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은 독
오리가미 교야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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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인쇄된 제5회 미라이야 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들 내가 읽어 재미가 없다면 그만인 편이다. 도서관 한구석에 발견한 오래된 소설을 읽으며 전율하고, 전 세계가 열광한 다빈치 코드를 읽으며 한숨을 쉬는 사람이, 나다. 오히려 내 눈을 끈 건 ‘100% 속게 된다’는 출판사의 장담이었다. 오호라.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의 묵직함에 비해 이야기 자체는 비교적 쉽게 진행된다. 늘 재미있는 역할인 탐정의 출연은 그 자체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일본의 라노벨은 탐정이 똑똑하면 조수가 멍청하던가 혹은 그 반대이던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웃기려 드는 요소를 배제한 점도 좋았다. 술술 읽히지만 라노벨의 경박함은 없는 본격 탐정소설이다.

애석하게도 협박장을 보낸 범인이 누구일까, 왜 그런 걸 보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슬그머니 떠올랐다. 아무래도 탐정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다 보니 대충 이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감이 왔달까? 그렇다고 해서 김이 샜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세상의 모든 탐정 소설이 반전만 가지고 먹고 살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사실, 나처럼 중간에 눈치채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반전에 대한 기대는 일찍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생생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탐정의 조사 방식, 법조인이 아닌 탐정이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높은 벽 같은 법적 요소들은 책 속 세계를 보다 리얼하게 만들어준다. 검사 지망생이라면서 이렇게 사람을 잘 믿어도 좋은가 싶은 책 속 화자인 ‘나’는 신뢰의 힘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끝으로- 종장에 다다를수록 더욱 짙어지는 ‘악의’, 그 서늘함. 이것이야말로, 결론을 눈치챘음에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어쩌면 이 책의 최고의 반전은 범인이나 범죄의 동기 따위가 아니라, 범인을 알고 난 후 독자에게 주어진 선택의 길,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이 발린 꽃다발인 줄 알면서도 그것이 행복으로 위장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받을 것인가. 혹은 받게 할 것인가.

진실이 밝혀져도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책 속에서)

#독서 #서평 #미스터리 #탐정소설 #일본소설 #꽃다발은독#오리가미교야 #리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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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유럽 거리를 수놓다 - 프랑스 자수로 만나는 느릿한 시간
샤를 앙리.엘린 페트로넬라 지음, 신용우 옮김, 아뜰리에 올라(이화영) 감수 / 이덴슬리벨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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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으로 그려진 낭만적인 유럽 거리 위로, 몇 가지 색으로 포인트만 줬을 뿐인데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알고 보니 착각이었지만) 나 같은 초보도 시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그림 친구 중에 그런 식의 작품 활동을 하는 분이 계시기도 해서 친숙한 소재이기도 했고.


책에는 자수 작품에 필요한 재료들과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될 다섯 가지 스티치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 같은 완전무결한 초보에게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실을 가닥가닥 뽑아서 써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마터면 10가닥이 훨씬 넘는 굵은 실 다발을 바늘에 끼워보겠다고 낑낑댔을 지도 모른다! 그림 친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재료 준비에서부터 난항을 겪었을 텐데, 운이 좋았다. (자랑하자면, 인복이 넘치는 편이다.) 아무리 검색 몇 번에 해결되는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스티치 기법 관련해서는 요즘에 나오는 책들처럼 영상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처리해 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서 내 착각에 대해 언급했는데, 건물을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그린 후 나무나 꽃처럼 색색깔 포인트만 자수를 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코, 맙소사! 왜 먹지가 필요한가 했더니 건물 부분도 검은 실로 라인을 따야 하는 거였다. 잠시- 꽤 오래 고민을 했다. 나는 이걸 왜 하려고 하는 거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명쾌했다. 나는---- 즐거워야 한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놓는 과정이다.

p.9, 서문 중에서


좀 비뚤게 그려져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보여도, 제일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인 거니까. 자수 선배인 그림 친구의 조언을 따라 그림 그릴 때 사용하던 피그마 펜으로 천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가는 촉으로 스케치하듯 라인을 그리고, 좀 더 굵은 촉으로 덧칠을 해서 되도록 자수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만들었다. 책에선 책의 도안 아래에 먹지를 깔고 그리라고 조언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일 가장 단순한 도안을 골랐다. 검은 실 사용은 과감하게 버리고, 바로 초록색 실을 집었다.


책 앞쪽의 다소 불친절한 설명 파트와 달리, 본격적으로 수를 놓는 과정은 사진과 설명이 세세하게 실려있어 비교적 따라가기 수월했다. 다만 실의 가닥수나 몇 번 감아내느냐 하는 부분은 내 판단에 따라 조절했다. 나쁘지 않았다. 막눈인 내 눈엔 어차피 다 훌륭해 보인다. 무엇보다- 나름 즐거웠다.


한 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아주 초보인 사람에겐 약간의 벽이 있고 여전히 자수는 내게 좀 먼 그대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덕분에 손자수의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굳이 어렵고 특별한 기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데 고무되었다.


