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여름 햇살처럼 - 시대를 건너 우리에게 온 여성들의 입체적인 이야기들
백세희 엮고 옮김 / 저녁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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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팠던 시절, 작가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던 문장들을 모았다. 콕 집어 '여성 작가'라고 말하는 게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시대에, 콕 집어 읽은 책들의 파편을 담았다. 그러니 이 책은 어쩌면 그리 많은 이의 마음에 와닿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백세희 작가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시험에 꼭 나오는 00을 위한 고전'처럼 족집게 고전 소개 코너가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해!'라며 강요하는 자기개발서 류의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다양한 시대, 다양한 환경을 살았던 여성 작가들의 시선으로 쓰인 문장들을 끌어모았을 따름이다. 오직 하나의 기준, 작가 '자신에게 감동을 준' 문장이면 족했다.


출처가 된 책들 중에는 <작은 아씨들>,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처럼 그 시절의 소녀를 살아온 독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책도 있고, 김명순, 이디트 워튼처럼 다소 낯선 작가의 책들도 있다. 그러나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소의 낯섦은 부담이 되지 않았다.


굳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아 읽을 필요도 없고, 그저 하루에 한두 번, 마음의 쉼이 필요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좋다. 어제 읽은 부분을 오늘 또 읽는다 해도 무슨 대수랴. 그렇게 책에 내어준 1, 2분으로 마음이 여름 햇살처럼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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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무비 소울 푸드
하라다 사치요 지음, 장한라 옮김 / 영림카디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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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봐도 물리지 않고, 잊힐 때쯤 다시 보면 여전히 반가운 것들이 있다. 책이건, 드라마건, 영화건. 그런 콘텐츠의 공통점 중 하나는 '食'이다. 맛있는 관계,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 고독한 미식가… 음식 자체로 특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와 얽혀 비로소 특별함이 더해진 음식들이 주는 그 느낌이, 나는 참 좋았다.


이 책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 속 음식들을 따라 만들어볼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는 레시피북이다. 그러니 영화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그랬다.) 반가운 영화 속 장면들, 드라마 속 대사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덕분에 잠시 버려두고 심야식당을 다시 꺼내 읽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책에 실린 요리들은 참 반갑더라.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아는 건 아는 대로. 특히 이름만 봐도 아, 하고 알아보는 음식들은 그저 페이지만 훑어도 입안에 맛이 가득 담기는 그런 기분이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천만에!


크지 않은 내 손에 잡히는 적당한 두께감, 빛바랜 색감의 내지, 조금 거친 듯 손에 붙어나는 책장의 질감이 소박하다. 거창한 것들을 담고 있지 않아 편안하다. 과도하게 요리의 색을 보정하고 코팅까지 해 온통 빛이 나게 만든 요란한 레시피 북이 아니어서 좋다. 요리 과정 사진을 일일이 담지 않아 다소 불친절한 그 느낌조차 기껍다. 과정이 상세하지 않아 따라 만들어 볼 수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주니 말이다.


만들어보지도 않을 요리책을 왜 끌어안고 있냐고 뭐라 할 경우를 대비한 초급용 메뉴도 있다. 달걀 샌드위치, 과일 샌드위치 같은 것들. 그래도 역시, 나는 직접 해먹기보다 심야 식당의 주인장이 만들어주는 것을 먹고 싶지만 말이다. 아, 오늘 밤에는 카메모 식당을 한번 더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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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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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온 세상이 기후 위기를 외치는 시대에 읽어봄직한 책이 한 권 출간됐다. 어린 시절을 '스웜프' 가까이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작가가 습지에 관해 쓴 이야기이다. 종류별 습지의 특징이라던가 예술 작품으로 남은 습지의 흔적, 습지에 얽힌 인간의 비열한 역사 등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습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참 읽다 보면 이야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나 싶어 어리둥절해진다.


몇몇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긴 하지만-워낙 아는 바가 없으니- 비전문가가 쓴 책이라 전문가들의 그것처럼 문장이 턱턱 막히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읽혔다. 애초에 작가 본인이 책을 쓰고자 한 이유로 그것을 꼽기도 했다. 습지 보존이 인류에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말은 그야말로 '전문용어' 투성이라 일반인은 도통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다.


