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만화 : 마지막은 집에서 - 찾아가는 의사 단포포 선생님의 이야기
나가이 야스노리 지음, 네코마키 그림 / 타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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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이미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그런 만큼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나라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1인 가구의 수도 무시 못 할 만한 수치여서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제때 손을 쓰지 못해 고독사하는 경우도 유의미할 정도로 늘었다. 예전처럼 2세대 이상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시대도 아니어서 가족의 돌봄을 받는 것도 썩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으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되도록 집에 머물고자 한다. 아무리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시설에서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환자'가 아니라 그저 '나'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로서, 나답게 살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나가야 야스노리 선생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단포포 클리닉의 재택 의료가 지향하는 포인트이다. "죽음을 마주한 환자와 어떻게 눈을 감을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 단포포 클리닉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단포포 클리닉은 병원이긴 하지만 환자는 모두 자택에서 지낸다. 직접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는 재택 의료 대상이 아니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생활 환경을 모두 파악하고 그에 맞게 의료진을 파견해 숨이 멎는 때까지 책임을 진다는 일은 얼핏 듣기에 유토피아에 가깝다. 클리닉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대도시 규모여서는 직원이 몇이어도 부족할 테고, 설사 규모가 작다 해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임종 직전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 아무리 시스템과 인력을 갖춘다 해도 별별 변수가 다 생겨나는 현장이다. 어지간한 희생과 각오 없이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책은 단포포 클리닉을 운영하며 만나게 된 여러 환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어떻게 그들이 '꽃잎이 시들어가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그러한 죽음을 위해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갔는지 그 과정들을 보여준다. <고양이와 할아버지>로 많이들 알고 있을 네코마키 작가 특유의 편안한 그림체 덕분에 책은 쉬이 읽힌다. 만화 사이사이에는 야스노리 선생의 코멘트 페이지와 재택 의료에 대한 줄글 페이지가 삽입되어 있어서 재택 의료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와 작가 본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음식을 자력으로 섭취하기 어렵다는 건 죽음을 앞둔 몸에는 당연한 일이란다. 살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치료란다. 이것을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내 부모가, 내 자녀가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어떻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저 목숨 하나 붙여놓자고 단행하는 연명 치료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역시 직접 겪게 된다면 쉬이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책을 읽는 내내 이성과 감성이 끊임없이 부딪쳤다.


이 책 한 권만 읽고서 재택 의료 만세!를 외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책의 목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인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살기 위해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매달릴 것인가, 이쯤 하면 되었으니 마무리까지 내 힘으로 해보고 홀가분하게 떠날 것인가, 내 가족이 그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다시금 단단하게 다지자고, 다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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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안쪽 - 속 깊은 자연과 불후의 예술, 그리고 다정한 삶을 만나는
노중훈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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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안쪽을 보았다기보다-
노중훈이란 작가의 안쪽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애초에 내 관심 영역에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 남편 때문에 같이 듣게 된 라디오에서 알게 됐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이런 여행 작가도 있구나.
걷는 걸 참 싫어하는 것 같은데 용케 여행을 다니는구나.

그렇지만 역시 사람은 한 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람의 안쪽이, 책에 보였다.

묽게 퍼지는 아침 햇발
정치하고 반듯한 대숲
우렁우렁한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세찬 물줄기
조속조속 졸고 있는 빨래들
흥덩흥덩 넘쳐나는 평화로움
싱둥싱둥해 보이는 물고기
마닐마닐하고 짭짤한 프로슈토…
(본문 중에서)

책 깨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전 처음 접하는 표현들에 연이어 당황했다. 어깨에 들어간 바람이 푸쉭, 하고 빠져나갔다.

아주 많은 풍경을 담지 않았다. 챕터 별로 5개씩, 20개의 장소를 골라내고, 직접 찍은 사진들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풀어내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절제된 이야기에 도리어 저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했다.

때로 감탄하고, 때로 웃고, 때로 반가워하면서 풍경의 안쪽을 더듬고 상상했다. 여기에 내가 있다면- 나는 어떤 것들을 보았을까? 그이가 본 것 같은 모습이 내게도 보였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기질적으로도 그렇거니와, 내 발로 가는 것보다 남이 다녀온 이야기를 듣는 게 아직은 더 좋다. 딱 그만큼 게으르다. 다행이다. 나 대신 깊이 봐주는 사람이 있어서.