특히 자수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자수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더 다양한 표현 방식을 끌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치가 그런 측면에서 참- 크게 다가왔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의 일상적인 거리 풍경을 만나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놓는 과정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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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지팡이 너머의 세계 - 톰 펠턴 에세이
톰 펠턴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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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그 나이에 자리한 이들에겐 충분히 오래 산 나이지만, 거기서 십 년을 더 산 나에겐 애걔? 싶은 나이에 회고록이라. 어찌 보면 가당찮기도 하지만, 내가 뭐라고 거기에 말을 보탤까. 게다가 '그' 톰 펠튼이다. 인생의 1/3을 말포이로 살았으니 보통의 사람들보다 할 말이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해리 포터의 애독자이자 애청자로서, 해리 포터 촬영장에서의 뒷이야기에 흑심을 품고 이 책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톰 펠튼은 책의 많은 부분을 해리 포터 이야기에 할애했다. 머글들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딱 좋을 정도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인생 1/3이 말포이로서 존재했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만큼 나이를 먹어서일까. 나로선 백금발에 썩소를 무장한 겁쟁이 말포이가 아니라 톰 펠튼 자신으로서의 이야기가 더 즐거웠다. (게다가 톰 펠튼의 문체는 재치와 유머가 있다. 배우로서의 경력 덕분인지 감성도 풍부하다.) '평범한' 십 대로 살아남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자행한 장난들이, 어쩐지 치열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 과정에서 여러 일탈이 있었더라도, 크게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 친구들과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건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더 다행인 것은 톰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점을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급한다. 아주 가깝게는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에서부터 촬영지에서 만난 배우와 스탭, 스턴트맨, 선한 사마리아 3인까지- 해리 포터 속 말포이로서뿐만 아니라 그 이후 계속된 배우로서, 혹은 톰 펠튼 자체로서의 삶에 있어 온전히 자신으로 설 수 있게 해 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사람이었다는 것에 뭉클해진다.


그 언젠가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말했듯, '결국 사람'인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남은 인생에 또 어떤 굴곡을 만나더라도 분명 잘 이겨낼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마법사의 세상을 떠나 머글이 된 톰, 화이팅이다. 늘 머글이었던 나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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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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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이야기꾼이다. 누구는 짧은 토막글 하나 뽑아내려 해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데뷔 후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소재나 문장이 지겹지 않고 새롭다. 추리물을 워낙 많이 써서 처음엔 추리작가인가 싶었지만,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만큼 인기몰이를 한 《나고야 잡화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비슷한 치유 계열로 《녹나무의 파수꾼》도 있다. 《녹나무의 여신》의 전작이다. 말하자면, 장르를 막론하고 글을 잘 쓴다. 아인슈타인의 뇌만큼이나 열어보고 싶다. 내 뇌와 아주 다를 것이라는 것만큼은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만.


일단 사람부터 죽이고 시작하는 추리물을 많이 내놓긴 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어딘가 따뜻하다. 사람이 몇이고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놓지 못하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이 어느 작품에나 묻어났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사람이니 이런 책을 써도 위화감이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녹나무의 파수꾼》을 먼저 읽지 않는다면 녹나무의 존재 자체가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기는 했으되 기억이 희미할 정도여서 안 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 정보는 《녹나무의 여신》에서도 알려주니까,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다. 녹나무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딱 그만큼만 마음을 열면 된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야말로 착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사정이야 있겠다만 기본적으로 선량하다. 범죄가 일어나고 그 일이 주요 인물들과 얽혀들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가 밝혀질까 봐 조마조마한 그런 정도의 소동이다. 


그렇다면 온갖 종류의 자극에 노출돼있고 다 큰 성인의 집중력이 10분이 채 안 된다는 현대인이니만큼 이런 착한 이야기는 좀 지루하고 심심해야 마땅한데, 4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쉬지 않고 읽어나갈 만큼 흡입력을 가졌다. 아니,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딱 한 번, 50여 페이지 분량을 남긴 상태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덮었다.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힘들구나. 답답하구나. 막막하구나. 그래도, 지금,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랬던가. 살아있으니 하늘도 볼 수 있고, 땅도 밟아보고,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을 살 수 있다. 작중 인물이 어떤 마음으로 이 문장을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니 먹먹함이 더욱 커졌다. 남은 50 페이지는 보기에 따라 비극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결말이었지만, 저 한 문장이 내 가슴에 남아 더이상 슬프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쩌면, 천재다.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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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검밖에 팔지 않는 것입니까?
에프(F)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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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게임 속 NPC-여야 할- 마루는, 용사로 뽑힌 동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슬라임에게나 통할 동검뿐이라는 현실에 의문을 품는다. 왕국의 높으신 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무려 마왕을 쓰러뜨리는 일인데 빵빵한 무기와 방어구 제공은 필수 아닌가? 일개 NPC도 품은 이 의문을 나 자신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맙소사!

물론 게임이니까 그렇다. 작가가 모티브로 삼은 <드래곤 퀘스트>는 해본 적이 없지만, 자고로 RPG란 캐릭터 육성 게임 아니던가. 시간에 따라 캐릭터를 성장시켜 결말에 이르러야 하는데 처음부터 드래곤 킬러니 버스터드 블레이드니 하는 것을 써버리면 게임이 성립되질 않는다. 그런 짓을 했다간 실격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이머의 사정이고.

세상에 남은 하나뿐인 혈육을 사지로 보내야 하는 형의 입장에서는 세계가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있다. 원래 그런 것이라 납득하고 살 수는 없다. 동생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그래서 마루는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이고, 아버지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사람 좋은 점주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선다. 부조리한 세상을 쥐고 흔드는 상인 길드의 본부를 찾아 일을 바로잡고,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이 책은 우선 소재가 좋다. 게임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또한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몰입할 수 있는 판을 시작부터 깔아준다. 게다가 마루가 제시한 의문은 일견 타당하다. 시작부터 마루의 입장에 빙의한 나는,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점주에 대해서도 마루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꼰대!!”

각지를 여행하면서 마루가 겪는 여러 상황들은 제법 날카롭게 우리의 현실과 맞물린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모순들이 책 속에 가감없이 드러난다. 나는 사실 여러모로 마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마루가 가지는 충격을 나 또한 고스란히 느꼈다. 아마 그 누구보다 몰입해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약간 산으로 간 기분이다. 소설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판타지의 세계로 풍덩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달래진다.

“나도 인간을 다시 믿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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