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미야지마 미나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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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아카리, 유치원 생일 때부터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그림도 노래도 잘하고 글자마저 모두 익혀버린 영재와 천재의 어디쯤인 소녀. 덕분에 나이 들면서는 또래의 질시와 따돌림을 받지만, 그 사실을 안다 해도 흔들림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한다!


일생의 목표는 200살까지 사는 것. 아무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 가능성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설사 그만큼 못 살더라도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 없을 테니 그 또한 상관없다. 그보다 당장의 목표는 올여름을 세이부에 바치는 것이다. 그러기로 했으니, 한다!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 이런 캐릭터가 전혀 없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사실 이보다 더한 괴짜도 많다) 그럼에도 나루세는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이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한다. 계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결단의 기로에 섰을 때에도 망설이는 법은 없다. 이렇게 깔끔할 수가.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알아주면 그건 그것대로 기쁠 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다. 누구의 의지도 아닌, 온전한 내 의지. 내가, 그러기로 했기에. 그래서 나루세의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다. 옆에서 아무리 불가능을 외쳐도 요지부동, 우선은 해보는 거다.


유쾌하다. 즐겁다. 책을 읽는 자리가 어디건 큭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음이 통탄스럽다. 천하를 잡은 나루세의 세계 평정기도 빨리 나와주면 좋겠다. 될 수 있다면 200세 생일을 눈앞에 둔 나루세 할머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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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관한 질문들 -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지식의 창조자가 되는 법
백희정 지음 / 노르웨이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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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 지능, AI - 세계 각국의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 세계의 중심에 자신의 시스템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 인공 지능들의 데이터는 완벽하지 않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인공 지능은 인류가 지금껏 쌓아왔고 또한 현재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결과를 도출한다. 오염된 데이터가 주류를 차지한다면 인공 지능이 내놓을 답은 당연히, 오염된 값이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내버려둔다면 아마, 어쩌면, 세계의 미래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끔찍해질 것이다.

자, 미래를 구하기 위해 우리들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에 기반하여 정답을 말해주자면, 바로 “정확한 질문을 위한 질문“이다.

저자는 <질문에 관한 질문들>을 통해 정확한 질문의 필요성과, AI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의 범위를 바꿔가는 법, 그리고 AI가 내어놓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해야할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인간’을 내세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겉보기와 달리(?) 쉽고 재미있다. AI와 당장 대면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꼭 추천하고 싶다. 제대로 된 질문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된다면 보다 깊은 사유가 가능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생이 풍성해질 것이란 기대가 생겼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좀더 자긍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다.

저자는 AI가 하는 일에서 최대한 배제되어야 할 것만 같은 인간을 자꾸 끌어들인다. 제대로 질문하는 것도 인간, 주어진 답을 평가해서 옳고 그름을 판별해야 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란다. 앞서 말했듯, AI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AI를 만든 것도 어차피 인간이다. 나는 AI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제대로 이용할 줄만 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조력자인 것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법을 알 필요는 있겠다. 어떻게? 그건,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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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소강석 지음 / 샘터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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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읽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쓰고, 또 쓰고
그렇게 펜이 누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시인의 마음과 내 마음을 채워 다지는 일- 이것 역시 시라면 시, 아닐까.

소강석 시인의 언어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시집 뒤편의 해설집이 더 어려웠다. 생소한 한자어로 가득한 그 해설집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참 죄송스럽게도)

쉬운 단어로만 쓰여진 시는 자칫 그 속마저 쉬워 보인다. 더운 여름에 냉수 들이켜듯 후루룩,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써보려 하면 좀처럼 되지 않는다. 내게는 사계절이, 내리는 비가,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 그렇게 가슴에 사무치지 않는다. 내가 가졌던 아픔과 상실, 고뇌, 깨달음, 그런 것들은 차마 말이 되지 못 하고 속에서만 머물다 어느덧 잊히는데, 시인의 언어는 용케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어 시가 된다.

📝
시간이 아닌
그리움에 쫓겨 길을 걸어가 본 사람은 안다
봄길을 꽃들이 먼저 달려간다는 것을.
<봄5 중에서>

내딛는 걸음 하나에 시 한 줄 덧입힐 줄 아는 시인의 감성이 참으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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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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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입에 착 달라붙는 필력은 순식간에 사람을 매료시킨다. 이야기는 짧으나 뒷맛이 오래간다.

그가 모는 배에 올라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한산도 앞 바다로 나아가고, 피 냄새 올라오도록 평원을 내달리는 말의 등에도 실려보자.

온갖 나라의 흥망이 눈앞에 펼쳐지고, 거대한 흐름에 속절없이 휘말려 고작 이름 몇 자 남기고 떠나간 옛사람의 행보가 눈에 보일 듯 그려진다.

어느 틈에 내가 읽는 것이 소설인지 역사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된다. 분명히 허구일 것이라 생각하는 한편으로 아무렴, 사실이 아닐 건 또 무언가- 하는 헛된 마음도 품어진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을 여유가 없더라도 이 책이라면 괜찮다. 하루 한 편씩 읽는다면 5~10분 남짓, 다 해야 고작 한 달이 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할 따름이다.

당신, 춥고 긴 겨울밤, 기묘한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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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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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굉장히 차갑다.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대립의 끝에, 존 부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감상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별다른 감동도 없다. 분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조차 새털처럼 가벼운 3자의 관찰자 시점의 분노이다.

활자로 기록된 역사의 이면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지만 후대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록되는 것은 사건일 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실패한 역사에 소속되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온 나라가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부스 가족에게 링컨 암살자 존 부스는 그저 사랑하는 아들이자 동생이고, 형이었다. 정치적 견해가 달랐고, 때로 말썽을 일으켜 가족을 곤란하게 했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함께 뗏목을 타고, 반딧불을 잡고, 셰익스피어를 낭송하고, 형제의 행복을 누구 못지않게 기뻐해 주었던 가족이다.

남보다 못한 것이 가족이라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버릴 수 없는 것이 가족이란 존재 아니던가. 범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타인을 탓할 수도 없다. 국법을 어긴 아들에게 법이 정한 벌을 내렸으나 그 벌을 대신해 받았던 어느 나라의 왕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인 것이다.

저자인 캐런은 비난받아 마땅한 존 부스가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 본인이 책 후미에서 밝히듯 되도록 존 부스의 존재가 책의 중심에 놓이는 일을 피하려고 애썼다. 다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의 가족들- 연좌제는 법으로 폐지되었다지만 분명 그들을 향해 분노하는 일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극악한 범죄자를 버리지 못하고 보살피는 그의 가족에게 비난을 퍼붓는 경우는 제법 흔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이해 못 할 일인가.

증오한다. 증오하지만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족이다. 이 빌어먹을 혈연이라는 것은 이토록 끈질기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 오늘도 내 안의 편견을 한 겹 부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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