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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평점 :
낡은 농장 한편에, 버림받은 목초지에, 때로는 산골짝 어디쯤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어떠한 곳에 대문자 D로 시작하는 특별한 문(Door)이 서있다.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만나는 곳,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저 세상의 균열. 낡아빠진 문 하나를 열고, 단 한 걸음 내딛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열고, 내딛는다면-.
또한 한 아이가 있었다. 붉은 구릿빛 피부에, 아무리 빗어내려도 금세 부풀어 오르는 머릿결, 흑에도 백에도 섞이지 못하는 아이. 늘 곁을 비우는 아버지 대신 자신을 인형 돌보듯 하는 남자의 사랑에 기대는 아이. 아무리 얽어매려 해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 재뉴어리.
완벽과는 거리가 먼 아이가 주인공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결심'이라는 것을 다진 후 모험에 뛰어들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성장'한다. 성장 판타지 소설의 흔한 구조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액자식 구성이다. 그나마 구조가 같더라도 소재가 다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텐데, 공교롭게도 불과 얼마 전에 '문'을 소재로 하는 판타지 <문 너머의 세계들> 시리즈를 읽은 터라 지루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문이 가지는 의미와 문을 향한 갈망 자체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자 세상이었다.
제목이 말해주듯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재뉴어리의 이야기이다. 재뉴어리의 이야기는 그의 엄마, 애들레이드에게서 시작된다. 둘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많은 것들에 억압당하고 많은 부분에서 자의를 따르지 말 것과 시대를 따를 것을 종용당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저 문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터키주 나인리가 아닌 다른 곳,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도시, 너무 광대해서 절대 그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어딘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P.18 본문 중에서)
문 너머 세상이 반드시 유토피아일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살아남는 세상일 수도 있고, 발밑의 개미 한 마리조차 훌륭한 식재료가 되는 척박한 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어보지 않는다면,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그 길의 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살아가던 대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다.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진심이다. 하지만 다른 삶을 꿈꾸고자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은가. 열고 들어간 문이 썩 탐탁지 않다면 얼마든지 다른 문을 열어볼 수 있지 않은가. 기대수명이 100년을 넘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의 문 안에서만 살아가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성장 소설은 대체로 청소년에게 추천하기 좋다고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오히려 또래 자녀를 둔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을 열고자 하는 아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다독여주는 우리가 되자. 어쩌면 눈에 뻔히 보이는 실패의 문일 수도 있다. 온통 울퉁불퉁해 도저히 차로는 다닐 수 없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문은 내 문이 아니다. 나에겐 그 문을 부숴버릴 권리가 없다. 대신해서 문 너머 세상을 여행해 줄 권리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소중한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네가 올 때까지 우린 여기 있을 거다."
(P.142 본문 중에서)
ps. 이 책의 시대 배경이 아직 여성과 흑인 차별이 당연한 시절이던 때임을 단단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재뉴어리와 일행을 향한 시선과 목소리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 독서를 방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