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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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태껏 간담이 끊어질 만큼 큰 고통의 사별도 겪지 못했고, 이로써 삶이 바뀌었다 할 만한 고난도, 역경도 없는 무난한 날을 그저 이어왔다. 그 탓이라기엔 뭣하지만 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한발 물러서 관조하는 편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관망에 이를 지경이다.

이런 내가 출간 20주년을 맞아 특별 개정판으로 출간된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게 됐다. 기억하기로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읽기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후 고작 두 번째이다. 그러나 그조차 학창 시절 허세 부리듯 읽어 '버렸'을 뿐이라 실상 제대로 읽은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으로 이것을 작품이라 부르기엔 죄송한 마음이 크다.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절절한 피 토함, 그것을 감히 작품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고, 과연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을 겪는다면-이라는 가정조차 깜짝 놀라 지워버리려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야 산 사람은 어떤 삶이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 눈치 없는 몸뚱이가 그래도 살겠다고 먹고 자고 하는구나 싶어 징그럽고 싫어 죽겠어도 살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먹은 것을 기어코 토해내고 숱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아침에도 어느덧 익숙해질 즈음에는 비록 심장 한구석에 뭉쳐진 짙은 고통이 느껴질지언정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한탄 한 번에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속 편한 말이나 늘어놓는 것 또한 내 일이 아니라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던 날들 중에 "하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는, 원망으로 똘똘 뭉쳐 굳어버린 마음을 깨부순 것은 "왜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는 어린 수녀의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가 내 가슴에도 깊이 박혔다. 수많은 '하필 왜'라는 원망이 그 말 앞에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그러게요, 주님. 그 일이 나라고 피해 가야 할 이유가 없는데, 이것이 나의 교만임을 제가 이렇게 깨닫습니다.

어제의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생을 다했다. 남아있는 많은 이들이 "하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라며 누군가를 향해 부르짖고 원망하며 오래도록 비탄에 젖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감히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말도 상처가 될 뿐이다. 그저 책의 끝에 적혀있던, 가톨릭에서 미사 때에 고백한다는 그 말씀을, 애도의 마음을 담아 남겨본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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