작가 스스로는 과도한 감상주의를 경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아쉬워했으나, 내 보기에는 충분히 담백하고 진정되어 있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어찌 이리 덤덤할 수 있을까. 다만 사진에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은 많이 아쉬웠다. 이렇게까지 절제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에세이 #여행에세이 #풍경의안쪽 #노중훈 #상상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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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고양이와 산책, 사계절 컬러링북 - 반지수의 힐링 컬러링북
반지수 지음 / 비에이블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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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소설의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그분의 이름은 몰라도 그림은 많은 이들이 알 법한- 반지수 작가님의 힐링 컬러링북, <두 고양이와 산책, 사계절 컬러링북>입니다. 작가의 말을 보시면, 작가님의 반려 고양이 토니와 토르가 마음껏 산책하고 외출할 수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그림으로나마 함께 하고 싶으셨다고 해요. 도시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같은 마음일 거예요. 내가 보는 이 풍경, 이 꽃내음, 사계의 변화를 함께 느끼고 싶지만 마냥 자유롭게 놓아주기엔 마음이 편치 않은 게 현실이니까요.




요즘엔 초판 한정으로 작가 친필 사인이 '인쇄'된 경우가 많은데, 어라랏...? 이건 그야말로 "친", "필"이네요?! (사진은 못 찍었지만 뒷면에 펜 자국이 보여요) 우리 작가님 팔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만 너무 귀하고 기뻐요 ㅠㅠ 이외에도 초판 한정 부록이 제일 뒤쪽에 있어요. 보는 순간 심쿵하는 스티커와 4종의 엽서, 봄이 가득 담긴 포스터까지-! 특히 포스터는 책을 양쪽으로 활짝 펼쳤을 때의 사이즈(250*380mm)와 같아서 벽에 붙여놓고 감상하기에 충분한 크기랍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올해 벚꽃놀이를 놓친 분이라면 반 작가님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벚꽃 풍경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셔도 좋겠어요.




작가님의 베스트셀러 표지 작품(에 숨어있는 고양이 찾기!!)과 미공개 그림 32점 등 아주 풍성한 양의 도안이 준비되어 있어요. 봄부터 겨울까지 4개의 챕터로 나눴고, 각 계절마다 조각 그림들과 2분할 컷, 조금 쉬운(?) 풍경 전면 페이지, 복잡한(!) 풍경 전면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채색이 어려워 보이는 도안일수록 밑 색이 좀 더 깔려있어서 채색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요즘은 이런 식의 컬러링북이 대세인가봐요.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반가운 건 역시 귀여운 고양이들이에요. 토니, 토르 말고도 많은 고양이들이 그림 곳곳을 채워주고 있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어쩔 수 없는 냥 집사인 거죠.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무조건 추천하는 바입니다! 도안 바로 옆에 완성본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보기만 해도 행복 지수가 올라가고요, 컬러링에 자신이 없더라도 완성본의 컬러를 참고해 하나씩 채색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완성! 그렇게 한 장, 두 장 채색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색을 사용할 날이 오더라고요.




어느 걸 먼저 채색해 볼까 고민하다가 마침 봄나들이에서 봄꽃을 실컷 보고 오기도 했고, 또 요즘 들어 부쩍 손목이 힘들어하는 상황이어서 봄 느낌 가득한 2분할 컷을 먼저 채색해 봤어요. 아무래도 마카 전용지가 아니어서 마카 사용은 꺼려졌어요. (작가님 그림 지켜야 해...!) 그래서 오늘도- 색연필을 꺼냈습니다. 종이가 매끄러운 재질이라 부드럽게 잘 올라 갔어요. 스테들러 146C 72색을 사용했구요.


턱시도 고양이 녀석은 우리집 배트가 생각나더라구요. 배트인 척 코에 짜장을 묻혀주려다 참았어요 ㅋㅋ 민들레 꽃 피어있는 배경은 오일파스텔을 사용했어요. 여러 색을 겹쳐 올리고 면봉으로 살살 문질러줬는데 꽤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스케치가 조밀한 편이어서 오일파스텔을 주로 사용하긴 어렵겠지만, 이렇게 배경이 좀 넓게 잡힌 도안에는 한번씩 써줘도 좋겠어요. 대신 색연필과 달리 잘 마르지도 않고 묻어나기 때문에 채색한 후에 간지 느낌으로 빈 종이를 붙여줬어요.


