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으로 세계사가 재밌다 - 역사학의 대가가 한 권으로 농축한 세계의 역사
니시무라 데이지 지음, 박현지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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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재미없을 수 있나?

숫자를 안 좋아해서 연도는 잘 못 외웠지만, 한국사든 세계사든 교과서 자체가 마치 한 권의 소설처럼 느껴져서 기분 내킬 때마다 읽었던 터라 그 과목들을 재미없어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책, <인생 처음으로 세계사가 재밌다>는 그래서 제목부터 낯설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더욱 흥미가 생겼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세계사를 재미없어하는 사람도 신기한데 그런 사람을 세계사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저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고대 문명에서 격동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방대한 세계의 역사를 670여 쪽의 벽돌책에 꾹꾹 눌러 담았는데, 학창 시절 접했던 이름이며 명칭들이 줄곧 나오는 터라 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겨갔다. (주입식 교육의 위대함?)

지역별, 시대별로 챕터를 잘게 쪼개 독자의 흥미를 이끌만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가벼운 문체로 접근하는데, 그러면서도 세계사의 흐름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순서에 약한 나조차 연대별로 사건을 정리해 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였다. 때로는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꽂히는 대로 페이지를 열어 그 부분만 읽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기술에 멈추지 않고 저자 본인의 해석이 덧붙여져 과연, 이렇게 연결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고 시야가 넓어진다. 틈틈이 삽입된 삽화며 참고 사진들도 텍스트를 보강하는 자료로 썩 훌륭하게 배치되었다. 아이에게 중학교 입학 전 한번 쭉 읽고 가면 좋겠다 했는데, 사실 더 나아가 병행 교과서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씁쓸하지만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결국 인간의 역사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그저 왕조가 바뀔 때에도, 욕심에 타 영토를 침범할 때에도, 평화적으로 '합의하에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껏 싸워 얻은 평화(?)도 100년을 이어가기 어려웠고 그조차 이리저리 치고 들어오는 세력과 싸우기 바빴는데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사람 아닌가.

개인의 욕심에, 소수의 욕심에 대중이 휘말린다. 늘 흥미로운 주제인 십자군 전쟁이 그랬다. 본질적으로 종교와 전혀 상관없이 개인의 정치적 욕심에서 시작된 전쟁에 속아 '선하지만 우매한' 숱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뜻으로 "나는 그런 싸움을 하지 않겠어"라고 거부하면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을 텐데 현대 사회에서조차 그러지 못한다. 러-우 전쟁도, 이-팔 전쟁도, 한국에서 진행중인 좌-우 충돌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긴, 호모사피엔스만큼 피아 간에 적의를 불태운 종족이 없다고 했던가. 인간은 어디까지나 본능에 충실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책의 뒷 날개에 담긴 어느 작가의 한 마디를 옮겨본다.

“세계사를 공부할 수록 인간이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지 깨닫는다.
새로운 대본은 없고 단지 다른 배우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 리처드 폴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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