습지라는 단어 자체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다. 어릴 때 읽은 이야기에 나오는 '늪'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커서는 국내의 습지 몇 군데를 찾긴 했지만 그저 먼발치에서 몇 장 찍고 겉모습에 감탄하며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이토록 안일한 나에게 저자는 냉소가 가득 담긴 문장을 쏟아냈다.


P. 22

"인류는 느리고 미묘한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로 순간을 사는 생물이다. … 자연계의 느린 변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 우리는 거기서 잠깐 넋을 잃고 있다가 돌아오지만, 그것이 서식지를 더욱 파괴한다."


습지의 물을 빼내 경지로 바꿔 신나게 써먹다가 땅의 힘을 다 잃은 뒤엔 화학비료를 들이붓는 결말로 치달은 이야기에서는 새만금 간척 사업이, 구불구불한 물길을 인위적으로 곧게 만들어 물을 길들이고 입맛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사례를 읽으면서 한국의 4대강 사업이 절로 떠올랐다. 나만 좋자고 댐을 세워 물길을 막아 남의 살 길을 끊어놓고, 생태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종국에는 자신들마저 물의 역습을 받아 생고생하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도 댐 건설 문제로 분쟁이 일어난 상황이다. 물론 잘 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을 테지만, 그 이면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P. 26

"자기들끼리도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인류가 지구 전체를 '관리'할 수 있다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습관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탄소를 단단히 머금고 있어줄 습지를 오로지 경제 논리에 매몰되어 스스로 파괴하는 인간을 지구는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뒤늦게- 정말 엄청 늦어버렸지만, 이제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으나 애석하게도 가속도가 붙어버린 파괴의 일상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P. 113

"건축과 파괴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인류가 자연계를 복원하는 일에는 불쌍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냥 우리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습지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더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삶의 편의를 상당수 포기하더라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외친다. 조금씩이라도 세계 각지의 습지가 복구되고 있고, 인간이 더 손대지만 않는다면 망가진 생태계도 결국 제 모습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좀더 냉소적인 나는 세상을 그리 희망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이미 줄이기엔 너무 비대해졌고 결국 지구를 집어삼키겠지. 하지만 살아남은 인간은 결국 그 욕심 덕분에 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때쯤엔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인간이 손을 대면 자연은 결국 망가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까.


신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 죄다 부숴버리고 종국엔 자신이 설자리마저 없도록 만들 권리를 주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딱 그런 짓을 할 만큼 멍청하게 만든 게 아닐까,라는 불손한 생각이 자꾸 든다.

자기들끼리도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인류가 지구 전체를 ‘관리‘할 수 있다고?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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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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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농장 한편에, 버림받은 목초지에, 때로는 산골짝 어디쯤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어떠한 곳에 대문자 D로 시작하는 특별한 문(Door)이 서있다.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만나는 곳,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저 세상의 균열. 낡아빠진 문 하나를 열고, 단 한 걸음 내딛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열고, 내딛는다면-.


또한 한 아이가 있었다. 붉은 구릿빛 피부에, 아무리 빗어내려도 금세 부풀어 오르는 머릿결, 흑에도 백에도 섞이지 못하는 아이. 늘 곁을 비우는 아버지 대신 자신을 인형 돌보듯 하는 남자의 사랑에 기대는 아이. 아무리 얽어매려 해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 재뉴어리.


완벽과는 거리가 먼 아이가 주인공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결심'이라는 것을 다진 후 모험에 뛰어들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성장'한다. 성장 판타지 소설의 흔한 구조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액자식 구성이다. 그나마 구조가 같더라도 소재가 다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텐데, 공교롭게도 불과 얼마 전에 '문'을 소재로 하는 판타지 <문 너머의 세계들> 시리즈를 읽은 터라 지루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문이 가지는 의미와 문을 향한 갈망 자체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자 세상이었다.