저는 여유 시간에 비해 컬러링 속도가 워낙 느려서 이것밖에 채색은 못 했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여백을 채워나갈 생각이에요. 숙제하듯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 좋은 봄날에 봄 컬러링을, 초록이 짙어지는 여름날에 여름 컬러링을, 초록 일색이던 세상이 저마다 개성을 살려 색색깔 옷을 바꿔입는 가을날에 가을 컬러링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겨울날에 겨울 컬러링을 때 맞춰 해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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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 것을 - 인생 후반을 따스하게 감싸줄 햇볕 같은 문장들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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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가까운 문장들이 급하지 않게, 너무 빼곡하지 않게,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이 가만가만 흘러간다.


“먼 곳의 별을 쫓느라 발아래 꽃을 보지 못할까 봐서(제러미 벤담)” 살아보니 그런 게 아니더라,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것이더라 말해준다.


필사하고, 캘리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작정하고 만든 것인 양 무엇 하나 버릴 문장이 없더라.


책을 들었으면 멈추지 않고 끝장까지 내달려야 하는데 그랬다간 내 눈 아래 문장과 단어들이 밟혀 사라질 것 같았다.


나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의 제약을 받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은 한달음에 읽어야 할 그런 책은 아니다.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두고서 산책길에, 카페 가는 길에 들고 나서기 좋다.


한들거리는 봄기운에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 몇 줄 읽고, 사르륵 종이를 넘겨 멋진 그림 한 점 감상하면 아- 좋다.. 하게 된다.


빈 종이를 찾아 못생긴 글씨일망정 문장들을 따라 적으며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이 책은 더욱 좋다. 수록된 명화를 모작하며 인생의 아름다움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안 되겠다, 이 책은 누구에게건 선물을 해야지- 하는 충동도 생길 것이다. 내 삶만 꽃이어서야 외롭지 않겠나. 너도, 또 너도 꽃인 걸 알아야지. 그래야 우리 같이 아름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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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 개정판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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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가 되려던 친구까지 끌어들여 코미디언 콤비를 만든 도쿠나가와 '언제까지나 코미디언이고 싶은' 가미야는 어떤 불꽃이었을까? 20대 초, 중반에 만나 코미디언으로서 10년을 함께 한 후의 그들은 여전히 불꽃일까, 아니면 이미 재가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멘토와 멘티로서의 그들의 관계는 어딘가 일그러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또 이제 와 돌아보면 그때가 아니면 그런 이상한 허세, 부리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아니면 또 어떻게 그만큼 열정적으로 덤벼들 수 있을까. 그런 불꽃을 가슴에 품고 이상해 보이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닐까.


누구나 가슴에 불꽃을 가지고 살아간다지만 모두가 그것을 드러내진 못한다. 각자의 다양한 사정과 이유 때문에, 혹은 게을러서, 혹은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더라 하기도 하고,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덮어쓴 야유에도 기꺼이 바라는 삶을 위해 험난한 길을 따라가기도 한다. 나처럼 20대의 절반을 활활 타오르는 삶에 내던졌다가 쓴맛을 약간 본 후 '철이 들었다'라며 슬그머니 방향을 트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다 보니 20대의 나는 어떤 불꽃이었을까, 그때 가졌던 불꽃은 재가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여전히 느껴질 듯 말 듯 한 열기를 은근히 뿜으며 다시 한번 세차게 피어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는걸까 궁금해졌다. 그 시절 나와 함께 타오르던 지인들은 또 어떨까?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지 않을까?


세대에 상관없이 성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해 봄직한 책이다. 문화의 차이는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라. 때때로 튀어나오는 날 것의 냄새가 나는 문장들에도 적응하려고 노력하라. 그러나 정 힘들면 그런 부분들은 대충 흐린 눈으로 넘어가도 된다. 나는 책을 읽을 때에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대충 넘어가버린다. 언젠가 타협이 가능한 때가 오면 다시 읽어도 되고, 그게 안 돼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불꽃을 어찌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 사람은 순간순간 자신의 범주를 뛰어넘으려고 도전하고 있다. 그것을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태연한 얼굴로 방귀를 뿡뿡 뀌어가면서 파괴했다." (p. 181)

이 사람은 순간순간 자신의 범주를 뛰어넘으려고 도전하고 있다. 그것을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태연한 얼굴로 방귀를 뿡뿡 뀌어가면서 파괴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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