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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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온 세상이 기후 위기를 외치는 시대에 읽어봄직한 책이 한 권 출간됐다. 어린 시절을 '스웜프' 가까이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 작가가 습지에 관해 쓴 이야기이다. 종류별 습지의 특징이라던가 예술 작품으로 남은 습지의 흔적, 습지에 얽힌 인간의 비열한 역사 등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습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참 읽다 보면 이야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나 싶어 어리둥절해진다.


몇몇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긴 하지만-워낙 아는 바가 없으니- 비전문가가 쓴 책이라 전문가들의 그것처럼 문장이 턱턱 막히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읽혔다. 애초에 작가 본인이 책을 쓰고자 한 이유로 그것을 꼽기도 했다. 습지 보존이 인류에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말은 그야말로 '전문용어' 투성이라 일반인은 도통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다.


습지라는 단어 자체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다. 어릴 때 읽은 이야기에 나오는 '늪'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커서는 국내의 습지 몇 군데를 찾긴 했지만 그저 먼발치에서 몇 장 찍고 겉모습에 감탄하며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이토록 안일한 나에게 저자는 냉소가 가득 담긴 문장을 쏟아냈다.


P. 22

"인류는 느리고 미묘한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로 순간을 사는 생물이다. … 자연계의 느린 변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 우리는 거기서 잠깐 넋을 잃고 있다가 돌아오지만, 그것이 서식지를 더욱 파괴한다."


습지의 물을 빼내 경지로 바꿔 신나게 써먹다가 땅의 힘을 다 잃은 뒤엔 화학비료를 들이붓는 결말로 치달은 이야기에서는 새만금 간척 사업이, 구불구불한 물길을 인위적으로 곧게 만들어 물을 길들이고 입맛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사례를 읽으면서 한국의 4대강 사업이 절로 떠올랐다. 나만 좋자고 댐을 세워 물길을 막아 남의 살 길을 끊어놓고, 생태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종국에는 자신들마저 물의 역습을 받아 생고생하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도 댐 건설 문제로 분쟁이 일어난 상황이다. 물론 잘 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을 테지만, 그 이면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P. 26

"자기들끼리도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인류가 지구 전체를 '관리'할 수 있다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습관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탄소를 단단히 머금고 있어줄 습지를 오로지 경제 논리에 매몰되어 스스로 파괴하는 인간을 지구는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뒤늦게- 정말 엄청 늦어버렸지만, 이제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으나 애석하게도 가속도가 붙어버린 파괴의 일상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P. 113

"건축과 파괴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인류가 자연계를 복원하는 일에는 불쌍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냥 우리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습지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더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삶의 편의를 상당수 포기하더라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외친다. 조금씩이라도 세계 각지의 습지가 복구되고 있고, 인간이 더 손대지만 않는다면 망가진 생태계도 결국 제 모습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좀더 냉소적인 나는 세상을 그리 희망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이미 줄이기엔 너무 비대해졌고 결국 지구를 집어삼키겠지. 하지만 살아남은 인간은 결국 그 욕심 덕분에 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때쯤엔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인간이 손을 대면 자연은 결국 망가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까.


신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 죄다 부숴버리고 종국엔 자신이 설자리마저 없도록 만들 권리를 주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딱 그런 짓을 할 만큼 멍청하게 만든 게 아닐까,라는 불손한 생각이 자꾸 든다.

자기들끼리도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인류가 지구 전체를 ‘관리‘할 수 있다고?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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