없는 몸뚱이가 그래도 살겠다고 먹고 자고 하는구나 싶어 징그럽고 싫어 죽겠어도 살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먹은 것을 기어코 토해내고 숱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아침에도 어느덧 익숙해질 즈음에는 비록 심장 한구석에 뭉쳐진 짙은 고통이 느껴질지언정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한탄 한 번에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속 편한 말이나 늘어놓는 것 또한 내 일이 아니라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던 날들 중에 "하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원망으로 똘똘 뭉쳐 굳어버린 마음을 깨부순 것은 "왜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는 어린 수녀의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가 내 가슴에도 깊이 박혔다. 수많은 '하필 왜'라는 원망이 그 말 앞에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그러게요, 주님. 그 일이 나라고 피해 가야 할 이유가 없는데, 이것이 나의 교만임을 제가 이렇게 깨닫습니다.

어제의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생을 다했다. 남아있는 많은 이들이 "하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라며 누군가를 향해 부르짖고 원망하며 오래도록 비탄에 젖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감히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말도 상처가 될 뿐이다. 그저 책의 끝에 적혀있던, 가톨릭에서 미사 때에 고백한다는 그 말씀을, 애도의 마음을 담아 남겨본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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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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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평범한- 이를 테면, 누구라도 범죄와 연결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세 명의 소녀들로부터 비롯된 이 하나의 살인이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듭 새로운 살인을 불러온다. 그러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이 책이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는다. 범인은 언제나 명백하고, 숨겨진 진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아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P. 39)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어른의 의무지만 그 의무를 저버릴 핑계는 넘쳐난다. 나는 어느덧 비분강개하던 시절을 지나 쉽게 의무를 내던지는, 아무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어른 말씀엔 그저 네- 하면 된다는 고지식하고 엄한 아버지 아래에서 용케 반항하고 덤비는 성격으로 자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리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소녀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내가 있다. “결국 그러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코토는 가장 의지가 되어야 할 가족때문에 망가졌다. 마호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삶을 휘두르는 부모 아래 자랐다. 유리는 자신의 부모가 친구의 문제를 외면했다는 사실에 평생 부채감을 가졌다. 이 모든 상황은 소녀들을 상처입히고, 그들의 세계를 부숴뜨렸다.

간혹 환경에 상관없이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더이상 누구나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길을 찾는 사람이 존재할 것 같지도 않다.

“상처를 입어도, 실수를 해도, 무언가를 잃어도, 나이를 먹어도, 미래는 언제나 우리 손안에 있다.”
(P. 263)

미래는 내 손안에 있을지 몰라도, 그 미래에 먹혀버리지 않으려면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먼저 살아가는 어른이 내 뒤에 오는 아이들을 도와야만 한다. 그 의무를 모르는 채 하고 나만 위하는 삶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 아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지. 그것이 사람의 의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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