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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평점 :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평범한- 이를 테면, 누구라도 범죄와 연결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세 명의 소녀들로부터 비롯된 이 하나의 살인이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듭 새로운 살인을 불러온다. 그러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이 책이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는다. 범인은 언제나 명백하고, 숨겨진 진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아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P. 39)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어른의 의무지만 그 의무를 저버릴 핑계는 넘쳐난다. 나는 어느덧 비분강개하던 시절을 지나 쉽게 의무를 내던지는, 아무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어른 말씀엔 그저 네- 하면 된다는 고지식하고 엄한 아버지 아래에서 용케 반항하고 덤비는 성격으로 자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리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소녀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내가 있다. “결국 그러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코토는 가장 의지가 되어야 할 가족때문에 망가졌다. 마호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삶을 휘두르는 부모 아래 자랐다. 유리는 자신의 부모가 친구의 문제를 외면했다는 사실에 평생 부채감을 가졌다. 이 모든 상황은 소녀들을 상처입히고, 그들의 세계를 부숴뜨렸다.
간혹 환경에 상관없이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더이상 누구나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길을 찾는 사람이 존재할 것 같지도 않다.
“상처를 입어도, 실수를 해도, 무언가를 잃어도, 나이를 먹어도, 미래는 언제나 우리 손안에 있다.”
(P. 263)
미래는 내 손안에 있을지 몰라도, 그 미래에 먹혀버리지 않으려면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먼저 살아가는 어른이 내 뒤에 오는 아이들을 도와야만 한다. 그 의무를 모르는 채 하고 나만 위하는 삶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 아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지. 그것이 사람의 의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