제목이 말해주듯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재뉴어리의 이야기이다. 재뉴어리의 이야기는 그의 엄마, 애들레이드에게서 시작된다. 둘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많은 것들에 억압당하고 많은 부분에서 자의를 따르지 말 것과 시대를 따를 것을 종용당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저 문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터키주 나인리가 아닌 다른 곳,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도시, 너무 광대해서 절대 그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어딘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P.18 본문 중에서)


문 너머 세상이 반드시 유토피아일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살아남는 세상일 수도 있고, 발밑의 개미 한 마리조차 훌륭한 식재료가 되는 척박한 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어보지 않는다면,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그 길의 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살아가던 대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다.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진심이다. 하지만 다른 삶을 꿈꾸고자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은가. 열고 들어간 문이 썩 탐탁지 않다면 얼마든지 다른 문을 열어볼 수 있지 않은가. 기대수명이 100년을 넘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의 문 안에서만 살아가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성장 소설은 대체로 청소년에게 추천하기 좋다고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오히려 또래 자녀를 둔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을 열고자 하는 아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다독여주는 우리가 되자. 어쩌면 눈에 뻔히 보이는 실패의 문일 수도 있다. 온통 울퉁불퉁해 도저히 차로는 다닐 수 없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문은 내 문이 아니다. 나에겐 그 문을 부숴버릴 권리가 없다. 대신해서 문 너머 세상을 여행해 줄 권리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소중한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네가 올 때까지 우린 여기 있을 거다."

(P.142 본문 중에서)


ps. 이 책의 시대 배경이 아직 여성과 흑인 차별이 당연한 시절이던 때임을 단단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재뉴어리와 일행을 향한 시선과 목소리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 독서를 방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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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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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실종된 동생 메들린의 목걸이가 퍼트리샤 앞으로 도착한다. 누가 보냈는지, 왜 지금에서 보낸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보낸 이의 이름조차 없었다. (그게 가능한가?) 유일한 단서는 봉투에 붙어있는 우표. 스웨덴이었다. 30년 전, 메들린이 있었던 곳, 유세르. 그렇게 퍼트리샤는 세상 끝 유세르로 떠난다. 다시 한 번 동생의 자취를 찾기 위해. 그리고 그 곳에서 모나, 도리스, 마리안네로 구성된 작은 독서 모임을 만나게 된다.

실종된 여동생의 행방을 쫓는 것이 이야기의 큰 축을 맡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미스터리라 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 동생이 어떤 일을 겪었구나, 저놈은 그런 놈이구나 하는 정도는 금세 드러난다. 동생의 마지막 행적에 대한 것도 세세한 부분이 달라질 뿐, 아마 독자 대부분이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결말일 것이다. 작가도 그것을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가치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있다. 그야말로 <人>이다.

“우리는 모두 깨진 그릇 같은 존재야.” (P. 393)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마음이 깨어지는 일을 한번은 겪게 된다. 그러나 깨어진 마음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빈 채로 있지 않아도 된다. 의외로 사람 곁에는 사람이 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쪽에서 먼저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의외로 많은 손이 내밀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말해주는 듯해 마음이 충만해졌다. 겨우 3명으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일 뿐인데 그로 인해 퍼트리샤는 구원을 얻었다. 퍼트리샤 또한 세상 끝 유세르의 낡은 호텔 <책이 있는 B&B>를 지속해나갈 힘의 한 축을 담당했다. 에뷔도, 에리카도 마찬가지다. 도움은, 사랑은 돌고 도는 법이다.

유세르라는 도시가 어쩌다 세상의 끝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노년기에 접어든 여자들의 작은 독서 모임이 얼마나 큰 희망을 품고 있었던 건지는 알 것 같다. 더불어 예순여덟의 이들을 바라보는 모나의 딸, 에리카의 마음은 내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엄마가 원하는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게 해주고픈 마음과, 그러기 위해 나를 기꺼이 내어놓을 자신은 없는 현실, 부디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는 게 한편으로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계속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볼 테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상은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마지막으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뻔한 구절을 적어본다.

“처음에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서 힘들었는데, 조금 있으면 내가 필요 없어져서 또 힘들어지지. 최악은 뭔지 아니? 내 아이와 이렇게 지내는 게 언제가 마지막일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보니 옆에서 자던 따뜻하고 자그마한 내 아이가 곁에 없는 거지.” (P.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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